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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미학_삶과 예술

5/19 [예술로서의 삶]5장, 발제문 모음

발제문 조회 수 201 추천 수 0 2017.05.19 19:14:31

nowhere 님, 164-176                      

 

*아노르노 미학의 두 개의 동시적 운동

1) 우리가 마주한 훼손된 세계에 대한 인식

2) 바로 그 세계를 구원하는 어떤 것-이 경우 형이상학적인 사건인 예수의 재림-을 위한 기도

 

*사랑

사랑은 미움, 가난 그리고 폭력의 세계를 구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은 잠깐이며 보통 부재한다.

 

무의미,허무주의,폭력과 고통의 부조리(부재,애도의 대상)

이것들과 동일한 힘을 가진 것으로, 동인이면서 또한 속성으로서의 사랑은 고통받은 세계에서의 유일한 내재적인 해결책으로 제시된다.

 

*이 둘은 하나가 될 때, 화해된 세계에 대한 예술적인 시각을 제공한다.

즉, 오직 공동체와 다른 어떤 것에 대한 창조를 통해서만,

고통받는 세계는 달라질 수 있다.

 

아도르노가 인식한 것처럼,

*진보된 산업사회들이 객체들이 겪은 고통을 다시 개념화하고 애도하는 일을 행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술과 미학적 이성을 통해서이다.

더욱이 미학적 이성은 자기 너머의 목표들에 대한 상상력과 현재에는 주어지지 않은 전체성으로의 세계의 긍정적인 변형을 가능하게 한다.

 

*아도르노에 의해 제시된 형이상학은 구체적이지도 실천적이지도 않다.

 

그것들은 상상력의 작업으로 계속해서 무산된다.

 

이런 의미에서, 아도르노의 많은 작업과 같이, 형이상학은 대체로 실천적인 충족을 필요로하는 초-이성적 개념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기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상상력은 그 자체로 불충분하다. 형이상학적인 상상력은 실천적인 참여와 만나야 한다.

 

*마르쿠제는 순수하게 미학적인 이성에서 구상된 것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개념적 방편들을 제공한다.

 

*정직한 호소

비판이론의 미학에서 드러난 변증법적인 부정성과 객체에의 헌신에서 배운 예술로서의 삶에 대한 몹시 정치적이고 실천적인 차원을 구성한다.

 

*마르쿠제의 미학적 저항

미래를 보고 현재를 변화시키라는 요구

 

*마르쿠제 미학 개념의 수정

부정변증법과의 순수한 결합

-> 그 개념의 그리스적 근원인 아이스테시스aisthesis, 즉 감각성과 느낌

이라는 방향으로 수정한다.

 

*"예술작품으로서의 사회"

산업주의와 과학기술의 방편들

폭력과 압제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희망의 실현을 위해 사용하는 "예술작품으로서의 사회"

 

마르쿠제에 의해 구상된 이상적인 사회는 불확실하다.

그리고 그 이유로 마르쿠제는 대안으로 개인이라는 형이상학적 희망을 위한 새로운 주체를 구상한다.

 

*개인 - 형이상학적 희망을 위한 새로운 주체

예술적 삶의 기초인 비판적 의식과 삶의 방식을 잠재적으로 실현하는 자

일상의 삶의 세부적인 것들을 변경함으로써 개인의 삶은 대안적인 미래를 가능케 하는 수많은 행동들을 통해 현재에 대한 개혁에 헌신하는 예술과 미학의 특징들을 갖는다.

 

*더욱 구체적인 이 방향을 통하여,

마르쿠제는 아도르노의 미학적 이성에서 구체화된 형이상학적 희망을

일상의 삶의 실재들을 돌보는 더 구체적인 실천으로 변형시킨다.

 

아도르노에 의해 구상된 명확하고 합리적인 저항

->마르쿠제의 작업에서 일상적인 저항이라는 실천적인 행동으로 만들어진다.

 

-이 개념적 발전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의미의 실천적인 행동들로 확장될 수 있는 아도르노의 바로 그 인식론적이고 미학적인 철학을 가능하게 한다.

-또 다른, 더 넓은 수준에서, 마르쿠제의 작업은 예술로서의 삶에서 저항의 계기가 분명한 개념적 과정-미학적 이성-뿐만 아니라 또한 기쁨과 공평의 최대화를 목적으로 삼는 일상적인 저항의 행동에 의해서 구성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예술과 미학의 의미를 계속해서 더 상세히 설명함으로써,

마르쿠제는 애원을 넘어서 유효해는 예술로서의 삶에서의 필수적인 차원을 개념화한다.

 

*헤겔,칸트의 철학과 같은 전통적인 비판이론의 관심영역들

+ 마르크스,프로이트,19세기 독일 예술가-소설 작가 와 같은 사상가들의 더욱 실천적인 작업에 의해 영향

->정치와 문화와 관계 맺는 더욱 실천적인 철학적 체계 구상 가능

 

*마르크스

마르크스 체계의 확고하게 정치적이고 저항적인 특징 강조

(아도르노가 주장하는 측면에서 대체로 부정의 사상가로 헤겔에 대한 그의 독해에도 불구하고)

 

헤겔 체계의 긍정적인 기여는

물질적인 조건들과 산업사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안녕에 맞춰진

맑스의 보다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작업에 녹아있다.

 

* 맑스의 유물론과 적절한 사회이론을 연결시키는 두 개의 근본적인 요소

1) 인간의 행복에 대한 관심

2) 그것이 오직 존재의 물질적인 조건들의 변경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는 신념

 

올바른 이론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을 목적로 삼는 실천에 대한 의식이다.

 

틀림없이 그러한 변화된 세계의 목적telos은

부르주아적인 산업주의에 의해 창조된 물질적인 잉여를

사회 모든 구성원들을 위한 양질의 삶이 무엇인지 긍정적으로 다시 구상하도록 만드는 것이 된다.

 

*이성 의 이념 -> 행복 의 이념 (대체)

합리적 사회(맑스이념):

사회조직의 원리를 구성하는 것이

일labor의 보편성이 아니라

모든 개인의 가능성들을 보편적으로 만족시킬 수 있도록 만드는 질서라는 사실을 함축한다...

 

*진보된 산업사회에서 새롭게 우선돼야 할 것

: "행복",

즉 몹시 괴롭고 비인간화하는 일labor이 (만일 모두 제거되지 않는다면) 감소하고,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끊임없이 충족되며,

여가, 섹스, 그리고 기쁨의 기회들이 최대화되는 삶으로 정의된다.

 

*by 생산성이 "모든 개인의 보편적 만족"을 지향하는 산업의 산물에 대한 목적들을 재규정함 (not by 이익의 최대화)

 

*마르쿠제의 마르크스에 대한 비정통적 독해에서 행복, 만족 같은 범주들: 위계상 특권

 

 

*인간의 행복에 관한 진심과

개인의 해방을 획득하는 데에 필요한 구체적인 물질적 조건들에 대한 이해

이 모두는 마르쿠제 사유에 가득하다.

 

**프로이트

- 마르쿠제는 프로이트의 "현실원칙"이라는 개념을 진보된 산업사회에서 "수행원칙"으로 재해석한다.

- 억압적인 합리성에 대한 프로이트의 강조는 보존하되 그것을 생산성의 현대적 기준에서 고려

 

*프로이트의 현실원칙 적용

현실원칙 개념을 경제적인 생산성의 측면과 삶을 개선하기 위해 구체적인 정치적 목표들을 억압하는 측면에서 재해석

 

*마르쿠제 수행원칙

: 진보된 산업사회에서 인간 존재자와 그들에 수반되는 일labor과 여가에 대한 조작화를 표상하는 상위용어

*수행원칙의 극복

:마르쿠제 작업의 주요 관심사항 중 하나로서 그가 예술로서의 삶을 명확하게 표명하는 이유

 

대안적 현실 구상하는 수단으로서 미학 사용하는 거라면,

그 현실은 불가피하게 우리의 물질적 행복과 심리-사회적 안녕 둘 다에 관심을 가질 것

 

*성적인 신체 - 수행원칙의 주요한 억압의 현장

수행원칙이 자기에 대한 비합리적이고 비-조작화된 표현들을 제한하고자 하는 만큼, 수행원칙의 주요한 억압의 현장은 성적인 신체이다.

 

*성기-중심적 신체에 대한 일상화된 억압

신체에 대한 일상화된 억압의 부분은 성적 관심 자체의 바로 그 영역을 제한하는 일을 포함하고, 따라서 억압은 성기-중심적으로 작동한다.

“리비도는 신체의 한 부분에 전념하게 되고 나머지 대부분을 일labor의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남겨둔다.”

 

성기를 향해 있는 성적 관심은 신체의 나머지를 탈성화시킬 뿐만 아니라

동시에 성기 외의 부분을 조작가능하게 만드는 중대한 결과를 초래한다.

 

* 따라서, 신체의 탈성화를 초월하는 것

: 즐거움을 회복하는 일에 대한 명령이 될 뿐만 아니라

수행원칙을 전복시키고자 자기를 탈조작화하는 수단이 된다.

 

성적 관심에 대한 이 새로운 형식은 성기-중심적이지 않으며,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신체의 다른 부분들로 확장될 것이다.

적어도 이 설명에서 즐거움의 특정한 형식은 저항의 행동일 것이다.

 

* 프로이트에 대한 창조적 독해 - ‘환상

 

합리적인 현실과 현재의 현실 사이의 괴리는 개념적 사유에 의해 연결될 수 없다.

현재, 목적으로서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간직하기 위해서, 환상이 요구된다.”

 

*마르쿠제의 초기 작업뿐만 아니라 중기 작업에서도 환상

분리되어 있는 이상과 현실의 영역이 인식적으로 연결되는 정신의 과정으로 일관되게 이해된다.

 

*프로이트주의자들의 환상

: 꿈의 상태와 합리화된 사회에서의 꿈의 억압과의 연결

*마르쿠제의 환상

: 마르쿠제에게 이 작동 규정(환상)은 창조성, 가상 그리고 꿈의 산물들을 현실의 산물들과 상상적으로 연결하는 모든 정신적 과정을 포함할 정도로 확장되고 일반화된다.

 

“환상은 전체 정신적 구조에서 가장 결정적인 기능을 한다.

그것은 무의식의 가장 깊은 층위들을 의식의 최상의 산물들(예술)과 연결하고 꿈을 현실과 연결한다.”

 

여기서 예술: (그 자율성을 통하여) 현재의 현실을 초월하고 미래의 실재를 가리킬 수 있는 환상에 대한 최상의 표현

 

서로를 용납하지 않는 개별화의 원리Principium individuationis의 세계에서 그리고 그 세계에 반대하여,

상상력은 인류와 연합하고 ‘태곳적’과거와 연합하여 모든 개인의 주장을 보존한다.

근본적이고 독립적인 정신의 과정으로서 환상은 고유한 경험, 즉 서로를 용납하지 않는 인간의 현실에 대한 극복이라는 경험과 일치하는 참된 가치를 가진다.

상상력은 개인과 전체의, 욕망과 실현의, 행복과 이성의 화해를 구상한다.

 

*마르쿠제 상상력과 환상 개념

: 예술적인 작품의 극복 (그것의 창조X)

 

예술상상력과 현실을 화해시키는 능력을 낳는다.

그러나 그러한 사례들은 환상이 예술적인 표상 배후에 있는 생산적인 힘이라는 생각과 아주 유사하다.

“상상력의 진리는 환상 자체가 형태를 취하고 그것이 지각과 이해의 우주를 창조할 때-주관적이면서 동시에 객관적인 우주를 창조할 때 처음 실현된다. 이것은 예술에서 발생한다.”

 

예술에서의 환상의 인과적 역할에 대한 이 외견상의 혼란은 마르쿠제 미학에서 예술과 환상의 복잡한 관계를 착각하게 한다.

 

예술상상력의 산물이며 또한 상상력의 가장 순수한 표현의 형식이다.

환상마치 예술이 적절하게 환상을 표현하는 것처럼 예술을 낳는다.

 

*환상과 상상에 대한 마르쿠제의 작업은

효과적으로 프로이트의 작업과 비판이론의 미학에 대한 그의 종합을 표현한다.

 

환상(프로이트)와 상상을 비판이론의 미학에 도입함으로써 마르쿠제는

예술부정적인 내용에 대한 사회문화적인 표현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사회에 의해 부과된 이상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의 구분을 연결하려고 시도하는 의식적이고 무의식적인 가능성들에 대한 표현으로 만드는,

예술작품이라는 현상에 대한 더 넓은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예술에서 환상과 그것의 표현은

애도하는 일과 고통을 표현하는 일의 부분일 뿐만 아니라,

꿈속에서 묘사된 추모, 즐거움, 대안적인 현실들과 깊이 연결된다.

 

프로이트, 맑스, 아도르노에 대한 마르쿠제의 구성적인 독해는

예술로서의 삶의 부정적인 차원을 건설적이고 다양한 방향들로 확장한다.

 

*예술가-소설

미학을 그것의 사회적·역사적 의미를 넘어 확장하려는 이 욕망은

전체적으로 보아 마르쿠제의 프랑크푸르트학파 참여 이전 작업인 19세기 독일 문학에서의 “예술가-소설”Kunstlerromanen의 작업에 대한 그의 논문에서 가장 명확하게 이해될 수 있다.

 

거기서 예술가는 존재의 이질적인 영역들을 모아 예술가 그 자신에 의해 구체화된 이상적인 삶으로 만드는 인물로 이해된다.

 

삶은 문자 그대로 예술이 된다. 예술가의 어려움은 다음과 같이 문제화된다.

“[예술가는] 이상과 현실, 예술과 삶, 주체와 객체가 서로 완전히 대립하는 문화의 저주를 견뎌낸다.”

 

이런 대립을 화해시키는 것은 대부분 표면적으로는 소설의 형식으로 주체와 객체의 이중성을 극복하는 환상에 대한 예술가의 작업이 된다.

그러므로 예술가의 이상적인 삶은 삶과 예술의 결합으로 구상된다.

 

마르쿠제는 19세기 소설가들에게서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현재 상황들의 구분과 고립을 극복하게 만드는 상상력, 초월성 그리고 실존적 헌신의 심오한 결합을 본다.

 

회고적으로 그의 후기 작업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통일되고 즐거운 실존을 성취하기 위해 환상, 상상력, 그리고 세계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융합시키는 사람은 예술가-소설가이다.

 

마르쿠제가 니체와 알베르 카뮈에 동조하는 어조로 언급하는 것처럼,

“예술은 삶에 헌신하게 되었고, 오늘날의 경향을 인정하게 되었다. 예술가는 실천가가 되었고,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투사가 되었다.”

 

뚜렷이 구분되는 실존의 양 극단, 주체와 객체, 삶과 예술은 예술가-소설 작가 그 자신의 삶과 상상력에서 통일된다.

 

니체의 이상적인 유형들과 유사하게 예술가-소설 작가는 실존적으로 종합을 성취한다.

 

그의 논문에서 예술가-소설 작가라는 인물로, 마르쿠제는 그의 나머지 작업에 숨어 있는 실존적인 이상 곧,

부정성, 상상, 위반 그리고 정치적 행동주의가

효과적으로 개인과 결합하는 미학적인 것의 영역을 통한

실존적인 종합을 표현한다.

 

예술과 미학에 의해 발생되는-그리고 이후에 비판이론의 미학의 명확함에 의해 보충되는-부정성실천적이고 사회적으로 효과적이 되기 위해 자기의 고유한 예술을 초월하는 예술가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영향을 미친다.

 

이 경우에는 예술가인 혁명적 주체의 삶에서 환상, 상상력 그리고 저항의 사용은 이후 마르쿠제의 예술적인 삶이라는 개념에 영향을 끼치는 주제들이다.

 

마르쿠제의 초기 작업에서조차,

* 예술적으로 산다는 것

예술작품과 미학에서 발견되는 부정적이고 환상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차원들을 통해

우리의 의식적이고 잠재의식적이며 신체적인 삶을 돌보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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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강님

 

5장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와 예술적 개인

 

 

조작화, 예술 그리고 혁명(176~191)

 

마르쿠제는 예술의 역할에 대한 개념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진보된 산업사회에서의 대립을 진단하고 평가했다. 사회에 대해 적절하게 이해함으로써 사회와 개인은 현재의 상황을 화해시키고 방지하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마르쿠제는 진보된 산업사회에서의 긴장에 대해 사회경제적으로 고찰한다(177).

 

(1) 진보된 산업사회는 예견할 수 있는 미래를 위한 질적인 변화를 억제할 수 있다.

(2) 이 억제를 파괴하고 사회를 파열시키는 폭력과 경향들이 존재한다. 따라서 이런 이질적인 요소들을 화해시키는 다른 사회/개인의 실현은 오직 사회 그 자체 내의 경향들을 조작하고 부정함으로써만 발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혁명은 오직 변증법적으로 기존의 생산방식과 분배방식의 전유와 극복을 통해서만 발생할 수 있다(177).

 

혁명의 목적은 인간 의식에서 대상의 특수성을 회복시키는 것이며, 나아가 사회적, 경제적으로 인간에게 고통을 일으키는 합리성과 생산조건들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때 현실을 긍정적인 변증법으로 극복하려면 사회의 구성원 모두를 위한 삶의 기준들의 평등한 구조를 지향하는 정치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며, 이 단계 이후 사회적 재생산에 동기를 부여하는 “욕구들”이 긍정적으로 변화될 것이다. 마르쿠제는 “변형은 보편적인 혁명, 다시 말해 지배적인 조건들의 전체성을 역전시키고, 다음에는 이것을 새로운 보편적 질서로 대체하는 혁명을 요구한다”라고 주장했다(178).

 

 

혁명의 윤곽들

 

첫 번째는 생산수단들에 대한 변화와 긍정적으로 그 생산수단들을 보다 만족스럽고 즐거운 일의 형태로 방향수정하는 일이다. 이것은 표면상 일을 탈인간화하는 형태들에서 인간을 해방시킬 것이고, 노동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자유시간의 양을 증가시킬 것이다(179).

 

두 번째는 이러한 해방으로 노동자들은 그들 본래의 노동시간을 초과하여 일하는 데 있어서 자유로울 것이며, 아마 시장과 문화산업에 의해 관리되는 것들에 대항하여 그들 자신의 여가활동을 선택하는 데에서 더 자유로워질 것이다(180).

 

세 번째로 해방된 인간성에 의해 발견되는 “새로운 필요들”은 대안적인 활동과 의식을 창조할 뿐만 아니라 진보된 산업사회의 특징이 되는 억압된 개인과는 다른 종류의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창조할 것이다. 이 새로운 개인은 “만들어진 욕구”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 자신에 의해 자유로이 선택된 욕구들에 근거할 것이다(180).

 

이러한 새로운 개인들은 자신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필요들을 성장시키고, 연대함으로 그들 자신의 세계를 만들 수 있게 하는” 혁명과 해방의 더 나은 형태들을 위한 기초가 된다. 따라서 탈인간화의 완화는 새로운 필요들과 해방을 실현하는데 필수적이고, 해방은 근무조건들과 삶의 조건들을 바꾸는 구조적인 사회 변화의 초래를 요구하는 비판적 공간을 생산하는 데에 필수적이다. 오직 이 이중적인 운동을 통해서만 개인들은 현재의 탈인간화로부터 자유로운 “그들 자신의 세계”를 만들 수 있다(180-1).

 

그러나 마르쿠제는 이러한 변화의 전망에 대해 희망적이면서도 회의적이다(181).

맑스적인 변증법의 사유가로서 마르쿠제는“억압적인 문명의 바로 그 성취들이 억압의 점진적인 폐지를 위한 전제조건들을 창조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을 주장해야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해방에 반대하는 전체성의 부정적인 운동을 인식하는 자로서 그는 해방이 가장 현실적인 것이고, 모든 역사적인 가능성들의 가장 구체적인 것이며 동시에 가장 합리적이고 효과적으로 억압된 것-가장 추상적이고 동떨어진 가능성이라는 점을 주장한다(181).

 

이때 사회의 반대되는 움직임에 맞서는 유일한 보루가 사회의 운동과 그것에 반대되는 운동을 의식하고 있는 비판적 의식의 양성이다(181). 따라서 찰스 라이츠가 지적하는 것처럼 혁명적인 과제는 교육의 과제이며 진행 중인 의식의 해방 그리고 인간성의 물질적인 해방의 수단과 목적에 대한 전술적인 평가에 달려있다. 이 지점에서 아도르노와는 달리 마르쿠제는 이론으로의 전회를 행동을 통해서 시작한다. 미학에서 기장 방대하게 발견되는 의식의 변화는 기능적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한 이차적인 필요로 이해된다(182).

 

따라서 사회의 개혁은 개인과 사회를 위한 새로운 존재방식을 가져와야한다. 다시 말해 비판적 의식의 양성은 진보된 산업사회들을 지배하는 물질적인 조건에 저항하는 방식의 기초를 놓을 수 있다. 이때 이것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개인들이 사회에서 살고 일하며 재창조하는 방식의 개혁에 대한 것이기도 한다. 이때 미학은 대안적 현실에 대한 가능성을 미리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즐거움, 더 높은 삶의 수준, 그리고 고통의 감소를 지향하는 새로운 세계의 실현과 개념화에 관여하며, 예술과 미학은 세계의 실천적인 개혁을 위한 기초를 형성한다(183-4).

 

나아가 마르쿠제를 아도르노를 구별하는 점은 예술이 정치적인 투쟁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는 명령을 포함시킨다는 것이다. 더욱더 명시적인 언어로 “예술작품은 현실의 지배적인 질서를 변형시킨다.“ 마르쿠제는 예술을 정치적인 행동에 필요한 비판적 의식의 발전에서 주요한 요소로 만듦으로써 그것을 혁명적인 기획의 한 부분으로 이해한다. 아도르노가 미학과 부정 변증법이 형이상학으로 끝나는 데 만족했던 반면에, 마르쿠제는 정치저인 차원을 미학의 핵심에 위치시킨다(185).

 

 

예술의 자율성과 감각성의 미학

 

예술을 미학을 정치적이고 혁명적인 과제의 핵심에 위치시키는 것은 예술작품의 자율성을 위협할 수도 있지만, 마르쿠제는 이 “실천에서 예술은 그 자신의 본질적인 요건을 버리지 않으며 그 자신의 고유한 차원을 떠나지 않는다. 예술은 계속 비-조작적이다”라고 말한다. 자율적인 것으로서 예술은 현재 인식 가능한 것의 바깥에 놓여 있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가능성을 나타낼 수 있다. 다시 말해 세계를 구원하는 것으로서 예술의 역할은 그것의 자율성과 그것의 가상적인 본성에 의존한다(185-7).

 

마르쿠제의 작업이 아도르노의 의미에서 매우 신학적이고 부정적인 미학에서 자율적인 예술의 실천적이고 정치적 차원들을 포괄하는 것으로 이동하는 것은 예술이 정치적 가능성은 예술이 삶과 존재의 새로운 가능성들을 투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가능하다. 마르쿠제는 예술의 부정적이고 유토피아적인 차원들을 지양하는 보다 실천적으로 정의된 미학의 개념인 감각성을 포함하도록 미학의 본성을 개방시킨다(187).

 

그의 책 『해방에 대하여』에서 미학적이라는 용어는 그것의 ‘감각들과 관련’ 그리고 ‘예술과의 관련’이라는 이중적 함축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예술과 관련하는’ 미학은 아도르노의 미학에 적합한 영역이며, 두 번째 ‘감각들과 관련’된 미학은 한층 구체화되고 현실화된다(187).

 

이때 예술의 두 영역은 사회와 혁명적인 명령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들, 새로운 규제적인 이상들을 투사하기 위해 서로 의존한다. 첫 번째 정의의 미학은 자율성을 보존하고 미학적 이성의 실천을 통해 비판적 부정성을 제공하는 기능을 하며, 그에 반해 감각성의 미학은 감각, 일, 그리고 즐거움과 관련하는 세계 안에 그러한 부정성이 작동하게 만든다(188).

 

이 감각성으로의 미학은 마르쿠제로 하여금 후기-맑스적인 사유에서의 결정적인 빈틈, 즉 비-조작적이며 비-경제적인 측면에서의 혁명적인 실천의 목적을 정의하는 것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만든다. 미학적 감각성으로 마르쿠제는 미학적인 것의 부정적이고 유토피아적인 차원들을 보존할 수 있고 그와 동시에 즐겁고 비-억압적인 삶의 방식들의 형태로 미학에 대한 긍정적인 표현도 주장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두 번째 차원은 “자유로운 사회에 대한 일종의 기준”이 된다(189).

 

감각적인 차원은 이성의 질서에서 아직 드러나지 않은 가능성을 드러내고 현재의 체제 안에 잠재하는 보다 유쾌한 가능성을 가리킨다(189). 이러한 미학적 개념은 합리성뿐만 아니라 현대의 억압적인 상황과 진을 빼놓는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물리적 조건들도 초월할 것이다(189).

 

또한 감각적인 사태는 예술작품에서 단순하게 표상되는 것이 아니라 “해방되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감각성은 예술작품의 목표일뿐만 아니라 예술작품에 정치적 힘을 부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술은 인간이 이전과는 다르게 느끼고 볼 수 있도록 만들기 때문이다(190).

 

미학은 예술작품에서 발견되는 비판적이고 자율적인 정신을 고취시키는 반성(미학적 추론)일뿐만 아니라 느끼고 볼 수 있는 확장된 능력(실천적 의미의 행동들)이다. 다시 말해 마르쿠제의 미학은 저항과 부정성의 형태를 전체로서의 미학에 포함시키려는 이론적인 노력을 의미한다. 미학적으로 생각하고 사는 것은 사유와 표현의 감각적인 형식에 대한 요구이다(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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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지원 기획세미나 : 건축, 도시공간, 그리고 사회적 삶 | 2017년 5월 19일 발제자: 손보미
텍스트: 재커리 심슨[예술로서의 삶] 김동규,윤동민 옮김, 갈무리, 191~212

 

 

["예술작품으로서의 사회"와 혁명적인 주체의 추구]
 
1 마르쿠제는 감각성으로서의 미학이라는 개념을 발전시키면서 미학을 확장시킨다.
마르쿠제의 이러한 작업에 의해, 미학적 추론은 이제 감각을 해방시키고 억압의 다양한 형식들을 통해 지속된 고통을 감소시키는 과제를 떠맡는다.
마르쿠제에 의해 부과된 미학적 추론의 과제는 "질적으로 다른 사회(미학적 사회)의 실현"이라는 기획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된다.  (191)
 
2. <마르쿠제의 "미학적 사회">
단순한 충족과 풍요를 넘어서고, 사회가 개인의 물질적, 감각적 그리고 정신적인 필요들을 만족시키는 만큼 사회는 "미학적"이 된다.
미학적 사회로의 이행은 사회(현재의 문명) 자체 내에 잠재되어 있지만 탐구되지 않은 가능성들을 통해 일어날 수 있다.
(192)
미학적 이성의 영향 아래, 과학기술은... ...실존의 문명을 지향할 것이다. 진보된 사회에서 생산된 것의 여분은 부의 축적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이고 정신적인 필요들의 만족을 지향할 것이다. (193)
"과학기술과 예술의 융합, 일과 놀이의 융합에 대한 발상, 삶의 세계에 대한 가능한 예술적인 형성에 대한 발상, 이러한 두 차원의 가능한 통일은 예술작품으로서의 사회를 예견할 수 있다."(194)
 
3 과학기술이 어떻게 테크네[기예], 즉 개인의 이해관계의 만족을 지향하는 창조의 예술이 될 수 있을까?
과학기술의 이러한 변화를 성취하기 위해, 마르쿠제는 우리가 과학 기술적인 합리성 그 자체를 변형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 미학적 추론이 필요
미학적 추론에의해 과학기술적 합리성이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 과학 기술적 합리성, 즉 세계에 대한 조작적인 방향을 (문명의 진보나 물질적 부의 증진이 아닌) 느낌과 즐거움에 근거한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 →  대상들과 "유희"할 수 있는 능력. (196)
 
4 <마르쿠제의 "새로운 현실 원칙">
예술적인 사회의 출현은 예술적인 합리성과 미학적인 테크네[기예]가 서로 동시에 발전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미학적인 것을 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원칙이 되도록 만든다. (197)
새로운 현실 원칙의 출현 아래서 새로운 감성과 탈승화된 학문적 지성은 미학적 에토스의 창조로 결합될 것이다. 
 
5 <마르쿠제의 맑스주의가 다다른 막다른 골목>
"새로운 현실 원칙"에 의한 "미학적 사회"가 어떻게 발생할 것인지에 대한 물음은, 변증법적인 맑스주의자로서 그 사회를 누가 발생시키는가에 대한 물음, 즉 혁명적인 주체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으로 바뀐다. 이 부분에서 마르쿠제의 사유는 회의적이다. 마르쿠제의 비판이론에 의하면, 진보된 산업사회에서 혁명적인 주체가 지속적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198)
20,21세기의 서구 사회들은 시민들의 "필요들"을 충족시켜왔다. 그 과정에서 "필요들"은 "정부와 대기업이 후원하는 관리되는 문화 활동들로 바뀌게 된다." 이는 그들(정부,대기업)의 행정권을 대중들의 영혼으로 확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소외되고 억압받지만, 만족이라는 가상(안전하다는 가상, 변화하고 있다는 가상)을 창조함으로서 그 필요들(행복과 안녕)이 충족된다. (199)
 
6 <마르쿠제의 주체 - 개인>
마르쿠제의 개인은, 사회적으로 헌신적이며 변화에 대해 예비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개인은 본질적으로 부르주아적인 특징들이 강화된 존재이다.  그 개인은 사적이고, 자기를 지향하며 그/그녀의 해방에 대해 명백하게 의식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계급적인 특성을 초월함으로써만, 해방과 사회적 혁명의 필요에 대해 의식하게 될 수 있다. ....... 마르쿠제는 회복되고 개혁된 미래에 대한 그의 맑스주의적인 희망을 미학적으로, 합리적으로 살아갈 수 있고 진보된 산업사회의 억압을 넘어서는 개인의 능력에 맡긴다. (202)
 
7 <마르쿠제의 실천적인 이탈에 대한 명령>
마르쿠제에 의해 제시되는 (혁명의)실현의 수단 중 하나는 미학에 맞추어 자신의 필요들을 규정학 그 필요들을 자신의 삶에서 실현하는 개인의 능력이다. ..... 따라서 현대의 예속 상태는 오직 실천적인 이탈을 통해서 파괴될 수 있다. (203)
 미학적 삶은 정치적인 삶이 된다. 사회 내의 지배적인 형식들을 포함하는 억압적인 정치적인 제도를 거부하고 거기서 이탈함으로써, 우리는 완전히 미학적인 것으로 특징지어지는 삶을 창조하고 형성하기 시작할 수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미학은 실천적인 이탈의 (부정적인 것으로서, 거절의)수단으로뿐만 아니라 (즐겁고 감각적인 삶이라는)목적으로서도 언급된다. (204)
 
8 <실천적 이탈미학적 변형(일상의 감각화)에 대한 요청>
마르쿠제의 이러한 요청은 우리 실존의 모든 측면을 개혁하는 근본적인 실천적 효과를 가진다. 그의 글 곳곳에는 관리되는 세계로부터의 지속적이고 세심한 미학적 해방과 금욕적인 이탈에 의해 개방되는 감수성에 대한 일관된 명령이 존재한다. (205)
마르쿠제에 의하면, 사회 개혁을 위한 토대는 진보된 산업사회의 부와 수단적인 합리성에 대한 거절에서 시작한다. 문화, 물질주의 그리고 정치의 복잡한 관계를 "해체함"으로써만, 우리는 사회 그 자체의 물질적인 토대들을 바꾸는 체계적 변화를 정초하기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변화는 미학적 추론과 그것의 일상적인 대상의 가치에 대한 관심을 통해 시작해야 한다. ...... 또한 오직 실존의 세부적인 내용들(우리가 먹고, 재배하고 구입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 왜 하는지에 대한)을 개혁함으로써만, 미학적으로 특징지어진 저항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할 수 있다. 
 
[결론]
 
9 마르쿠제는 아도르노의 많은 중심적인 개념적 범주를 절묘하게 수정하고 초월함으로써, 미학에서 발견된 저항과 부정성이 미학적 삶을 구성하게 될 수 있는 방식들을 보여준다. 또한 그는 미학적인 것의 영향 아래 사회의 재구성을 위한 실천적인 구조의 윤곽을 보여주었다. 비록 그는 그러한 혁명의 행위자들을 결코 완전하게 명시할 수는 없었지만, 그의 실천적인 요소는 아도르노와 마르쿠제의 이론적인 작업의 가장 중요한 결과물이다.(208)
 
10 <실천적인 요소>
"미학적인 삶"의 본질적인 것은 매일 일어나는 현실의 사소한 일들을 더 정의롭고 감각적이며 정직한 사회의 형성을 목표로 교정하고 다시 공식화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이다. 마르쿠제가 이야기 하는 실천적인 요소, 즉 미학적으로 일하고 말하고 요리하고 소비하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것이 끊임없는 경계와 변형의 대상이 되는 철저한 실존의 아스케시스[훈련]을 나타낸다. (209)
 
11 아도르노와 마르쿠제에 의해 개방된 미학의 부정적이고, 형이상학적이며 감각적이고 실천적인 차원들은 니체가 그의 학문에 대한 분석에서 나타낸 예술로서의 삶의 해체적인 계기에 대한 충족이다. 예술로서의 삶에서 부정적인 계기는 성좌적이고 감각적인 사유에 대한 설명을 개인의 삶의 일상적인 양상들에서의 실천적이고 구체화된 혁명에 대한 필요와  연결한다. (210)
 저항은 긍정과 창조성으로 이어진다. .... 아도르노와 마르쿠제 같은 사상가들의 부정성과 저항은 긍정의 다른 형식들을 위한 공간을 창조한다. 때문에, 저항은 이중적인 의미에서 (그자체로 긍정적인 것으로서 그리고 해방적인 것으로서) 예술로서의 삶에 있어 결정적이다.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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