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 『파우스트』 속 황제의 궁정부터 현대의 금융위기까지

 

1. 화폐의 역사는 유형에서 무형으로 옮겨가는 과정이다. 모든 재화의 가치는 돈으로 측정할 수 있다. 화폐가 없는 세상에서 누군가가 내 주전자를 손에 넣으려면 내가 그 사람이 가진 삽을 원해야만 가능하다. 반면 화폐가 존재하면 내가 꼭 삽을 원하지 않더라도 나는 주전자를 내놓을 수 있다. 나는 그 돈을 가짐으로써 교환한 물건의 가치를 그대로 소유한다. 화폐의 기능 중 하나가 이런 식으로 가치를 저장하는 것이다. 이제 교환행위는 그 자리에서 완성되는 대신 미래까지 연기될 수 있게 되었다.

 

2. 1816년 영국에서는 화폐를 금의 가치에 연동시켰다. 1900년 미국에서는 정부에 돈을 가지고 가면 고정된 교환율이 적용되어 그 금액에 해당하는 가치만큼의 돈을 받을 수 있었다. 1945년에는 브레턴 우즈 체제가 확립됐다. 각 동맹국들의 통화가치가 보장되어 언제든지 달러와 교환될 수 있었고 달러는 또 언제든지 금과 교환할 수 있었다. 1971년에는 브레턴 우즈 체제가 폐기됐고 이제 지폐는 지갑 안에 있는 종잇조각에 불과하게 되었다. 화폐의 가치는 이제 다른 물건의 가치가 정해지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결정된다. 사람이 더 많이 원할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방식이다. 우리가 돈을 버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돈을 원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달러화, 유로화, 파운드화를 신뢰할 수 있는 확신을 주는 일이 현대 중앙은행들의 임무다. 그들은 금고에 금을 실제로 얼마나 보관하고 있는지 보다 신뢰도, 평판, 합법성에 더 신경 쓴다.

 

3. 금융계의 혁신은 항상 시간과 돈 사이의 관계를 다양하게 변화시키고 이용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져왔다. 성경에서는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고리대금업을 ‘시간을 파는 행위’라고 봤다. 고리대금업자는 돈을 빌려줌으로써 그 사람이 내년이 되기 전에는 살 수 없을 물건을 오늘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빌린 돈에 대한 이자는 대출을 받은 시점과 내년 사이에 경과하는 시간의 값이다. 이러한 행위는 신성모독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관점이 처음으로 바뀐 것은 장 칼뱅의 종교개혁으로 개신교가 등장했을 때였다. 왜 시골에 땅을 소유해서 돈을 버는 건 되고, 기업이나 가계를 성장시켜 돈을 버는 것은 안 되는가? 이윤을 더 키우면 안 될 이유가 있는가? 칼뱅은 이렇게 질문하며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 중산층에 개신교 신앙을 적용시키고자 노력했다. 이렇게 새로 도래한 시대에 기독교와 자본주의는 동반자가 되었다.

 

4. 금융상품은 경제적 위험 관리를 목적으로 한다. 위험을 감수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의 손에 있는 기회를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전한다. 미국의 은행들은 집을 산 사람들에게 대출해 준 돈 수십억 달러를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받고 있었다. 그런데 만약 이 대출금을 받을 권리를 팔면 어떨까? 한 은행이 1만가구에 각각 1억원씩 빌려줬다고 가정해보자. 앞으로 25년동안 이 은행은 1조원을 돌려받을 것이다. 은행은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이 종이를 소지한 사람은 대출금 상환액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쓰여있다. 이로 인해 은행은 또 다른 가구들에게 빌려줄 수 있는 1조원을 다시 손에 쥐게 된다.

예전에는 채무자가 주택담보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면 은행이 그 부담을 떠안았다. 당연히 은행들은 돈을 빌려줄 때 조심스러웠다. 이제 은행은 누구에게 대출해주는지 점점 더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대출자산을 어차피 다른 곳에 팔아치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금융상품을 평가하는 신용 평가사들은 그 위험성을 알아차렸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평가하는 상품을 만들어 낸 은행들에게서 보수를 받았다. 은행은 한 신용 평가사에서 매긴 등급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고 다른 평가사로 교체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은행들과 신용평가사들은 동일한 경제모델을 사용했다. 모든 사람이 경제적 인간처럼 행동한다는 생각에 기초한 모델 말이다.

미 연방준비위원회는 이 상황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대신 기록적인 최저 이자율을 유지했다. 미국 중산층의 생활수준은 1970년대 이후 거의 향상되지 않았고 계층 간 격차는 더 심해지고 있었지만 정치인들은 중산층이 게임의 승자가 된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이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내 집 마련의 꿈이었다. 집을 살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집을 살 수 있는 기회 말이다. 이 생각은 시간을 팔 수 있다는 개념에서 시작됐다. 집값이 오른다면 빚을 같은 비율로 늘리는 것도 문제될 것 없지 않은가? 1997년에서 2006년까지 미국의 집값은 124% 상승했다. 그리고 2008년 9월 15일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했다.

 

5. 경제적 가치는 집단적 환상 속에서 만들어 졌다가 사라지곤 한다. 자본은 이제 더 이상 공장이나 물건이 만들어지는 곳, 혹은 천연자원이 채취되는 곳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금융가들은 투기를 통해 이윤을 추구한다. 변동이 크면 돈이 쉽게 들어오고, 위험도 커지고, 손실도 커진다. 건 돈에 돈을 걸고 그것에 또 돈을 거는 몇 겹의 도ㅇ박이다.

오늘날 금융시장에서는 추상적 알고리즘이 주식매매 중개인들을 빠르게 대체해가고 있다. 고등 수학에 기초해 자동 거래를 대량으로 수행할 수 있는 초고속 컴퓨터를 구비한 전문 기업들이 등장했고 그들은 여러 시장에서 초 단위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가격 변동을 이용해 돈을 번다. 하지만 환상의 금융세계에서 벌어질 수 있는 한 번의 기술적 오차가 다음번 대규모 공황을 촉발할 수도 있다. 세계 주식시장이 한 번 출렁이고 나면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 그리고 도ㅇ박의 실수가 낳는 여파는 애덤 스미스나 금융계의 우두머리들이 계산에 넣겠다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간호사의 무릎 상태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6. 경제학은 자기만의 우주 안에 적용되는 논리와 게임을 추구하는 학문이 됐다. 여기서 번영이라는 것은 우리의 주택 담보 대출 상환 능력이나 기업의 실적과 전혀 관계없이 존재하는 머나먼 ‘재정적 우주’에서 창출된다. 가치는 어떤 식으로든 어차피 늘어나게 되어있다. 모든 것이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차원에서 벌어진다.

돈이 점점 더 추상화되면서-처음에는 사슴가죽이나 쇳조각이었던 것이 나중에는 매매할 수 있는 대출자산 묶음으로까지 변천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돈이 더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번영의 가능성은 거대하지만 그만큼 위험도 크다. 특히 우리가 애초에 생각했던 ‘번영’이라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지 않는 한 그 위험성은 더 커진다. 경제학의 핵심은 인간의 육체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