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지원 성/정치/자본주의 세미나 - <캘리번과 마녀> 읽기 ∥2012년 4월 14일∥발제자: 김정연

텍스트: 실비아 페데리치, <캘리번과 마녀>, 갈무리, 2011, 319~328쪽.


착취, 저항, 그리고 악마화


1. "약탈경제"1)의 위기로 1550년대에 스페인 정부는 아메리카 식민지에 보다 혹독한 착취체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우상숭배 반대캠페인과 반인디언 선동의 전환점이었다. 스페인인들은 식민 지역의 자급경제를 완전히 궤멸시키지는 않았고, 아스텍과 잉카에서 마련한 조세제도를, 조세량을 훨씬 높여 활용했다. 하지만 이런 조치는 스페인인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했는데, 은광?수은광 채굴, 공작소에 필요한 노동력이 여전히 부족했기 때문이다.

2. 본국에서 생산되지 않는 상품을 해외에서 구입하고, 유럽영토 확장 재정으로 사용하기 위해 스페인 정부는 더 많은 노동력을 확보하여 금괴와 은괴를 더 많이 생산해야 했다. 그래서 1550년대에 스페인 정부는 엔코멘데로스2)의 권력을 잠식하려 했지만, 식민화에 대한 저항 역시 점차 고조되었다.

3. 멕시코에서는 1562년에 교구장 디에고 데 란다의 주도로 우상숭배 반대 캠페인이 시작되어 4천5백 명 이상이 고문과 혹독한 처벌을 당했다. 도망치거나 자살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노동이 중단되고 지역경제가 붕괴되었다. 이 박해는 새로운 식민지 경제의 기초가 되었다.

4. 페루에서는 마법에 대한 최초의 전방위적 공격이 1560년대에 시작되었다. 마침 이때 타키 온코이TakiOnqoy운동 역시 촉발되었다.3) 이 운동은 원주민들의 천년왕국 운동으로, 유럽인들과의 협력을 비판하고 식민화 종식을 위한 범안데스 지역의 지방신(후아까스) 동맹을 형성할 것을 주장했다. 이들은 기독교, 스페인 이름, 식품, 의복과 노동징발, 조세지불을 거부했다.

5. 타키 온코이 운동은 식민자들에게 심각한 위협이었다. 안데스인들은 이를 통해 처음으로 “원주민”Indians으로서 한민족이라는 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이 운동은 널리 확산되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기독교 권력과 정부는 후아까스 숭배와 원주민 종교를 미신적인 것, 악마적인 것, 마녀적인 것으로 만들고 보다 강력한 탄압과 파괴의지를 다졌다.

6. 지방신 후아까스는 선조들의 정령이 담긴 동물이자 돌멩이요, 샘이자, 산으로, 모든 이들이 후아까스를 농업활동과의 주요한 연결고리로 생각하며 후아까스를 숭배했다. 후아까스 파괴는 공동체와, 그 역사, 자연과의 관계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7. 이 과정에서 우상숭배 반대운동을 통해 촉발된 두 가지 조치가 도입되었다. 첫째, 지역족장들이 광산과 공작소에 공급해야 하는 노동력 할당량이 늘어났고, 이에 불응할 경우의 처벌조항이 새로 도입되었다. 둘째, 농민들을 지정된 마을로 대거 이동시키는 재정착프로그램이 도입되었다.

8. 하지만 사람들은 꾸준히 원래의 신을 숭배했다. 그래서 지방신에 대한 공격은 날로 심해지다 1619년과 1660년 사이에 절정에 달해서 이 시기에는 마녀사냥을 동반했다. 스팔딩의 설명에 따르면 조사 작업은 유럽의 마녀사냥과 동일한 패턴에 따라 수행되었다.

9. 고문과 익명의 비난, 공개적인 굴욕 앞에서 많은 유대와 우정이 산산이 부서졌다. 자신들의 신이 힘을 가졌다는 신념이 약해졌고, 숭배는 은밀한 개인적 행위로 변해갔다.


1) 부를 축적하기 위해 “인디언들”의 노동을 직접 착취하기보다는 “인디언”의 잉여상품 착취에 더 많이 의존하는 구조


2) 아스텍과 잉카제국의 지배자들을 말함.


3) 타키 온코이라는 이름은 이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을 사로잡은 무아지경의 춤사위를 일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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