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카트리네마르샬 지음 (p.10∼32)

 

리먼브라더스가 리먼시스터스였다면 금융위기는 다른 양상을 띠었을 것이다. 과도한 위험 감수 때문에 은행들이 폭삭 망하고 금융위가가 발생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남성들은 경제를 이끌기에는 호르몬에 너무 민감하다는 의미일까? 이런 식으로 머릿속에서 하는 실험은 의미가 없다. 여성과 경제학의 관계는 그보다 훨씬 더 깊고 넓은 문제다.

 

애덤스미스의 어머니는 누구였을까?

 

저녁식사는 어떻게 식탁에 올라올까? 이는 경제학의 근간이 되는 질문이다. 애덤스미스는 “우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혹은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그들의 욕구 때문이다.” 라고 했다.

 

뉴턴은 행성들의 움직임과 서로 당기는 힘, 그리고 사과가 땅에 떨어지는 이유 등을 연구하여 이 모든 것이 천체를 움직이는 힘인 인력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애덤 스미스는 이와 동일한 접근법으로 사회와 인간을 움직이는 메커니즘을 밝혀내려고 했다. 태양계에서의 인력과 동일한 역할을 사회에서 해내는 힘. 그것은 바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욕구다.

 

물리학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원자에 집중했던 것처럼 경제학자들도 사회를 이룬 가장 작은 단위인 개인에 대해 연구했다. 한 개인이 다른 개인과의 관계에서 행한 선택들 때문에 경제가 변화한다.

 

애덤스미스의 저녁 식사가 식탁에 오른 것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려는 욕구 때문이었을까? 그렇다면 스테이크를 실제로 구운 것은 누구였을까?

그의 어머니는 평생 아들을 돌봤지만, 저녁 식사가 어떻게 식탁에 오르는지를 논할 때 애덤스미스가 언급하지 않고 넘어간 부분에 속해 있다. 우리가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 경제 말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 보이지 않는 성이 있다.

 

애덤스미스는 경제학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절반의 답을 찾은 데 불과하다. 그가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상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의 어머니가 매일 저녁 식사가 식탁에 오를 수 있도록 보살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