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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미학_생명과 혁명

11/19 [비판이란 무엇인가?] 발제문 모음

발제문 조회 수 142 추천 수 0 2017.11.19 14:03:14

생명과혁명 세미나 ∥ 2017년 11월 19일 일요일 ∥ 발제자: 손보미

텍스트: 미셸 푸코, 『비판이란 무엇인가?/자기 수양』, 동녘, 심세광,전혜리 옮김, 



질문1.
자기 수양 개념과 캘리포니아의 쾌락주의적 사고방식 간의 차이는?

답변
기원전 3세기부터 시작되어 기원후 2~3세기까지의 문화에서 저의 관심을 끄는 것은...epimeleia heautou라고 하는 말로 지칭된 현상, 요컨대 자기 자신을 배려하기[돌보기]입니다.....epimeleia는 자기 자신에 대한 단순한 관심이나 주의보다는 자기 테크닉, 혹은 자기가 자기에게 가하는 작업에 훨씬 가깝습니다. ..... 자기가 자기 자신에 가하는 작업이 생활의 엄격함과 관련해 몇몇 결과를 발생시키는데 이 작업은 민법이나 종교적 의무에 의해 개인에게 강제된 것이 아닙니다. ..... 고대의 개인은 자신의 삶을 예술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이러한 삶의 방식을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부과하였습니다. .... 자기는 예술 작품입니다. 자기는 만들어야 하는, 자기 앞에 놓인 예술 작품입니다. 그리고 고유의 자기는 자신의 생의 종말에 즉 죽는 순간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기는 하나의 창조물, 자기 자신의 창조물이라는 제 생각에 중요한 관념은 바로 여기로부터 도출됩니다. 요컨대 개인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만든다는 관념 말입니다. 
오늘날의 자기 예찬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진정한 자기가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것이고 또 자기를 불투명하게 만들거나 소외시킬 수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기를 되찾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고대의 자기 수양과 여러분이 캘리포니아의 자기 숭배라고 부르는 바를 동일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양자를 오히려 대립시키기까지 한다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자기가 미학적 가치들과 연동된 예술 작품이 아니게 된 순간부터 그리스도교 특유의 자기 경험이라는 전복이 거기에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교와 이교간의 대립은 관용과 엄격성 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수양의 미학과 결부된 일정 형태의 엄격성과 자기 포기를 강제하고 진정한 자기를 해석할 것을 강제하는 또 다른 형태의 엄격성 간에 존재합니다.

질문2
글쓰기와 자기 수양의 관계와 관련한 질문.
1) 글쓰기는 자기 수양의 전개에 어떤 식으로 기여하는 걸까요?
2) 한편 이 [자기 수양의]전개는 어떻게 글쓰기를 통해 미학적 차원을 갖게 된 걸까요?

답변
사람들이 글쓰기의 문제를 제기할 때 아주 빈번하게 다소 소홀히 하는 상당수의 경험적 요소들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Hupomnêmata의 문제입니다.
Hupomnêmata는 수첩, 공책입니다. Hupomnêmata에 무역 거래에 대한 세금과 개인에게 부과되는 세금이 기록되었습니다. Hupomnêmata는 정치적 관리 도구이기도 했고 또 ....  자신이 행했거나 행해야 할 활동을 기록하는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것은 개인 생활을 관리하는 도구였습니다. 
Hupomnêmata의 문제와 자기 수양의 문제가 아주 주목할 만한 방식으로 작용하는 지점은 자기 수양이 자기 자신에 대한 완벽한 통치를 자기 자신에게 목표로 부여하는 지점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정치를 수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저는 글쓰기가 자기 수양의 문제와 바로 이런 식으로 결부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수양을 가능케하는 글쓰기에는 크게 두 양태의 글쓰기가 있습니다. 
첫번째 양태는 그리스도교로부터 비롯된, ...Hupomnêmata 입니다. .... Hupomnêmata내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읽은 책을 메모했고 경청했던 대화들을 기록했으며 스승이 준 교훈을 기록했습니다. 또 삶의 틀이 되고 항상적 규칙이 되어야 하는 바들을 기록했습니다. 
반면에(두번째 양태) 자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는.... 타자가 현전하는 서신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 세네카의 서신에서.... 자기 집 주변을 산책한 것에 관한 묘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 세네카는 자신의 느낌, 자신의 신체적인 느낌, 자신이 공기를 호흡한 방식, ... 등을 이야기 합니다. 이것은 진정한 자기 기술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이는 타인들을 위한 기술이었습니다. .... 성 아타나시우스는 성 안토니오스가 자기 곁에 수첩을 갖고 있으면서 밤 사이에 그가 받은 모든유혹들, 악마의 형상들 등.... 을 기록해야 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자기 자신에 대한 글쓰기가 시작됩니다.
글쓰기가 제 관심을 끈 이유는, 글을 쓰는 자에 대한 자기 참조적 담론의 수사학적 구조 문제가 중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자기 실천과 자기 수양 내에서 자기에 대한 글쓰기가 제도화되는 것도 대단히 흥미롭기 때문입니다. 




발제문 196 ~ 211

 

1. huponemta에 실천규정내용에서 꿈이나 느낌 같은 어려운 요소들이 글쓰기에 도입했나요?

- 글쓰기 실천의 이러한 변화는 자기 자시과 맺을 수 있는 관계의 변화를 분석 가능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그리스의 그노메gnome'는 진실이자 규칙, 진실(진리)이자 규범이다. huponemta 도 마찬가지이다. 중요한 것은 기억해야 할 생활 규칙으로서의 huponemta로부터 자기에 대한 점진적인 기술로의 이행이 명백하다는 점이다. 그것을 매개하는 것이 꿈에 대한 글쓰기이다.

 

2. 자기에 대한 글쓰기에서 gnome로부터 자기에 대한 이야기로의 이행은 미학적인 결과들을 발생시키는가?

- 미학적 형태의 필요성이 이 시기 전후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대체적으로 편지는 간결하게 쓰는 것이고, 자기에 관한 이야기의 미학, 의도된 미학은 고대에 결코 숙고된 적이 없다.

3. 글쓰기나 서신은 (고대에) 기억을 헤치는 나쁜 도구로 비판받지 않았나요?

- 그 비판은 <파이드로스>에서 일시적이다. 그것은 표피적 위기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의 담론은 진실되어야 한다는 단언이다.

 

4. 자기 배려와 자기 인식의 차이는?

- 자기 인식의 원리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크세노폰에게서 이 원리와는 다른 원리 즉 너 자신을 돌봐라는 원리와 항상 결부된다. 두 정언은 복잡한 관계 속에서 서로를 참조한다. 우선 돌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리고 나서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그들은 말한다.

자기 인식은 이들에게 psuche(프쉬케)를 발견하는데서 구체화된다. 예를 들어 <알키비아데스>의 눈의 은유와 더불어 자기 자신을 명상하는 형태로 행해진다. 즉 눈이 자기 자신을 보기 위해서는 다른 눈 속에서 자신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영혼의 신성한 요소 내에서 자기 자신을 보게 될 것이고 신성한 요소로서 자기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 인식은 자기 수련과는 전적으로 별개이며 자기 영혼의 존재 방식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때 우리의 관념들과 표상들의 운동이나 애착을 가지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자문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 자기 인식은 아주 상이한 방식으로 후기 스토아주의 텍스트에서 구체화된다. 여기서 자기 인식은 아주 규칙적인 수련의 형태를 취한다. 피타고로스 학파가 그 기원이다. 에픽테토스에게서도 자기 점검 실천이 전개된다. 그것은 걸으면서 하는 자기 점검이다. 아우렐리우스에게서도 자기 점검의 도 다른 형식이 발견된다. 가끔은 책을 덮고 자기 자신 안에 은둔하고 자기 자신 안에 은거하는 것이다. 거기서 지켜야 할 품행의 원칙들이 무엇인지를 되새겨야한다. 이것은 자기점검의 또다른 형식이다.

1) 소크라테스-플라톤주의적 전통내에서 위의 것들-자기 점검-은 전혀 발견할 수 없다.

2) 이런 자기 점검들은 그리스도교의 자기 점검과는 다르다. 후자에게 중요한 것은 육체적 요소가 남아 있는지 여부를 아는 것이다. 스토아주의에서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품행 규칙들의 꾸러미를 우리가 잘 실천하는지를 아는 것이다. 스스로 죄의식을 느끼게 하기 위한 기억화의 기획보다는, 미숙함들과 실수?들을 이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것은 실제적인 자유에 관한 시험이고 자기의 주인에 관한 시험이지, 은밀한 과오들의 발견에 관한 시험이 아니다.

 

5. 16C 자기 수양의 부흥 내에 고대의 자기 테크닉들이 위치하는 곳은 어디?

- 16C 자기 점검의 실천들에 대한 충분한 종합적인 연구들은 아직 없지만

1) 15C 말부터 뚜렷한 종교적 위기 내에서 엄청난 거부내에서 자기와 맺는 관계의 여러 형식, 새로운 관계의 방식에 대한 탐구가 진행된 것 같다.

2) 이런 탐구는 고대적, 스토아주의적 실천의 몇몇 주제들의 재활성화가 나타게 한다.- 예 몽테뉴의 수상록의 essi(시험) - 자기 해석(자기 자신내이 숨겨진 진실을 발견하는 것)이 아닌 자기 시험(우리의 자유와 애착들의 의존 관계들을 시험하고 알려는 시도)이다.

 

6. 로욜라의 <영신수련>에서 고대적 자기실천들의 부흥의 이면을 볼 수 있나?

- 볼 수 있다. 여기서 모든 영적 수련은 자기 해석이 아니다. 자기 자신, 타자, 타자들과의 관계를 통해 사로잡혔던 것들을 해석할 수 있는 항구적인 수단과 같은 것을 개인들에게 제안한다.

 

7. 일종의 묵주 같은 것이가?

- 그렇다. 글을 쓴다는 것과 자기와 관계들 맺는 다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글쓰기의 최초 활용법 중 하나이다.

 

8. 자기 자신에 대한 글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 자기 돌봄은 변하지 않는 문화이다. 타자테크놀로지 즉 제도들, 정치, 다양하 규칙, 규율적 강제등 타자를 관리하는 방법에 대한 아직 연구가 부족하다. 자기 테크닉의 문제도 있는데, 자아에 관한 테크닉들은 우리의 모든 문화 속에서 다양한 양식들과 더불어 재발견된다. 물론 자기 테크닉들은 변화한다.

자기 테크닉 분석의 난관

1) 대상들의 생산과 같은 구체적인 총체가 필요 없어 눈에 보이지 않는다.

2) 타자 테크닉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 교육제도

but 모든 사회에서 자기 테크닉이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11/19, 다지원 생명과 혁명 세미나 , 발제자  김영철

텍스트 : 비판이란 무엇인가? ( 저자 푸코, 역자 오르트망, 동녘, 21118 ~ 225쪽 )


  ● "고대 사회가 수치에 기초한 사회였고고대 사회에서 수치가 근본적인 역할을 했었다고 생각하는가?"  ~  225.  

  로마인들에게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중요했던 이러한 동작의 제어, 신체적 태도의 제어, 즉 자기 테크닉은 즉시 타자들을 향하는데, 왜냐하면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우선권, 결과적으로 타자들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마는 shame society에 속한다기보다는 pride society에 속한다.

 

  ● 고대 이후의 시대들에서 고대의 자기관계라는 관념과 비슷할 수 있는 것의 자취들을 찾아낼 수 있을?

  먼저 자기수양이라는 것이 은폐되었다거나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기수양의 많은 요소들이 곧바로 그리스도교 내로 통합되고, 그 안으로 이전되고, 재사용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둘째로 자기수양이 그리스도교 내부에서 반복된 순간부터, 자기돌봄이 목자가 가져야 하는 타자들에 대한 배려가 된 한에서, 이 자기수양은 어떤 의미로는 사목권력의 행사로 여겨졌음에 틀림없다. 자기수양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자기수양에서 자율성의 큰 부분이 상실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반대로 사목 제도들로 인한 권력효과들에 대항하는 일련의 종교 단체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이 사목권력에 대항하면서 자기자신을 스스로 구원하겠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자기수양의 자율적인 형식들이 재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니체와 관련하여

  도덕사의 진정한 문제는 코드의 문제, 즉 허용과 금지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자기 실천의 역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언제나 동일한 것이 금지되었다. 욕망이나 쾌락의 금지와 관련해서 새로 발명된 것은 거의 없다.

  도덕의 역사에서 흥미로운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형태로 발명되는 이 자기 테크놀로지이다.

  고대에는 자기 테크닉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역사 속의 여러 시기들 중에서도 자기 테크닉이 그 자체를 위해 엄청나게 전개되고 철학이 자기 테크닉으로서 등장하던 시기였다. 우리들이 원자들에 대해 알아야 했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 명상하기 위해서였고 실천적인 것이었다.


  ● 주체의 구축이 어떻게 자아 테크닉들을 중단시키고 전복시키며 심지어는 왜곡시킬 수 있었을까?

  데카르트의 성찰들은 다름 아닌 자기 실천이다. 데카르트는 자기의 실천을 통해 구축된 주체를 인식이라는 실천을 창설하는 주체로 대체하게 된다.

  그리스 철학 이래로 사람들은 언제나 우선적으로 자신들로 하여금 진실을 알 수 있게 해주는 특정한 작업을 자기 자신에게 실행하지 않는 한, 어떤 주체가 진실에 접근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정화시키는 작업, 영혼과의 관계를 통해서 영혼의 방향을 전환시키는 작업, 영혼을 통해서 영혼을 응시하는 작업 등)

  반대로 주체가 우선적으로 자신의 자율성과 독자성을 확보하는 데 있는 스토아주의적 실천의 주제들이 있다. 주체로 하여금 독자성을 확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세계에 대한 인식이며, 또한 자신의 독자성을 확보했을 때야 비로소 주체는 세계 그 자체의 질서를 확인할 수 있다.

  데카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결론을 내렸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주체이건 간에 상관 없이 내게 보이는 것을 명확히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 순간 인식 주체가 있게 된다.

  하지만 인식의 주체와 관련해 무엇이 도덕적 주체가 될 것인가? 이 문제를 둘러싸고 18세기 내내 주저하게 된다. 칸트의 해법은 보편 주체를 찾는 것이었고, 보편적인 한에서 아마도 인식 주체는 그래도 도덕적인 태도를 요구하는데, 이것은 칸트가 실천이성비판에서 제시한 자기와의 관계의 유형임에 분명하다. 다시 말해서 나는 나를 보편주체로서 인식해야 하고, 즉 내 각각의 행동들에서 나는 나 자신을 보편 규칙의 보편 주체로서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인이 명증성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도덕적 행위는 그 규칙이 보편적인 행위라는 말이다.

 

  ● 자기에서 주체로 이행하게 한 것은 무엇인가?

  자기 실천 이것은 개인이 자기 자신과 맺는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을 주체로서 구축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자기와 맺는 관계 속에서 주체로 구축되는 것이지, 주체가 미리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 플라톤에서 아벨라르에 이르기까지 거세된 남성을 가장 완벽한 철학자로 만드는 일대 전통이 있다.

  이에 대한 답변들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식이었다. 요컨대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정화할 필요가 없어지고 자신의 욕망과 싸움을 지속할 필요가 없어지는 순간 그것은 진실한 순결이 아니다.

 

  ● 혁명이 도덕적 순결을 전제로 한다고 말씀하시고 싶은 것인가?

  로마에 대한 참조를 통해 자기 수양의 방식을 인위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이것이 혁명기에 재검토된다.

 

  ● 실존주의에서는 자기 자신을 연구하고 스스로 참여하는 데 관심을 갖는데요, 그것을 그리스의 자기수양의 연장으로 볼 수 있을까?

  사르트르가 스토아주의자라는 건 정말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어떻게 새로운 도덕을 만들 수 있을까, 윤리적 형식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들이 그의 연구들에서 본질적이지 않다는 것 역시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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