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지원 성/정치/자본주의 세미나∥2012년 09월 01일∥발제자: 김하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두레, 2012, 227-235쪽

1.1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는 켈트인의 가장 오래된 법률을 보면 당시에도 씨족이 아직 충분한 활력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2 잉글랜드 인이 정복하기 여러 세기 전에, 늦어도 11세기에 제정된 고대 웨일스 인의 법률은 전체 촌락 사람들이 공동으로 토지를 경작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각 가족은 스스로 경작하기 위해 5에이커씩 가지고 있었으며, 그와 함께 일정한 필지의 경지를 공동으로 경작해서 그 수확물을 분배했다. 이 촌락공동체가 씨족 또는 씨족의 아래 단위를 나타낸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1.3 그러나 11세기 켈트인들 사이에서는 아직 대우혼이 결코 일부일처제에 의해 밀려나지 않았다. 웨일스에서는 혼인한 지 7년이 지나면 이혼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이혼할 때에는 재산을 서로 나누었다. 재산 나누는 것은 아내가 맡았으며, 이때 남편은 자기의 몫을 선택했다. 이혼 후 아내가 재혼했을 경우에도 첫 남편이 다시 돌아올 것을 요구하면, 여자는 이 요구를 들어야만 했다.

1.4 아내가 갈라설 때 자기의 재산상 권리를 하나도 상실하지 않고 이혼을 요구할 수 있는 조건은 아주 여러 가지가 있다. 이혼을 하면 아내에게는 정확히 규정된 많은 특권이 보장되는데, 심지어 그 여자가 집안 살림살이를 해 준 데 대한 보수까지도 보장되었다.

이곳에서는 본처가 여러 아내들과 나란히 있었으며, 유산의 분배에서 적자와 서자 간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았다. 이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결혼 형태는 대우혼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5 아일랜드 씨족의 토지는 우두머리들에 의해 그들의 사유지로 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17세기 직전까지도 클랜 또는 씨족의 공유재산이었다. 한 세대가 소멸되었을 때 수장은 나머지 세대들과 함께 전체 토지를 재분배했다.

1.6 농민들은 모든 경지와 목초지를 통틀어서 그것을 위치와 지질에 따라 ‘게반’으로 나누어 갖고, 각자는 각 게반에서 자기의 몫을 받았다. 소택과 방목지는 공동으로 이용된다.

1.7 몇 개 지방에서는 씨족 성원들이 아직도 옛날 지역에 한데 모여서 살고 있다. 그리하여 1830년대에도 모나간군 주민들은 네 개의 성 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즉 그들은 네 개의 씨족 또는 클랜으로부터 발생한 것이었다.

1.8 모건은 스코틀랜드의 클랜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9 그러나 이전에 스코틀랜드에서 모권이 지배했다는 것은 픽트인의 왕가에서는 모계에 의한 상속이 있었다는 사실에 따라 증명된다.

1.10 웨일스 인과 스코트인들 사이에서 푸날루아 가족의 잔재가 초야권의 형태를 띠면서 중세기에 이르기까지 보존되고 있었다. 이 초야권은 그것이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종족 우두머리나 왕이 이전의 공동남편들의 최후의 대표자로서 이 권리를 모든 신부들에게 행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