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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시티서울 2016 〈더 빌리지〉의 일환으로 열린 

파스칼 길렌(Pascal Gielen) 님의 공개강연 주요 내용 메모입니다.


(실제 강연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부정확할 수 있습니다.)


파스칼 길렌 님의 책 <예술적 다중의 중얼거림>(The Murmuring of the Artistic Multitude)는 2016년 말~2017년 상반기 갈무리 출판사에서 출간될 예정입니다.


. 강연 제목 : "공유지의 예술적 구성"(Artistic Constitutions of the Commons) 

. 일시 : 2016.8.20.(토) 2시10분~5시 25분

. 장소 : 서울시립미술관남서울분관 

. 강연 : 파스칼 길렌 (앤트워프대 교수, 예술사회학자)

. 통역 : 김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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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연 내용 


벨기에 정부의 지원으로 시작했던 연구에서 "문화의 가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갖고 연구를 수행하였는데 당시 보고서에서 문화의 정의를 어떻게 내릴 것인가를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보고서에 따라서 문화 분야 예산이 삭감될 수 있었기 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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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보통 인류학에서 "삶의 방식"이라고 정의하는데 우리는 더 나아가서 삶과 사회적 맥락에 의미를 주는 유일한 것이 문화라고 말하였습니다. 먼저 우리는 문화가 가치 있다는 것을 정치인들에게 설득해야 했습니다.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두 번째로 염두에 둔 것은 문화조직, 문화행위자들, 예컨대 예술가들, 학교들이 문화를 위해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문화를 조직하는 세 방법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1. 사회화 :

사회질서를 자체를 의문시하지 않고 사람들을 조직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자녀양육,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 난민들에 대해서 정부들이 통합정책을 쓰면서 하는 일 등) 어떻게 행위해야 관습에 어긋나지 않고 사회에 편입될 수 있는지 알려주는 것입니다. 


2. 자격화 (qualification)

이것은 위계를 만드는 것. 위계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것은 교육에서 자주 일어납니다. 잘했다, 잘못했다를 나눈다든지, 고급예술, 하급예술을 나눈다든지하는 일입니다. 


3. 주체화

자기 자신을 의문에 부치고 사회적 위치, 의미를 질문하기 시작하는 방식입니다. 정체성을 찾기 시작하는 것. 예컨대 누군가와 3개월간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 나는 너한테 뭐고, 너는 나한테 뭐지라고 질문을 하기 시작합니다. 

예술도 여기에 관련되는데, 도발적 예술을 보고 충격을 받으면 이게 뭐지?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현대예술은 어떤 측면에서 주체화와 관련이 깊습니다.


건강한 문화에서는 사회화와 주체화의 변증법이 잘 작동합니다. 동적인 문화에서는 사회화와 주체화 간에 어떤 동역학이 존재합니다. 저는 이것을 측정과 탈측정(dismeasure)의 역학이라고 부릅니다. 


많은 학자들이 지난 10~15년 동안 주체화에 문제가 발생해 왔다고 말합니다. 사회화 과정이 지배적이 되고 주체화는 점점 억압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박물관, 예술학교, 창조도시, 문화산업 등은 주체화 과정을 불가능하게 만들곤 합니다. 


여기서 저는 도시 문제로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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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세넷의 책 <무질서의 활용>(Uses of disorder, 1970)은 도시가 조직되는 방식을 다루었습니다. 세넷에 의하면 현대도시는 사람들을 청소년기에 묶어둔다고 합니다. 정체성에 대해 방어적이고 성숙을 하지 않는 상태에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족이 조직되는 방식, 공동체가 조직되는 방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위 슬라이드의 배경 이미지는 오즈만의 방사형 도시건축방식으로 설계된 파리의 사진입니다. 여기에서는 동일성으로서의 정체성이 중요합니다. 실제로 오즈만의 계획은 계층 간 분리정책(segregation)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호수들이 사람들이 서로를 만날수 없게 하는 경계선으로 기능합니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은 일상에서 자신과 다른 집단에 속한, 다른 관점을 취하는, 다른 사회적 위치에 있는 타인들과 마주치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공공공간이라고 불리던 곳들이 현격하게 줄어듭니다. 


이 패턴은 여러 도시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앤트워프에도 유대인, 중국인, 이슬람, 중산층 백인 가정이 사는 동네가 따로 있습니다. 도시계획가들과 행정가, 정치가들은 의도적으로 이러한 분리정책을 써서 도시를 만들곤 합니다. 특히 창조도시 설계자들 중에서 이런 관점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이 과정이 처음부터 의도된 것이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멕시코시티나 상파울로, 런던 등에서는 극단적인 분리현상을 목격합니다. 각 구역이 별도의 경찰력을 가지며 도시의 다른 지역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합니다. 


그런데 세넷에 의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더 필요하고 더 많은 무질서, 더 많은 아나키가 필요합니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모여 살면 편한데, 왜 불편하게 이런게 필요하다고 말할까요? 


세넷은 이런 분리상태로 인해서 폭력적 분출이 알어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타자와의 접촉이 익숙하지 않으면 긴장이 생겨 쌓이다가 폭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예로 볼 수 있는 것이 2011 런던 봉기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일상에서 타자와의 접촉 경험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폭력 분출들은 미국, 유럽, 파리, 반년 전의 헤이그 등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습니다. 


다음은 창조도시란 무엇인가, 그 의미가 무엇이며, 창조도시가 무엇을 하며, 예술가 등 창조노동자들은 창조도시와 관련하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보겠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셀 드 세르토의 책 <일상생활의 실천>(Practice of Everyday Life)이 여기서 유용합니다. 세르토는 두 개의 대립을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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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전략과 전술의 대립입니다. 

전략은 오즈만이 도시계획한 것처럼 장기적 청사진을 가지고 뭔가를 하는 것이고, 전술은 새로운 사용을 일상에서 발견하고 실천하는 것,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이 도시를 이용, 오용, 남용하는 것(예컨대 시장의 그래피티화)을 말합니다. 이러한 새로운 사용은 때로는 파괴적이지만 종종 생산적입니다. 전략에 비하면 단기적입니다. 


두 번째 대립은 장소와 공간의 대립입니다. 

장소는 동상, 건물 같은 고정된 곳을 말합니다. 공간은 전술과 마찬가지로 사용과 재사용에 의해 장소가 끊임없이 변경되는 곳을 말합니다. 


이 두 대립을 위 그림처럼 교차시키면 문화와 예술 도시정치의 관계의 이상적 유형(ideal types)들을 보게 됩니다. 


한편에서 이것들은 연대기적(시간순으로) 일어나는 과정이긴 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동시다발적입니다. 오늘날 이 네 도시 형태들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도시들이 많습니다. 


19세기 오즈만의 도시는 기념비적 도시였습니다. 모든 것이 계획되었고 동상들은 종종 국가를 대표하였습니다. 


그리고 1950년대 후반 1960년대 초반 기념비적 도시에 대한 반응이 일어납니다. 그것을 상황주의적 도시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기념비를 파괴하려고 하였습니다. 박물관, 대학 같은 위계들, 고정된 장소, 구조물을 파괴하려고 하였습니다. 고정된 장소에 대한 반응이기 때문에 이들을 장소 쪽에 위치시켰습니다. 


그리고 이때 봉기했던 자들이 1980~90년대에 이르면 도시 설계자, 행정가가 되어서 창조적이고 억압적인 도시를 만듭니다. 제가 도시에서 놀란 점은 도시는 항상 공사 중이라는 사실입니다. 도시는 액체화/유동화되었습니다. 항구적인 변화 속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상황주의자들이 이겼지만 그들이 원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이겼다"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도시의 액체화/유동화라는 측면에서 그들이 목표한 바를 이뤘다는 것입니다. 


1990년대에 영국의 토니 블레어는 창조도시를 공식정책으로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 흥미로운 점은 그 이후 창조도시는 좌파나 사회주의적인 도시정부들에 의해 도입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패션지구, 창조지구 등을 만들어서 자본을 도시 안에서 활동하게 하려고 하였습니다. 리차드 플로리다 같은 사람은 모든 도시에 창조지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가면서 영국에서도 노동당 블레어가 물러나고 보수당 카메론 정권이 들어섭니다. 앤트워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좌파에서 우파로 지역 정부들이 바뀌는 전지구적인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억압적인 정책이 증가하였습니다. 도시 내에 cctv가 증가하고 경찰력도 증대됩니다. 예술가들에게는 활동할 수 있는 특정장소가 제공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현재 처해 있는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창조적이면서 억압적인 도시의 단계에 있습니다. 


공통도시는 어찌 보면 미래의 주제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네 가지는 시간순으로 출현하였지만 오늘날 동시적으로 하나의 도시 속에 공존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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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날의 도시들은 계속해서 폭력적인 분출들에 직면합니다. 이러한 폭력에 주류 미디어와 주류 정치가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매우 흥미롭습니다. 런던 봉기에 대한 카메론의 반응을 보면 그는 "senseless"(무분별한, 무의미한) 폭력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거리의 폭력이 그렇다는 것인지, 주류 미디어와 정치가들이 이해를 못한다는 의미인지가 때때로 불분명하기는 합니다. 


사르코지나 네덜란드의 최고권력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은 거리의 봉기자들을 쓰레기(trash), 거리의 얼간이들(idiots of street)이라고 부릅니다. 그 봉기자들을 적절하게 표현할 단어를 못 찾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봉기들을 개인의 도덕적 문제로 치부하려 합니다. 여기에서 문제의 도덕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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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분출이 진정되면 반과학적 시민 프로그램들이 집행됩니다. 카메론은 "빅 소사이어티"를 이야기하였고 "적극적 시민권"(active citizenship)이라는 주제가 등장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시민권은 개인의 책임으로 여겨집니다. 권리가 아니라 어떻게 행동해야 좋은 시민인지를 알려주는 차원입니다. 우리는 개인으로서 이웃을 잘 돌봐야하고, 좋은 일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시민의 비정치화입니다. 주체화가 아니라 사회화에 관련된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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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정의에 대해서 사회학자들, 철학자들은 반대합니다. 바우만 같은 학자들은 개인이 문제가니라 구조적 위기가 문제이다, 사회적 불평등이 구조적 원인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분석이 맞지만 무언가 빠졌다고 봅니다. Senseless violence라고 할 때 우리는 오늘날 특히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에서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우울, 자살율을 생각해야 합니다. 무감각한 폭력, 번아웃 증상 등 말입니다. 한국도 그렇다고 들었지만 벨기에도 자살율이 매우 높고 특히 중산층 여성들의 자살율이 매우 높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보편적인 문제입니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데서 오는 병리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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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많은 곳에서 돈은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습니다. 국내총생산(GDP)은 행복지수(GHP)와 일치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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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기에서 빠진 고리가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삶에 의미를 주는 것, 삶과 맥락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문화입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위기는 경제 위기가 아니라 문화 위기입니다. 


우리 자신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 점점 옅어지고 있습니다. 문화는 폐쇄적으로 되고 있습니다. 

국가주의, 민족주의 등은 문화를 폐쇄적으로 만듭니다. 


그리고 예술이 계속해서 새로움을 줄 수 있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의미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연구에서도 맑스를 뒤집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문화가 하부구조이고, 의미화(signification)가 항상 먼저 일어납니다. 

문화는 사회적 상부구조가 아니라 모든 것의 토대입니다. 

경제 정치 사회를 조직하는 토대,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정치체제들은 시작점이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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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는 공산주의(Communism)가 아닌 공통주의(Commonism)을 주장합니다. 지배적인 정치체제들 예컨대 신자유주의가 공산주의와 공유하는 지점은 경제를 사회의 기초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공통주의는 문화를 기초, 하부구조로 여깁니다. 모든 것은 의미화입니다. 그 말은 모든 것을 재의미화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공유지(commons)는 매우 인기 있는 용어이지만 오해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유지는 화합해서 잘 사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공유지에서는 갈등이 기본적인 조건입니다. 공통(common) 장소는 조화의 장소가 아니라 불화/이의제기(dissent)의 장소입니다. 


논쟁이 진행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합니다. 타자를 만나고 논쟁할 수 있는 공간 말입니다. 정원을 가꾸는 것만이 아니라 거기서 나온 사과를 누가 가져갈 것인가를 두고 토론이 펼쳐져야 합니다. 물론 규칙은 필요하겠죠. 예컨대 서로를 때리지 않는다는 규칙 같은 것이요. 


이 과정은 정체성을 물음에 붙이는 과정입니다. 정체성이 동일성이 아니라 타자와의 대면 속에서의 생성이 됩니다. 


그리고 예술은 항상 뭔가 이상한 것을 이 과정에 갖고 들어옵니다. 생각이든 구조든 이의제기(Dissent)를 갖고 들어옵니다. 


또 공통은 가서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행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며 끝내고 싶습니다. 


이 예술가는 정치적 예술이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예술을 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하였습니다. 메시지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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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에 텐트는 "긴급/응급 예술"의 필요를 역설합니다. 무엇이 현재 긴급한지 알아내서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Circus amok라는 집단은 서커스를 하며 돌아다니는데 그들에게는 서커스 공연 자체만큼이나 공원에서 서커스가 일어날 수 있게 그 지역 행정가, 정치가, 정부와 협상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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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위 사진 속 스페인의 그룹은, 필요하지만 불법인 건물들, 예컨대 학교 같은 것을 짓고 다닙니다. 

이들은 서커스처럼 조직돼 있습니다. 가족, 변호사, 예술가, 공학자, 건축가 등 매우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여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매우 자율적 모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인가 아닌가, 합법인가 불법인가라는 논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고, 이런 경계에서 전환을 일으키는 것, 회색지대를 만들어내는 것, 범죄성과 창조성 사이에서 말입니다. 그런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범죄성이 혁신의 출발점이라고 말한 사회학자가 있었습니다. 이 경계 게임들을 보는 것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 ?
    Amelano 2016.08.20 22:01
    2009년에 "공통도시"(common city)라는 말을 만들어 썼는데, 지금 길렌이 이 말을 거의 유사한 의미로 쓰고 있는 것을 보니 흥미롭습니다. 갈등공간으로서의 공통장이라는 접근은 <공통체>의 주제이기도 하지요.
  • profile
    김정연 2016.08.23 09:17

    강연날 몇 가지 중요한 질의를 해주신 한 참가자님이 올리신 후기입니다.

    http://nuguges.tistory.com/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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