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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조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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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k ☆140자 다지원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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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은 역사의 필연, 되돌릴 수 없는 흐름"

꺄르르 / 조정환
원문출처 : http://blog.ohmynews.com/specialin/304974

촛불을 두고 이택광 경희대 교수와 논쟁을 벌인 도서출판 갈무리의 조정환 대표는 1989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결성을 하고 <노동해방문학> 창간에 참여하면서 민족문학론에 맞서는 노동해방문학론의 대표 주자였죠. 1990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지명수배된 뒤 1999년 말까지 이원영이란 필명으로 10여권의 번역서를 냈지요. 수배가 풀린 뒤엔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자율주의를 한국현실에 적용하는 일에 적극 뛰어들었죠.
조대표는 네그리의 <다중>을 번역했고 맑스주의와 자율주의에 대해 깊게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아우또노미아>같은 책을 썼으며, 다중지성의 정원(다지원)을 열어서 사람들과 배움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에게도 작년 촛불시위는 커다란 충격이자 엄청난 사건이었죠. 촛불을 다중의 혁명적 봉기라고 얘기하는 조대표를 만나 촛불에 대해 이야기 들어봤습니다.

“민주화 없는 신자유주의, 신보수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시대, 그렇다고 암담한 것만은 아냐”

- 촛불집회가 끝난지 1년이 지났습니다. 요즘 드는 생각들은 어떠신가요?

먼저, 정치를 보면, 촛불로 인해서 이명박 정부가 펼쳐나가는 일련의 정책들이 여러 가지로 수축되고 굴절되기는 했으나 4대강 문제라거나 FTA는 거의 다 진행되어가고 있고 있어요. 그러면서 사람들의 정치적 강박감이 더 심화되고 있다고 봐요.
한국은 80년 광주 민주화항쟁이나 87년 시민노동자 항쟁, 두 번의 경험을 겪으면서 과거 권위주의정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는 정치적 민주주의가 늘어난 10여년을 보내왔는데, 정치적 민주주의가 일정하게 훼손되는 국면이네요. 항쟁에 참여했던 사람으로서는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세계가 지난 1년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정치적 민주주의가 밑바닥을 치는 상황에서 사회와 경제를 봤을 때도 사람들의 삶은 좋아졌다고 할 수 없거든요. 비정규직, 실업자, 노숙자가 늘어나고 있어요. 이런 변화는 정치적 변화와는 별도로 보이지 않는 가운데 사회적 삶의 차원 깊숙이까지 전개되어온 신자유주의의 결과죠. 지난 십 수 년 동안 정치에서는 민주화, 사회경제에서는 신자유주의화가 동시에 진행되어 왔어요.
시장화는 시장화대로 계속되어가면서 민주화는 막힌 상황이 지금이거든요. 민주화 없는 신자유주의, 신보수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정치가 진행되니까 경제와 정치 모든 면에서 어려운 시대라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암담하고 희망이 없는 것이냐? 꼭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변화는 항상 이중, 삼중, 사중, 다중성을 갖고 있죠.
정치적 민주화도 닫히고, 신자유주의가 물밀듯 들어와 고통스러운 시간이지만 아래로부터 사람들이 더 많이 소통하고, 더 많이 협동해서 생산하려는 모습도 나타나거든요. 지금 사람들의 소통하는 힘은 크게 신장되어 가는 상태라고 봐요. 신보수주의 자체도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소통과정이 확장되는 걸 빼앗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빼앗김을 저지해낼 만큼 힘을 결집할 수만 있다면 상황은 달라지죠.
-이택광 교수와 촛불시위를 두고 논쟁이 있었습니다. 돌아보시면 어떠신가요?
논쟁의 초점을 먼저 말씀 드리면, 저는 촛불시위 체험을 비춰서 기록을 모아 <미네르바의 촛불>이라는 단행본을 써냈어요. 올해 5월, 촛불 1주년에 맞춰서 원고를 다 쓰고 책을 내려고 출판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라는 책이 먼저 나왔어요. 책을 내기 앞서 요걸 읽어보고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읽어보았죠.
신좌파 지식인들이 주축이 되어서 쓴 글 모음이었는데, 촛불에 대해서 엄청나게 냉소하는 방향에서 평가를 했더라고요. 제가 명명한 바, 냉소주의 입장에서 촛불이라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마치 산책자처럼 재미삼아 시내에 나온 것이고, 환상을 쫓아가다가 불과 2개월여 만에 재미가 없어서 끝내버렸다고 해요. 책 안엔 다양한 얘기가 있지만 제가 크게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이런 생각이고, 그 책의 주조음이 되는 시각이 이거였어요.
“촛불이 환상을 쫓아가다가 끝내버렸다는 냉소주의 입장에서 평가되는 건 역사적으로 문제”

이렇게 촛불이 평가되는 건 역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출판을 일주일간 뒤로 미루고, 그 생각에 대해 비판하는 걸 썼습니다. 촛불이라고 하는 게 처음엔 청소년, 386세대 참가, 더불어서 유모차부대라고 할 수 있는 어머니들의 등장, 곧 이어서 <소울드레서>나 <화장발>, <쌍코>같이 과거의 개념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새로운 주체성들이 정치적인 발언과 행동을 하고 나섰죠.
종각에서부터 광화문까지 거의 전투행렬처럼 줄을 지어서 서있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화장을 진하게 하고 패셔너블한 옷을 갖춰 입고, 온갖 장식들을 한 여성들이었거든요. 이런 현상들이 거의 처음으로 우리사회에서 나타났어요. 그러다가 7월이 될 쯤엔, 과거 87년 운동을 이끌었다고 할 수 있는 ‘전대협’같은 단체들이 나오고 화물연대 같은 노동자 세력들도 모였어요. 온 사회에 다종다양한 사람들의 참가가 있었고,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였죠.
그런 역사적 사건인데, 이걸 한마디로 환상에 빠졌던 사람들이 심심풀이처럼 한 산책이라고 하는 건 역사에 대한 과도한 평가절하죠. 촛불은 역사적 전환점으로서 굉장한 운동인데, 이러한 진실을 보지 못하도록 하는 그러한 평가는 눈가리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촛불의 지속기간에 대해선 어떻게 보시나요?

촛불은 지속기간을 보더라도 8월 15일을 정점으로 숫자는 줄었지만 10월~11월까지 계속될 뿐만 아니라 용산까지 다 이어져 있고, 촛불시민연석회의는 용산참사현장에서도 재조직되었을 정도였거든요. 그게 쌍용자동차로 이어지며 사실상 촛불이 연결되어 가는 과정을 밟아 갔어요. 쌍용자동차는 전통적인 노조운동들의 싸움이었지만 촛불의 일부는 두 달 가까이 거기에서 밤을 세워가며 노동자들의 도우며 정문 앞에서 싸움을 했죠.
촛불방송이라 부르는 생방송을 통해 노동자들의 상황을 보여줄 뿐 아니라 쌍용 내부로 들어가서 안의 상황을 외부로 노출시키고, 경찰들이나 사측 직원들의 폭력을 카메라로 고발하면서 위험 수위가 더 높아지지 않도록 경계하는 역할을 맡았었죠. 이렇게 쌍용자동차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 촛불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생각해요.
용산참사현장에서도 촛불은 계속되고 있지만 과거처럼 거대한 다수가 물결처럼 흐르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죠. 운동이라는 것이 항상 그러하듯이 폭발했다가 다시 필요할 때는 잠복해가거든요. 그러다 재출현하죠. 이런 주기성과 순환성에서 보면, 지금은 촛불을 드는 형태로 싸우는 건 아닌 거죠.
촛불이 8월에 끝났다, 10월에 끝났다. 훨씬 더 길게 잡는 사람도 있지만, 촛불이 사라진 상황이라는 게 물밑에서 다시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꺼진 게 아니란 거예요. 따라서 이런 상황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게 중요한 거죠. 다중의 힘이 사실은 엄청나게 폭넓게 배치되고 있지만 이걸 제대로 보지 못하면 없는 거라고 볼 수 있어요. 표면화되고 현실화된 다중의 힘과 다시 잠재화된 다중의 모습을 다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세상이나 사건을 제대로 보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인데,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다중의 힘을 획득해야죠. 그러면, 누가 나의 형제이고, 누가 나의 동지이고, 누가 나와 계속 싸워나갈 수 있는지 전력을 진단할 수 있으니까요. 실재하는 에너지가 우리의 동지와 친구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있는지가 징후로 나타나는데, 이걸 읽어낼 수 있는 눈을 갖추는 게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눈을 갖지 않으면, 싸우다 그냥 가버리네, 이거 완전 좀비 아냐, 무슨 애들 장난치는 거야, 이렇게 우습게 봐버리게 되죠.
“다중의 힘을 획득하면, 누가 나의 형제이고 누가 나의 동지인지 역사의 새로움을 읽어낼 수 있어”
지금 한국사회처럼 어떤 움직임도 무력으로 눌러버릴 때는 운동자체가 불가능하거든요. 이에 맞서는 건 여러 가지가 가능하겠지만, 일단 역사를 바라보면서 새로운 흐름을 읽어냈으면 해요. 루카치(헝가리의 맑스주의 문학사가)는 ‘역사적 새로움’을 강조했는데, 새로움의 성격을 통찰하기 위한 공부를 항상 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그러한 공부가 누락될 때에 우리의 힘에 대한 저평가가 이뤄지고, 언제 어디에서 뭘 시작해야할지 모르는 방황을 경험할 수밖에 없죠. 그러면 안타깝게도 우리의 에너지가 엄청나게 소진될 수밖에 없겠죠. 공부를 멈춰서는 안 된다, 공부를 계속하자고 말하고 싶어요.
그러나 공부만으로는 충분치 않잖아요. 어떤 형태로든 공부로 키워진 눈이 발견한 것들과 상상한 바를 나름대로 현실화시킬 수 있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그건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연구자들은 혼자서 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 같이 모여서 공부하는 게 낫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가 할 수 있는 작업이 있는데, 이걸 실현하기 위해선 잠재적 에너지를 끌어내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해요.
전체에너지를 끌어내려면, 현존하는 낡은 방식을 거부하고 혁명 같은 방식으로 새로운 것을 재창조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해요. 지금 있는 것들로부터 도망쳐서 새로운 땅을 개척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결집되도록 해야겠죠. 우리들의 지적인 유산들과 접촉을 해야 해요. 몸으로 표현을 하면, 부대 안에 자신이 할당되어 들어가는 거죠. 거주자들의 연대라든지 박노자씨의 표현을 빌리면, 탈영자들의 연대가 이뤄져야 하죠.
항상 느낌을 열어놓고, 자기 삶의 능동성을 갖추려면 최대한 수동성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자기를 열어놓을 때만 열림을 통해 들어온 에너지를 능동적인 힘으로 전환시킬 수 있기 때문에 항상 타자에게 자신을 열어놓았으면 해요. 그러한 방법으로 자신에게 들어오는 에너지를 상호 접속하고 연대하고 결합해야겠죠. 그러한 노력들을 현실차원에서 꾸준히 해야 된다고 봅니다.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열림을 준비하고, 현실 속에서 작업들을 같이 해나갔으면 좋겠어요.

-촛불 경험을 통해 앞으로 많은 걸 더 준비하고 계실 거 같습니다. 어떠신가요?

저는 아직도 지역촛불에 참가하고 있어요. 작년 7월에 생겨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어요. 이제는 거리에서 촛불을 들기보다는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 다시 준비해야하느냐 논의하는 상황이죠, 그걸 지원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고 있어요.
겨울부터는 촛불집회의 역사적 체험을 다지원의 강연회에 반영시킬 생각이에요. 조금 더 멀리 보면, 여성이라거나 청소년, 기존의 운동에서 변두리로 취급되었던 사람들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죠. 작년에도 촛불집회 연속강좌를 하였거든요. 촛불집회의 전개과정, 누가 참가했는가, 싸움의 기술이 올바랐는지 분석하는 강좌를 배치하는 쪽으로 작업을 했는데, 너무 이론적인 성격이 강할 수 있으니까 이건 이것대로 하고 기존의 관심은 유지해나가되, 교양형태로 누구나 편하게 와서 고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려고 해요.
어려운 책을 읽지 않으면서 함께 대화 나누면서 생각하는 강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관심을 기울여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공부하자, 행동하자고 얘기했는데, 그러기 위한 첫 단계로 공부를 해야죠. 이런 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끼리 만나고, 같이 조직하고 행동하고 가능성을 같이 연대했으면 해요. 다지원뿐만 아니라 수유+너머, 철학아카데미 같이 장소는 다르지만 비슷한 작업들을 해내가는 곳이 많아요. 관심을 기울여주면 좋겠어요.
촛불은 이전까지 운동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어떤 지도부도 없이 매순간 자기결정을 내리는 다수로 구성된 잡색부대이지만 컴퓨터와 인터넷과 핸드폰으로 서로 접속되고 소통되는 최첨단의 정보부대라고 조대표는 촛불의 주체성을 정의하죠. 이러한 공동체적 주체성이 지금 갑자기 출현하였지만 이러한 주체성은 탈근대적 생산활동을 거치면서 오랜 예행연습이 있었다고 얘기합니다. 이미 있어왔던 변화가 촛불로 드러난 것뿐이죠.
촛불들의 소통능력은 엄청난데, 이들은 공장, 학교, 사무실, 가정으로 대표되는 현대 생활 속에서 정보의 소통을 되풀이하면서 연습해왔고, 오늘날 투쟁의 능력으로 전환시키고 있을 뿐이라고 분석하죠. 근대의 생산과 달리 탈근대의 생산은, 구상하는 사람과 실행하는 사람이 따로 나뉘어서 위계질서를 만드는 게 아니라 저마다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게 만드는 방식이며,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상황파악, 분석, 계획, 그리고 결정의 주체가 되도록 요구받는다고 짚어냅니다.
이러한 생산현장의 변화는 수동성의 대중이 아니라 누가 시켜서 움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스스로 움직이는 전인(全人)이 되라는 거죠. 이것이 촛불집회에 나타난 거죠. 아주 많은 사람들이 항쟁의 현장에서 남의 말을 들으며 정보를 모으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지성의 집단을 꾸려내고, 구호를 함께 외치면서 투쟁의 공동체를 이뤄내고, 대치, 몸싸움, 퇴각, 도주, 재결집 등의 매 순간마다 스스로 상황을 파악하고 목표와 물러날 때를 결정하고 다시 모일 때를 기획하는 총체적 인간으로 움직였다고 조대표는 주장합니다.
자본관계에 예속되어 있지만 엄연히 실재하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공동체를 비추어 보여주는 삶 정치의 무기가 촛불이었다는 얘기죠. 따라서 촛불봉기에서 나타난 특질들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며 되돌릴 수도 없는 역사의 흐름이라는 거예요. 아직 많은 약점들을 갖고 있지만 새로운 삶, 새로운 운동, 새로운 혁명이 자라 나와야 할 터전으로서 다중지성이 나왔으며, 그것은 탈근대 운동의 토대이자 조건이라고 촛불의 의미를 풀어냅니다.
따라서 조대표는 촛블이 MB라는 ‘환등상’을 깨뜨리며 깨어난 운동이고, 여기에서 뛰는 길 이외엔 어떤 길도 주어져 있지 않다고 보는 거죠. 이택광 교수는 촛불이 중간계급의 욕망에서 생겨난 ‘환등상’(촛불은 쾌락의 평등주의)이었으나 진리를 그 안에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 점을 먼저 인정해야 촛불의 성과와 한계가 뚜렷하게 보인다고 하죠. 여기서 둘은 갈립니다. 촛불의 주체에 대해 서로 다르게 해석을 하고 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많은 걸 생각하게 하네요. 촛불이 어떤 의미였는지 되새겨보는 시간이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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