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어머니를 잊은 자들에게 미래는 없다

 

렌나르트 닐손의 사진에서 태아는 자궁 내에 있지만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다. 태아는 자유로운 개인이고, 여성의 몸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태아가 빌려 쓰는 공간에 불과하다. 우리들의 어머니, 그녀는 수동적인 저장 공간이다. 태아는 엄지를 빨면서 감은 눈 저 너머의 어둠을 응시한다. 주변은 암흑이고 태반은 저 멀리 홀로 떠 있는 우주 정거장이다. 이 이미지는 자유로운 개인의 창조 신화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생명을 묘사하기 위해 구성된 사진에 실제로 생명은 부재했다.

 

경제적 인간을 소리높여 면밀히 비난하는 경제학자들은 항상 존재했다. 그러나 경제적 인간은 여전히 경제학과 동의어로 간주된다. 일상생활에서 경제학적 논리를 말할 때 늘 경제적 인간이 등장하고, 그를 반대하는 수많은 비판은 고작해야 보완적인 의견으로 치부된다. 무대의 중앙을 차지하는 것은 경제적 인간이고, 누구나 그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야만 한다.

 

행동경제학은 사람들이 늘 정보를 올바른 방법으로 처리하지는 못하고, 우리가 항상 자신의 선호체계와 이리하는 결정을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 또한 보여 줬다. 이 발견은 무척 중요하며, 경제적 인간의 기반을 제공하는 이론과 관련해 커다란 진보다. 행동경제학자들은 실험과 연구를 통해 규칙의 예외를 기록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독립적 개인은 여전히 이상적인 존재이자 모든 이론의 전제로 군림한다. 사회 전반에 대한 시각이나 사람들 간의 관계가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관찰은 행동경제학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인간으로서 산다는 것은 성별, 신체, 사회적 위치, 배경, 경험,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이것들을 부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동일하게 지닌 합리적 의식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의 신체는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남성과 다르다. 한 사람이 나뉘어서 두 사람이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이런 방식으로 삶을 얻었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태어난다. 그리고 서로의 안에서 서로를 통해서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