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지원 성정치자본주의세미나∥2012년 09월 01일∥발제자: bostridge

프리드리히 엥겔스,『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두레, 2012, 247-253쪽

[요약발췌]

1. 타키투스 시대에 와서 게르만 인들은 정착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생활수단의 생산이 진전되었다. 귀틀집에 살았고 삼림원시인의 의복을 입었다.

2. 그들의 재화는 열등한 가축이었고 화폐사용은 드물었다.

3. 인신공양의 습관이 있었으며, 겨우 미개의 중간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올라 선 상태였다.

4. 로마의 것을 모방한 초기의 것들(철제 장검, 금속 고리로 만든 갑옷...금속 제품)조차 발전 수준이 상당히 높은 생산품이었다.

5. 문명화된 로마제국에 이주하게 됨으로써 잉글랜드를 제외한 도처에서 게르만 부족들의 그(철제 장검, 금속 고리로 만든 갑옷...금속 제품) 토착 생산부문은 소멸해 버렸다.

6. 통치조직도 미개의 높은 단계의 수준이었다.

7. 부권제로의 이행은 선출제가 점차 세습제로 이행하는 것을 촉진시켰으며, 따라서 각 씨족 내에서 귀족의 발생을 조장했다. 이러한 고대의 소위 부족적 귀족은 대부분 민족 이동 때 또는 그 직후에 몰락하고 말았다.

8. 군통수권의 실권은 민회가 장악하였고 결정은 인민이 내렸다.

9. 게르만 인들의 경우 판결을 내리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전체 집단이었다.

10. 카이사르 시대 이래 부족동맹들이 형성되었고, 그중 일부에는 왕이 있었다.

11. 친병제는 왕권의 발생을 촉진시켰으며 사적으로 조직된 집단이 이미 상설적인 동맹이 되어 있었다. 이러한 친병제는 보잘것없었지만 인민적 자유가 파괴되는 단서였다.

12. 로마제국을 정복한 후에 이 친병들은 로마 궁정의 비자유민 신하들과 더불어 귀족의 주요 구성부분을 이루었다.

13. 여러 민족으로 결합된 게르만 부족들에게는 통치조직으로써 민회, 씨족장평의회, 그리고 현실적인 왕권을 탈취하려고 일을 꾸미는 군사령관이 있었다. 그것은 씨족제도 밑에서 이룩될 수 있었던 가장 발전된 통치조직이었다.

14. 사회가 이 조직이 자기의 사명을 다하고 있었던 범위를 벗어나자 씨족제도는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씨족제도는 파괴되고 그 대신 국가가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