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page발전위원회 아수라

  2. page철학미학_정동과 정서

  3. page철학미학_들뢰즈와의 마주침

  4. page철학미학_생명과 혁명

  5. page철학미학_건축, 도시공간

  6. page철학미학_미디어 이론 세미나

  7. page정치철학_고전 읽기

  8. page정치철학_여성주의 세미나

  9. page정치철학_Assembly 읽기 세미나

  10. page문학예술_시 읽기 모임

  11. page정치철학_푸코 세미나 : 파레시아 읽기

  12. page문학예술_소설 읽기 모임

반갑습니다!세미나 신청 FAQ

세미나 참가방법이 궁금하시면 클릭하세요!

연구정원 자주 묻는 질문들
세미나 소개세미나 한눈에 보기

현재 다중지성 연구정원에서 진행 중인 세미나 목록을 보시려면 클릭하세요!

세미나 한눈에 보기


▶최근 게시물



▶최근댓글



찾아오시는 길

주소: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18길 9-13
[서교동 464-56]
(우편번호:04030)

메일보내기(daziwon@gmail.com)

연락처: 02-325-2102
계좌: 479001-01-179485
(국민/조정환)

mask

mask ☆140자 다지원 소식

mask
미디어 이론 세미나

1장 파문 정리

조회 수 2681 추천 수 0 2010.10.14 23:31:30

라깡적인 라깡 읽기 『세미나』

1장 파문

서두

+라깡을 라깡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이에 대해 뚜렷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라깡적으로 라깡 읽기를 시도해보고자 한다. 라깡을 통해 라깡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겨우 라깡을 라깡적으로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라깡을 읽는 주체는 더 이상 ‘나’일 수 없다. 라깡을 읽는 것은 무엇보다 라깡이어야 한다. 분석학적인 관점이 주변으로 밀려난 통속적 라깡 독해는 ‘정신분석이란 무엇인가’라는 라깡의 질문을 너무도 쉽게 닫아버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박쥐’처럼 라깡을 읽어야한다. 나는 라깡의 권위에 기대어 라깡의 말 자체를 읽어보려고 한다. 세미나의 구성에 따라 그의 발화를 유심히 따라갈 것이다. 특히 잡담으로 보이는 군더더기적 발화에 주목하려고 한다. 그것이야말로 라깡을 라깡적으로 읽는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독해에 있어 나는 지젝과 고진의 견해를 참조할 것이다. 공부와 성실함의 부족함으로 그들의 텍스트를 직접 가져오는 방식보다는 나의 애매한 기억에 의존하여 그들의 설명방식으로 라깡을 읽으려 한다. 그러니 나의 독해는 일종의 증상일 수밖에 없다. 나는 한계라고 규정지어진 곳에서 독해를 시작하려고 한다. 이는 정확히 라깡이 세미나를 재개하는 지점과 겹쳐질 것이다.+

라깡은 자신의 세미나가 가능해진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것으로 세미나를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권한(세미나 진행에 관한; 정신분석학적 주제에 대해 말할 수 있는)이 대단히 소극적인 것이며, 초청, 소문, 고매한 사람들의 호의, 공감, 배려 덕분에 겨우 자신에게 부여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정신분석협회가 라깡에게 제기한 자격문제에 대해 라깡은 자신에게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강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그에게 자격에 문제가 없다는, 선의의 반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문제를 잠시 보류하는 것이다.’ 세미나를 진행할 수 있는 권한과 자격은 잠정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라깡의 세미나는 라깡이 하던 것을 재개하는 것일 뿐이지만 동시에 그것의 완전히 새로운 단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소극적인 권한, 정신분석학의 기지base는 바로 이런 느슨한 토대를 바탕으로 구축된다.

+느슨한 토대는 모든 구축에 필연적이다. 다만 모든 구축은 스스로의 토대가 느슨하다는 사실을 망각함으로써만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한다. 라깡의 ‘보류’ 역시 그런 의미에서만 필연적이다.+

1절

라깡의 세미나는 정신분석의 실천 자체인 동시에, 그 내부에서 실천을 이루는 한 요소(분석가의 양성이라는 측면에서)이기도 하다. 이 세미나를 통해서 라깡은 다시 ‘정신분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되돌아간다. 그런데 이 질문은 프로이트의 이름을 물려받은 국제정신분석협회와 같은 단체가 ‘삭제’하고픈 기억이다. ‘분석실천’에 앞서 라깡은 스스로를 완전히 안에 있지도, 그렇다고 밖에 있지도 않은 자라고 규정한다. 국제정신분석학회는 라깡을 ‘검열’하고 그의 강의를 자격부여와 관련하여 ‘무효’로 간주하여 ‘금지’했으며, ‘금지’를 협회 ‘가입’의 조건으로 내세운다. 심지어 정신분석가를 양성하는 수업이 ‘두 번 다시’ 재개(반복)되지 않는 것을 보장할 때에만 가입이 가능하다고 명시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상징계로의 진입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반복을 금지하는 법과 죽어있는 아버지, 라깡의 세미나가 서 있는 지점은 얼마나 절묘한 것인가.+

라깡은 이 문제에 대해 프로이트의 전신前身, ‘선례’로서 스피노자를 끌어내어 되돌아올 수 없는, 종교적인 내쫓음을 상징하는 ‘파문’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그런데 여기서 좀 더 주목해야할 것은 라깡이 자신에 대한 ‘파문’이 종교적 실천을 연상시키는 ‘맞교환’, 거래의 대상으로 ‘추문’의 형태로 불쑥 드러났다고(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 것이다.

+거래의 대상이 되는 존재를 거슬러 올라가면 한쪽 끝에 예수가 서 있고 다른 한 쪽 끝에 자본‘화폐’가 서 있을 것이다. 여기서 추문은 뭔가 뒤틀린 현실이란 의미에서 뒤의 헛디딤과 연관지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어떤 잣대에 의해 분석가 자격을 부여하는 라깡 수업의 가치에 관한 양해가, 그를 통해 취득되는 협회의 국제적 자격과 맞교환될 수 있는가?’ 아니, 이것은 막상 자신에게 닥친 상황으로서 ‘희극적 차원’에서 체험되는 차원에서만 가능해지는 무언가다. 고로 라깡은 ‘유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분석적 관점에서 ‘희극적 차원’을 ‘체험’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러한 차원을 ‘지각’하고 ‘인정’함으로써 그것을 뛰어넘게 되는 것. 그러니 토대는 추문의 내막으로서 희극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라깡의 입장에서 ‘카발라’는 일종의 ‘유머’이며, 이는 치부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아니다. 라깡이 정신분석협회에 대한 추문을 드러낸 것은 희극적 차원을 통해 사실을 하나의 대상으로 제시함으로써, 그것을 ‘정신분석의 토대는 무엇인가?’ 즉, ‘정신분석을 실천으로 정초짓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겹쳐놓기 위해서이다.

+웃음에 대한 라깡의 간명한 정의 - 주체의 진실은 주체가 주인의 입장에 있을 때조차 주체 자신이 아니라 대상 속에, 본성상 베일 속에 감춰져 있는 대상 속에 있다. 바로 이 대상을 불쑥 드러나게 하는 일이야말로 순수하게 희극적인 것의 기본이다. - 는 분석학과 유머라는 관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또 라깡은 파문을 폭로하는 자신의 위치를 ‘산 증인’이라 칭하는데 이는 서두에서 언급한 발화의 권한 문제와 1절의 ‘완전히 안에 있지도, 그렇다고 밖에 있지도 않은 자’라는 라깡의 입지와 연결지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불쑥 드러나는 것은 당연히 어떤 ‘실재’의 흔적일 것이다.

2절

라깡은 ‘실천’이 상징적인 것을 통해 실재적인 것을 다룰 수 있도록 인간에 의해 의도된 행동을 가리키는 매우 포괄적인 용어라고 지칭하여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실천’의 범위를 확장(한정)한다. 그리고 라깡의 실천은 우선 정신분석이 과학인지 종교인지를 검토하는 일이 된다. 이는 정확히 말해 정신분석을 통해 종교와 과학의 실재적 위치를 드러내는 일이다. ‘탐구’는 언제나 사전(事前)적 발견에 대한 망각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므로 정신분석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해석학 역시 탐구에 대한 요구라는 측면에서 정신분석의 ‘분석’과 구분되어야 한다. 해석학은 정신분석의 해석을 기꺼이 자기편으로 받아들이지만 이는 혼동에 불과하다.

과학은 대상에 대한 실험을 통해 규정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과학의 대상은 언제나 변화해왔으며, 그것은 차이를 망각함으로서 대상으로 가능해진 무언가다. 우리는 과학 역시 ‘실천이 하나의 장을 규정한다는 사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인식해야한다. 장들을 아우르는 초월적이고 궁극적인 통일성은 관념적인 귀결이며 불필요하다. 일자에 대한 관념은 스스로가 사후적으로만 발생하여, 망각을 바탕으로 기능한다는 사실이 억압될 때만이 굳건하다. 과학자의 실험이라는 경험 역시 신비체험과 같은 경험과 구분될 수 없기에 과학이 실험을 통해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연금술이 과학이 아닌 이유는 연금술의 본질적 요소가 조작자의 영혼이 지닌 순수성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정신분석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으므로 우리는 정신분석에서 이야기하는 분석가의 현존, 분석가의 욕망이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3절

분석가의 욕망이 무엇인가를 묻기에 앞서 우리는 왜 과학의 위기를 정치적이라 치부하며 과학자의 욕망에 대해 묻지 않는가를 고민해보아야 한다. 또 규정된 대상을 구분하는 공식화(公式化)의 문제를 도입해야만 한다. 그러나 공식화도 과학의 굳건한 토대라고 볼 수는 없다. 정신분석의 공식은 무엇인가? 대상의 미끄러짐을 초래하고 변주되게 만드는 것은 분명 프로이트의 욕망이다. 정신분석의 공식이 프로이트에 의해서 최초로 도입되었다는 사실은 프로이트의 용어가 종교처럼 고수되는 것에 대한 이유로 불충분하다. 우리는 오히려 우리의 운동, 분석실천이 프로이트의 욕망을 토대로 운동한다고 말해야 한다. 정신분석의 개념은 형성중이며, 발전하고 운동하는, 재고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의 부분이면서 실천으로 변화하는 장이다. 그러나 이론적 논의에서 프로이트의 개념(용어)이 논의의 중심에서 유지되고 있는 것과 달리 그 내용은 완전히 왜곡, 변질, 단편화, 폐기되었다. 퇴보와 억측의 정신분석에서처럼 정신분석은 자료에 대한 통계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료의 열거는 사후적으로 그 장 전체에 걸쳐 구성된 일자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신분석은 분석주체가 말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분석주체가 말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효과는 사례들의 변별적 특질과 무관한 ‘개입’에서 비롯된다. 히스테리증자는 말하는 운동 자체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구성한다. 프로이트 역시 히스테리증자라는 입구를 통해 무의식의 메커니즘을 발견했다. 히스테리증자는 자신의 욕망을 충족되지 않은 형태로 분석가에게 내보인다. 분석가는 히스테리증자의 욕망을 충족시킴으로써 증상을 치유하려고 하면 안 된다. 도리어 히스테리증자가 자신의 욕망을 충족되지 않은 욕망으로만 유지하는 이유를 물어야 한다. 분석가는 히스테리증자의 욕망이 지닌 원죄라 할 수 있는 프로이트의 욕망과 대면해야 한다. 그리고 그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게(말하게) 만들어야 한다. (교육)분석;분석 실천은 프로이트의 욕망을 채워나가는 일이 아니라, 프로이트의 욕망을 묻는, 그 욕망의 기원을 문제 삼는 실천이며 그것만이 정신분석가를 분석가의 욕망으로 인도하는 길이 될 것이다.



수정 정리 완료.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공지 <미디어 이론> 세미나 참가자 명단 - 2017년 11월 secret 김하은 2017-10-12  
공지 공지 맥루언, 『미디어의 이해』 세미나 참가자 모집! ― 10월 14일 토요일 오후 4시 시작! file [10] 김정연 2017-09-20 2114
공지 다중지성 연구정원 세미나 회원 에티켓 요청 김정연 2015-09-08 415
공지 세미나를 순연하실 경우 게시판에 공지를 올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김정연 2016-03-15 153
23 공지 오늘 세미나(11/18)는 없습니다 ekwon22 2017-11-18 2
22 발제문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file ekwon22 2017-11-03 48
21 자료 [참고] 맥루언의 "미디어는 환경이다" ekwon22 2017-10-23 36
20 공지 10/28(토) 세미나 공지 ekwon22 2017-10-23 37
19 공지 10/21(토) 세미나 시간 변경 ekwon22 2017-10-18 51
18 발제문 첫 세미나 발제문 (WJT Mitchell/Hansen) file ekwon22 2017-10-14 41
17 공지 첫 세미나(10/14)에 대한 공지입니다. ekwon22 2017-10-07 82
16 이 게시판은 앞으로 '미디어 이론 세미나' 게시판으로 사용합니다 김정연 2017-09-11 31
15 7장 왜상 발제문 file 차차 2010-11-18 4019
14 앞으로 [3] hylee2023 2010-11-12 3612
13 6장 눈과 응시의 분열 file 쿨한주니 2010-11-09 4281
12 투케와 오토마톤 영역본 일부 [1] 하호제인 2010-11-08 3885
11 GG를 치며...... [1] 디윰 2010-11-04 3811
10 발제문 file hylee2023 2010-10-21 3058
9 세미나 인원, 연락처와 발제 순서 secret [1] hylee2023 2010-10-15 3071
» 1장 파문 정리 지루루 2010-10-14 2681


자율평론 mask
새로 시작하는 세미나 정동과 정서 들뢰즈와의 마주침 생명과 혁명 건축, 도시공간, 그리고 사회적 삶 푸코 정치철학 고전 읽기 시읽기모임 미디어 이론 Assembly 읽기

새로나온 책 [사건의 정치]

2017년 새책 [영화와 공간]
[집안의 노동자]
[기호와 기계]
[만화로 보는 철도이야기]
[절대민주주의]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
[신정-정치]
[기린은 왜 목이 길까?]
[로지스틱스]
[잉여로서의 생명]
[전쟁론 강의]
[전쟁론]
[천만 관객의 영화 천만 표의 정치]
[가상과 사건]
[예술로서의 삶]
[크레디토크라시]
[대테러전쟁 주식회사]
[마이너리티 코뮌]
[정동의 힘]
[정동 이론]
[공유인으로 사고하라]
[9월, 도쿄의 거리에서]
[빚의 마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