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서울에 있을 때 아우토노미아에 기고한 글 중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제가 다지원에서 느끼는 희망은 다지원의 배움이 배움의 근원적 의미에 많이 접근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죠.

후원자들을 조금 더 많이 찾아내서 돈의 부담이 없이 공부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내야 하기도 하고,

도시에 집중된 학습 방식에서 농촌 마을과 연결되는 새로운 방법도 개발해야 하고,

실천적 운동가들이 이론을 가다듬을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해야 하기도 하고....

그러나, 이렇게 미완의 조건이지만 그래도 함께 할 만한 곳이 다지원이라는 확신에는 변함이 없어요.

 

 

저는 오래 전부터 이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미래의 운동은 자기 근거를 서울이나 도시에만 두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작은 농촌 마을에 자기 근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몇몇 조직에서 그걸 시도했지만 성공적인 결과를 얻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농촌 자체에서 모든 힘이 나오는 것은 이제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아마 제가 농촌에 계속 살면서 다지원 활동가들에게 나와 함께 농촌과 연결하는 운동을 하자고 했어도 잘 안했을 겁니다.

 

제가 서울에 있으면서 다지원을 함께 구성하고 시간과 노력을 보태면서 서로 간에 신뢰가 생긴 것이 곡성다지원으로 이어진 힘이었을 겁니다.

 

서울에 있으면서 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생각이 한번 더 나가야 하는 데 어느 지점에서 막힌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런데, 이걸 넘어서는게 내가 노력을 안하거나 마음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해도 안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다들 거기에 들어갔어요.

 

이럴 떄 이걸 넘어서는 방법이 물러서는 겁니다.

'retreat' 이 필요합니다.

 

곡성다지원은 물러서서 보는 자리입니다.

집중해서 보는 게 아니라 관망하면서 멀리 보는 자리입니다.

 

우리 집 산책길을 걸으면 깊은 산골 길을 올라가다가 한 지점에 이르면 아주 멀리까지 전망이 열립니다.

그 지점에 서 봐야 합니다.

멀리보고 관망하는 자리에 서 봐야 자신이 지금까지 걸었던 길의 의미를 전체적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생태적 감수성을 가진 진보'는 생태주의자가 아닙니다.

생태주의자는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될 지 알 수 없습니다.

생태주의와 파시즘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감성이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생태적 감수성을 가진 진보는 물러서서 멀리 볼 수 있는 심성을 가진 진보적 삶입니다.

 

이번에 두번째 곡성다지원을 열었는데, 앞으로도 꾸준히 열겠습니다.

이 과정을 꾸준히 같이하면' 아니 1년에 한번이라도 하게 되면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물러서서 멀리 보는 힘이 생길 겁니다.

제가 생각하는 진보의 미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