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320159.html학단협 20돌 ‘학술운동 제도권화’ 자성 목소리
출처: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320159.html

“학회·단체, 정부지원속 학문 자율성 위축” 비판
탈국가·신계급담론 등 소통·실천 모색 움직임


국내 진보적 인문사회과학 연구단체의 협의기구인 학술단체협의회(학단협)가 창립 20년을 맞았다. 1988년 11월 한국산업사회연구회와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한국정치연구회 등 10개의 진보적 학술단체가 모여 출범한 학단협은 “연구와 학술 활동을 통해 사회 민주화에 이바지한다”는 정관이 말해주듯 학술 ‘운동’ 단체로서 실천적 지향이 뚜렷했다. 이론을 매개로 현실을 비판하는 ‘이론적 실천’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 변혁을 위한 ‘실천적 이론’을 안출하려 했고, 일부는 그 이론을 들고 현실의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20년이 흐른 지금 학단협 안팎에선 “학술운동이 제도권 내부의 ‘교수운동’이 되어버렸다”거나 “운동의 정체성을 잃고 국가기관의 ‘협치’(governance) 파트너로 전락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서유석 학단협 상임대표도 “학술운동이 상당 부분 ‘제도권 학회’의 연합운동으로 축소된 측면이 있다”고 인정한다. 핵심 회원단체들이 정부 지원을 받는 제도권 학회로 자리매김되고, 연구활동 역시 사회과학논문인용색인(SSCI)이나 학술진흥재단(학진)의 등재지 기준에 따라 규율되면서 지식생산 역시 특정 방향으로 구조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88년 문학예술연구소 회원으로 학단협 창립에도 참여했던 조정환 ‘자율평론’ 상임만사(만드는 사람)는 이런 현상을 ‘학문의 국가종속’이란 관점에서 비판한다. 그는 “종속은 두 가지 형태로 이뤄졌는데, 하나가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연구자들 일부가 통치시스템에 적극 가담하는 형태였다면, 다른 하나는 학술진흥기금을 매개로 학술활동이 정부 통제체제에 편입되는 방식이었다”며 “두 가지 모두 학문 자율성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진단했다.

연구공동체 ‘수유+너머’에서 활동하는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는 ‘학술운동’이란 명칭 자체에 회의적이다. 이 교수는 “연구자 대부분 대학에 자리를 얻고, 단체들 역시 정부 지원을 받으면서 학단협은 제도권 안에서 공식 지분을 가진 ‘좌파 학계’가 됐다”며 “특히 학술지를 운영하거나 학진의 심사에 참여하는 좌파 연구자들의 행태는 과거 그들이 비판했던 우파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꼬집었다.

90년대 중반 산업사회연구회 활동을 통해 학단협과 인연을 맺은 신진욱 중앙대 교수도 “진보 학술지들이 학진의 등재(후보)지가 되면서 연구자들에게 표준화·획일화된 글쓰기가 강요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게재 기준을 충족시키려다 보니 대중과의 소통 지점은 좁아지고, 운동에 대한 실천적 고민도 약화되는 문제점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학단협 안에서도 자성과 쇄신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2003년 상임대표를 지낸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학술운동이 외부 권력과의 싸움은 중시하면서도 내부의 제도·문화·관행을 개혁하는 데는 소홀했던 게 사실”이라며 “우리 스스로를 권력대상으로 성찰하지 않는 한 운동의 발전은 없다”고 진단했다. 조 교수는 8일 열리는 2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와 함께 △탈국가·생태·여성주의 시각의 내재화 △복합적 신계급담론의 정교화 △제도권·비제도권의 경계 허물기 △학벌주의·학진 질서 타파 △신자유주의적 지식생산 규칙의 극복 등을 진보 학술운동의 과제로 의제화할 계획이다.

80년대 초반 김진균·변형윤 등 해직교수들을 중심으로 분과학문별 소규모 연구그룹이 생겨난 뒤 대학원생·사회운동가를 주축으로 세를 규합해간 학술운동은 88년 6월 서관모 충북대 교수의 논문에 대한 검찰조사에 공동 대응하는 과정에서 상설 협의체인 학단협을 탄생시켰다. 현재 26개 단체 5000여명의 연구자가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매년 한 차례의 연합 심포지엄을 열며, 수시로 사회 쟁점과 관련된 정책토론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