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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조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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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k ☆140자 다지원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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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 대중, 시민과는 다른 다중의 시대

꺄르르 / 조정환

다중이란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회의 여러 현상들을 설명할 때 끌어다 썼던 대중이나 민중, 시민과는 다른 뜻을 갖고 있죠. 다중은 떼지성, 집단지성이라 불리며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동등하게 결합하고 소통하여 새로운 창조성을 낳는 무리라 할 수 있으며, 계급이나 인종, 나이와 성별 같은 사람 사이 구분들을 뛰어넘어 온갖 성격이 뒤섞인 잡종모임이라 할 수 있죠.
안토니 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쓴 <다중>은 왜 이러한 사람들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그 역사성을 분석하죠. 제국이 만들어내는 지구전쟁을 끝내고 좀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다중들이 어떻게 나왔으며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세상변화는 그저 말로만 떠들 게 아니라 현실에서 실천을 해야 한다는 책이죠. <다중>을 번역한 조정환 도서 출판 갈무리 대표를 만나 다중에 대해서 이야기 들어보았습니다.

“과거 역사의 흐름을 뚜렷하게 알고 있으면 다중시대를 이해하기 훨씬 쉬워”

- 다중시대라고 합니다. 지난날 사람들의 모습은 다중과 많이 달랐나요?

과거 역사의 흐름을 뚜렷하게 알고 있으면 다중시대를 이해하기 훨씬 쉬워집니다. 80년대부터 스케치만 해도 차이가 나죠. 80년대 광주항쟁 당시, 학생과 시민, 그리고 전통적인 룸펜 프롤레타리아트(산업노동자 계급의 가장 낮은 계층으로 혁명활동에 참여하는 대신 부르주아지에 매수되어 '반동 음모의 도구' 노릇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맑스가 분석)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요한 역할을 했거든요. 운동가들이 하기보다 오히려 윤상원 같은 평범한 분들이 앞장서서 투쟁을 했죠.
그로부터 수 년 동안 주요한 운동 형태는 서구사회와 비슷하게 노동자운동으로 발전해왔죠. 85년도에 구로 동맹 파업이라거나 그것에 의해 촉발된 서노련, 민노련, 노동자의 깃발, 이후에 사노맹에 이르기까지 많은 정파들이 생겨났어요. 남성 중심의 노동조합운동이 활성화되면서 이것을 정치력으로 결집시키기 위한 전인문화운동이었죠. 운동 형식을 보면 아주 과거의 모습이 80년대에 나타난 것이죠.
그렇게 80년부터 6~7년 동안 운동하며 쌓여왔던 것들이 폭발하듯 올라와 6월 시민항쟁과 7~9월 노동자투쟁에 다시 접속했는데, 저는 87년부터 정원식 총리에 대한 밀가루 투척 사건으로 역공을 받아 위축되는 91년 5월까지를 4년의 장기혁명기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80년대와 달리 1990년대 들어 사회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런 변화는 무얼 뜻하나요?

한국 산업의 재구조화과정을 보면, 전두환 노태우 정부 때는 이미 재구조화가 시작되었지만 김영삼의 세계화정책 같은 과정에서 본격화되었고, 정보산업화로 가는 발걸음이 90년대 초에 빠르게 진행이 되었어요. 특히 대우를 중심으로 신경영이 도입해 들어왔고 삼성은 반도체로 산업구조를 전환시켰죠. 문화이론으로는 포스트모던이 쇄도하고 있었죠. 아주 고전적인 주체성형태가 빠르게 틀을 바꿔가는 시기였다고 생각이 듭니다.
최근 미국 시장을 삼성핸드폰이 석권했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로 한국의 정보산업화와 비물질적인 생산이 빠르게 진행되었고 IMF를 경험하면서 글로벌사회, 정치적으론 제국주의질서 속으로 깊숙이 투입되었죠. 국가주권자체를 위임할 정도로 세계시장의 구성단위로 들어갔는데, 이 과정이 산업적 차원과 생산적 차원에서 바로 다중시대를 준비시켰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것은 운동 속에서도 나타났죠. 민주노총은 91년도까지만 해도 대우자동차라 같은 큰 회사노조가 주도했던 대기업 연대회의를 하는 곳이었어요. 지하철노조나 민주노총이 만들어지면서 노조운동 중심축이 대기업노조에서부터 공공, 서비스, 교육으로 넘어왔죠. 90년대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전교조거든요. 참교육을 얘기하면서 교사들이 집결해서 싸웠죠. 또, 기억에 남는 게 KT 통신노조. 롯데호텔관광노조, 서울대병원 노조, 간호사노조에요.
노조운동의 폭이 전통적인 블루칼라 운동으로부터 화이트칼라 운동으로 넓어진 거죠. 최근 민주노총에 공무원노조가 가입을 했는데 쁘띠 부르주아(작은 기업의 사장, 자영 점포상인, 독립 자영농민, 자유업자, 지식인, 공무원, 예술가 같은 중산층을 얘기하며 사회 문제에 참여하려 하지 않고, 자기 보신만을 추구하는 계층이라는 뜻도 담겨 있음)라고 비난을 받았던 사람들, 한 달 월급이 적어도 몇 백 만원 되는 사람들의 운동 참가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죠.
지금 2000년대에 들어서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비정규직 노조운동이에요. 올해 쌍용자동차만 해도 자신들의 정리해고에 대항해서 싸운 거죠. 정규직이 싸웠지만 실업화, 비정규직화에 맞선 것이죠. 파병에 반대하는 싸움들, 2005년 미군기지 건설을 놓고 대추리에서 주민들이 싸우고, 2005년 부안에선 방사능폐기물 처리장 반대 투쟁이 질기게 되어왔고, 2005년부터 FTA 반대투쟁이 일어났죠.

“직업이 뭔지 어떤 사람들인지 알 수 없는 온갖 색깔들이 다 섞인 촛불이 나타남, 지금은 다중시대”

옛날하고 모양이 많이 다르다는 거예요. 2008년엔 촛불이 피어올랐는데, 이건 완전 잡종이죠. 직업이 뭔지, 어떤 사람들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온갖 색깔들이 다 섞여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들이 나타났죠. 이런 변화를 스케치해보면, 80년대를 민중의식이 중요했던 노동자들의 헤게모니시기라고 한다면, 지금은 다중시대라고 명명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지요.

- 이전까지는 민중이란 말을 썼는데, 민중과 다중은 다른 건가요?

민중이란 말은 대체로 박현채 선생님이 <민족경제론>을 할 때, 민중이란 말을 쓰기 시작하면서 사회과학 용어가 되었죠. 그 전에는 대부분 인민이었죠. 북한에서 인민을 쓰니까, 그냥 인민을 쓰면 탄압의 위험이 있어서 좀처럼 쓰지 못하다가 북한의 인민과는 다른 의미인 민중개념을 만들려는 시도가 60년대부터 지식인사회에서 있어왔어요.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민중개념, 민족문학론의 민중개념이 탈춤운동, 판소리, 사물놀이를 생활에서 실천하면서 마당극, 민중극 형태로 발전하는 주요한 흐름이 있었죠. 민중은 사회과학 용어로 인민개념을 치환했다고 할 수 있는데, 조선시대부터 따져보면 인민의 단순한 대치물이 아니거든요.
민중은 공동체 구성원이란 개념을 가지고 나왔고, 판소리, 탈춤 같은 문화부터 19세기의 동학 농민들, 일제 시대 때 천도교 운동, 해방이후엔 해체되어가는 농민사회에 대한 농민들의 저항운동으로 나타났어요. 김지하씨의 생명사상에서도 민중개념이 나오고 있죠. 민중이란 말이 안착되고 보편화되는 게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30년 걸렸어요, 꽤 오래 걸린데 반해 다중이란 말은 오히려 빠르게 정착되었다고 생각하거든요.
다중개념은 제가 가장 먼저 썼는데, 그때만 해도 다중은 생소한 낱말이었죠. 그런데 저보다 먼저 쓴 곳이 있어요. 바로 헌법이죠. 다중이 집단적으로 어떠한 행위를 하여 어떠한 결과를 유발했을 때는 몇 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이런 기록이 나오거든요. 다중이 대중과는 다르죠. 대중은 형법에서 나쁘게 묘사하지 않습니다. 국민이나 대중은 형법이 귀하게 취급하거든요.
국민으로서 권리를 얘기하고, 대중은 문화현상이니까 미디어에서 추켜세우는데, 다중은 권리가 없어요. 일반적으로 처벌대상입니다. 다중은 기록되지 않거나 하더라도 나쁘거나 위험한 계급으로 분류되죠. 제가 다중이란 말을 쓰고 나서 나중에 발견했는데, 광주 민주항쟁당시 기소문들을 보면 다중이란 말이 굉장히 나옵니다. 폭도 이미지죠.
다중의 역사를 살펴보면, 1500~1600년대, 근대 정권이 생기면서부터 위험한 계급을 가리켰어요. 해적들을 다중이라고 불렀죠. 인민(people)이나 독일어의 포크는 주권을 구성하는 말로 존귀한 존재들이죠. 말이 비슷해 보이지만 다중, 멀티튜드(multitude)와는 대비되는 개념이죠.
제가 90년대 말, 2000년대 초에 <제국과 다중>이란 강연을 하면서 다중이란 말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거의 대부분이 다중이란 말을 쓰는 거 같아요. 짧은 시간동안 수용되어간 것은 홍보를 잘한 게 아니라 민중시대와는 다른 뭔가가 나타나고 있다는 거에 대해서 사람들이 직관을 하고 있고, 실제 사회변화가 그러하기 때문이죠. 누구나 이거를 쉽게 인지할 수 있으니까 빠른 시간 안에 사회 공식개념으로 정착되어간다는 생각이 드네요.

“시민은 시장에서 상품과 몸을 공유하고 있는 집단, 주권 바깥에 있는 사람을 끌어안지 못하는 한계”

- 시민이란 말도 사람들이 자주 쓰고 있는데, 시민이란 말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시민이라 하면, 도시민에서 이름이 나온 거니까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란 뜻이죠. 도시는 시장이란 공간에 전제되어있다는 생각이 깔려있기에 시민은 시장에서 상품과 몸을 공유하고 있는 집단이라 할 수 있죠. 일반적으로 국민들 가운데 도시노동자를 지칭할 때, 시민을 많이 쓰죠. 프랑스 혁명 당시 인민들은 씨투아앵이라고 해서 정치의식이 깬 시민이랄 수 있었는데, 지금 시대에 시민은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시민이란 말은 이주노동자, 이주민들들을 끌어안을 수 없다는 결정적인 한계가 있어요. 이들은 주민등록증을 확보하는 게 불가능하거든요. 프랑스같은 데는 Sans-papier 라고 해서 신분증 없는 사람들을 부르는 이름이 있죠. 한국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고, 100만이 넘었는데, 적은 숫자가 아니거든요.
이들은 국민에 속하지 않아 주권을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에요. 주권의 바깥에 있고, 추적당하는 사람이죠. 이런 사람이 100만 이상 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거 같고, 그런 것을 염두 해두면서 일반 보통시민들이 자기가 누구인가 성찰해보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이주노동자들의 주권을 고민하면서 그 주권 속에서 나오는 다양한 욕망들을 담을 수 있어야 하죠.
이와 함께 똑같이 신분증이 있고 같은 도시공간에서 시장을 향유하는 시민이라 하더라도 그 안의 차이가 엄청나게 나고 있어요. 비정규직과 정규직은 거의 계급차이가 난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큰 차이가 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시민이란 이름으로 뭉뚱그려져 버릴 때 그 차이는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해봐야죠.
강남지역에 사는 사람과 강북지역에 사는 사람은 경상도와 전라도의 차이보다 더 난다고 보거든요. 지역의 차이가 생기고, 그것은 계급의 차이를 함축하고 있어요. 어떻게 해야 더 나은 생활을 쟁취할 수 있고,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지 성찰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보통 시민들은 먹고 살기 힘든데, 이주노동자들이 일자리 빼앗아간다고 생각하기 쉽고, 가난한 사람은 자신의 가난이 개인의 못남으로 생각하면서 자책할 수도 있는데, 본질을 꿰뚫어봤으면 해요.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다중이란 개념은 새로운 개념이자 새로운 기운과 새로운 생산력을 갖고 있어요. 사실상 세상을 창조하는 힘은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에서 더 많이 나온다고 보거든요. 오늘날 정규직은 비정규직이나 고용되지 않은 사람들의 생산물을 걷어가는 마름역할에 가까운 것으로 변해버렸죠. 새로운 생산에너지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정치적으로 억압당하고, 문화적으로 차별받고, 정신적인 소외 속에 놓인 상황을 타파해가기 위해선 자기 자신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 필요하다고 봐요.
그러기 위해선 공부를 해야 하죠. 다중지성의 정원(다지원)을 시작한지 2년이 되었어요. 그 전에 하였던 다중문화공간이나 자율비평, 그리고 갈무리 출판사를 하였지만 대중과 만남은 다지원에서 시작되었거든요. 여기서 많은 강좌들이 있어요. 공동체문제부터, 예술이 어떠해야 하는가, 다양한 삶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라틴아메리카에서 일어나는 성격은 뭐냐,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죠.
신문, 방송, 대학 같은 지배 이데올로기 기구들이 있잖아요. 거기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매몰되다보니까 소수의 사람들만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조금 더 우리 사회의 비주류영역이랄까, 그림자 같은 데서 전개되고 있는 담론을 듣고, 그 노력들에 관심을 많이 기울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신자유주의의 위기는 세계 곳곳에서 다중들의 저항한 결과! 도대체 다중이란 무엇이냐?
이 제는 제국주의시대처럼 식민지를 강대국이 직접 지배하면서 수탈하고 착취하지 않죠. 전지구에서 일어나는 교환들을 통제하는 권력국가, 제국이 되었으니까요. 국민 국가에서 지구시장으로 세계는 달라졌습니다. 제국엔 권력의 중심이 없고 권력의 바깥도 없죠. 미국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제국과 제국주의가 뒤섞인 모습이라 할 수 있죠. 갑갑하고 우울하지만 새로운 변화도 생겨났죠. ‘다중multitude’이 나타나 제국 권력에 맞서고 있습니다.
작 년 세계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한계를 얘기하였죠. 그러나 조대표는 다른 주장을 펴네요. 지금의 위기가 자본주의 자체 결점으로 나타난 결과가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솟구쳐 오른 저항들 없이는 상상할 수 없는 거라고 잘라 얘기합니다. 신자유주의가 가는 길목마다 다중들의 움직임이 지뢰처럼 터져 올랐기 때문에 다자간 협정 지배체제를 겨냥한 WTO가 실패하고, 그것을 대신한 FTA마저 벽에 부딪힌 거라는 거죠. 세계자본가들의 짬짜미가 꺾인 것이 신자유주의 위기의 알맹이라는 거죠.
지 난 1994년 북미자유협정에 대항해 일어섰던 사빠띠스따 봉기, 1995~6년 프랑스와 독일의 공공부문 노동자 파업, 1996~7년 한국노동자 총파업, 1999년 씨애틀 투쟁 이후 연이어진 대항세계화 운동, 2000년 볼리비아 물 사유화 저지 투쟁, 같은 해 9월 팔레스타인의 2차 인티파다, 2001년 아르헨티나 피케떼로 투쟁, 2003년 전지구의 반전운동, 2005년의 방리유 봉기, 2006년의 CPE(최초고용계약) 반대 투쟁, 그리고 2008년 11월 프랑스 반란, 그해 12월 그리스 민중봉기, 다중들의 저항을 얘기합니다.
오 늘날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건 눈물 반, 힘겨움 반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이 이처럼 차갑고 모진 까닭은 결코 숙명이나 자연법칙이 아니란 거예요. 현실을 빡빡하게 만듦으로써 주머니가 두둑해지고 신분이 올라가면서 언구럭부리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통합을 얘기하고 ‘우리’란 말이 한국사회를 떠돌지만, 밥을 굶는 초등학생과 미국 국적을 갖고 있는 재벌 4세들을 같은 아이라고 묶는 것이 오히려 머쓱한 일이 되어가는 형편입니다.
다중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으면서 그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들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그 차이들을 그대로 살리면서 함께 모이는 집단을 말해요. 대중과 민중, 그리고 시민이 하나의 개념으로 그 안에 존재하는 차이와 나뉨을 덮었다면, 다중은 이미 그 안의 여러 색깔들을 담고 있죠. 빠르게 달라지는 세상에서 다중이란 무엇이고, 자신은 어디에 서서 어디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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