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영점』, 4장. 1970년대 미국의 가사노동과 재생산의 구조조정(p83-p92:11)

유나

 

 

1. 여성노동력의 극적인 확대는 1970년대의 가장 중요한 사회현상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지만,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여성노동력 확대의 기원에 대한 미심쩍음이 아직도 만연하다고 저자는 지적(83). 저자는 경제학자들의 의심은 1970년대 여성노동력의 극적인 증가가 가내 부불노동자로서의 역할거부를 반영한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84).

 

2. 1960~1970년대 가사노동이 여성들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싸움터였고, 이 때문에 여성들이 시장의 일자리를 선택한 것마저 가사노동에서 해방되기 위한 전략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전후에 재생산을 조직한 사회정책들과 지배적인 성별 분업에 위기를 초래한 사회적 재생산을 크게 재조직했다(84).

 

가사노동에 대한 저항

 

1. 1960년대 이후 가사노동에 대한 거부는 광범위한 사회현상이 되었고(1960년대 생활보호대상 어머니들의 투쟁 등) 이는 여성주의 운동의 발전 때문에 더욱 극적으로 보이게 되었다(88). 자연스러운 “여성성”과 결혼, 가정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수가 적어지는 등. 1970년대 초에는 가사노동에 대한 거부가 임금노동으로의 이전이라는 형태를 취했다. 경제학자들은 이 같은 경향은 가정 내 기술진보와 산아제한의 확산이 가져온 결과라고 하였지만 저자는 1)1970년 기술혁신이 가정 안으로 크게 침투하지 못하였다는 점, 2)가정의 규모가 시장 일자리를 찾는 여성들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2. 여성노동력의 성장이 가사노동에 대한 여성들의 거부를 반영한다고 할 때, 이는 기록적인 수의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 가사노동이 경제학적 연구대상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는 역설을 설명해줄 수도 있다(90). 1970년 가사노동에 관한 연구 증가, 1975년 가사노동의 국민총생산(GNP) 측정 시도 등은 사실 그 자체가 “가정-가사노동의 위기”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다. 또한 미국여성의 수입능력 증가, 이혼율 및 모자가정의 증가 간에 일정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가정의 안정성”에 대한 위협을 느끼기도 했다.

 

3. 가사노동에 대한 재평가는 이러한 위기 속에서 이루어졌지만 (그렇게 많은 립서비스가 있었음에도) 실제로 이루어진 것은 별로 없었다. 가사노동 보수의 가능성과 관련해서 유일하게 제안된 안은 GNP를 계산할 때 상징적인 가격표를 다는 것뿐이었다. 이렇게 하면 여성들이 자존감을 높이는 한편 가사노동에 대한 만족감을 높일 수 있다는 가정에서였다(91).

 

4. 가사노동에 대한 여성들의 투쟁이 일으킨 유일한 반응은 인플레이션의 꾸준한 증가였고, 이는 여성들의 가사노동과 남성임금에 대한 종속을 강화시켰다. 그러나 우호적인 법안의 부재와 인플레이션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가정 내 부불노동에 대한 여성들의 거부는 1970년 내내 지속되었으며, 이를 통해 가사노동 조직 및 일반적인 사회적 재생산 과정에서 상당한 변화를 만들어냈다(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