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본주의/정치세미나, 121027, 돌민 치즈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동녁, 1994, 180~193쪽

 

1. 화폐경제의 침투가 성과 연령에 따라 지체된 곳일수록 전통적인 가족 내 세력구조에 특히 현저한 영향을 끼친다.
2. 이것 역시 시장 적인 요인이 시장에 끌어들인 파급효과이자 과도기의 역설이다. 사회의 변동기에는 일반적으로 구질서의 수익자였던 사람들이 변동의 물결에 가장 뒤처진다. 그러나 이런 지체의 해소는 문자 그대로 시간문제일 따름이다.
3. 자본주의가 가족이라는 시장 적인 요인에 어떻게 대처해 왔는가라는 시행착오의 과정은 자본주의가 내생적으로 성숙해 있던 영국과 같은 나라에서 더욱 극적으로 나타난다.
4. 이들 여성노동자와 소년노동자에 대한 ‘보호’입법이 노동시장에 초래한 현실적인 귀결은 여성과 어린이의 노동시장으로부터의 배제였다.
5. 노동시장에서 여성과 어린이를 축출하고 성인, 즉 남성노동자에 한정한 것이 자본주의에 유리한 거래였는지는 의심스럽다. 이유인 즉 성인=남성노동자 역시 ‘자유로운 개인’이 아니라 사실 가장 노동자로서 가족의 대리인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장원리에서 보자면 껄끄러운 것임에 틀림없다.
6. 가족의 모든 구성원을 대신하여 가장만이 단 한 사람의 ‘수입원’으로서 일을 하여 일가를 부양하기에 충분한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을 ‘진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분명히 일가 총노동시대의 가족 구성원 모두의 총노동시간에 비하면 가장 노동자 한 사람만의 노동시간이 짧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산노동’ 시간이 줄어든 대신에 ‘가내 영역’에 격리된 여성과 어린이에게는 각각 ‘재생산하는 노동’과 ‘재생산당하는 노동’이 기다리고 있다. ‘여성과 어린이’의 격리는 아동기의 연장, 즉 성인이 되기 위한 기간이 장기화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전근대사회에서는 9살짜리 소년도 충분히 한 사람 몫의 가동능력을 지리고 있었다. 노동을 금지당한 소년은 그 대신에 교육을 강제당한다.
 만일 이 ‘여성과 어린이’의 보이지 않은 일까지 노동시간에 포함시킨다면, 그리고 가장 노동자에게 지불되는 임금인 사적인 재생산노동까지 암묵적으로 포함되어 있다면, 세대주 단독 수입형의 노동이 가족노동단의 노동에 비해 ‘진보’된 것이라고 말할기 어렵다.

 

4. 빅토리아 조의 타협

 

7. 공장법이 제정된 직후 영국에서는 1837년부터 1901년가지의 빅토리아 여왕 치하에서 이른바 ‘빅토리아 시대’라고 불리는 경제적 발전과 번영의 시대가 이어졌다. 가정성의 숭배(cult of domesticity)나 빅토리안 모랄이라고 불리는 억압적인 성도덕, 남자다움이나 여자다움의 규범 등은 거의가 이 시대에 성립된다.
 근대적인 ‘가부장제’를 전통적인 가부장제와 혼동하면 안된다. 부르주아 단혼 소가족 안의 ‘가부장제’는 ‘봉건적’인 가부장제의 잔재가 아니라 시장에 의해서, 그리고 시장에 알맞게 편성된 근대적인 제도다.
8. 그런데 노동시장에서 ‘여성과 어린이’를 축출하고 남성 가장 노동자를 고용한 선택은 과연 시장의 경제합리성의 논리적인 귀결이었을까?
9.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가족 해체에 수반하는 비용”은 ‘복지’라는 이름의 ‘사회비용’이 부담하는 데 반해 “가족을 유지하는 비용”은 가장 노동자에게 ‘생활임금’으로 개개의 기업이 지불한다.
10. 노동시장이 ‘여성과 어린이’를 축출하고 ‘근대 가족’이란 사적 영역을 시장 밖에 소외시켰을 때, 시장은 시장원리에 있어서는 잡음이라 할 수밖에 없는 비시장적인 원리를 은밀하게 도잆하여 그것과 타협했다. 이 타협이 시장에 있어서 결과적으로 경제합리성에 들어맞았는지의 여부는 별개의 문제이다.
11. 이 시스템은 이미 이원적이다. 가부장제적인 근대 가족은 어디까지나 자본주의 하의 가족이며, 반대로 자본주의는 보완물로서의 가족을 시장의 <외부>에 전제하고 있다.
12. 그렇다면 실제로 시장과 손을 잡은 대리인은 ‘개인’이 아니라 ‘가족’이었다. 시장은 ‘자유로운 개인’을 플레이어로 하여 성립된 게임이었을 터인데도 사실 이 ‘개인’은 단혼가족의 대리인, 즉 가장 노동자였다. ‘자유로운 개인’을 등장시키기 위해 시장은 전통적인 공동체와 적대관계에 서서 산업화의 과정에서 그것을 해체해 버렸으나 공동체가 배출한 것은 ‘자유로운 개인’이 아니라 사실은 ‘자유로운 고립된 단혼가족’이었다.

 

5. ‘이에(家)’의 발명

 

13. 가족이란 자율적인 단위가 전통사회의 유제가 아니라 근대의 산물이라는 사실은 이미 많은 연구자들이 지적한 바 있다. 그것이 일본에서는 ‘이에’라는 메이지 정부의 발명품 형태를 취했다. ‘이에’ 제도를 봉건 유제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앞의 노작들 덕으로 ‘이에’가 전근대의 산물이 아니라 극히 근대적인 발명품이라는 놀라운 발견은 이제는 ‘상식’이 되었으며 그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앞의 저서에 맡긴다.
14. 바쿠후(幕府) 시대 말기에서 메이지 시대에 이르는 기간은 전통적인 촌락 공동체의 해제기였다. '이에‘의 독립성과 자율성은 공동체의 규제와 역비례관계에 있다.
 공동체의 헤체를 촉진한 것은 ‘개인주의’가 이니라 ‘이에 에고이즘’이었다.
15. ‘이에’는 전근대의 산물이고 ‘개인’은 근대의 산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은 “이에와 근대적 자아의 갈등”을 즐겨 근대인의 심리적인 주제로 삼는다. 일본의 근대소설이 ‘사소설(私小說)’이란 이름 아래 수없이 다루어 왔던 주제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서도 페미니스트 문예비평은 관점을 완전히 뒤집어서 보여 준다.
 그들이 주제로 다루었던 ‘이에’ 제도와의 갈등은 실인즉 “이에와 근대적 자아의 갈등”이 아니라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감당할 수 없는 허약한 자아의 괴로움과 번민”이었다. 그리고 이 “가장으로서의 책임으로부터 도피하는 미성숙한 자아”는 가장의 지배 아래 놓여 있는 아내나 자녀에게 심한 상처를 입히는데도 오히려 자신의 가해성에 무지할뿐더러 염치를 모른다는 “눈이 번쩍 뜨이는 듯한”(五本實之 씨의 표현) 발견에 도달했다.
16. 따라서 근대는 역설적으로 “개인의 시대”라기보다는 “가족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9장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제2기

 

1. 제1차 세계대전과 제1기 페미니즘

 

17.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타협은 역사상 단 한 번만 일어나서 그 한 번으로 끝난 것은 아니다.

18. 마르크스의 시장분석은, 19세기 말 자본주의 국가의 제국주의적 침략 동향까지는 이른바 이론 그대로의 예측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시장은 고유한 운동법칙에 따라 호황과 불황을 거듭하다가 마침내는 대공황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시장에 내재적인 운동법칙이 적용되는 한 그렇다.
 전쟁은 성장된 경제의 쓰레기 하치장으로서 자본주의에는 없어서는 안되는 또 하나의 ‘자연’이었다. 그리고 그 예측대로, 19세기 말 열강의 제국주의적 침략으로 말미암아 최초의 제국주의 전쟁인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19. 제1기 페미니즘은 유럽, 일본 할 것 없이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크게 위세를 떨쳤다.
20. 역설적이지만 전쟁은 여성해방을 촉진하는 작용을 한다. 전쟁은 남성적인 제반 활동 가운데서 가장 성스러운 행위로, 여성의 진출이 마지막까지 유보되는 남성성의 영역이다. 그러나 남성이 전쟁에 나감으로써 ‘후방’에서는 평상시의 성별분업 체계가 무너진다.
21. 이 과정을 통해 여성은 성별분업 - 사회 영역의 구분과 그에 대한 성별 배당 - 이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금지’와 ‘배제’에 의해서 성립되고 있음을 배운다.
22. ‘후방’에서는 이리하여 역설적으로 일종의 여성의 자치가 성립한다. 여성은 가정 밖의 행동반경을 손에 넣고 자신감을 갖게 된다.
23. 여성의 전쟁 참가는 해당 국가가 총력전을 펼수록 더욱 강력하게 추진되었다. 남자 성원들을 차례로 전장에 내보낼 수밖에 없는 곳에서는 이미 평상시의 성별분업을 계속 유지하기가 어렵다.
24. 전쟁을 통해 획득된 여성의 실적과 자신감은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회복되더라도 쉽사리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 특히 패전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25. 제1차 세계대전 후 구미 제국에서는 점차로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했다.
 물론 여성의 정치적 권리를 국가에 대한 공헌을 흥정거리로 하여 획득한다는 것은 극히 위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