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지원 성/정치/자본주의 세미나∥2012년 08월 11일∥발제자: 김하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두레, 2012, 103-116쪽


1.1 4. 일부일처제 가족

이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미개의 중간 단계와 높은 단계의 경계에서 대우혼 가족으로부터 발생한다. 일부일처제 가족은 남편의 지배에 따른 것으로, 아버지의 혈통이 확실한 아이를 낳자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혈통이 확실해야 할 필요성은 아이들이 후에 직계 상속인으로서 아버지의 재산을 소우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족제도는 대우혼과는 다리 결혼 유대가 훨씬 더 공고하다. 원칙적으로 이제는 남편만이 이 유대를 끊고 자기 아내를 버릴 수 있다.


1.2 일부일처제와 노예제의 병존, 남자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젊고 아름다운 여자 노예의 존재야말로 애당초부터 여자에 한해서만 일부일처제이고, 남자에 한해서는 일부일처제가 아니라는 그런 특수한 성격을 부여했다. 일부일처제의 이러한 성격은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다.


1.3 후기 그리스 인에 대해서는 도리아 인과 이오니아 인을 구별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스파르타를 전형으로 하는 도리아 인의 경우에 결혼 관계는 호메로스의 작품에서보다 훨씬 더 고대적이며, 아직 많은 점에서 군혼을 연상시키는 대우혼이 존재하고 있었다. 스파르타 남자들은 헬롯(권리가 없는 주민)의 아내와 성교를 맺는 데 그리 마음이 쏠리지 않았고 스파르타 여자들은 그리스인 여자들보다 존경을 훨씬 더 많이 받았다.

1.4 아테네인을 전형으로 하는 이오니아 인의 상태는 이와 전혀 달랐다. 이들은 거의 감금된 생활을 했으며 여자들하고만 교제했다. 아테네인들의 경우에 아내라는 것은 아이 낳는 일을 제외한다면 하녀의 우두머리에 불과했다. 남편은 운동경기라던가 공공사업 등에 참여했으나 아내는 그럴 수 없었다. 아테네 전성시대에는 적어도 국가의 보호를 받는 매음제도가 널리 보급되어 있었다.

1.5 이러한 아테네의 가족은 시일이 지나면서 모범이 되어 점차 본국과 식민지 내의 모든 그리스 인들도 그 본을 따라 자기의 가풍을 형성했다.

1.6 일부일처제는 결코 개인적 성애의 소산이 아니었다. 그것은 성애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일부일처제는 자연적 조건이 아니라 경제적 조건에 기초한, 즉 원시적, 자연발생적 공동소유에 대한 사적소유의 승리를 기초로 한 최초의 가족 형태였다. 가족 내에서의 남편의 지배와 자기의 재산을 상속해야 할 확실한 자기의 자식을 보자는 것이 단혼의 유일한 목적이었다.

1.7 단혼은 결코 남녀 간의 합의에 의한 결합으로 역사에 나타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그것은 한 성에 의한 다른 성의 예속이다. 최초의 분업은 자식을 생산하기 위한 남녀 간의 분업이었다. 계급적 대립은 단혼 제도에서 보게 되는 남녀 간의 적대적 발전과 일치하며 따라서 최초의 계급적 억압은 남성에 의한 여성의 억압과 일치한다. 단혼은 문명사회 세포로서 우리는 이것을 바탕으로 문명사회 내부에서 완전히 전개되는 대립과 모순의 본질을 연구할 수 있다.

1.8 모건이 말하는 난혼이라는 것은 단혼과 병존하는 것으로, 남자와 미혼 여자의 야합을 말한다. 난혼은 직접적으로 군혼에서 유래하며, 또한 여자가 정조의 권리를 사기 위해 다른 남자에게 몸을 바치는 의식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1.9 재산의 불평등이 생기면서, 즉 이미 미개의 높은 단계에서 노예노동과 함께 임금노동도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그리고 동시에, 그에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것으로서, 여자 노예가 강요에 못 이겨 남자에게 몸을 허락하게 되고, 또한 자유민 여자가 직업적 매음에 종사하게 된다.

1.10 단혼 및 난혼과 함께 간통도 불가피한 사회현상이 되었다. 이것은 금지되고 가혹하게 처벌되기는 했지만 근절되지는 않았다. 남편의 전제적 지배로 말미암아 이 가족 형태에서 남녀 간의 적대감이 명백해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