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국가의 발전 과정의 첫 단계를 추적하는 데에는 고대 아테네보다 더 좋은 뎨가 없을 것이다.

1.2 영웅시대에 아테네인의 4개 부족은 아티카에서 아직 각기 다른 지역들을 차지하고 있었다. 관리조직으로는 민회, 인민평의회, 군사령관이 있었다. 농업과 수공업의 분업, 상업과 항해의 분업이 더욱더 발전함에 따라 씨족, 포족, 및 부족 성원들의 완래는 잦아질 수밖에 없었다. 각 포족과 부족은 평상시에는 아테네의 인민평의회나 군사령관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일을 처리했다. 그러나 포족 또는 부족의 구역 내에 살면서도 거기에 속하지 않는 자들은 문론 그런 처리 과정에 참여할 수 없었다.

1.3 이처럼 씨족제도의 기관들이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없게 되자 영웅시대에 벌써 이러한 혼란을 제거하기 위한 대책이 마련되어야만 했다. 그리하여 테세우스가 제정했던 제도가 실시되었다.

1.4 우선 아테네에 중앙기관이 설체되었다. 그때까지 각 부족들이 자립적으로 관리하던 사업 중 일부는 아테네에서 열리는 공동평의회로 이관되었다. 이 개혁으로 아테네 인은 인접 부족들 간의 단순한 동맹 대신 단일한 시민으로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이것은 씨족제도 붕괴의 첫걸음이었다. 이전에 아테네의 씨족제도 밖에 있던 사람들이 나중에 시민으로 인정받게 된 철걸음이었기 때문이다.

1.5 테세우스가 제정했다는 두 번째 새로운 제도는 씨족, 포족, 또는 부족과는 관계없이 전체 시민을 귀족, 농민, 수공업자의 세 계급으로 구분하고 귀족에게는 공직을 차지할 수 있는 독점권을 부여한 것이다. 가족 성원들이 관습적으로 씨족의 공직을 차지하던 것이 이제는 사회적 공직에 대한 그들의 논쟁의 여지가 없는 권리로 되었다. 국가 형성의 첫 시도는 각 씨족 성원들을 특권자들과 비특권자들로 가르고, 후자를 다시 그들의 직업에 따라 두 계급으로 갈라서 그들을 서로 대립시킴으로써 씨족유대를 단절하는 것이었다.

1.6 그 후 귀족의 지배는 갈수록 강화되어 마침내 기원전 600년쯤에는 견딜 수 없는 정도에 이르렀다. 여기에서는 화폐와 고리대금이 인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씨족제도는 절대로 화폐경제와 양립할 수 없었다. 아티카 영세농들은 그들을 비호하던 옛날의 씨족적 유대가 약화됨으로써 몰락해 버렸다. 화폐에 의한 귀족들의 지배가 날로 확대됨으로써 채무자에 대해 채권자를 보호하고, 화폐 소유자들에 의한 영세농의 착취를 신성화하기 위해 새로운 관습법까지 만들어졌다. 만일 토지를 판 대가가 부채를 갚기에 모자라는 경우에는 채무 청산을 위해 채무자가 자기 자녀들을 외국에 노예로 팔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자녀들을 판다는 것, 이것은 부권과 일부일처제가 맺은 첫 열매였다!

1.7 이로쿼이 인들을 다시 살펴보자. 이로쿼이 인들은 자연을 지배하기에는 아직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일정한 자연적 한계 내에서 자기 자신의 생산을 지배하고 있었다. 생산은 아주 좁은 틀 안에서 진행되었다. 하지만 생산물은 생산자가 완전히 지배했다. 이것은 미개시대의 아주 큰 장점이었다. 이 장점은 문명의 출현과 더불어 상실되었다. 이것을 다시 쟁취하는 것은 다음 세대들의 임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