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운님이 주관하는 삶-정치 세미나 참고 자료용으로 번역한 네그리 인터뷰입니다.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과거와 장래 사이의 푸코

FSU(Fédération Syndicale Unitaire)의 잡지인, « Nouveaux Regards (새로운 시선)», 26호(2004년 8월)에 실린 토니 네그리의 인터뷰.
원문은http://multitudes.samizdat.net/article.php3?id_article=1662에서 구할 수 있다.
옮긴이 : 양창렬(nomade02@hotmail.com)


질문 : 푸코의 분석들은 사회 운동을 이해하기 위한 현실성으로부터 나온 것인가요 ? 당신이 보기에 어떤 영역에서 그의 분석들이 갱신되고, 조정되고, 확장되어야 할까요 ?

토니 네그리 : 푸코의 저작은 기이한 기계입니다. 그것은 사실상 역사를 현재의 역사로서만 생각하게 해줍니다. 아마도 푸코가 쓴 것의 많은 부분(들뢰즈가 그것을 아주 옳게 강조했는데)이 오늘날 다시 쓰여져야 합니다. 놀라운 것, 그리고 감동적인 것은 푸코가 결코 연구를 멈추지 않았고, 어림셈을 해보고, 해체하고, 가정들을 세우고, 상상하고, 비유들을 만들고, 우화들을 이야기하고, 개념들을 던지고, 그것들을 다시 철회하고, 변경하고… 이것은 놀라운 발명 능력의 사유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본질적인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의 방법이 근본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그의 방법이야말로 그가 과거에서 현재로의 운동과 현재에서 장래로의 운동을 동시에 연구하고 기술할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현재가 그것의 중심에 있는 이행(transition)의 방법입니다. 푸코는 거기, 그 둘 사이에 있습니다. 그는 과거 - 푸코는 그것에 대한 고고학을 합니다 - 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가 때때로 « 바닷가에 있는 모래에 대한 모습처럼 » 그것의 이미지를 그려보는 미래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바로 현재로부터 다른 [두] 시간들을 구분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우리는 흔히 푸코가 행했던 시기 구분들이 과학적으로 과연 정당한 것이냐라고 그를 비난하곤 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역사가들의 비난을 이해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저는 그것이 진짜 문제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푸코는 항상 바로 그 자신이 위치한 고유한 시간으로부터 질문이 만들어지는 곳에 있습니다.
푸코와 더불어 역사적 분석이란 이제 하나의 행위, 과거에 대한 지식, 계보학, 도래할 것에 대한 전망, 하나의 장치가 되었습니다. 1960년대의 맑스주의 투사출신들(그리고 제 2, 제 3 인터내셔널의 희화화된 교조주의적 전통에 빠지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푸코의 관점이 자연스럽게도, 절대적으로 정당한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푸코의 관점은 사건, 투쟁들, 모든 필연과 모든 미리 짜여진 목적론 바깥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기쁨에 대한 지각과 상응하는 것이었습니다. 푸코의 사유 속에서 맑스주의는 전적으로 해체되었습니다. 그것은 권력 관계들에 대한 분석 혹은 역사적 목적론에 대한 분석이자, 역사주의나 어떤 실증주의에 대한 거부의 관점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맑스주의는 마찬가지로 운동과 투쟁의 관점, 즉 사실상 이 운동들과 투쟁들의 주체들의 관점에서 재발명되고 개조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안다는 것은 곧 주체성을 생산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좀 더 나아가기 이전에, 저는 잠깐 뒤로 되돌아가고 싶습니다. 세 [시기 혹은 세 명의] 푸코를 구분하는 것은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60년대말까지는, 인문학들의 담론이 어떻게 출현했는가에 대한 연구, 즉 푸코가 앎[savoir]과 세 세기 이후의[18세기 이후] 그것의 경제에 대한 고고학이라고 부르는 것이자, 동시에 에피스테메 개념을 통한 서구 근대성에 대한 거대한 독해라고 부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 70년대에는, 앎들과 권력들 사이의 관계들, 훈육, 통제, 삶권력들, 규범, 삶정치의 출현에 대한 조사들, 다시 말해 권력에 대한 일반적인 분석과, 동시에 주권 개념이 정치 사상에 출현한 이래 지금까지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가에 대한 역사를 서술해보고자 하는 시도. 마지막으로 80년대에, 자기(soi)에 대한 미학적 관계, 타인들에 대한 정치적 관계라는 이중적 전망 하에서 주체화 과정에 대한 분석, 물론 전자와 후자는 동일한 탐구였을 것입니다. 자기의 미학과 정치적 근심(고민)(souci)의 교차를 우리는 또한 윤리학이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우리가 이렇게 세 명의 푸코를 구분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두 명의 푸코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말해진 것과 쓰여진 것(Dits et Ecrits)>과 꼴레쥬 드 프랑스에서의 강의들이 출간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최후의(마지막 시기의) 푸코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엔 사실 푸코의 관심이 향했던 이 세 주제들은 완전히 연속적이고 일관된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일관된다라는 단어가 그 세 주제들이 단일하고 연속된 이론적 생산을 이룬다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변한 것은 아마도 푸코가 맞닥뜨려야 했던 역사적 조건들과 정치적 필연들의 특정성일 것입니다. 그러한 특정성이 그가 관심을 가졌던 장들을 완전히 결정했던 것이죠. 이점에서 보면, 푸코의 전망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따라서 (제 자신의 단어들로 말해보자면, 물론 저는 그 단어들이 푸코의 것일 수도 있기를 바랍니다만) 어떤 유형의 사유를 주어진 역사적 상황과 접촉시킨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주어진 역사적 상황이란 권력 관계들의 역사적 현실입니다. 푸코는 그가 문서고에 대한 그의 열정에 대해 말할 때 이 사실을 자주 반복하곤 했습니다. 문서고에 대한 독해의 감정은 그 문서고들이 우리에게 실존의 단편들에 대해 얘기해주고 있는 것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누렇게 바래진 종이들에 의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혹은 그날그날 살아가는 지나간 혹은 현재의 실존, 그것은 항상 권력과의 마주침입니다. 실존이란 바로 이것이지, 그와 다른 뭔가가 아닙니다. 이것은 엄청난 것입니다.
푸코가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사이의 이행에 대해 작업하기 시작할 때, 즉 <감시와 처벌>에서부터, 그는 권력 관계들의 특정한 차원과 그것이 함축하는 장치들과 전략들, 다시 말해 사실상 자본주의 발전 위에 전적으로 절합된 한 유형의 권력 관계들과 대면하게 됩니다. 자본주의 발전은 그것이 한편으로 노동력의 구성을 요구하고, 다른 한편으로 생산한 것이 돈이 될만한 것이어야 한다는 필요가 그것[노동력의 구성]을 요구하는 한에서, 삶에 대한 총체적인 투자를 필요로 합니다. 권력은 삶권력이 됩니다. 하지만 푸코가 현재에 대한 비판적 존재론을 만들어보기 위해 삶권력들의 모델을 사용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여러분은 자본주의 발전에 할애된 [푸코의] 분석들에서 그저 복지국가(Welfarestate)에서 그것의 위기로의 이행, 노동에 대한 포드주의적인 조직화에서 포스트 포드주의적인 조직화로의 이행, 케인즈적인 원리들로부터 신자유주의적인 거시 경제 이론으로의 이행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19세기 초의 훈육 체제로부터 통제 체제로의 이행이라는 이러한 단순한 정의 속에서, 우리는 이미 포스트 모던이 사회적 노동에 대한 지배 국가의 단순한 후퇴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국가 통제의 완벽화로 나타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는 사실 푸코에게서 도처에서 전개된 이러한 직관을 발견합니다. 마치 포스트 산업 시대로의 이행에 대한 분석이 그의 사유의 중심적인 요소를 구성하는 듯한 그러한 직관 말이죠. 하지만 그는 결코 이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습니다. 1970년대 초부터, 과거에 대한 그것 [1970년대초]의 관계를 전적으로 구조화하는 현재의 계보학이라는 계획, 그리고 새로운 주체성들을 창조하는 만큼이나 권력의 내부로부터 권력을 변경하고 그것의 기능을 파산시킬 수 있는 주체성의 생산이라는 관념은 바로 이 현재의 물질적인 결정과 그 현재가 구현한 이행을 벗어나서는 사유될 수 없습니다. 근대 정치에 대한 정의로부터 포스트 모던한 삶정치에 대한 정의로의 이행(passage), 바로 이것이 제가 생각하기에 푸코가 가졌던 놀라운 직관이었습니다.
푸코에게서, 정치라는 개념 그리고 삶정치적 맥락에서의 행위라는 개념은 막스 베버의 결론들이나 19세기의 그것의 아류들과 다를 뿐더러, 권력에 대한 근대적 개념화들(켈젠, 슈미트 등등)과도 그만큼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푸코는 아마도 그네들의 테제들에 대해 민감했을테지만, 저는 1968년부터 틀이 완전히 변했고, 푸코는 그네들의 테제들을 더 이상 고려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에도 불구하고, 그를 넘어서 푸코를 계속해서 사용하려는 우리에게 - 그것은 엄청난 관대함을 가지고 푸코가 우리에게 주었던 하나의 선물입니다. 푸코는 관대한 사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점에 대해 그리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 그의 이론화에서는 어떤 것도 혁신하거나 교정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단지 주체성의 생산과 그것의 함의들에 대한 그의 직관들을 연장하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푸코, 가타리 그리고 들뢰즈가 1970년대에 감옥 문제에 대한 투쟁들을 지원했을 때, 그들은 앎과 권력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구축했습니다. 이 관계는 단순히 감옥 안에서의 상황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자유의 공간들, 권력의 내부로부터 권력을 비트는 작은 전략들이라는 동일한 모델 위에서,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고유한 주체성을 재정복하고 삶과 투쟁의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 요컨대 우리가 전복이라고 부르는 것이 발전되는 전 상황들에 관련된 것입니다. 푸코는 그가 일궈낸 훌륭한 권력 분석이나 그의 방법론의 번뜩임, 혹은 그가 철학, 역사 그리고 현재에 대한 고민을 교차시킨 전대미문의 방식 때문에만 위대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우리가 끊임없이 그것의 유효성을 주장해야 하는 직관들을 우리에게 남겨주었습니다. 특히 그는 정치적, 사회적 투쟁들의 공간을 재정의했고, ‘고전적’ 맑시즘과는 다른 혁명적 주체들의 형상을 재정의 했습니다. 푸코에게 혁명이란 해방의 전망이 아닙니다. 어쨌든 그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푸코에게 혁명은 자유의 실천입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생산해내는 것이고 투쟁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언어들, 네트워크들을 혁신하고 발명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생산하는 것이고 산 노동의 가치를 재전유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부로부터 자본주의를 함정에 빠트리는 것입니다.


질문 : 우리는 프랑스에서 사회, 정치적 비판과 다시 접목되기를 원한다고 선언하는 대부분의 흐름들이 푸코로부터 어떤 거리 두기를 하고 있는 것을 목도하는 것같지 않습니까 ? 유럽의 나머지, 예를 들면 이탈리아나, 혹은 미국에서는 어떻습니까 ?

토니 네그리 : 학계(學界)는 푸코를 증오합니다. 제 생각엔 사람들이 60년대부터 이미 푸코로부터 거리두기를 했다고 생각되는데요. 꼴레쥬 드 프랑스에 그가 임용되었을 때도 그것은 결국 그를 보다 잘 고립시키기 위한 것이었죠. 단순히 대학에서 지식인들에 대한 푸코의 성공들을 용인하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고 말이죠. 부르디외의 사회학적 실증주의(positivisme)는 분명히 매우 풍부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는 푸코의 사유와 마주칠 수 없었고, 푸코의 주관주의(subjectivisme)를 비난했죠. 하지만 명백하게도 푸코에게는 주관주의가 없습니다. 부르디외도 아마 [죽기 전] 최근 몇 년 동안 그것을 깨달았을 겁니다.
푸코가 그의 저작의 도처에서 항상 반박하는 것은 초월주의(transcendantalisme)입니다. 이것은 주체적 역량들의 네트워크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갈등에 마주하면서도, 실재의 모든 결정들을 심사숙고하지 않으려는 역사철학들입니다. 초월주의라는 말로, 요컨대, 저는 외부의, 권위적인 관점에서 사회를 평가하고 조작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회에 대한 전 개념들을 의미합니다. 아니요, 이런 초월주의는 불가능합니다. 사회적인 것에 접근가능하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은 절대적인 내재성의 방법, 즉 의미 생산과 행위의 장치들을 지속적으로 발명해내는 방법입니다. 같은 세대의 다른 중요한 저자들과 마찬가지로, 푸코는 구조주의의 모든 추억들을 결산했습니다. 다시 말해, 구조주의가 규정하는 인식론적인 범주들의 초월적 고착화(오늘날 이러한 오류는 철학이나 인문 사회 과학에서 자연주의를 다시금 되살리려는 것을 통해 재생산되고 있습니다)와 결판을 지은 것입니다
프랑스에서, 푸코가 반박되는 이유는, 비판의 관점에서, 그가 [프랑스] 공화국 전통의 신화에 스스로를 끼워넣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자코뱅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주권주의, (아무리 평등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일방적인 정교분리 원칙, 가족을 개념화함에 있어서의 전통주의, 그리고 (아무리 통합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애국적인 인구 통계학 등등만큼 그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푸코의 방법론은 상대주의적이고, 회의주의적인 입장, 즉 역사에 대한 관념론적인 개념으로의 타락에로 환원되지 않을까요 ? 아니오, 다시 한번 아니오입니다. 푸코의 사유는 전복의 가능성을 정초하기를 제안합니다. 이 전복이라는 단어는 그의 것이라기보다는 제 것이긴 합니다만. 푸코는 근대 민족 국가 전통과 사회주의 전통으로부터 전적으로 독립된 상태에서 ‘저항’에 대해 말하곤 했습니다. 회의주의적이고 상대주의적인 것과는 전적으로 다른 명제는 정반대로, 진보와 공통의 재구축이라는 모든 환상이 근대의 전체주의적인 변증법에 의해 배신을 당한 이후에, 계몽(Aufklärung)에 대한 열광, 인간에 대한 재발명 그리고 그것의 민주주의적인 역량 위에 세워졌습니다. 요컨대, 푸코는 젊은 시절의 데카르트의 다음 문장, Larvatus prodeo, 즉 ‘나는 가면을 쓴 채 나아간다’를 제 것으로 삼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사회주의는 근대 변증법의 순수한 생산물이었습니다. 그것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은 보다 멀리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푸코가 우리에게 환기시키듯이, 계몽이란 이성에 대한 계몽주의 시대의 유토피아적인 열광이 아닙니다. 반대로, 계몽은 디스토피아(des-utopie), 즉 사건을 둘러싼 일상적인 투쟁이며, ‘여기, 지금’을 문제화하는 것으로부터, 해방과 자유의 테마들로부터 정치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1970년대 초반에 감옥 정보 그룹(GIP)과 함께 행한, 감옥에 대한 문제를 둘러싼 푸코의 전투가 당신에게는 아마도 상대주의적이거나 회의주의적인 것으로 보이나요 ? 아니면 이탈리아에서 억압과 역사적 타협이라는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처해있던 이탈리아 자율주의자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푸코가 취했던 입장이 [상대주의적이거나 회의주의적인가요] ?
프랑스에서 푸코는 그의 친구들, 제자들 그리고 동료들이 그에 대해 행한 독해의 희생자였습니다. 반공산주의는 여기에서 지대한 역할을 했죠. 사람들은 [푸코를] 유물론과의 방법론적 단절 그리고 신자유주의적인 개인주의의 요구같은 집단주의로 소개했습니다. 푸코가 변증법적 유물론의 범주들을 해체 했을 때, 그는 [사람들에게] 귀중했으나, 그가 마찬가지로 역사적 유물론의 범주들을 재구축했을 때는 사정은 더 이상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장치들에 대한 독해와 현재에 대한 비판적 존재론을 만들기 위한 작업이 다중들의 자유와 공통된 재산의 구축, 신자유주의에 대한 경멸을 참조했을 때, 이 제자들은 푸코로부터 발을 돌렸습니다. 아마도 푸코는 제 때에 죽은 것 같아요.
이탈리아, 미국, 독일, 스페인, 라틴 아메리카에서, 그리고 지금 항상 더욱이 영국에서, 우리는 푸코를 지적 무대로부터 주변화시키려는 이러한 도착적인 파리식의 게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다른 곳에서] 푸코는 프랑스 인텔리겐챠의 이데올로기적인 싸움같은 대량학살적인 체를 통과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그가 말한 것을 통해서 읽혔을 뿐이죠. [푸코의 사유와] 70년대 말에 맑스주의 사유가 다시 부흥하는 경향들 사이에 유비를 설정하는 것은 자주 근본적인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우리는 어쨌든 연대기적인 일치만을 붙들고 있어서는 안되겠죠. 그것은 오히려, 푸코의 사유에는 해방(émancipation, libération)을 향한 일련의 실천적이거나 이론적인 시도들의 한 가운데에서, 인식론적인 선취들 그리고 당들 및 역사 독해에 대한 격렬한 비판과 사람들이 그에게서 인정하는 주체들을 함축하는 윤리-정치적인 전망들의 실타래 속에서 [우리가] 이해해야할만한 것이 있으리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제 생각엔, 예를 들어 유럽의 노동자주의자들과 미국의 페미니스트들은 푸코에게서 무수한 연구의 실마리들을 발견했으며, 특히 그들의 메타-언어들을 하나의 공통된 언어, 아마도 도래할 세계 혹은 여하튼 도래할 세기를 위한 보편적인 언어로 변형할 수 있는 자극을 발견했습니다.


질문 : 마이클 하트와 당신은 <제국>에서 « 새로운 패러다임의 삶정치적 맥락이 우리의 분석에서 완전히 중심적이다 »(프랑스판, 52쪽)라고 썼습니다. 당신은 제국 권력의 새로운 형태들과 ‘삶권력’ 사이의 직접적으로는 분명할 것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이 관계를 설명해줄 수 있겠습니까 ? 당신이 자주 증언한 바 있는 미셸 푸코에 대한 당신의 빚이 어떤 비판들을 담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당신은 푸코가 «삶정치적 사회에서의 생산의 실질적인 동학 »을 파악하는데 도달하지 못했다고 적고있습니다. 당신은 이것으로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까 ? 푸코의 분석들이 일종의 정치적인 막다른 골목으로 이끈다고 추론해야할까요 ?

토니 네그리 : 이 두 질문으로부터 출발해서, 저는 <제국>에서 마이클 하트와 제가 푸코로부터 차용한 것 그리고 반대로 우리가 비판했던 것을 보다 분명히할 수 있길 바랍니다. 제국에 대해 말하면서, 우리는 단순히 민족국가 형태와는 다른 전지구적인 주권성의 새로운 형태를 식별해내려고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러한 발전의 물질적, 정치적, 경제적 원인들을 파악하고자 했고, 동시에 그것이 필연적으로 함축하는 모순들의 새로운 조직(tissu)을 정의하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맑스적인 관점에서 볼 때, (세계 시장의 극히 발전된 형태의 경우를 포함해서) 자본주의의 발전은 노동 착취에서의 변환들과 마찬가지로 그것의 모순들에 기초합니다. 정치적 제도들과 자본 권력의 형태들을 변형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투쟁입니다. 제국적 규칙의 헤게모니를 긍정하도록 이끌리는 과정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1968년 이래로, 발전된 국가들에서의 임금 노동자들의 거대한 봉기 및 제 3세계 식민지 민중들의 봉기 이래로, 자본은 더 이상 민족국가의 한계 내에서는 노동력의 흐름들을 (경제적이고 화폐적인 영역에서, 군사적이고 문화적인 영역에서) 통제하고 억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세계 질서는 노동 세계에서의 새로운 질서의 요청에 상응합니다. [이러한 요청에 대한] 자본주의의 대답은 다양한 수준의 형태를 띕니다만, 여하튼 노동 과정에 대한 기술적 조직화가 근본적이죠.
사실 산업의 자동화와 사회의 정보화가 관건입니다. 자본의 정치 경제학과 착취의 조직화는 점점더 비물질 노동을 통해 발전하기 시작하고 있으며, 축적은 노동의 지적이고, 인지적인 차원들, 그것의 공간적인 이동성과 시간적인 유연성에 근거합니다. 전 사회와 인간들의 삶이 이처럼 권력의 편에서 볼 때 새로운 이익을 끌어내기 위한 대상이 되어버립니다. 맑스는 (<요강>과 <자본>에서) 이러한 발전을 완전히 내다봤죠. 그가 ‘자본에의 사회의 실질적인 포섭’이라고 불렀던 발전말입니다. 제 생각에 푸코는 이러한 역사적 이행을 이해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 나름대로 권력에 의해 삶이 투자되는, 그리고 개인적 삶이 사회적 삶으로서 투자되는 계보학을 묘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본 하에 사회가 포섭되는 것은 (삶권력들의 출현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리고 특히 자본 자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불안정하며, 맑스주의의 아류들의 객관주의(예를 들면 프랑크푸르트 학파에서와 같은)가 인정하고 싶어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불안정합니다.
사실 자본 하에 사회(즉, 사회적 노동)의 실질적인 포섭은 사회 자체의 전 수준에서 착취의 모순을 일반화합니다. 마찬가지로 삶권력의 확장은 [그것에 대한] 사회의 삶정치적 응답에 길을 열어줍니다. 더 이상 삶에 대한 권력들이 아니라, 이러한 권력들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삶의 역량이 중요합니다. 요컨대 이것은 반란(insurrection)과 자유의 증식, 주체성의 생산과 새로운 투쟁 형태의 발명에 길을 열어줍니다. 자본이 삶 전체에 투자될 때, 삶은 저항으로서 일어섭니다. 삶권력의 삶정치로의 이러한 전복에 대한 푸코의 분석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제국 발생에 대한 우리의 분석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요컨대, 물질적 노동에서 비물질적 노동으로의 변형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형태의 노동들과 투쟁들이 주체성의 생산자들로서 일어선다는 것입니다.
그 후, 저는 푸코가 우리의 분석에 전적으로 동의할지 안 할지에 대해서는 모르겠습니다. 물론 저는 그러기를 바라지만요 ! 왜냐하면, 마이클 하트와 저에게 있어서 주체성을 생산한다는 것은 사실상 꼬뮤니즘에게로 우리를 인도하는 삶정치적 변신 과정 안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새로운 제국적 조건(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노동, 우리의 언어 그리고 우리 자신을 구축하고 있는 사회정치적 조건들)이 우리가 공통적인 것(le commun)이라고 부르는 것을 삶정치적 맥락의 한 가운데에 놓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통적인 것이란 사적인 것이나 공적인 것 혹은 개인적인 것이나 사회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생산하고 재생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인간에게 보장해줄 수 있도록 우리가 구축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통적인 것 안에서는 우리의 단독성들이 만들어낸 것 중 그 어떤 것도 가로막혀지거나 삭제되지 않습니다. 단독성들은 하나의 ‘배치’ – 이 용어는 들뢰즈의 것입니다 - 를 획득하기 위해 서로 서로 절합될 뿐입니다. 그 배치 속에서 각각의 역량은 다른 이들의 역량에 의해 다양화되며, 그 배치 속에서 각자의 창조는 즉각적으로 다른 이들의 창조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매달리고 있는 맑스주의에 대한 창조적인 재검토와 푸코가 구상해낸 삶정치와 주체성의 생산에 대한 혁명적 개념화들을 이어주는 길은 아주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질문 : 주체화 양식들에 대한 푸코의 마지막 두 저작들은 [상대적으로] 당신의 주의를 덜 끌었던 것 같은데요. 삶권력에 낯선 그리고 그것에 저항하는 윤리와 삶의 스타일의 구축은 당신이 제안한 것(꼬뮤니즘적인 투사의 형상)과는 너무 떨어진 길인가요 ? 아니면 [푸코의 제안과 당신의 것 사이에는] 우리가 잘 지각해내지 못하는 보다 심원한 일치의 가능성이 있는 것일까요 ?

토니 네그리 : 푸코의 마지막 두 저작은 저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저는 제가 방금 <제국>에 대해 당신에게 말했던 것이 그것을 잘 보여주리라 믿습니다. 당신에게 약간 신기한 어떤 추억을 말해보죠. 70년대 와중에, 저는 이탈리아에서 푸코에 대한 소논문 하나를 썼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처음의 푸코’, 즉 인문학의 고고학을 다루던 푸코에 대한 것 말입니다. 저는 그러한 유형의 탐구 방법이 지닌 한계를 지적하고자 했으며, 그로부터 일종의 일보 전진, 주체성의 생산에 대한 보다 강력한 주장을 바랬습니다. 당시에 저 자신은 끔찍한 오류들의 위험을 투사의 실천 지형에 제시하고 있던 맑스주의로부터 빠져나오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주체성의 생산에 대한 물음]이 이론 지형에서의 심대한 혁신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맑스를 넘어선 맑스’가 가능한가에 대해 묻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것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1968년에 뒤이은 열정적인 투쟁의 해들 속에서, [우파 정부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회 운동들에 대해 그네들이 행사한 광폭한 억압의 상황 속에서, 우리 중 많은 이들이 테러리스트적인 일탈의 위험을 무릅쓰고, 어떤 이들은 그러한 요구에 굴복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극단주의 배후에는 항상 권력이 하나, 오로지 하나이며, 삶권력은 좌파와 우파를 똑같게 만들어 버리고, 오로지 당만이, 당이 아니라면, 제 2차 대전의 위대한 ‘빨치산’ 전통 속에서 오로지 투사적인 비전으로 무장한 작은 단위들로 구성된 무장한 전위들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으리라는 신념이 깔려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투사적인 일탈이 운동이 그것으로부터는 다시 일어설 수 없는 그러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러한 일탈은 인간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선택일 뿐 아니라, 정치적 자살 행위입니다. 푸코, 그리고 그와 더불어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러한 일탈에 맞서 우리를 지켜주었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혁명가들의 행동이었습니다. 그들이 스탈린주의와 ‘실제 사회주의’의 실천들을 비판했을 때, 그들은 자유주의의 ‘신철학자들’마냥 거짓되거나 위선적인 방식으로 그렇게 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삶권력에 맞서는 프롤레타리아의 새로운 역량을 긍정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내고자 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투사주의라는 것이 자유의 공통된 실천이며, 꼬뮤니즘이 공통된 것의 생산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삶권력에 대한 저항과 새로운 삶의 스타일의 구축은 꼬뮤니즘적인 투사주의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제국>에서처럼, 꼬뮤니즘적인 투사의 형상은 낡은 모델을 차용하지 않습니다. 정반대로, 그것은 노동 해방과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투쟁의 (존재론적이고 주체적인) 생산으로부터 구축되는 새로운 유형의 정치적 주체성으로 스스로를 제시합니다.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오늘날 사회 운동들에도 마찬가지로, 푸코의 마지막 저작들이 갖는 중요성은 예외적인 것입니다. 계보학은 여기에서는 그것의 사변적인 특성을 상실하고 정치적인 것, 우리 자신들의 비판적인 존재론이 되며, 인식론은 ‘구성적인’ 것이 되고, 윤리학은 ‘변혁적인’ 차원들을 끌어안게 됩니다. 신의 죽음 이후 우리는 인간의 재탄생을 목도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새로운 인간주의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보다 정확하게 말해 그것은 새로운 존재론 속에서 인간을 재발명하는 것과 관련됩니다. 바로 근대 목적론의 폐허 위에서 우리는 유물론적인 텔로스를 되찾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