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쪽 마지막 부분부터.

 

● 식량투쟁은 밀렵, 도둑질, 가택습격과 같은 방법으로도 이루어 짐. 16-17세기에 "식량범죄"가 중대범죄로 나타남. 마녀재판에서 되풀이 되는 "악마의 연회"라는 주제는 양고기구이, 흰 빵, 포도주를 먹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경우에는 이미 악마적인 행위가 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이 생존을 위한 투쟁에서 사용한 주요 무기는 그들의 굶주린 몸뚱이. 방랑하고 구걸하면서 유복한 사람들을 에워싸고, 팔을 붙잡고,  상처를 보여주어 유복한 이들이 전염과 반란의 공포에 시달리게 함.

 

132쪽

노동인구 재생산에 대한 국가개입 : 노동계급의 범죄자화와 빈민구제

 

1. 자본주의적 관계 확산에 맞선 저항전선에는 식량투쟁만 있는 것이 아니었음. 도처에서 일군의 민중이 생계수단 파괴에 저항. 토지사유화, 관습권의 폐지, 새로운 세금 부과, 임금에의 의존, 상비군의 촌락 주둔에 맞서 싸움. 특히 주둔군에 대한 혐오와 저항이 컸다.
1540~1670년 사이 프랑스에선 천 번의 봉기가 일어났고, 많은 경우 군대가 개입하고서야 진압됨. 잉글랜드, 이탈리아, 스페인도 비슷. 이 같은 투쟁은, 맑스가 무시했던 것과 달리, 촌락의 전자본주의적 세계가 산업노동자 세계가 이룬 것과 같은 수준의 투쟁으 낳을 수 있었음을 보여줌.

 

2. 중세의 이주와 부랑, 늘어가는 "재산 범죄"는 빈곤과 강탈에 대한 저항의 일부. 이런 현상들이 거대해지기 시작 함. 권력당국의 기록: "부랑자가 떼 지어 도처에 들끓음." 당국은 이들을 통제하지 못함. 1545년 베네치아에서만 6천 명의 부랑자가 있었음.

 

3. 이런 문제에서 항상 선구자 역할을 하는 잉글랜드를 필두로, 국가는 가혹한 법을 새로 제정하여 부랑자를 강제노동에 처하고 재범의 경우엔 사형에 처한다고 규정함. 그러나 탄압은 효과적이지 못했음. 16~17세기 유럽은 계속해서 커다른 소요와 충돌의 장소였는데 거기에는 박해를 피해 달아나는 이단자, 제대군인, 일자리를 찾는 직인, 그외 "비천한 사람들", 외국 출신 장인, 토지에서 축출된 농민, 매춘부, 행상인, 좀도둑, 직업거지가 있었음. 길거리엔 이제 막 형성되기 시작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이야기와 경험이 떠돌았음.

 

4. 현편 범죄율 또한 크게 상승. 도둑맞은 공동체의 부를 다시 개간하고 전유하는 과정의 일환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책 130쪽 두번째 표 참고 : 가격혁명 시기 물가에 따른 범죄 동반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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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세미나 직전에 요약문을 작성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