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스 매리언 영 - 차이의 정치

 

분배 패러다임 비판

 

분배 패러다임이란 정의를 물질적 재화나 수입 혹은 지위 등을 공정하게 분배하는 문제로 이해하는 하나의 틀을 의미한다. 정의를 물질적 분배의 문제로 환원하는 것은 다양한 사회적 부정의들을 축소하고 은폐하게 되며, 이로 인해 물질적 재화의 정의로운 분배를 넘어서는 다양한 정치적 요구들을 제기하는 사회운동들과의 실천적 연관성을 상실하게 된다. 분배 패러다임이 가지는 결정적인 한계는 개인들 사이의 물질적 자원의 분배 문제에만 주로 집중함으로써 이에 형향을 미치는 사회구조나 제도적 맥락을 무시하고 그에 대해 비판적 평가를 제시하지 못하며, 이로 인해 결국에는 분배불평등과 구별되는 다양한 형태의 사회 부정의들을 간과하게 된다.

 

지배와 억압

 

좋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각자가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고 행사하고 자신의 경험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의 행동과 행동의 조건을 결정하는 과정에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 개발이라는 조건을 제약하는 것은 억압이며, 자기 결정을 제약하는 것은 지배다. 사회적 부정의를 해명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자기 개발과 자기 결정을 제약하는 사회적이고 제도적인 요인들을 맑히는 것, 즉 억압과 지배의 요인들을 밝히는 것이다.

 

지배란 당사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그들을 배제함으로써 자기결정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양한 지배형태들 중에서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전형적인 것은 경제적 지배이다. 복지국가의 등장을 배경으로 시민들은 국가에 대해 마치 시장에서의 소비자와도 같이 물질적 급부만을 요구하게 되며, 이는 결국 정치적 이슈들을 중립적 국가가 주도하는 재분배의 문제로 환원시키게 된다. 이는 분배 패러다임 부상의 사회적 배경이 되기도 한다. 분배 패러다임은 현존하는 집단의 고유한 차이와 차별을 무시하는 동일성의 정치를 강화함으로써 결국 다양한 수수자 집단의 인정과 참여 요구를 은폐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게 된다.

 

영은 현존하는 억압을 착취, 주변화, 무력화, 문화적 제국주의, 폭력을 통해서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억압들은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억압의 주체가 의도적으로 행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구조적 현상을 의미한다. 이는 사회적 억압이 주로 무의식적인 일상생활을 통해 발생하며 때문에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을 억압의 주체로 지목하기 어렵다.

 

차이의 정치와 도시의 삶

 

차이의 정치는 그간 은폐되어온 집단적 차원의 지배와 억압에 대해서, 현존하는 집단들의 이질성, 다원성, 차이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주목할 것을 요구한다. 현존하는 집단들의 이질성과 차이를 무시하고 지배 집단 중심의 보편성과 일반성만을 강조하는 동일성의 정치는 현존하는 사회적 지배와 억압을 강화한다. 이질적 공중의 개념은 첫째, 그 누구도, 그 어떤 행위도, 개인적 삶의 그 어떤 측면도 사적인 것으로 강요되어서는 안되며 둘 때, 그 어떤 사회적 제도나 관행도 공적 토론이나 표현의 대상에서 선험적으로 배제될 수는 없다는 원칙을 함축하고 있다.

 

차이의 정치가 지향하는 바를 상징적으로 시사하고 있는 것이 ‘도시의 삶’이며 이는 현존하는 부정의한 형태 그대로의 도시적 삶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도달해야 할 일종의 규범적 목표와도 같은 것이다. 도시의 삶이 가지는 매력은 차이를 배제하는 않는 사회적 분화를 가능하게 한다. 도시의 삶은 그 익명성을 통해서 내부의 다양한 차이들을 허용하고 촉진한다. 도시의 삶은 우리에게 흥겨움과 흥분을 제고하는 다양성을 선사한다. 도시의 삶은 낯선 타자에 대한 끌림이라는 넓은 의미에서의 에로티시즘을 제공한다. 도시의 삶에는 폐쇄적 공동체에서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타자들의 매력이 충만하다. 도시의 삶은 다양한 집단들에 열려 있는 공개성을 가능하게 한다.

 

비판적 성찰

 

첫째, 영의 논의는 오늘날 분배 불평등을 야기하는 경제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에 대한 분석을 소홀히 하고 있다. 둘째, 영의 견해는 은폐된 집단의 차이를 강조한 나머지 차이 나는 집단들의 권리 요구에 대한 정당화의 문제에서는 뚜렷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