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뉴욕에서는 지난 몇 년 동안, "돌봄의 공동체"를 생성할 필요에 대해, 그리고 보다 일반적으로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서 흘러나오는" 문제들을 다룰 수 있는 재생산의 집단적 형태를 생성할 필요에 대해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광범위한 논의가 이루어져 왔습니다(<팀 컬러크 컬렉티브>의 크래그 휴즈와 케빈 반 미터가 말했듯이). 우리는, 우리의 운동들이 효과를 발휘하고, 성장해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슬픔, 질병, 고통, 죽음의 경험들을, 종종 우리의 정치적 작업의 주변부나 외부로 밀려나곤 하는 것들을, 사회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그 운동의 구성원들의 재생산, 그리고 그보다 넓은 범위의 공동체의 재생산 모두를 의제로 위치시키지 않는 운동들은 존속될 수 없다는 사실에 공감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삶에서 일상적으로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런 운동들은 “자기-재생산”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에이즈 위기에 대한 <액트업>의 대응, '상호 부조'의 아나키스트 전통,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재생산 활동과 그것을 지탱하는 사회적 관계들을 재구조화하는 가운데 “혁명은 집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깨달았던 페미니즘 운동의 경험이 여기에서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페미니즘과 정치적 ‘커머닝’의 이러한 합류로 인해 여러 지역에서 수많은 움직임들이 생성되어 왔습니다. 운동 내에서 발생하는 부적절한 행위(abuse)들을 경찰에 의존하지 않고 풀뿌리 수준에서 해결할 수 있는 ‘책임구조’(accountability structure)를 구축하려는 시도뿐만 아니라, 공동체 정원, 연대경제, 시간은행(time bank) 등이 그것입니다. 이런 움직임들은 종종 지역적 수준에 한정된 것처럼 보였고, 현재의 상황에 맞서기 위해 서로 연합할 수 있는 힘은 부족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점거하라 운동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