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자 다지원 소식
이탈리아의 "혁명"과 좌파의 "이행"1)
이탈리아의 최근의 선거에서 우파의 승리보다 더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므로 베를루스코니가 승리를 거둔 유일한 사람이 아니었다 : 우파는 이미 그에 앞서서 승리를 거두었다. 우리는 이미 1993년 여름의 사설에서 우리 잡지의 독자들이 모이는 작은 써클의 주의를 끈 바가 있다 : "이탈리아에서 1989년의 위기를 자신만의 이익으로 자본화하고 있는 것은 우파이다(프랑스 공산당이 부랴부랴 당명을 바꾸고, 아주 오래전부터 어떠한 공산주의자도 양심을 갖고 살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는 #희소식을 사방으로 퍼트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우파가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자본화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 우파가 승리한 것은, 그들이 이탈리아의 생산조직의 심오한 변경을 해석할 줄 알았고, 현대사회에서 소통의 역할을 이해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선거운동 마지막 몇 달 동안에, 베를루스코니가 갑자기 등장했을 때에, 그는, 통신산업을 지난 몇 년 동안에 전개되었던 반재정적이고, 반관료적이고, 반국가적인 기업주의 반란을 정치적 승리로 바꾸고 있었던, 중소기업주들의 당으로 하여금 서비스하도록 한다.
베를루스코니가 그들 중의 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다. 그는 또한, 북부지방의 오래된 모든 강제들을 해방시킬 새로운 에너지를 열어냈던 모험에 가담했고, 그리고 이탈리아로 하여금 새로운 중소기업들의 생산성을 기반으로 세계 4위 내지 5위의 산업 강국으로 되도록 했던 모험에 가담하였다. 베를루스코니는 통신산업 영역에서, 섬유산업 영역에서 베네통이 그러했던 역할을 한 사람이다 : 즉 분산된 노동을 결집시킬 수 있었던 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통신산업은 섬유산업이 아니다. 포스트포드주의에서 생산에 대한 명령의 정치적 형태는 바로 통신이다. 이것은 포드주의 시대에 생산에 대한 명령의 정치적 형태가 미라피오리에 있었던 거대한 자동차 산업, 강철 산업, 화학 산업에서의 테일러주의화된 대공장이었던 것과 같다. 그래서 베를루스코니는 이탈리아의 산업권력의 위계에서 보면 아넬리2)의 자리를 차지했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점이다 : 아넬리는 상원의원이 되었고, 베를루스코니는 행정부 수장이 되었다. 베를루스코니는 생산의 새로운 네트워크를 통치에 끌어들였을 뿐만 아니라, 그와 더불어 새로운 영역을 광적으로 착취하려는 생산적이고 야심적인 그 소통문화 속에 유기적으로 삽입된, 자기도취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기업체 소사장들의 신자유주의적인 무절제함을 통치 속으로 끌어들였다.
1) 1994년 『전미래』지에 실렸던 글이다.
2) Giovanni Agnelli : 이탈리아 피아트 자동차 회사의 창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