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지원 성정치자본주의세미나∥2012년 04월 07일∥발제자: 젤리

실비아 페데리치,『캘리번과 마녀』, 갈무리, 2011, 266-271쪽

 

[요약] 마녀사냥, 여성사냥, 노동의 축적

1. . 이단과 사술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사술이 여성범죄로 여겨졌다는 점이다. 박해가 절정에 달했던 1550년과 1650년 이전에는 남성들도 박해의 대상이었지만(40%) 그 이후에는 박해다상으로 주로 노동자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증가했고, 특히 16세기 경 악마숭배에 대한 규탄이 정치/종교투쟁의 공통주제가 되면서 사술, 마법 범죄로 박해받은 이들이 늘어났고 이로 인해 처형당한 이들 중의 80%가 여성이었다. 여성들이 박해받은 범죄분야 첫 번째는 영아살해이고(낙태와 결부) 그 다음은 마법이다.

2. 이단박해와 마녀박해의 차이는 마녀박해에 있어 성도착과 영아살해에 대한 비난이 그 중심적 내용이었고 그래서 피임술 역시 악마화된 점이다. 피임, 낙태, 마법이 한 범주로 묶인 셈이다. 이로 인해 재생산과 관련된 범죄들이 마녀재판에서 두드러지게 등장했다.

3. 이단박해가 마녀박해, 즉 여성박해로 변화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종교 및 사회적 위범행위는 왜 재생산범죄에 주로 집중되었을까? (영아살해, 낙태, 피임 등)

4. [가설1] 영국 인류학자 머레이(1920년대): 이단의 패배 이후 종교재판소는 주로 고대 모성중심적 종교로부터 탈선한 교리에 대한 두려움을 가졌다. 마녀로 지목당한 여성은 주로 출산과 재생산을 진정시키는 목적을 가진 고대 풍요집단의 일원이었다. 교회는 이들이 이교도이자 권력에 대한 도전이라고 반대한 것이다. 하지만 이 가정은 왜 마녀사냥이 그 시기에 자행됐는지, 왜 당국이 풍요숭배 집단을 끔찍하게 여겼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5. [가설2] 16세기와 17세기에 빈곤 및 영양실조가 보편화돼, 영아 사망률의 결과가 높았는데 갑자기 많은 아이들이 죽거나 여러 질병에 걸린 현상에 대한 책임 추궁이 여성을 질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 가정은 여성들이 왜 피임문제에 대해서도 비난을 받았고 또한 마녀사냥이 경제/제도적 정책의 맥락에서 당시 어떤 위상을 차지하는지도 설명하지 못한다.

6. [실비아 페데리치의 가설] 17세기 유럽인구감소로 인해 노동력문제가 긴급해지면서 마녀사냥은 출산통제를 범죄화하고 여성의 신체-자궁을 인구증가와 노동력 생산 및 축적을 위해 봉사하도록 한 시도이다. 인구감소에 집착하는 정치계급이 마녀사냥을 촉발했고, 인구규모가 국부에 결정적이라는 확신이 이를 부채질한 것이다. 16세기와 17세기가 중상주의의 전성기였고 인구학이 “국가과학”으로 공식화된 사실은 마녀사냥을 추동한 정치집단 내에서 인구이동에 대한 통제가 갖는 전략적 중요성을 보여주는 증거다.

7. 마녀들은 주로 여성의 재생산과 관련한 지식과 통제력을 보유하고 있던 “현명한 여인”들 이었다. 이후 16세기 말엽부터 프랑스와 잉글랜드에서는 당시까지만 해도 신성한 미스터리였던 산파술을 시행할 수 있는 허가가 여성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17세기 초에 최초 남성산파가 등장하면서 산파술은 국가의 통제에 놓이게 되었다. 또 여성은 전문 훈련을 받을 기회를 거부당함으로써 전문직에서 배제되는 과정에 놓이게 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