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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_고전 읽기

[1/6] 옥중수고 23~61

발제문 조회 수 206 추천 수 0 2018.01.06 11:54:57
□ 다지원 정치철학 고전읽기 세미나 ∥2018년 1월 6일∥발제자: 김정연
텍스트: 그람시, <옥중수고> 1, 서설 23~61

1. 요약/발췌 

1.1. 1926년 무솔리니 집권 4년차에 파시즘의 정의에 대한 많은 논쟁이 있었다. “특수하고 민족적인 현상인가 전세계적 조류의 전조인가, 전혀 새로운 사회정치적 구성체인가 전통적인 반동의 한 형태인가, 본질은 도시 프티부르주아지와 농촌부르주아지라는 사회적 기반에서 찾아야 하는가 대자본 지배의 새롭고도 난폭한 수단으로서의 역할에서 찾아야 하는가?”
1.2. 당시 공산주의자 지도자들은 지배계급이 곧 사회민주주의적 방법으로 전환하리라고 믿었다. (23)
1.3. 그러나 1926년 가을 모든 기대를 무너뜨리며 무솔리니는 “모든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껍질마저 벗어버리기로” 한다.
1.4. 1926년 반대 조직에 대한 탄압의 와중에 1924년 8월 이래로 PCI 총서기를 맡고 있던 그람시도 체포되었고 감옥에서 그는 2,848페이지에 이르는 <옥중수고>를 썼다.(24)

초기의 삶 
1.5. 1891년 사르데냐 출생, 어릴 적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는 1937년 46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1898년 집안 사정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2년간 돈벌이, 1908년 칼리아리의 고등학교애 진학했다. 당시 사르데냐 민족주의 운동에 영향을 받았다. 이후 튜린에서 노동계급 운동을 하며 민족주의를 버리지만, 어린 시절의 경험은 농민문제에 관심을 갖게 한다.(26)
1.6. 당시 이탈리아에는 산업화된 ‘북부’와 노동지대인 ‘남부’ 사이의 갈등으로 계급문제가 은폐되는 경향이 있었다. 1887년 이래로 보호주의 정책으로 북부 산업이 큰 혜택을 본 반면, 남부 농민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보호주의는 산업자본과 개량주의 노동계급 조직의 이해관계 일치를 조성하는 기반이었다. 그래서 남부에는 PSI나 사회주의보다는 사회주의와 자유주의가 혼합된 다른 이념(남부주의?)이 파고들었다. (27)
1.7. 그람시는 건강 상황,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활동의 심화로 1915년 대학을 떠난다.

지적인 형성과정 
1.8. 당시 이탈리아 지식인, 부르주아층 내부에서도 사회주의가 유행이었다. 그람시가 영향을 받은 사상가로 <옥중수고>에서 검역을 피하기 위한 대용어로 썼던 “실천철학”을 처음 도입한 이론가인 라브리올라, 라브리올라 사후 이탈리아 사회주의의 지도적 철학자가 된 몬돌포, 맑스 번역자였지만 후일 파시즘의 대변자가 되는 젠틸레 등이 있다. 
1.9. 그람시는 젊었을 때 ‘크로체적 경향’을 띠었다고 회고했다. 크로체는 라브리올라의 제자로 맑스주의자였다가 이후 무솔리니를 지지했지만, 이탈리아 좌익 지식인들에 큰 영향을 미쳤다.(30) 이후 그람시는 크로체가 “대립물의 투쟁이라는 역사운동을 ‘차이물의 변증법’이라는 개념적 변증법으로 환원시켰다”고 비판한다.(31)

튜린에서의 사회주의 정치활동 

1.10. 이탈리아의 붉은 수도이자 (그람시에 표현에 의하면) 페트로그라드인 튜린은 피아트 등이 위치한 선진된 산업 도시였고, 1914~15년 호황기에 튜린 노동계급은 졸리티의 중립정책을 지지했다. 튜린의 프롤레타리아트는 1904~1906년 가두시위, 1912년 금속노동자들의 파업, 1913년 93일에 걸친 투쟁, 1914년 6월 총파업, 1917년 5월 반전시위와 총파업, 1917년 8월 폭동을 일으키는 등 이탈리아에서 가장 전투적이었다. 그람시는 이 시기를 튜린에서 보내며 남부주의를 극복했다.(33~35) 
1.11. 당시 영향력 있는 사회주의 인사로 무솔리니와 살베미니가 있었는데 두 사람 모두 리비아로의 제국주의적 팽창[이탈리아-튀르크 전쟁은 1911년~12년에 이탈리아와 오스만 제국이 치른 전쟁으로 이탈리아가 아프리카의 식민지를 얻기 위해 싸워 승리해 오스만 제국의 허약함이 드러났고 제1차 발칸 전쟁의 계기가 되었다.]을 비판하였고 그람시는 이들의 영향을 받았다.(35)
1.12. 사회당은 당시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는 여러 사회주의 세력 중 하나였는데 다른 세력들에 지도력을 행사하기보다 단독적 임무 수행에 집중했다. 동시에 전쟁에 대한 불만 고조와 산업노동자들의 전투성 상승, 러시아혁명의 충격 등의 영향이 있었다. 이 상반된 두 압력의 결합에서 ‘맥시멀리즘’(중간파)이 탄생했고, 이것이 파시즘에 의해 분쇄되기까지 이탈리아 좌파의 지배적인 입장이었다.(36)
1.13. 사회당 지도부는 전쟁에 대해 “참여거부주의적” 원칙을 고수했다. 이는 애국주의 슬로건에 잘 이끌리는 프티부르주아층을 소외시켰고 이들이 파시즘의 사회적 토대가 되었다. 당내 ‘좌익’ 인사들이 1917년 중반에 ‘비타협, 혁명주의’ 분파로 정립되었는데 이들은 주로 ‘원칙적’인 문제에서 당의 공식적 정책과 충돌했고, 1919~1920 코뮤니스트 분파의 전신이었다 할 수 있다. 그람시가 활동한 튜린 지부가 비타협주의 분파의 한 아성이었다.(37)
1.14. 튜린에서 그람시의 첫 번째 동료 타스카는 이후 PCI의 우파 지도자가 된다. 타스카는 1912년 청년당원대회에서 보르디가와 격론을 벌이며 명성을 얻었는데 보르디가는 PCI 초기부터 1930년까지 당 지도권을 잡았고 당의 좌익 분파를 이끈다.(38)
1.15. 그람시는 1914년 10월 무솔리니가 전쟁에서의 중립이라는 당의 공식 입장에서 이탈할 때 당의 “절대적 중립” 입장과 대비되는 “적극적이며 활동적인 중립”을 주장하며 무솔리니를 지지하는 글을 썼고 이로 인해 오늘날까지 개입주의라고 비난을 받는다.(40)
1.16. 1915년부터는 사회당 주간지 <그리도 델 포폴로>의 전임기자가 되었고 정치평론가, 연극평론가 등으로 활동했다.(41) 
1.17. 1917년 러시아혁명에 대해 멘셰비키나 제2인터내셔널의 ‘마르크스주의’와는 다른 ‘마르크스의 사상의 실천’이라는 관점의 글을 썼다.(42)
1.18. 튜린 노동계급은 러시아 혁명의 영향으로 산업투쟁을 벌였고 사회당 지도부는 구호는 과격했지만 구체적인 준비는 부족했다. 1917년 8월 빵 공급 중단 이후 튜린 프롤레타리아트는 폭동을 일으켰고 이때도 사회주의 지도자들은 무력했다. 8월의 패배 이후 사실상 모든 사회주의 지도자들이 검거되어 그람시는 당 내에서 지도적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44)
1.19. 1917년 11월 플로렌스 비밀회의에서 그람시는 당시 사회주의자 중에서 레닌주의 입장에 가장 가까웠던 보르디가의 입장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1923년에 그람시는 보르디가의 지도권에 의문을 던진다. (44)
1.20. 1918년 종전과 10월 혁명으로 유럽 전역에서 혁명이 임박했다는 생각이 퍼졌고 1) 잘 조직된 혁명정당의 힘, 2) 소비에트 권력이라는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권력기구 구상이 전세계를 휩쓸었다. 1918~1921 3년간 그람시는 튜린에서 평의회 실험 이론가로 활동했다.(45)

<오르딘 누오보>, ‘피의 시절’ 그리고 PCI의 창설
1.21. 1921년 PCI 창당은 혁명이 썰물 시기일 때 이뤄졌다. 경제위기에 대한 일면적 분석과 달리 이탈리아 자본주의는 전쟁을 통해 공업 부문에서의 엄청난 발전과 농업부문에의 타격, 프티부르주아층을 프롤레타리아화시켰다. 졸리티는 이 기간 개량주의 조합지도자를 지원하면서 큰 효과를 보았다.(47) 반면 전후에 PSI는 조직화를 준비하지도 않았고 무력했다.
1.22. 그람시는 1919년부터 <오르딘 누오보>에 공장평의회 구상을 피력하는 글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소비에트’ 사상은 당시 이탈리아 좌파의 공통된 흐름이었다.(50)
1.23. 다른 좌파와 구별되는 <오르딘 누오보> 이론의 특징은 1) 자신의 이론을 튜린 노동계급의 실천과 직접 연결시켜 소비에트 체제 실현을 위한 프로그램을 갖고 있었고 2) 전통적 노동계급 조직에서 전적으로 독립된 전체 프롤레타리아트의 기구를 주장했고 정당이나 노조를 분명하게 종속적 위치에 놓았으며, 3) 공장평의회와 이것을 기초로 수립된 지역소비에트를 미래의 사회주의국가의 맹아로 보았고 4) “혁명과정의 진정한 발전” “권력문제의 본질”을 “대중들의 의식과 생산현장” “생산적 조직체 속에서” 포착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51)
1.24. 1920년 봄에 이르면 그람시는 “코뮤니스트 정당의 존재”를 소비에트 실험의 불가결한 조건으로 쓰게 되는데 그때는 이미 전후 혁명적 기운이 종식된 후였다.(53)
1.25. 1920년 여름부터 <오르딘 누오보>는 분열되었고 보르디가의 우위성이 굳어졌다.(56)
1.26. 1920년 9월 밀라노 공장점거 사태 이후 전국으로 공장점거 등 노동자 투쟁이 퍼졌는데 졸리티는 ‘노동조합의 (산업)통제’라는 미끼를 던져 개량주의 지도자들에게 먹혔고, 타협은 이뤄졌으며 공장점거는 철회되었다. <오르딘 누오보> 그룹의 주장이 이탈리아 노동계급에 의해 혁명적 실천으로 전화되었지만, 전국적, 조직적 차원에서는 전적으로 무력했다. 전후 이탈리아의 혁명적 국면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58)
1.27. 1920년 가을부터 졸리티의 ‘산업통제’에 만족하지 못한 자본가의 지원을 받는 파시스트들이 사회주의 단체, 자치정부, 언론 등을 습격하기 시작하였다. (59)
1.28. 1921년 전국적이었던 코뮤니스트 분파는 리보르노 대회 회의장에서 회의장을 빠져나가 바로 옆 회의실에서 PCI 창당대회를 가졌다.(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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