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지원 여성주의 세미나 - 혁명의 영점 읽기 ∥2016년 12월 14일∥발제자: 쿨한주니

텍스트: 실비아 페데리치, 혁명의 영점, 갈무리, 2013, 76~82

 

<요약>

임금요구

1.여성으로서 권리는 임금투쟁을 위한 사회적 투쟁과 함께 시작된다. 하지만 이는 임금관계에 포함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임금관계 밖에 놓여있는 노동계급의 모든 부문을 위해서 그 밖으로 빠져나오기 위해서이다.

2.임금을 위한 투쟁은 임금을 통해 표현되는 권력을 획득하려는 동시에 임금을 통해 구현되는 자본관계를 거역한다는 점에서, 임금에 저항하는 투쟁이기도 하다.

3.가장 중요한 사실은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요구는 우리의 노동을 생물학적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일이라는 점인데, 이는 투쟁의 필수적인 조건이다. 사실 우리의 노동과 가족, 남성에 대한 우리의 의존도를 가장 강력하게 제도화하는 것은 바로 가사노동에 대한 보상은 언제나 임금이 아니라 “사랑”이었다는 사실이다.

자본이 돈을 지불하게 만드는 방법

1.미국의 흑인과 생활보호대상 여성들의 투쟁은 공동체를 권력의 거점으로 삼아, 개발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임금수익자 뿐만 아니라 비임금수익자를 통해 축적한 사회적 부에 대한 재전유를 목적으로 삼았다.

2.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은 로페이트가 제안한 가정의 자본주의적 “합리화”에 대한 거부일 뿐 아니라, 공장의 사회화에 대한 거부이기도 하다.

3.우리의 상태를 악화시키는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자본이 그 기술을 사용한다는 사실에 있다. “자기관리”와 “노동자통제”는 늘 집 안에도 존재했다.

4.임금을 손에 넣는 것이 바로 혁명이라 말하지는 않는다. 다만 임금의 쟁취는 우리가 자본주의적 분업에서 할당받은 역할을 약화시키고 그 결과 노동계급내의 권력관계를 우리와 계급의 통일성에 더욱 유리한 조건으로 바꿔 놓을 것이기 때문에 혁명적인 전술이라 할 수 있다.

5.우리의 목적은 가격설정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 우리 스스로의 가격을 시장 밖에서 정하는 것, 가사노동과 공장노동, 사무노동이 “비경제적”이 되게 만드는 것이다.

6.임금을 받는다는 것이 곧 국가가 우리의 노동을 더욱 직접적으로 통제하고자 한다는 것을 의미할지라도, 이는 현재의 상황보다는 더 나을 수 있다. 이 같은 시도는 우리의 노동을 통제하는 자가 누구인지 드러내줄 것이며, “두려움과 지배로 인해” 억지로 “사랑이나 돌봄”을 떠맡은 우리 자신을 책망하고 증오하기보다는,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아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함께 이야기해 보고 싶은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