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cyworld.com/gnosisagape 최근 영어로 된 원서를 읽고 싶은 격한 충동에 빠졌다. 도서관을 유랑하며 지하철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을 만한 책을 찾던 중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이원복 교수의 'Korea Unmasked". 우리 나라에서는 '먼나라 이웃나라:한국편'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서적이었다. 소싯적에 유럽 여러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 책. 하지만 저자의 보수적 성향으로 인해 진보주의적 인사들로부터 신랄한 비판을 얻게 된 책. 보름 내내 이 책과 함께 하며 영어 이외에도 많은 것을 깨우치고 느끼게 되었다.

이 '먼나라 이웃나라'는 여러 대학 강단을 비롯하여 학습 교재로 쓰일 정도로 (기실 그 위상이 많이 좋아졌다 하여도 아직까지는 만화에 대한 인식이 낮은 한국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타 문명에 대한 분석이 철저하다. 또한 유려한 화풍도 책을 읽는 데 큰 즐거움이 되주었다. 다만 국가 보안법에 대한 그의 견해 등 다소 보수 측에 편향되어 균형감각을 상실한 듯한 모습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한국,중국,일본은 지리적으로 매우 인접해 있는 국가들이지만 이 세나라의 문화의 양상은 기실 판이하게 다르다. 저자는 세 국가들의 문화를 단 한 단어로 압축하여 상징한다. 가령, 중국의 문화를 '일一'의 문화라고 한다면, 한국은 '충忠'을 숭상하는 나라, 그리고 일본은 '화和'사상이 그들의 문화를 전반적으로 지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다른 이유를 저자는 아날 학파적인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즉 그들의 지정학적 위치가 그들의 역사를 결정하고 나아가서는 그들 문화에서 그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를 일구어냈다는 주장이다.

자세히 말하자면, 대륙의 중심부에 위치한 중국이 중요시하는 것은 '천하통일' 바로 그것이다.거대한 국가에서 소규모의 국가들이 서로 자웅을 다투는 바람에 천하가 혼란해졌으므로, 그 사회적 혼란을 불식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권력을 지닌 정치 체제가 필요하게 되었다는 분석이다. 결국 이러한 중국민의 욕망이 '일一'을 숭배하는 사상을 일으키게 하였으며 이는 중국인들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중국민은 오로지 단 하나만을 중시하기에 자신의 문화가 세계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이 화和를 중시하게 된 까닭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일본은 섬나라이다. 섬나라는 지형의 혜택으로 말미암아 외세의 침입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설령 외세가 침략한다 해도 신풍(神風-가미가제)이 불어주면 그만이다. 다만 일본이 걱정할 것은 자신들의 영토 안에서 서로 권력다툼을 하는 것, 일본인들은 전국시대 등의 험난한 역사를 체험하며 동족상잔이야말로 자신들을 파멸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따라서 그들은 화和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게 되었고 되도록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다툼을 야기하지 않도록 다른 이들의 범위를 침해하지 않는 것을 미덕이라 여기게 되었다. 기실 우리들이 가식적이라고 폄하하는 '혼네-다테마에'문화도 이런 그들의 무의식적 욕망에서 발로하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한국인이 충忠을 중시하게 된 이유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해석 가능하다. 반도국의 특성상 외침을 자주 입게 된 한민족은 언제든지 외부 세력에 맞설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언제든지 주민들이 하나로 결집해야 하는데,이 결집의 정신적 바탕이 되주는 것이 바로 충忠이다. 한국인들의 의식 속에 흐르는 충忠의 사상은 우리 민족이 유달리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적어도 저자는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

이렇듯, 문명의 태동을 그 지리적인 요건에 따라 설명하는 아날 학파의 방식은 오늘날 다문화권에 사는 우리들에게 나와 다른 남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모든 문화는 어쩔 수 없는 자연적 조건에 의해 생성되기 때문에 그 누구도 문화의 우열을 가리거나 어느 문화를 미숙한 것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달리 말해서 모든 문화는 그 문화 자체로 인정받고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다. 필자는 그러한 점에서 저자 이원복 교수를 존경한다. 참고로, 필자는 개인적으로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한국인 비판'의 저자 이케하라 마모루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저서는 한 때 우리나라에서는 세계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우리 민족이 꼭 읽어야 할 필독서로 여겨지는 등, 일종의 신드롬까지 일으키기는 하였다.

하지만 필자가 읽어 본 바로는 이 책은, 순전히 자신들의 문화에 빗대어서 단지 우리 문화가 그들과 다른 점을 문제삼은 것에 불과하다. 예컨대, 저자는 한국에서 수능 당일이 되면 모든 방송사가 일제히 입시 현장 보도를 하고 고사장 입장시 경찰차 이용,심지어 비행기도 이륙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이것은 자식들을 지나치게 감싸고 도는 한국인의 악습이라 주장했다. 일본은 한국과는 달리 시험 날 여타의 제도적인 보호가 없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한국에서 학생들에게 제도적으로 편익을 보장하는 것은 어느 누구도 교통 체증으로 고사장에 도착하지 않거나 비행기 이착륙시 소음으로 인해 어느 누구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모든 이들에게 공평한 조건을 부여하기 위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실 초등학교 때 선생님들의 말씀처럼, 일본은 아이들을 강하게 키우기 위해 한겨울에도 반바지를 입힌다며 우리도 그것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필자는 그리 찬성할 수 없다. 단지 그것은, 오랜 기간 동안 축적된 무사 문화가 현대적으로 재현된 것에 불과하다. 한국 문화는 문인들의 문화기에 우리 문화에 맞는 방식으로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이 타당하다.적어도 필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결국 내 주장의 골자는, 일본 문화든 한국 문화든 모든 것은 그 토양에 맞게 자라나고 발전한 것이기에 어느 것이 좋고 나쁘다 우열을 가릴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저자는 문명에 대해서는 확실한 분석가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지만, 이원복 교수 또한 인간인지라 팔은 안으로 굽는 것은 어찌할 수 없나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저자는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에 서있다. 최근 그는 국보법 폐지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해 소수의 네티즌들로부터 비난의 화살을 받은 바 있다. 역시나 그의 저서에서는 만일 국보법이 폐지될 경우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보장할 수 없다는 지극히 흑백논리적인 사상에 레드 컴플렉스가 첨가된 주장을 펼치고 있다. '햇볕 정책'에 대한 그의 견해도 역시나 부정적이다. 다만 여기서는 필자가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이(미안하다!!!최근 보수로 많이 기울어졌다고는 하나 아직까지는 필자 또한 진보 측에 속해 있다고 말 할 수 있다!!!)북한에 무상으로 퍼주기만 하는 지금의 방식으로써는 북한의 체제를 공고히 하기만 할 뿐이라는 것을.지금 정부가 전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의 정책을 벤치마킹하기로 했다면 철저하게 그의 방식, give and take를 따르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물론 그의 보수적인 입장 표명이 필자로써는 불만스럽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쌓아올린 모든 학문적 업적을 단박에 부정하지는 않겠다.예컨대 이문열에 대한 보이콧을 펼친 어떤 진보 단체처럼. 비록 어느 누군가의 주장이 나와 다른 길을 향한다고 하여 그것을 악 혹은 오류로 규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밝혔듯, 필자는 나와 다른 이들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포용하고 싶다. 다만,앞서 한중일의 문화적 차이를 분석할 때는 지극히 중용적인 관점을 보여주고 있던 저자가 갑자기 현 정책에 대해 편향적인 시각을 드러냈다는 것이 필자로써는 못내 아쉬울 뿐이다.

또한, 이것은 저자 이원복의 잘못이 아니지만, '사대주의'라는 개념을 설명할 때 그 대응되는 단어로써 'vassalage'(봉건제)를 사용하는 듯 약간의 어휘의 부적절한 사용이 보인다. 사실 서구 문화에는 사대주의를 적절하게 번역할 수 있는 단어가 전무하다. 그들 문화에는 사대주의라는 개념 자체를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내에서는 그닥 문제가 되지 않을 일이지만 사실 이 책은 외국에 우리 나라 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저술되었기에, 외국인들이 자칫 우리 나라를 중국의 속국으로 인식하게 될 우려가 있다.

이상의 문제만 없으면 이 책은 필시 대학 강단의 교재로 사용한다 해도 전혀 어색함이 없을, 어떤 교수의 찬란한 학문 성과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만화라는 콘텐츠를 사용했다는 점을 높이 산다. 아무래도 이원복 특유의 유니크한 그림체 덕택에 내용의 흡수가 훨씬 효율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부인할 수 없다. 앞으로도 저자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