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지원 세미나강좌 PRAB & NEHU ∥2010년 4월 2일∥발제자: Longstar

텍스트: 게오르크 루카치,『미학4권』, 미술문화, 2000, 221쪽~243:4

1. 요약

4. 해방의 토대와 전망 - 원칙적 차원의 미학적인 문제들

1.1. 차안성은 예술에서는 단순히 초월성의 추상적 부정이 아니라 무엇인가 매우 활동적 적극적이고 또 창조적인 것이다. (221: 4)

1.2. 인간들의 삶과 그들의 생각, 감정, 신화적 혹은 반 신화적 표상과 환상 등은 인간적 현존재에 작용하는 초월성의 계기로서 예술의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물신성이며, 예술은 그러한 물신성을 순수한 인간성, 인간적인 관계, 주관적 감정, 격정 아니면 사고 작용 속에서 해체시켜야만 한다.  (221: 10)

1.3. 작품개성의 대자적 존재는 절대적인 초월성을 거부하고 또 인류의 가장 깊은 세계긍정, 인류로서의 자의식, 즉 인간 스스로가 자기 운명의 주인이라는 것을 범주로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222: 11)

1.4. 대자적 존재의 인류적 의미는 내용적 풍부함 속에서 우리들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악의 초월성은 물론이고 선의 초월성으로 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이러한 해방투쟁은 도스토에프스키의 중간 단계적 해석을 거쳐 최종적이면서도 최고의 형식을 토마스만의 ‘파우스투스’에서 획득하고 있다. (224: 2)

1.5. 초월성에 대한 각 시대마다의 표상들은 각각의 예술작품이 모사하고 있는 사회와 자연과의 신진대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단계의 결과로서 나타난다. (225: 5) 미적 반영과 과학적 반영의 방식들이 비록 다르다고 하더라도 이 양자는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라는 면에서 공통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225: 8) 과학과 예술은 제각기 방식대로 현실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초월성을 철저하게 지양하려는 쪽으로 나아간다. 초월성에 둘러싸여 있다고 믿고 있는 단순한 개별성을 벗어나서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외부세계나 자기 고유의 내부세계를 스스로 제어해야 한다. (225: 26)

1.6. 인간들은 언제나 보다 높은 의식의 형식들, 특히 윤리적 형식 속에서, 이간적 발전과 자기  완성의 객관적, 주관적 한계, 객관적 현실 속에 있다고 여겨지는 어떤 절대적 초월성에 대한 상상, 주관적 면에서의 단순한 개별성의 제한성, 인간과 관련된 신학 등을 넘어서려 한다. (95: 20)

1.7. 진리에 부합되는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자기 비추기를 통하여 자기 자신을 알고 또 외부세계 및 스스로에 대한 그의 고유한 관계를 알아보는 것 즉 그와는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 버린 세계의 모상으로서 고유한 현실과 고유한 본질을 자기 것으로 만든다. (227: 20) - 이러한 거울은 목적론적 성격을 띠게 된다.

1.8. 예술적 의미 부여는 - 형상화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뜻한다. - 그것이 형식적으로 전형적인 것, 특수한 것으로 고양될 때 또 내용적으로는 인류의 자기의식화를 위해 적합한 대상을 불러낼 수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229: 17) 이런 점에서 보면 리얼리즘이란 많은 다른 스타일 중에서 하나의 특별한 스타일이 아니라 모든 창작의 예술적 기초하는 점이 드러남

1.9. 인간적인 것을 자양하고 있는  현실의 본질적 계기들의 반영으로서 전체로서 뿐만 아니라 모든 디테일에 있어서도 일체의 개별성의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230: 6)  일반적인 의미에서 일체의 예술이 리얼리즘적인 것이라면 역사적으로 사실주의적 스타일을 가능하게 하는 표현 수단이나 관련체계 등처럼 그렇게 많고 다양한  것도 없다.

1.10. 형식해체와 작품의 대자적 존재의 분해로 나아가는 일체의 방향은 일종의 자연주의에 접근할 수밖에 없고 또 현실의 개별적 요소들을 예술적으로 가공하지 않은 채 미학적으로 의도된 복합성 속에 끼워 넣을 수밖에 없다. -- 몽타주 (230: 19)  아방가드르의 추상적 개별성과 공허한 초월성, 이 양자가 작품의 대자적 존재를 파괴시킨다.

1.11. 미적 대자존재는 인류의 자의식의 전개에서 단계를 대표하는 기본구조를 가지고 있다. 개별적 주관성으로 부터 작품완성을 마술을 하듯 이끌어 내려는 시도는 언제나 환상을 드러낼 것이고 공허하고 무를 그 내용으로 하는 초월성에 근거를 두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형상화된 것 속에서 모든 것이 자의에 내맡겨지게 되고 또 대자적 존재가 되고자 하는 요구는 무로 해체될 수밖에 없다. (232: 5)

1.12. 일련의 필연성의 상호 연결로부터 미적 대자존재 그리고 대자와 즉자의 융합으로서의 특이한 구조를 위한 구조가 생겨났다. (232: 12)

1.13. 예술과 도덕 사이의 갈등은 그 본질상 -세계사적으로 보면 - 에피소드적인 것이며, 결코 이 양자의 행동 방식의 본질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칸트도 여기에 지양할 수 없는 대립이 있다고는 보지 않았다. (234: 18)

1.14. 유혹, 사기 등으로 예술을 매도하는 상이한 견해는 그때마다의 주어진 역사적 상황, 특히 사회 시스템 속에서의 종교적 상황으로 부터 나타난다. 종교와 예술에서는 근본적으로 서로 상반되는 세계관의 방식들이 문제가 되고 있고 또 이러한 세계를 바라보는 논의 방식들은 종교와 예술이 설정하고 있는 방식의 기본적인 객관적 의도라는 면에서도 원칙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236: 2)

1.15. 과학 및 윤리의 예술에 대한 관계는 서로 수렴되고 사회적 인간적으로 서로 보완하는 경향들이 우세하다. (236: 6) 과학과 윤리 그리고 예술의 세영역을 함께 묶는 고리는 차안성이다.  과학과 예술은 인류의 기관이며, 인류에 의해 만들어졌고 또 인류를 위해 현세적인 것을 정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기능하게끔 되어있다. (236: 11) 이것은 개개인들에게 직접적으로 주어진 자기 자신의 개별성을 넘어설 때 가능하다. (237: 12)

1.16. 한쪽의 과학 및 예술, 다른 한쪽의 종교 사이에 존재하는 대립은 지양될 수 없다. (237: 12) 인간 문명의 시작 이래 수천 년의 경험은 차안적 세계관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가장 중요한 기초들이 놓여 졌고, 이러한 기초들은 주관적인 방식으로도 인간들에 의해 자기 소유가 되어야만 하고, 그래야 세계관의 변혁을 실제로 긍정하는 차안성의 방향으로 완성할 수 있다. (238: 12)

1.17. 인간들이 외부세계와 내면세계를 두고 쌓아 올리는 상 -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식-은 일차적으로는 그들의 지식에 달려 있다. 이렇게 해서 과학적으로 얻어진 세계상은 인간적 삶, 인간적 실천, 그 실천에 대한 인간적 성찰의 유기적 구성성분이 된다. (239: 5) 과학적 세계상을 그 자체 속에 수용하는 윤리적 방식은 과학적 세계상으로 부터 행동의 주요한 동기를 형성하고, 어떤 세계상의 사회적 영향력이라는 면에서 중요하다. (239: 18)

1.18. 에피쿠르스 - 삶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위해서는 공포와 같은 정서를 매우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극복하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윤리적 태도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의 현상들에 대한 인식의 기초위에서만 가능하다. (240: 6)

1.19. 현대의 윤리학은 본질적인 면에서, 단일한 개인의 주관적 행동으로 환원되고, 불가피하게 형식주의적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주의 주장이 결과나 윤리적 결단이 내려지는 전제 조건들 앞에서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241: 9)

1.20. 예술의 해방 및 예술이 자체로 완성되어 가는 것의 계기로서 우리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는 종교를 둘러싼 이러한 투쟁은 인간의 전체 삶을 통제하고 주도하는 체계로서의 종교 그 자체가 아니라, 추상화 되고 종교에 완전히 매몰된 종교적 욕구를 그대로 보존하느냐 사라지느냐의 문제이다. (242: 6) 윤리학은 종교적 태도와 마찬가지로 초월성에 대한 개별성의 단순한 관계로 축소 되었다. (243: 2)


2. 이해가지 않는 대목

2.1. 차안적 이란 언어의 뜻?

3. 질문하거나 토론해 보고 싶은 문제

3.1. “몽타주 -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하학주의 - 단순히 추상적인 개별성이 된다. 아방가르드 - 추상적 개별성과 공허한 초월성이 대자적 존재를 파괴 시킨다.” 는 관점은 타당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