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자 다지원 소식
□ 다지원 세미나강좌 PRAB & NEHU ∥2010년 1월 12일∥발제자: 이선화
텍스트: 발터 벤야민,『아케이드 프로젝트』, 새물결 출판사(조형준 역, 양장합본 1권), 2005, 98~112쪽
1. 요약
1.1. 최초의 만국 박람회는 먼저 국민 규모의 산업박람회로 1798년 노동계급에게 오락을 제공하는 목적으로 개최되고 실제로 그 목적이 달성 -노동 계급에게 “해방의 축제”-된 것으로 기록한다. 이때의 박람회에선 -상품을 물신화하기 위해- 노동 계급이 고객으로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지만 아직 오락산업의 틀은 마련되지 않았으며, 이를 민중 축제가 틀을 마련하였다. 19세기 중엽 세계경제의 흐름을 예측하고 상업적인 계획에 적극적이었던 생시몽주의자들은 계급투쟁은 예상 못한 까닭에 프롤레타리아 문제에선 무기력하던 중, 박람회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개최하게 된다.
1.2. 만국박람회는 환(등)상을 통상을 통해서 사용가치가 높지 않은 -필요성 떨어지는- 물건을 보다 값지게 보이도록 미화시키는데, 사람-주로 박람회의 공략 층인 노동자 계급-들은 기분전환을 위해 방문한다. 박람회에선 그랑빌 예술의 주제가 돋보인다. 인간은 자기 자신과 타인으로부터의 소외를 즐기는 가운데 오락산업을 통해 자신이 -미화 된-상품의 높이까지 올라감으로써 기분전환이 되는 데, 특히 ‘특제품specialite’에서 마르크스가 상품의 ‘신학적 변덕’(자본-1권1편1장‘상품’에 나오는 개념?)으로 부른 것에 상응하는 행위가 그랑빌을 통해 일어나게 된다.
1.3. 만국 박람회는 상품의 우주-유토피아-를 만들어 내는데 이 문학적 맞짝이 바로 푸리에주의적인 자연 연구가인 투스넬의 저서들이다. 그는 패션을 극단까지 추구하는 가운데 패션의 본성을 들어낸다. 패션은 살아있는 육체를 무기물의 세계와 교차시켜, 살아있는 존재 속에서 주검의 권리를 인정하므로 무기적인 것에서 섹스어필을 느끼는 페티시즘이야 말로 패션의 생명핵심으로 상품숭배는 페티시즘이 자신에게 봉사하도록 만든다.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 즈음 빅토르 위고는 ‘유럽의 모든 국민들에게’라는 성명을 발표하였으며, 프랑스의 노동자파견단은 보다 분명하게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에 1차 파견단, 1862년 런던 박람회에 750여명의 2차 파견단으로 참가하였다.
1.4. 역사적으로 루이-필립 치세에 개인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게 되는데 이때 새로운 선거법의 도입을 통해 민주적 기구가 확대되던 시기와 기조가 주도한 의회가 부패한 시기와 겹치게 된다. 이때 개인에게 있어 최초로 생활공간과 노동공간이 대립하게 되는데, 개인이 요구하는 실내의 환상을 직업적 고려를 사회적 고려에까지 확대할 생각이 없기에 이는 더 절박해지고, 생활공간에 개인의 우주를 대변하는 환상을 위해 멀리 있는 곳과 과거를 수집해 들인다.
1.5. 생활공간의 실제적 중심이 사무실로 옮겨간 인간은 자기 나름대로 자기방에 도망갈 공간을 만들어 놓는다. 유겐트슈틸은 표방하는 이론에 따르면, 실내에 완성을 가져오는 개인주의 이론 같다. 유겐트슈틸은 기술로 무장한 환경에 대항하여 콘트리트 속에서 식물적 자연의 상징인 꽃으로 표현되고, 이는 고독한 영혼의 미화가 목표인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실내는 예술의 피신처이기에 수집가가 실내의 진정한 거주자이다. 사물을 소유함으로써 사물의 상품으로서의 성격을 제거하려 시도하며, 수집가는 사물의 유용성이라는 고역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에 대해 몽상한다. 또한 실내는 방물상자이기도 한데, 거주한다는 건 개인이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이런 특징은 포의 탐정소설 ‘가구의 철학’에서 잘 들어난다.
1.6. 보들레르는 우울을 자양분 삼은 알레고리의 천재이다. 보들레르는 파리를 최초로 서정시의 대상으로 삼았지만, 이는 향수보다는 도시를 응시하는 소외된 자 혹은 산책자의 시선으로 어느 곳에도 안주하지 못한 채 군중 속에서 피신처를 찾는다. 군중을 통해 익숙한 도시는 풍경 혹은 거실이 되는 환상으로 비쳐진다. 곧 이 두 가지는 백화점의 요소가 된다.
1.7. 이들-보헤미안?-의 경제적 입장의 불확실성에는 이들의 정치적 기능의 애매함이 대응한다. 산책자의 형태로 시장에 발을 들여 시장을 둘러보지만, 실제로 자기를 살 사람을 찾기 위해 움직인다. 최초의 활동영역이 군대에서 시작해 이후 소시민, 프롤레타리아가 되지만, 이 계층은 프롤레타리아의 지도자를 적으로 간주하는 반사회적 무리에 가담한다.
1.8. 그는 매춘부들과만 성적인 교섭을 했는데, 그의 시에선 여자와 죽음의 이미지들이 파리의 형상과 뒤섞여있다. 그의 시에서 다뤄지는 파리는 해저 침몰한 도시로 보들레르가 파리를 ‘죽음의 냄새가 나는 목가’에서 결정적인 것은 하나의 사회적 현대적 기층이다.
1.9. 악의 꽃의 마지막 시 ‘여행’은 상품의 사용가치와는 독립된 질을 가지는 새로운 것을 위한 혹은 가상의 근원이 되기 위한 죽음으로의 여행이다. 마주보는 거울에 의해 거울 속의 진상이 반사되어 허상을 만들고 또 다시 반사되어 허상을 만들어내는 것과 동일한 가상이 만들어낸 것은 ‘문화사’라는 환상으로 이를 통해 부르주아지는 허위의식을 만끽한다. 예술은 유용성과 불가능한 것이 되지 않고자 새로운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야 한다. 예술의 새로운 것의 판정자는 속물이 된다. 19세기에는 알레고리가 새로움의 규준이 되는데, 신문은 신 유행품점을 찬양하고, 정신적 가치의 시장을 조직하며, 거기서 호경기가 탄생한다. 비순은주의자들은 예술을 시장에 넘겨주는 것에 저항하여‘예술을 위한 예술’의 기치아래 결집하여 예술을 기술의 발전으로부터 차단하려는 총체적 예술 작품이라는 구상이 탄생하게 된다. 작품을 칭송하기 위한 성별식은 상품을 미화하는 기분전환과는 대조를 이루지만 양자 모두 인간의 사회적 존재를 추상화한다.
1.10. 일직선으로 뻗어 원근법적 전망을 확보하는 도로는 오스만식 도로 계획의 이상으로 19세기의 기술상의 필요사항을 예술적 목표설정을 통해 고상하게 만들려는 경향에 상응한 것이다. 나폴레옹3세는 금융자본을 비호하였으며, 파리는 투기의 전성기를 맞아 주식은 도박형식을 대체하였다. 오스만에 의해 토지수용에 따라 사기성 투기가 횡행하게 된다. 오스만식 도시 개조 계획이 재정위기에 빠지게 되자, 오스만은 나폴레옹3세의 독재권을 떠받치기 위해 파리를 특별 행정구로 만들 계획을 세웠고, 그로 인한 임대료 급등으로 인해 프롤레타리아를 교외로 내몰았으며, 파리의 시민들도 편하지 않았다. 오스만식 도시 개조 사업의 진정한 목적은 도로 폭을 넓혀서 시내에 바리케이트 설치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병영과 노동자 지구를 최단거리로 연결하여 내란이 일어나지 못하게 만들려는 ‘전략적 미화’이었다.
1.11. 그러나 코뮌 동안 바리케이드는 전보다 더 견고하게 부활 되었으며, 프롤레타리아 초기 시대에 지배했던 부르주아지와 손을 잡고 1789년(프랑스혁명)의 과제를 완성하는 것이 혁명의 과제라는 환상이 불식 되었다. 그러나 생산력의 발전은 19세기의 프롤레타리아 노동자들의 원망들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생산력의 발전이 조형형식들을 예술에서 해방시켰으며, 이처럼 생산물은 이제 모두 상품으로 시장에 들어갈 참이었다. 하지만 아직 문턱에서 주저하고 있다. 아케이드와 실내 박람회장과 파노라마는 이러한 주저의 시대의 산물이다. 모든 꿈의 요소들을 살리는 것이 변증법적 사고의 정석이 되어야 하며, 변증법적 사고는 역사적 각성의 도구로써 다음시대를 꿈꾸는데 뿐만 아니라 꿈을 꾸면서 꿈으로부터의 각성을 재촉하기도 한다.상품 경제의 동요와 함께 우리는 부르주아지가 세운 기념비들이 실제로 붕괴하기도 전에 이미 그것들을 폐허로 간파하기 시작한다.
2. 이해가지 않는 대목
2.1. 106쪽: 12줄 ‘그러나 이 현대는 항상 근원의 역사를 인용한다. 여기에서 그러한 인용이 이루어지는 것은 이 시대의 사회적 상황과 산물의 고유한 양의성이 존재하는데 이 양의성은 이미지를 통한 변증법의 드러남, 정지상태의 변증법의 법칙이다. 이러한 정지 상태가 유토피아이며 따라서 변증법적 이미지는 꿈의 이미지이다. 상품 그 자체, 즉 물신으로서의 상품이 이러한 이미지를 제시해준다. 집이면서 동시에 도로이기도 한 아케이드 또한 이러한 이미지를 제시해준다. 판매인과 상품을 한 몸에 겸하고 있는 매춘부도 마찬가지다.’
3. 질문하거나 토론해 보고 싶은 문제
3.1. ‘루이-필립 또는 실내’에서는 유겐트슈틸이 기술에 의해 포위당한 예술의 마지막 출격시도라고 묘사하며, ‘보들레르 또는 파리의 거리들’에서는 예술가들이 예술을 시장에 넘기는 것에 저항하여, 예술을 기술의 발전으로부터 차단하려는 총체적 예술 작품이라는 구상이란 표현을 읽으면서 마치 기술자체가 예술에 대한 위협으로써 인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기술과 기술자들이 자본에 포섭되어 상품을 만들어 부르주아지의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 협조하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사용된 점이 이해가 가지만, ‘기술 = 상품생산을 위한 도구’로 인식하는 과정은 기술이 인류에 기여 할 수 있는 여지 자체를 닫아버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