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본주의/정치세미나, 120225, 돌민
실비아 페데리치, 캘리번과 마녀, 갈무리, 2011, 313~319쪽

 


1. 요약(5장 식민화와 기독교화 313~319쪽)

 

식인자들의 탄생

 

1.1. 콜럼버스가 “인도”를 향해 항해하던 시기 유럽의 마녀사냥은 아직 대중적인 현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엘리트들 사이에서는 악마숭배를 (무슬림과 유대인들 같은) 인구 대중을 비방하고 정치적인 적수를 공격하기 위한 무기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2.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식인자, 악마숭배자, 남색가들로 규정하자 아메리카 정복이 금과 은에 대한 뻔뻔한 요구가 아니라 [이교도들을] 개종시키키 위한 선교라는 허구에 힘이 실렸다.

 

1.3. 하지만 처음에는 악마숭배자라는 피식민자의 이미지가 “인디언들”을 순수하고, 관대하며, “노역과 폭압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고 신화 속의 “황금기”나 현실의 낙원을 연상시키는 존재로 그리는 이미지와 공존할 수 있었다(Brandon 1986 : 6~8; Sale 1991 : 100~101).

 

1.4. 이 같은 성격규정은 문학적인 고정관념이었거나 레타마르Roberto Retamar가 제기한 것처럼 유럽인들이 자신들이 만나는 사람들을 진짜 인간으로 보지 못함을 보여 주는 “야만” 이미지의 수사적인 대칭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낙관적인 관점은 스페인인들이 원주민들을 쉽게 개종시켜 지배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정복의 시기(1520년에서 1540년대)와도 일치한다(Cervantes 1994).

 

1.5. 하지만 정복이 진행되자 협상의 여지가 사라졌다. 정체성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타인을 폄하하지 않고서 이들에게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을 불가능한 일이었다.

 

1.6.

 

1.7. 데 고마라De Gomara(1556)와 아코스타Acosta(1590)의 연구 같은 당대의 “인도제국”사를 근거로 삼았을 때, 유럽인들이 아스텍과 잉카 같은 제국주의 국가들과 조우하면서 이 같은 관점상의 변화가 나타났던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아스텍과 잉카의 [자체적인] 억압방식에는 인간제물 관습도 있었다(Martinez et al 1976).
 하지만 인도제도 파괴에 대한 바르콜로메 데 라스 카사스Bartolome De Las Casas의 설명이나 식민지 정복에 대한 여러 글들을 읽어보면 스페인인들이 왜 이런 관행에 충격을 받았을까 의아함을 느끼게 된다.

 

1.8. 이와 유사하게 식민지 정복에 대한 기록에는 유럽인들이 아메리카에서 발견한 식인의례가 유독 부각되지만, 이는 그 시절 유럽에서 흔했던 의료시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따라서 스페인인들이 1550년대 이후 원주민들에 대해 느꼈던 새로운 공포는 단순히 문화적 충격에서 기인했다고 보기가 힘들다. 이는 오히려 노예로 만들려는 사람들에게서 인격을 박탈하고 이들을 공포의 대상으로 만들어야만 했던 식민화의 논리 속에 내재한 반응으로 이해해야만 할 것이다.

 

1.9.

 

1.10. 1550년대 이후 유럽에서는 신세계의 삶을 그린 삽화들이 유통되기 시작했고, 이것이 확산되면서 피식민자들의 품격을 떠러뜨리려는 위와 같은 노력이 완성되었다.

 

2. 이해가지 않는 대목

 

3. 질문하거나 토론해 보고 싶은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