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땀을 좀 뺐습니다. 무지한 스승보다 결코 쉽지 않던데요,헉~! 어려운 글은 아닌듯하면서도 방대하게 뻗어있는게 뼈대를 짚어나가는 게 제 힘에 겨웠습니다. 이해를 잘못한게 많을 듯 해서 미리 변명합니다. 그리고 한가지 제안하고 싶은게 있슴다. 내일은 뒤풀이를 위해서 9시경에 세미나를 끝내면 어떨까 합니다. 늦어도 10시 30분에는 일어나야 하기에~. 한달에 한번 겨우 참석하면서 공부시간을 줄이는 게 죄송은 한데 뒤풀이도 함 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서요. 다른 분들의 의견도 있을테니 우선 제안해 놓겠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다지원 기획세미나 <다중 교육학> ∥2010년 4월 22일∥발제자: 송연수

텍스트: 이반 일리히,『학교 없는 사회』, 생각의 나무, 2009년, 23~62쪽 (1 왜 학교를 비국가화해야 하는가)

 

1. 요약

1.1. 건강, 공부, 존엄, 독립, 창조 등의 비 물질적 요구, 혹은 그것의 가치가 상품의 수요로 변화되고 제도화되어 지구의 심각한 물질적 오염, 사회적 양극화, 심리적 무능화를 초래하였다. 이런 ‘가치의 제도화’와 정반대 되는 일이 일어나도록 인간적, 창조적, 자율적인 상호작용과 전문기술자에 의해 본질적으로 통제될 수 없는 가치의 창조를 돕는 제도를 창조하는 기술의 유용성에 대한 것을 밝히고자 한다. 이런 과제 제기의 패러다임으로 ‘학교’를 선택하였고 학교화된 사회를 비학교화한다는 것의 의미를 탐구한다.

1.2. 교육 뿐만 아니라 사회현실(학교, 병원, 사회복지 등) 자체가 학교화돼왔다. 모든 간단한 요구에 대한 제도적 대응을 만들 때마다 새로운 계급의 빈곤이 나타나고 빈곤은 현대화된다. 상황에 영향을 비칠 수 있는 힘의 결여와 인간적 능력의 결여가 결합된 현대화된 빈곤을 극복하고자 벌이는 보호와 재정지출은 스스로의 경험과 자원을 토대로 하여 스스로 생활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하여 더욱 빈곤을 증대시킨다. 빈곤 아동의 교육 개선 역시 재정이 불충분하고 적절하게 사용되지 않으며 교육적 불이익이 학교교육에 의존해서는 구제되지 않음으로 인해 실패한다. 가난한 나라보다 미국이 더 심각하다. 미국, 남미 모두 빈민이 의무교육에 의해 평등을 확보할 수는 없는 것이다.

1.3. 평등의무교육은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실현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발제자-교육은 학교 안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음으로 모두가 평등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을 위한 재정 확보란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라고 이해함) 그러므로 강제적인 학교화는 사회 양극화를 가져오고 학교 지출의 증가는 국가와 세계의 파괴성을 강화한다.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학교교육은 원칙적으로 경제적인 모순이며, 지적으로 무력한 것이고 사회를 양극화하고 정치체제의 신뢰를 파괴한다. 교육기회의 평등화는 바람직하고 실현가능하지만 강제적 학교화와 동일시함은 영혼의 구제와 교회를 동일시하는 것과 같다.

1.4. 학교독점을 헌법에 의해 폐지해야 한다. 국가는 교육의 확립에 관한 어떤 법률도 만들 수 없다. 편견과 차별을 폐지해야 한다. ‘학력’과 ‘공부가 가르침의 결과’라는 것은 학교 교육에 대한 환상일 뿐으로 이 환상 속에서 학교는 기회의 평등 대신 기회의 배분을 독점한다.

1.5. 공부의 본질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음을 사회의 비학교화는 드러내준다. 그 두 가지는 반복훈련(기능교육)과 기능을 탐구적이고 창조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교육(창조적이고 탐구적인 공부)이다. 반복훈련은 본질적인 공부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평판이 낮은데 이를 교정하고 기능교사의 ‘시장’개방 등이 요구된다.(√) 또 다른 공부, 즉 공동체가 축적해온 기억의 문을 열수 있는 열쇠를 이미 가지고 있는 당사자 사이의 관계에 의존하고 탐구자와 그 상대가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해서 새로운 문을 열게하는 놀라운 일에 의존하는 교육이 있다. 그러한 교육적 목적을 위해 당사자를 만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 자신이 주도적으로 선택하고 정의한 문제를 둘러싸고 모일 수 있어야 한다. 창조적이고 탐구적인 공부를 위해서는 같은 말이나 문제에 대해 동시에 고민하는 동료들이 필요하다.

1.6. 학교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대안은 자신이 현재 관심을 갖는 일을 타인과 공유하는 동일 기회를 각자에게 부여한 망이나 서비스이다. (여기에 세가지 반론이 생겨난다. 54쪽) 참가자 중 누구도 더 머물도록 강요받지 않고, 다시 만나기를 강요받지 않으리라. 이 기회는 현대도시 생활의 불투명성을 꿰뚫고 새로운 우정, 스스로 선택한 일, 비판적 독서를 증대시키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기능을 교환하고 당사자를 만나게 함은 모두, 모든 사람을 위한 교육은 모든 사람에 의한 교육을 뜻한다는 가정에 기초를 두고 있다. 배우고 가르치는 능력을 행사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평등한 권리이다. 우연적이고 비공식적인 교육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될 것이다.

1.7. 현대의 공부 형태를 찾아야 한다. 현대인은 그가 주변적으로만 관련된 많은 구조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방법을 배워야한다. 현대사회는 의식적 계획의 결과이고 교육 기회도 그 속에서 계획되어야 한다. 전문화되고 전일제로 가르쳐지는 것에 의존하는 것은 감소해갈 것이고 배우고 가르치는 다른 방법을 발견해야 한다. 그러나 더욱 희생될 수도 있다. 강제 진급 반대 운동의 경우, 더욱 적은 교육의 요구로 오해되기도 했는데 현대사회의 교육적 의미의 소외는 그 경제적 소외보다 더욱더 나쁜 것이다.

1.8. 참된 교육 사회의 가장 큰 장애는 우리의 상상력이 완전히 학교화된 것이다. 타인을 위해 필요한 교육과 필요하지 않은 교육을 구분할 수 있다는 망상이 그것이다. 지금 학교에서 소멸되고 있는 것은 교육 그 자체이다. 교육의 비학교화도 학교에서 성장한 사람들의 리더십에 의존한다. 우리들 각자는 이러한 책임을 받아들이는 데에 그치고, 타인에게 경고하는 역할에 그칠지라도, 현재의 자신을 만든 것에 대한 책임은 여전히 지고 있다.

2. 이해가지 않는 대목

2.1. 60쪽 5줄~11줄 : 이것이 사회의 비학교화로 가는 방향이라는 뜻인지 혼동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