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지원 성정치자본주의세미나∥2012년 08월 18일∥발제자: bostridge

프리드리히 엥겔스,『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두레, 2012, 166-173쪽

 

1. [요약발췌]

1.1. 각종 계급으르 분열되기 전까지 인류와 인류 사회는 이러했다. 그리고 만일 그들의 상태를 현대 문명인과 비교한다면, 오늘날의 프롤레타리아트나 소농민과 고대의 자유로운 씨족 성원 간의 차이는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2. 그러나 이 조직은 부족 이상으로는 발전하지 못했다. 부족동맹의 형성은 그 붕괴의 시초였던 것이다. 종족 밖에 있는 것들은 모두 법적 보호 밖에 있었다.

1.3. 부족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으며 아주 잔인했다.

1.4. 전성기에 씨족제도도 우리가 아메리카에서 본 바와 같이 생산의 발전이 극도로 미약하다는 것, 즉 지역은 넓지만 인구는 매우 희박하다는 것, 따라서 인간은 자기 주위의 적대적인, 이해할 수 없는 자연에 거의 전적으로 지배되고 있었다는 것-이것은 그들의 유치한 종교적 관념에 반영되고 있다-을 전제로 한다.

1.5. 부족, 씨족 및 그 제도는 신성불가침한 것이었으며, 자연이 준 최고의 힘이었다. 개인은 그 감정, 사상 및 행동에 있어서 무조건 이 힘에 복종했다. 우리가 보기에는 당당하게 보이지만 마르크스의 표현대로 원시적 공동체의 탯줄에서 아직 떨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이 원시적 공동체의 힘은 깨져야 했으며 마침내 그것은 깨졌다.

1.6. 이 붕괴에 영향을 준 것은 야비한 탐욕, 향락 욕구, 인색, 재산의 약탈과 공유재산에 대한 끝없는 욕심들이었으며, 이러한 추악한 것들이 계급 없는 씨족사회를 붕괴시켰고, 문명사회, 즉 계급사회를 출현시켰다.

1.7. 이후 새로이 발생한 2500년에 걸친 역사는 압도적 다수를 억압, 착취하는 극소수자의 발전사였다.

2. 그리스인의 씨족

1.8. 그리스인들은 이미 문명의 시작에 들어서 있었으며 그리스인들의 씨족은 이로퀴이인들보다 앞서 있었다. 그리고 군혼의 흔적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모권은 부권으로 넘어갔으며 사적재화는 씨족제도에 변화를 만들었다.

1.9. 또한 부권제 이후 여자 상속인의 재산은 여자의 출가와 함께 새로운 남편이, 즉 다른 씨족이 차지하게 되어 씨족법 전체의 기초가 흔들리게 되었다. 이러한 경우, 그 여자의 재산을 그 씨족 내에 보존하기 위해 처녀가 자기 씨족 내에서 결혼하는 것이 허용되엇고 또 그것이 의무적인 것으로 되었다.

1.10. 이는 여자가 출가하면 남편의 포족에 입적하게 되어 남편의 종교적 의식을 준수한다는 규칙이 통용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 사실로부터 족외혼이 원칙으로 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11. 각 씨족의 아르콘은 미개시기 말기까지는 세습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공직의 세습은 부자와 빈자가 씨족 내에서 완전한 평등권을 가지는 제도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