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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및 첨부 참고 바랍니다. 단, 각주는 첨부파일에서만 보입니다)



다지원 정치철학 세미나 2015.10.27.

텍스트 : 안티오이디푸스, 질들뢰즈 / 펠릭스과타리, 민음사, 2014, pp34~73

 

[김선미_pp.34(반생산~)~40(~비롯된다)]

2. 기관 없는 몸

반생산, 밀쳐 냄과 편집증 기계

-욕망 기계들과 기관 없는 몸 사이에는 명백한 충돌이 일어난다.  

-본원적 억압이 뜻하는 것은, 일종의 <대체-투자>가 아니라 기관 없는 몸에 의한 욕망 기계들의 이 밀쳐냄이다. 그리고 편집증 기계가 의미하는 것은 바로, 욕망 기계들의 기관 없는 몸으로의 불법 침입 작용 및 욕망 기계들을 전반적으로 박해 장치로 느끼는 기관 없는 몸의 밀쳐 내는 반작용이다.

-편집증 기계의 발생은, 욕망 기계들의 생산의 경과와 기관 없는 몸의 비생산적 멈춤의 대립 속에서, 그 즉시 생겨난다.


욕망적 생산과 사회적 생산-반생산은 어떻게 생산력들을 전유하는가

 -충만한 몸으로서의 사회체는 생산 전체가 자신을 등록하는 하나의 표면을 형성하며 생산 전체는 그 등록 표면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회는 생산과정을 등록하면서 자기 고유의 망상을 구성한다. 그러나 이것은 의식의 망상이 아니다.

-자본은 그야말로 자본가의, 아니 차라리 자본주의적 존재의 기관 없는 몸이다.


전유 또는 끌어당김 그리고 기적 기계

-기관 없는 몸은 욕망적 생산으로 복귀하며, 그것을 끌어당기고, 그것을 전유한다.

끌어당기는 기계는 밀쳐내는 기계의 뒤를 잇고 있으며, 또 뒤를 이을 수 있다. 편집증 기계 다음에 기적 기계가 뒤를 잇는다, 그런데 여기서 <다음에>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둘째 종합- 분리 종합 또는 등록의 생산

……이건……이건

-분열증적인 <……이건……이건><그다음에>와 교대한다. 어떤 임의의 두 기관을 고려하건, 그 둘이 기관 없는 몸에 매달리는 방식은 그 둘 사이의 모든 분리 종합이 미끄러운 표면 위에서 결국 같은 것으로 회귀하는 그런 식이어야 한다. <……아니면……>이 호환 불가능한 항들 간의 결정적 선택(양자택일)을 표시하려 하는 데 반해, <……이건>은 이전移轉되고 미끄러지며 늘 같은 것으로 회귀하는 차이들 간의 호환 가능 체계를 가리킨다. 

-기관 없는 몸은 신이 아니다. 차라리 정반대다. 하지만 기관 없는 몸이 생산 전부를 끌어당겨 기적을 낳는 마법적 표면 노릇을 하고, 생산 전체를 자신의 모든 분리 속에 기입할 때, 이 몸을 가로지르는 에너지는 성스럽다.



[김승국_pp.40(분열증의 계보학~)~46(~추동한다)]

책 요약

1. 기관없는 몸 _ 분열증의 계보학

1) 성스러운 슈레버

따라서 성스러운 것은 분리의 에너지가 갖고 있는 성격 뿐 : 무의식의 문제는 많은 모호함을 가지고 있지만 누멘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기관 없는 몸이 생산 전부를 끌어당겨 기적을 낳는 마법적 표면 노릇을 하기 때문

슈레버에게 있어 성스러운 것은 그가 자신 안에서 나뉘는 분리들과 뗄수 없다.

2)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정신병(편집증) 은 무의식적 상상 속에서 실현된 응축들과 동일시들을 다시 그 요소 들로 분해 한다 (라고 프로이트는 정의함)

하지만 잘 반성해 보면 히스테리 신경증이 1차적이며 분리들은 최초에 응축된 것의 투사에 의해서만 얻어질 뿐인 것인가... ( 즉 응축을 전제 하고 분리가 진행되어야 하는 것인가??) 이는 오이디푸스권리를 보존하는 방식이여서 그렇다

즉 욕망의 등록은 오이디푸스 항들을 경유할까? ( 엄마/아빠/아들, 삼각형의 관계를 거쳐 주체의 대타자가 완성되는 것인가?)

분리들은 욕망적 계보학의 형식이다

하지만 계보학은 오이디푸스 삼각형화 속에 자신을 기입할까?

아니면 그것을 사방으로 빠져 나가는 계보학적 질료 및 형식을 사회적 재상산이 길들이기로 작정한 이상, 사회적 재상산의 요구 내지 결과가 아닐까?

정신분석은 이른바 정신병 선상들이 얼마나 이러한 참조 틀을 멋어나는지 느끼면서도, 오이디푸스 삼각형의 기초 위에서 계속해서 문제들을 제기 하고 해석들을 전개 한다

욕망적 생산은 이항 _선형 체계를 형성한다 (? 아마도 전치와 환유가 하나의 집합속에 존재 한다는 뜻?)

그것(기관없는 몸)은 부모가 있는 생산을 함축하는 모든 삼각형화의 시도를 거부하기 위해서만 반생산으로서 개입한다. 기관없는 충만한 몸은 그것의 자기 _ 생산 자신에 의한 그것의 발생을 증언 하는데, 어떻게 그것이 부모에 의해 생산되기를 바랄수 있겠는가?

3) 분열자

분열자는 자신에게 고유한 좌표 설정 양식들을 이용하는데, 왜냐하면 무엇보다 그는 사회적 코드와 일치하지 않는 , 또는 사회적 코드를 패러디 하기 위해서만 그것과 일치하는, 특수한 등록 코드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망상적 코드, 즉 욕망적 코드는 엄청난 유동성을 보인다.

분열자는 그에게 제기되는 물음들을 따라, 빠르게 미끄러지면서, 한코드에서 다른 코드로 옮겨 가고, 모든 코드를 뒤섞는다고, 또한 매일매이리 똑같은 설명을 하지 않으며, 같은 계보학을 원용하지도 않고, 같은 사건을 같은 방식으로 등록하지도 않으며........그리고 이것들의 생산은 연이은 충들 또는 구역들을 지나 가장자리에서 중심부로 가면서 연결의 방식으로 일어난다.

분열자는 늘 뒤뚱거리지만 금방 바로 선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에게는 그어떤 분리들에서건 모든 측면에서 모든것이 똑같기 때문이다.

......광선들 새들, 목소리들, 신경들이 신 및 신의 나뉜 형태드로가 복합적이고 교체 가능한 계보학적 관계들을 맺는다. 하지만 모든 일이 벌어지고 등록되는 것은 기관 없는 몸 위에서이다......모든 것은 창조 되지 않는 이몸 위에 있다


2. 주체와 향유 _ 셋째종합_결합 종합 또는 소비의 생산 _ 따라서 그것은.....이다

1) 주체와 욕망적 생산의 관계

(상단부분 이해 안됨)

그것은 이상한 주체이다. 고정된 정체성이 없고, 기관 없는 몸위를 방황하며, 늘 욕망 기계들 곁에 있고, 생산물에서 차지하는 자신으 몫에 의해 정의되며, 도처에서 생성 내지 아바타 라는 덤을 얻고, 자신이 소비하는 상태들에서 태어나고 또 각 생태마다 다시 태어나니까 ( 들뢰즈의 주체 해설)

분명 모든 욕망적 생산은 이미즉각 완수이자 소비 이며, 따라서 쾌감이다. 하지만 각 나눔의 여분들 속에서 등록 표면의 분리들을 통해서만 자기 자리를 정할수 있는 하나의 주체에게는 아직 그렇지가 않다.

우주에는 일정한 향유 비율이 있어 신은 슈레버가 여자로 변하느느 대가를 치러야만 쾌감을 얻을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쾌감중 법원장이 체험하느느 것으느 그의 고통의 보수 또는 거의 여자_생성의 모상으로서 잔여의 몫뿐이다

생산 에너지로서의 리비도의 일부가 등록 에너지(누멘)로 변형된 것과 마찬가지로, 등록 에너지의 일부는 소비 에너지 /불룹타스 로 변형 된다. 바로 이전여 에너지가 무의식의 셋째 종합을, (따라서 그것은.....이다(주체, 정체성?))라는 결합 종합 또는 소비의 생산을 추동한다

 

이해 가지 않는 대목

기관 없는 충만한 몸은 반생산으로서 생산된다. 그것은 부모가 있는 생산을 함축하는 모든삼각형화의 시도를 거부하기 위해서만 반생산으로서 개입한다 ( 43p)

과정 이란 말의 으미에 따르자면, 등록은 생산 으로 복귀하지만, 드록의 생산 자체는 생산의 생산에의해 생산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소비는 등록을 뒤따르지만, 소비의 생산은 등록의 생산에 의해 등록의 생산 안에서 생산된다 (45P)


질문 하거나 토론해 보고 싶은 문제

질문1) 세상 모든 것이 절단과 채취 하는 기계라면 달, , 우주, 원자 들은 무엇을 절단하고 채취하는가...?

    

  

 

[김정연_pp.46(독신기계~)~53(~하루에)]

1. 신인류 또는 영광스러운 유기체의 탄생을 위해 욕망 기계들과 기관 없는 몸 사이에 새 결연을 형성함으로써, 편집증 기계와 기적 기계의 뒤를 잇는 이 기계를 지칭하기 위해 <독신 기계>라는 이름을 빌려 오자.

 

2. 독신 기계 자체는 편집증 기계가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무언가를, 태양의 권력을 드러낸다. 자기 성애적 또는 차라리 자동 장치적이라 할 수 있는 쾌락이 존재한다.

 

3. 독신기계는 무엇을 생산할까? 내공량들이 답일 듯싶다. 먼저 내공들, 생성들, 이행들만을 체험하는 참으로 1차적인 감정에 비하면, 망상과 환각은 2차적이다. 끌어당기는 힘과 밀쳐 내는 힘의 대립은 항상 플러스 값을 갖는 내공 요소들의 열린 계열을 생산하는데, 이 요소들은 한 체계의 최종적 평형상태 말고 한 주체가 경유하는 무수한 준안정적 멈춤 상태들을 표현한다.

 

4. 또 끌어당김과 밀쳐 냄은 기관 없는 몸을 잡다한 정도로 채우고 있는 강렬한 신경상태들을 생산한다. 기관 없는 몸은 알이다. 알은 생성들, 이행들, 거기서 발전될 행선지들 따위를 표시하는 기울기들이 가로질러 간다. 그 무엇도 재현이 아니다. 모든 것은 삶이고 체험이다. 이를 통해 분열자는 물질에, 물질의 강렬하고 생생한 중심에 가장 가까이 있게 된다.

 

5. 사정이 이러한데 어떻게 정신의학은 분열자를 임상적으로 무기력자로 보고, 죽어 버린 기관 없는 몸의 상태로 환원할 수 있었을까? 또 어떻게 정신분석은 신경증자를 아빠-엄마만을 영원히 소비하고 다른 것은 일절 소비하지 않는 불쌍한 피조물로 환원해 버렸을까?

 

6. 이 삶의 운동 전체를 어떻게 요약할 수 있을 것인가? 편집증 기계와 기적 기계를 가로질러, 기관 없는 몸 위에서의 밀쳐 냄과 끌어당김의 비율들이 독신 기계 속에서 0에서 출발하는 상태들의 계열을 생산한다. 그리고 주체는 그 계열의 각 상태마다 태어나고, 한순간 그것을 규정하는 그다음 상태에서 항상 다시 태어나며, 자신을 태어나게 하고 다시 태어나게 하는 이 모든 상태를 소비한다.

 

7. “원심력들은 결코 중심에서 도망가는 게 아니며, 중심에서 다시 멀어지기 위해 새로 중심에 접근한다. ... 정체성이란 본질적으로 우연한 것.” 상태들의 계열을 경유하는 역사의 모든 이름이 나다...”라며 역사의 이름들을 이 상태들에 동일시하는 니체-주체가 있다. 분열자는 단번에 세계사를 소비한다. 분열자는 호모 나투라이기도 하고, 호모 히스토리아이기도 하다.



[권현지_pp.54(무의식과 생산의 범주~)~60(~실존한다)]

유물론적 정신의학 요약


무의식과 생산의 범주

정신의학자 클레람보의 저 유명한 명제는 충분한 근거가 있어 보인다.

(중략) 클레람보는 망상의 좋은 부분을 자동증의 결과라 설명했다. 반면 다른 부분, <개인적>부분에 관해서는, 그것이 반응적 본성을 지니고 있으며, 자동증에 앞서 여러 가지로 표명될 수 있는 <성격>(가령 편집증적 성격)에 관련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클레람보는 자동증에서 말의 가장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신경증적 메커니즘만 보았을 뿐, 욕망 기계들을 작동시키는 경제적 생산의 경과를 보지 못했다. 또한, 역사와 관련해서는, 타고난 성격이나 획득된 성격을 원용하는 데 그쳤다. 클레람보는 맑스가 말한 것과 같은 의미에서 정신의학의 포이어바흐이다. (중략)

 

극장이냐 공장이냐?

관념론의 전형적 형식들과 가짜 유물론 사이에는 별 차이가 없다. 분열증 이론의 특징은 삼위일체의 정식을 구성하는 다음 세 개념이다. 해리(크레펠린), 자폐증(블로일러), -공간 또는 세 개--존재(빈스방어)이다.

그렇지만 자아는 엄마-아빠처럼 분열자가 오래전부터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아는 엄마-아빠라는 문제들 너머에, 그 뒤에, 그 아래에, 다른 어디에 있지만, 그 속에는 없다. (중략)

그만큼 이 문제들 밖에, 그 너머에 있는 것이다. 프로이트마저도 자아라는 이 좁은 관념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가 이 관점에서 떠나지 못하게 한 것은 자아에 대한 그의 삼위일체 공식, 즉 오이디푸스, 신경증, 즉 엄마-아빠-나라는 공식이다. 프로이트는 분열증에 적용되는 자폐증이라는 난처한 개념을 재발견하고 이것을 그의 권위로 보증했는데, 그를 여기로 인도한 것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정신분석적 제국주의가 아니었는지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중략)

우리가 오이디푸스 안에 놓이자마자, 오이디푸스를 기준으로 측정되자마자, 술책이 작동해서, 생산이라는 본래의 유일한 관계는 제거되고 말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의 위대한 발견은 욕망적 생산, 무의식의 생산들의 발견이었다. 하지만 오이디푸스와 더불어 이 발견은 새로운 관념론에 의해 은폐되었다.

 

생산과정으로서의 과정

(중략) 분열자는 때로는 흩어진 자아로, 때로는 절단된 자아로, 때로는(가장 매력적인 것인데) 존재하기를 멈춘 적 없이 특유하게 자기 세계에 존재해 온 자아로 여겨졌다. (중략)

여기서 한 번 더 맑스의 경고를 상기하자. (중략) 이와 반대로 생산의 물질적 과정을 설정하자마자 생산물의 특유성은 사라지고, 동시에 또 하나의 <완성> 가능성이 나타난다. 분열증은, 자폐증 속에서 억지로 인물화 된 분열자의 질환이기에 앞서, 욕망과 욕망 기계들의 생산과정이다. 왜 사람들은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이행할까? 이 이행은 불가피할까? 이것은 지금도 여전히 중요한 물음이다. (중략)야스퍼스는 이점에 대해 가장 귀중한 지적들을 해주었다. 그에게 결핍되어 있던 것은 다만 과정을 경제적·물질적 현실로, 자연=산업, 자연=역사의 동일성 속에 있는 생산과정으로 착상하는 일이었다.


1.4. 결핍으로서의 욕망이라는 관념론적 착상(환상)

(중략)

욕망의 대상은 결핍하고 있다. 따라서 욕망의 열쇠를 포함하고 있는 다른 어떤 곳이 실존한다.

 

이해가지 않는 대목

54: 2

57: 8

60: 20

 

질문하거나 토론해 보고 싶은 문제

들뢰즈의 공장에서의 무의식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이호금_pp.60(현실계와 욕망적 생산~)~66(~보여준다)]

 

* 요약과 Q

1. 현실계와 욕망적 생산 -수동적 종합들

- 욕망은 현실계를 생산하는데, 현실계는 무의식의 자기-생산으로서 욕망의 수동적 종합들의 결과물

이다. 욕망은 결핍이 없으며 겪음(passion)이며, 굳이 말하자면 고정된 주체가 결핍되어 있다.

- 욕망과 대상 모두 기계이며, 생산하기에서 생산물로 가는 중에 뭔가가 이탈하여 유목하는 주체에게

여분을 준다.( 61:12 Q)

- 필요나 결핍은 욕망에서 파생되는 것으로 현실계 속에 널리 존재한다. (액포화 Q)

- 욕망은 대상의 실존적 조건들에 합류하고 이전해버린다. 반면 필요는 욕망을 상실한 주체의

소원(疏遠)정도로, 현실계에서 머물며 기생한다.

- 시장 경제는 생산의 풍부함 속에서 결핍을 조직하고,욕망을 결핍에 대한 비루한 공포로 만든다.

- 빼앗긴 자는 아주 적은 것을 필요로 하며 그것은 인간의 대상성을 구성해 온 것이다.(62:9~12 Q)

(62: 14~16 Q)

- 그러나 욕망은 생산적 권력으로 삶을 움직이고, 필요가 적을수록 더 삶을 재생산한다.

 

2. 사회적이자 욕망적인, 유일하고 동일한 생산

- 현실적인 사회적 생산과 정신분석학적인 환상적 욕망의 생산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적

생산은 욕망적 생산 그 자체이다. 사회장은 욕망의 역사적 생산물이다. 모든 것은 욕망으로 생겨난다.

- 라이히는 인간의 비합리적 행위에 대해 , 인간의 착각이 아니라 변태적 욕망의 결과로 설명했다.

이는 탁월하나 욕망의 부정적인 비합리성에만 몰두해 다시 정신분석학의 한계로 귀착했다.

욕망적 생산을 알지 못했다.

 

3. 집단 환상의 현실성

- 욕망은 현실계를 생산하므로 욕망적 생산은 곧 사회적 생산이라 할 수 있다.

- 환상이란 두 종류 이상의 기계의 동일성에서 파생되므로 개인적일 수 없고 사회적이다.

그러므로 집단환상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두 종류의 방향이 있다. 하나는 욕망 기계들이 거대

군중 속에서 파악되는 방향이고 , 다른 것은 사회 기계들이 욕망의 요소적 힘들에 관련되는 방향이다.

따라서 기존 사회장을 투자하거나 기존 사회장에 혁명적 욕망을 연결하는 대체-투자로 나타나기도

한다.

 

 

[박승_pp.66(욕망적 생산과~)~73(~없다)]

1. 요약


1.1. 욕망적 생산과 사회적 생산 사이 체제의 차이들

- 기술 기계들은 고장 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만 기능한다

- 욕망 기계들은 작동하면서 끊임없이 고장 나며, 고장 난 채로만 작동한다

- 기술 기계들은 하나의 경제적 범주가 아니며 언제나 하나의 사회체 내지 사회 기계와 결부되어 있다

- 욕망적 생산과 사회적 생산의 체제 차이는 끝에 있지 처음에 있지 않다(73:4)

 

1.2. 사회체와 기관 없는 몸

- 사회체는 토지/전제군주/돈의 몸일 수 있다, 기관 없는 몸의 투사가 아니다, 탈영토화된 사회체의 궁극적

잔여물이다

- 자본주의는 돈-자본이라는 형식을 지닌 생산의 탈코드화된 흐름과 자유노동자라는 형식을 지닌 노동의

탈코드화된 흐름이 만나서 탄생한다

- 예전의 사회기계(원시적토지기계, 전제군주기계)와 반대로, 자본주의기계는 사회장 전체를 포괄하는

코드를 제공할 능력이 없다. 자본주의는 탈코드화의 문턱으로 향하는 경향이 있다.

 

1.3. 자본주의 그리고 극한으로서의 분열증(상반된 경향성)

-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자신의 극한에 접근하는데, 이 극한은 참된 분열증적 극한이다

- 탈코드화, 사회체의 탈영토화는 자본주의의 가장 본질적인 경향성을 형성한다

- 자본주의는 자신의 경향성을 가속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이 경향성을 반대하고 금지한다

- 자본주의는 자신의 생산과정에서 엄청난 분열적 부하를 생산하는데, 탄압의 모든 무게로 부하를 눌러

보려 하지만, 부하는 경과의 극한으로서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 자본주의가 잉여가치를 추출하기 위해 탈영토화 할수록 관료조직, 경찰기구 같은 자본주의의 부속장치

들은 그 잉여가치를 흡수하면서 다시 재영토화 한다.

 

1.4. 신경증, 정신병, 변태

- 신경증자/정신병자/변태의 정의는 충동과의 관계가 아니라 영토성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내릴 수 있다

- 분열자는 사회체의 해체를 무한히 추구하여 늘 탈영토화 속으로 더 멀리 가는 자이다. 모든 코드를 뒤죽

박죽으로 만들고, 욕망의 탈코드화된 흐름들을 데려온다

- 분열자의 산책은 그가 자신의 대지를 재발견하는 그 나름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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