그리고 우리는 "파시스트"라는 단어의 남발에 의지하면서 그 거짓을 바로잡으려고 한다. 조심하라. 주의해야 될 것은 우리가 늑대가 정말로 나타났을 때에 늑대에게 큰 소리를 질러야만 한다고 말은 없다.
나타나기에 좋은 순간을 기다리는 진짜 늑대가 거기에 있다. 포스트포드주의적 자본주의의 "위로부터의 전복"은 이탈리아에서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다. 이탈리아는 유럽의 우파들에 의해 이미 실험된 사회적 노동의 이 괴이한 위계를 아직 알지 못한다. 이탈리아는 기껏해야 이중 속도 사회와 그 속도를 나누는 심연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이탈리아는 지금까지 자본주의적 탈근대에 대한 제한되고 희화적인 경험만을 했을 뿐이다 : 마약과 크랙시즘, "역사적 타협"과 "약한 사유", 서커스와 부패, 마피아와 회개한 범죄자들... 정작 중요한 대목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기다리고 있는 진짜 늑대가 거기에 있다. 그러나 누가 파시스트이고 누가 파시스트가 아닌지를 다시는 혼돈하지 말자. 1948년 공화국 헌법을 고쳐서 이 자유대의제 체제에 대통령제를 겹치는 것은 파시즘에 의한 것이 아니고, 드골주의에 의한 것일 뿐이다. 지역 자치체나 지방 자치체를 확장하고 심화시키는 것은 파시즘에 의한 것이 아니다. 기껏해야 이것은 이기주의가 될 수 있을 뿐이다. 다수가 제도적 압력에 의해 공중도덕의 해방에 대항하는(낙태에 반대하고, 동성애에 반대하는 등의) 반동적 공세를 취한다는 것은 파시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교권주의(cléricalisme)에 의한 것일 뿐이다. 확실히, 이 모든 것은 베를루스코니 정부 아래서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파시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우파에 의한 것이다. 베를루스코니는 반동적 공동체를 해석하고, 구축하고, 혁신하고, 찬양한다. 베를루스코니는 지난 20년 동안에 이미 이루어진 이탈리아 사회의 변화를 이탈리아 사회에 보여주면서 탈근대적이고 소통적인 새로운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고 또 완성시킨다. 우파와 좌파가 구별할 수 없게 된 진부한 사회, 사유가 "약하고", 꽉 막혀 있고, 온갖 무력한 방식이 반복되는, 그러한 진부한 사회, 또 평의회 조합이 기업조합으로 뒤바뀌어서 평의회 조합이 모든 사회적 대항권력 대신으로 생산되는 그런 진부한 사회, 요컨대, 기업체의 사장이나 정치적 우두머리들을 포함한 거대한 부패가, #다중의 사유와 도덕의식에 영향을 미쳤던 것과는 전혀 대면하지 않았던 바로 그런 사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