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모임에서 발표할 내용입니다.
애초 주제는 자구모 과제의 구체화였는데, 생각의 운동이 구체적 층위로
잘 내려오질 않네요. 부족한 부분이 내일 논의과정에서 보완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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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구모, 무엇을 할 것인가


1. <자율광장구성모임>의 탄생을 추동한 요구 혹은 문제들

<자율광장구성모임>(이하 자구모)의 과제를 확인하는 일은 모임의 탄생을 추동한 요구 혹은 문제들을 확인하는 일과 분리될 수 없다. 곳곳에서 때때로 다양한 방식 하에 제기되었으며 지난 2009년 봄 자율광장의 논의 가운데서도 어느 정도 이야기된 바 있는, 현재 다중넷이 스스로에게 제기하고 있는 요구들은 크게 보아 다음의 두 가지 문제를 공통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첫째, 만사들의 판단, 결정, 표현, 활동의 능력, 다시 말해 총체적 능력의 발전과 성장. 둘째, 만사들 간, 마디모임 간 공통화 정도의 제고.

자구모는 다중넷 자체가 아니며, 다중넷의 문제는 다중넷 전체에 의해만 해결될 수 있다. 따라서 자구모의 과제가 저 문제들의 해결 그 자체일 수는 없다. 그러나 어느 마디, 어느 부분이든 문제 해결의 촉발점, 자극점, 추동점으로서, 즉 잠재적 전체로서 기능하는 것은 가능하며 자구모가 ‘자율광장’을 ‘구성’한다는 것은 그러한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2. 성장의 문제

다중넷에서의 활동은 다양한 능력을 필요로 한다. 거시적으로는 이론적 학습 및 연구, 사건에 대한 역사적 평가 및 인식, 정세의 파악 등에서부터 미시적으로는 회의 ․ 토론의 참여 및 진행, 실무 처리, 구성원 상호간의 정동적 이해 및 배려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일들이 있으며 각각의 일들은 그 일의 집행, 해결에 적합한 능력을 필요로 한다. 이처럼 다양한 능력의 요구는 ‘삶’ 그 자체에 관심을 갖고 그것의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다시 말해 ‘전문(專門)적’ 능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다중넷 활동의 특성상 불가피한 일이며, 그 자체로는 한 인간이 가진 능력의 전면적 개화에 유리한 조건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총체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알맞을 정도로 다양한 위와 같은 능력들의 성장이 특정한 시간대에, 특정한 활동을 통해 극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것은 한 인간이 통과하는 모든 시간대에 걸쳐 무수한 활동과 노력을 통해서가 아니면 달성되기 어려운 어떤 것이다. 따라서 그와 같은 극적인 능력의 성장 혹은 완성은 자구모 뿐만 아니라 어떠한 모임도 목표로 삼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완성이 아닌 촉발과 촉진이라면 공통적인 노력과 구성원 서로에 대한 구체적이고 정교한 개입을 통해 도모해보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며, 성장과 관련한 자구모의 활동은 바로 그러한 촉발과 촉진을 위해 배치되어야 할 것이다.

그와 같은 성장을 위한 노력은 우선 자구모 자체 내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자구모는 특정한 분야나 주제에 한정된 활동이 아닌 자율광장을 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모임인 만큼 잠재적으로는 이론적 학습과 탐구에서부터 바람직하고 훌륭한 결정에 도달하는 지혜, 새로운 삶의 모색 등 우리 능력의 성장과 관련된 거의 모든 문제들을 다룰 수 있다. 주의해야 할 것은 이러한 주제적 개방성이 모임 자체, 모임의 활동 자체의 모호함 혹은 방향성 상실로 연결되는 일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 무엇보다 요구되는 것은 문제의 설정, 토론, 탐구, 해결 등 활동의 모든 과정에서 최대한도의 명확성을 유지하는 일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우리 능력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능력의 성장이 삶에 반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등이 어떠한 두려움도 없이 최대한 정교하게 탐구되어야 함을 물론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능력의 성장은 자구모에서뿐만 아니라 전체 다중넷의 차원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루어져야 한다. 직접적으로 교육기관을 표방하고 있는 <다중지성의 정원>뿐만 아니라 <자율평론>, <다중네트워크센터>, <갈무리>, <호코모코노> 등 다른 마디모임들도 자기-교육, 자율-교육을 명시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활동의 중요한 계기로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중넷 자체가 이미 교육기관, 능력 성장의 장(場)으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중넷의 자기-교육 활동은 소극성, 그 소극성의 주요한 원인인 부르주아적 요소들의 유인력, 마디모임 간 교류 및 소통의 저조 등으로 인해 일정한 돌파 내지 해결을 요하는 부분을 품고 있으며, 앞서도 지적했듯이 자율광장 및 자구모의 탄생을 직접적으로 추동한 힘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와 욕구였다. 자구모의 과제 중 첫 번째인 교육, 능력 성장의 문제는 여기서 두 번째 문제인 ‘공통화’의 문제로 이어진다.


3. 공통화의 문제

인간들 사이의 교류, 소통의 문제는 인간의 존재조건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근원적인 것이며, 그 자체로 다중넷만의 특유한 문제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특유점은 그 근원적인 문제를 교류, 소통, 조직화의 문제가 아닌 ‘공통화’(commonization)의 문제로 제기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고민은 ‘공통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공통화란 무엇인가? 더 정확히는, 우리가 공통화라는 말로 의도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것이 이야기하고 나누고 함께 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의 강고한 구분선을 전제한 상태에서의 만남(자유주의)을 의미하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좀 더 강한, 좀 더 높은 의식성을 동반한 조직적 결합과 실천(레닌주의)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우리가 서로의 삶에 좀 더 직접적으로 깊숙이 개입하고 섞이는 것(공동체주의)을 의미하는가? 좀 더 구체적이고 단순한 차원에서, 모든 일을 똑같이, 똑같은 정도로 함께 하는 것(평등주의)을 의미하는가? 이러한 규정들이 공통화를 표현하기에 적절하지도, 만족스럽지도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공통화는 위의 규정들이 갖고 있는 긍정적 힘을 자신의 유효한 계기로 배치하면서도 그것들의 한계 및 위험과는 단호히 결별하는 만남과 섞임의 방식일 것이며, 인류가 삶과 투쟁의 와중에 창안하고 경험한 다양한 조직화 방식들로부터 배우면서도 그 배움을 열린 미래로 투사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도모해볼 수 있는 어떤 상태일 것이다.

이처럼 공통화는 우리에게 해답으로, 다시 말해 길이 주어져 있고 그대로 열심히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어떤 것으로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탐구하고 발견해내야 할 하나의 과제로 주어져 있다. 따라서 공통화를 위한 우리의 활동은 결론의 단호한 집행이 아닌, 무엇보다도 수평적 만남을 통한 모색이 될 수밖에 없다. 자율광장은 무엇보다도 그러한 수평적 만남과 모색을 위한 것이며, 자구모의 자율광장 구성활동 또한 그러한 목적 하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율광장 ‘구성’모임이라는 말 속에 이미 함축되어 있는 것처럼 수평적 만남, 혹은 그러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이라는 것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거기에 자구모의 존재이유가 있다. 협의의 자율광장 즉 2박 3일 간의 자율광장에서 표현되고 만나는 것은 마디모임, 만사들의 능력과 활동이며 결과적으로 만사들의 능력과 활동의 활성화 없이, 다시 말해 일상적인, 지속적인, 광의의 자율광장 없이 협의의 자율광장이 성공적일 수 없음은 자명하다. 따라서 자구모가 자율광장을 구성한다 함은 만사들과 마디모임들의 만남을 통한 능력과 활동의 활성화를 도모함을 의미하며, 그러한 의미에서 자구모 활동의 상당 부분은 ‘개입’의 형식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개입’이라는 말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 인간의 삶 자체가, 어쩌면 존재 자체가 개입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최선을 다해 숙고하고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떠한 개입’이냐 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지혜가 발휘되지 못한다면 자구모의 활동은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자구모가 다른 모임들의 위에 서있는 모임이 아니며 그래서도 안 되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자구모의 개입은 많은 경우 ‘제안’의 형태를 취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제안’을 강제력의 부재나 강제력에 대한 거부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우리의 태도가 “우리의 안이 받아들여지면 좋고, 아님 말고”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꾀하고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제안할 때, 우리는 그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변화하길 원하는 것이고 그러한 한에서 우리는 ‘강제’와 ‘폭력’을 욕구하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거부해야 할 것, 또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거부해왔던 것은 그러한 강제와 폭력이 강제와 폭력의 상대의 외부에서, 소외된 형태로, 위계나 체계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강제력은 어디로부터 와야 하는가? 바로 제안 그 자체의 힘으로부터, 제안의 근거가 되는 우리의 기획과 결정 그 자체의 힘으로부터가 아니면 안 된다. 무언가가 옳다, 무언가를 마땅히 해야한다는 당위나 정당성은 그 당위와 정당성으로부터 비켜서 있는 상대를 침묵시킬 수는 있어도 변화시킬 수는 없다. 그 침묵 속에서 변화의 가능성은 저 깊은 곳으로 숨어버린다. 의무가 아닌 욕구가, 수동이 아닌 능동이, 소극이 아닌 적극이 만나야 한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결코 회피해서는 안 될 어려움이다.


4. 예시적 그림들

애초에 이 발표문의 과제는 자구모의 과제를 구체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논의는 과제의 설정과 수행에 있어서의 추상적 원칙을 이야기하는 데 할애되었다. 그리고 아마도 ‘자율광장의 구성’이라는 자구모 활동의 목적과 내용의 성격을 고려할 때 구체적인 층위에서의 활동의 일반적인 정식화(formulation), 즉 원칙의 구체적 전개과정을 일반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형식(form)을 찾는 일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자율광장’을 구성한다 함은 다중넷 전체의 활동에 일상적이고 지속적으로 개입함을, 그것도 우리의 활동을 다중넷의 궁극적 근거가 되는 다중들의 네트워크, 즉 삶 자체에 끊임없이 회부하면서 그렇게 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현재 우리에게 열려있는 구체화의 방식은 끊임없이 유동하는 과제의 어느 한 순간을 상상력에 의해 포착한 예시적 그림을 제시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묶여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제들과 대면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능력이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우리의 예시적 그림을 2박 3일간의 자율광장, 즉 협의의 자율광장의 준비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용이할 것 같다. 자구모는 분기별 자율광장에서 다룰 주제를 기획한다. 이때의 기획은 다양한 층위, 즉 세계 혹은 삶과 다중넷 마디모임들의 활동내용, 역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여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기획은 궁극적 차원에서 세계의 혁명적 변화를 목표로 하는 동시에, 다중넷 마디모임들의 활동의 내용과 역량을 풍부하게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기획은 적절한 마디모임들에 제안의 형태로 배치된다. 언어 세미나들에 해당 기획과 관련된 글의 번역을, 이론 학습 세미나들에 프로젝트 연구를, 자율평론에 앞의 번역 또는 연구결과물을 게재할 수 있는 섹션의 설치를, 다중지성의 정원에 관련 강좌 개설을 제안하고 그러한 제안에 따른 활동의 성과물이 자율광장에서 합류하여 표현되는 것이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그렇지만 지금까지 실제적으로는 잘 그려지지 않았던 다중넷의 그림이다.

협의의 자율광장과의 관련성을 떠나 자구모가 다중넷의 빈 곳에 직접 개입하는 상황을 그려보는 것도 가능하다. 예컨대, 언론의 취재요청 등 외부와의 접촉에서 어떤 마디모임의 성원들이 응답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상황이라면, 자구모가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여러 마디모임들에 동시에 걸쳐 있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하나의 제안으로서 자신의 집단적 사유 ․ 논의 결과를 제시하는 일 또한 잠재적 전체, 옆에 서는 전체로서의 자구모가 자신의 과제로 삼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할 것이다.

이밖에도 무수히 많은 과제들이 주어지거나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실은 과제의 식별, 설정이야말로 능력의 진정한 발휘가 요구되는 지점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 활동의 성패를 가늠하는 바로미터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무엇을 할 것인가”의 가장 중요한 ‘무엇’은 다름 아닌 매순간 유동하는 현실 속에서 가장 적절한 과제들을 구성해내는 일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