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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미학_삶과 예술

5/12 [예술로서의 삶]4장 발제문 모음

발제문 조회 수 210 추천 수 0 2017.05.12 19:36:41

다지원 기획세미나 : 건축, 도시공간, 그리고 사회적 삶 | 2017년 4월 28일 발제자: 파일로
텍스트: 재커리 심슨[예술로서의 삶] 김동규,윤동민 옮김, 갈무리, 113-131.

 

저항을 위하여

 

 

1 [마그리트의 인상주의적 작품] 예술은 자신의 완전한 자율성과 대개는 부조리함으로 보통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견해를 주장할 수 있다.(114) ..그렇게 함으로써 대단히 정치적이고 이상적이다.(115)

 

 

1.1 [이 장의 관심사] 예술은 어떻게 정치적인 가치를 가지는가? 더 나아가, 예술의 혁명적인 가치는 어떻게 그 가치가 실현되는 세계와 그 가치의 분리에 근거하는가? 추상적이고 자율적인 예술이 어떻게 더 나은 세계를 지시할 수 있는가? 부정적인 예술이 어떻게 또한 긍정적이 될 수 있는가?(115)

 

 

2 이 장과 이후의 장들은 니체의 예술로서의 삶에 대한 예비적 개념화에서 두 가지 결정적 특징을 취한다. 첫 번째 특징은, 예술적 삶의 3요소(학문적 정신에 대한 비판적 검토, 경험 자체에 대한 직시, 미학적인 것의 종합). 두 번째 특징은 예술로서의 삶이 사유와 미학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강화함으로써 작동하며, 상호 간에 서로 영향을 끼친다는 점. (116)

 

 

2.1 학문에 대한 니체의 정신과 사유 그 자체에 대해 사유하라는 비판이론의 요구를 연결시킴으로써, 니체의 이상적 유형들의 냉철하고 합리적인 요소는 몹시 정치적이고 저항적이 된다.(117)

 

 

2.2 아도르노와 마르쿠제에게 세계는 예술을 필요로 하는데, 그것은 예술이 ‘잘못된 기관들’과 ‘잘못된 필요들’을 통해 만들어지는 가상들의 ‘장막’과 거리를 두도록 만들기 때문이다...미학적 추론[비판적 사유와 예술의 공통점]...그러나 예술은...절대로 완전하게는 주어질 수 없는 것 또한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렇게 하여 예술은 이성을 초월하고 혁명적이 되며 미래 걔혁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설정한다. (117-118)

 

 

2.3 홀로코스트. 아도르노의 미학적 이성에 대한 개념화 배경.(118)

 

 

3 현대는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본 것처럼 ‘세계가 인간의 대상으로 만들어지는 시대’이다. 그리고 마르쿠제가 주장하는 것처럼, 이러한 대지와 타자들을 지배하는 확장된 능력은 경험 그 자체의 변형으로 이어졌다.(118-119)

 

 

3.1 아도르노와 마르쿠제 두 사람에게, 전후 시기에서의 잠재적인 저항의 가장 중요한 점은 현대 공안 정국의 발생과 국가사회주의 국가가 전형적으로 보여 주었던 인간의 문화적이고 지적인 행동에 대한 관리이다.(119)

 

 

3.3 20세기 사유에서 철학의 역할 : 진단적, 치유적, 저항의 요소들을 밝히고 방대한 대안들의 윤곽 제시(121)

 

 

4 [철학의 비판 기능 회복 시도] 비판이론가들은 서구사회에서 부정의의 주된 근원을, 지배를 원하는 데카르트적 주체와 이 주체와 축약가능하고 조작가능한 객체들의 대립 사이의 총체적인 불균형으로 이해했다....철학이 치유적 기능을 제공할 수 있다면, ..주체와 객체의 ‘잘못된 동일성’을 만들어 내는 모든 것에 대한 대상화를 극복함으로써.. (121)

 

 

4.1 니체의 학문 개념에서 비판 개념으로 그리고 가상으로서의 예술에서 혁명으로서의 예술로의 변형을 드러낸다.(123)

 

 

사유의 역할

 

 

5 객체를 우선시 함으로써, 데카르트적인 동일성의 이성은 정지된다. 즉 주체와의 구체적인 긴장 속에 처해 있는 객체는 자기의 고유한 정체성을 주체의 정체성 바깥에서 되찾게 된다...객체가 아도르노에게 우선적이긴 하지만, 그것은 개념들을 통해서만 접근될 수 있다.(124)

 

 

5.1 객체는 우선적이며 주체는 합리적이지만 제한된 것으로 주어지는 주체와 객체의 분열은 적절한 사유와 철학 일반의 필요불가결한 것으로 남아 있다. 주체와 객체의 이원성은 전체이고자 하는 사유의 내재적인 주장에 대해 비판적으로 고수되어야 한다.(125)

 

 

6 사유는 개념들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객체 자체와 개념들을 반복적으로 비교평가하는 자기 의식적인 실천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체가 순수한 개념화에 계속 저항하지만 말이다. 이것은 객체에 개념들의 성좌들을 쌓아 놓는, 실증주의와 관념론을 넘어서는 사유의 제3의 가능성을 형성한다.(126)

 

 

6.1 부정변증법은 표면상 쉽게 납득할 수 있는 확립된 현실에 대한 우리의 파악의 기반을 약화시킨다.(128)

 

 

6.2 아도르노의 경험 개념이 ‘포괄적인 집중’으로 이해되는데, 거기에서는 철학적인 명민함의 척도는 우리가 객체에 몰두하는 정도이다.(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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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지원 기획세미나, 건축, 도시공간 그리고 삶. ∥2017년 4월 28일∥발제자: 혜선

재커리 심슨, [예술로서의 삶] 김동규, 윤동만 옮김, 갈무리,  113-131쪽.

 

4장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부정적 사유와 유토피아

 

<저항을 위하여.>

 

1. 니체의 말대로, 예술로서의 삶이 해방과 자기 규정을 조망하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저항적인 성향과 대안적인 세계에 대한 창조를 통해 그렇게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 장과 다음 장은 비판적 사유에서 저항으로의 운동, 부정성에서 긍정적인 변형으로의 이행을 자세히 검토한다. 118

 

2. 만일 우리가 사회적이고 시민적이며 개인적인 회복을 위한 창조적인 공간을 조성할 수 있다면, 그것은 현재의 모순적인 방편들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진보된 산업사회의 증대된 부와 그것이 인간의 존재 방식들을 제한하고 심지어 억압하는 방식들을 통해서 말이다. 120

 

3. 만일 비판이론과 철학의 비판적 기능을 회복시키려는 시도가 진전될 수 있다면, 그것은 유럽적 사유의 원천들과 현재 그 사유의 한계를 통하여 그렇게 해야 한다. 

 

4. 비판이론가들은 1930년대에 이미 서구사회의 부정의의 주된 근원을, 지배를 원하는 데카르트적 주체와, 이 주체와 축약가능하고 조작 가능한 객체들의 대립 사이의 총체적인 불균형으로 이해했다. 

 

5. 데카르트적 코기토로 시작된 초월적 주체의 발생은 과학기술과 학문들에서의 엄청난 진보와, 천연자원 등의 것들을 지배 통제라는 우리의 능력과 결부된다.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마르쿠제에게 서구 역사는 점점 더 조작가능해지는 객체에 대한 초월적 주체의 확장을 기술하는 것이다. 121

 

<사유의 역할>

 

1. ...객체의 존재는 합리적인 주체의 존재와 구분될 수 없고 그것과 동일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 잘못된 주객 동일성을 파기하는 것은 비판이론가들, 특히 아도르노의 독창적인 직관이다. 

 

2. 주체와 인식된 객체의 잘못된 동일성에 반대하는 사유는, 억압적이고 정의롭지 않은 사유방식과 존재방식의 해체를 시작하는 수단이 된다. 

 

3. 현재 지각하고 있는 주객 동일성을 전복시키라는 명령은 객체가 주체로 지양되고 변형된 것으로 지양되며 그렇게 함으로써 주체와 객체의 긴장을 다시 도입하는 헤겔의 변증법을 “고정시키려는” 갈망을 나타낸다. 123

 

4. 아도르노는 그의 기획의 규범적인 차원들을 다음처럼 언급한다. “변증법은 비동일성에 대한 일관된 의식이다.” 왜냐하면 객체가 자기의 고유한 존재를 되찾는 것은 오직 비동일성, 즉 나 자신의 바깥에 있는 객체에 철저하게 전념하는 일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5. “존재자가 매개적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오직 개념을 통해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개념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며, 단순한 소여상태에서부터 시작해서는 안 된다.” 124

 

6. 아도르느는 변증법적일 뿐 아니라 개념적인 매개 일반의 한계를 인정한다. 객체들과 특수성에 대한 그의 성향 때문에 변증법은 모든 가능한 개념화를 넘어서며 그것에 앞서는 객체의 잔여에 의해 본질적으로 제한된다. 즉 어떠한 개념이나 개념들의 집합도 객체를 남김없이 설명할 수 없다는 말이다. 125

 

7. 객체는 결코 완전하게 도달되지 않는 이해가능성의 지평이다. 

 

8. 객체에 대한 존중 가운데 개념을 사용함과 동시에 개념에 대한 양쪽 한계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사유는 개념들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객체 자체와 개념들을 반복적으로 비교평가하는 자기 의식적인 실천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 객체가 순수한 개념화에 계속 저항하지만) 

 

9. <부정 변증법>에서 객체에 개념들의 “성좌들(constellation)”을 쌓아 놓는, 실증주의와 관념론을 넘어서는 사유의 “제3의 가능성”을 형성한다. 이런 성좌들은 객체를 동일성의 사유의 전체성에 종속시키는 일 없이 사유하기 위한 최고의 선택지. 

 

10. 성좌들은 객체에 대한 우위성을 회복시키고 대상화하는 사유방식들을 단념한다. 126

 

11. 성좌적인 사유는 우리로 하여금 규격화하는 사유의 형식들에 ㄹ저항하고 더욱 정의로운 사유방식을 위한 공간을 개방하도록 만드는 과정을 시작할 수 있게 만든다. 

 

12. 부정 변증법(negative dialectics) - 변증법을 통하여 객체에 우선성을 부여하는 방법. 끊임없이 주체와 객체의 대립과 긴장을 이해함으로써, 변증법은 주체를 객체에게 넘겨주고, 객체의 역사, 고통 그리고 비동일성에 대한 관점을 가능하게 한다. 127

 

13. 부정 변증법은 그것의 부정성을 변증법적인 것의 내부에서부터 드러낸다. 128

 

14. 다르게 사유하고 비동일적으로 사유하는 과정은 “경험”을 그리고 타자와의 실재적이고 비개념적인 관계를 요구한다. 그래서 아도르노에게 정의와 해방은 추상적일 뿐만 아니라 실천적인 것으로도 여겨진다.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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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미학 그리고 이것들과 사유의 관계

 

예술의 “본성”

 

-  아도르노에게 … 예술에서 그리고 예술의 본성에 대한 미학적인 반성에서 발견될 수 있다. 왜냐하면, 적   어도 훼손 되지 않은 객체에 대한 진정한 경험이 구상될 수 있는 장소가 경험이기 때문이다. 오직 에술과 미학에 대한 사유의 종합을 통해서만 사유는 진정으로 윤리적이 될 수 있다. (132)

  • “예술은 심상의 세계를 모방하는 것이며 동시에 통제의 현식들을 통해 세계를 계몽하는 것이다.” (133)
  • 아도르노에게 예술은 여전히 우리가 불완전한 주체와 객체를 남김없이 쥘 수 있는, 그리고 표현하려는 그 주체의 시도들 사이에서 굳어져 버린 긴장을 볼 수 있는 일차적인 무대이다. (134)
  • “분열과 틀에 박힌 일관성 사이를 오감으로써, 예술작품들은 제약되고 훼손된 역사를 나타내는 내용을 작품의 요소들에 불어넣는다. (135)
  • “단지 표현주의의 형식들이 아니라, 음악의 모든 형식이 침전된 내용을 가진다. 그 침전된 내용에서, 침전되지 않았다면 망각되었을 것과 더 이상 직접적으로는 말해질 수 없는 것이 존속한다 … 예술의 형식들은 역사적인 기록들보다 더 정의로운 인간성의 역사를 나타낸다. (135 주36)
  • 본래적인 예술은 에술이 자신의 내용과 양식 둘 다를 통해서 자기 자신이 되었던 과정을 드러내는만큼 사유를 초월한다. (135)
  • “실재 그 자체보다 더 실재적인” 허구의 세계를 창조함으로써 이의를 제기한다. (136)
  • 예술의 “허구적인” 본성, 그것의 가상적인 - 그러나 실제보다 더 실재적인 - 본성이다.(136)
  • 아도르노에게서, 예술로 하여금 생산적인 실재로부터 자율적으로 남아있게 하고 “경험적인 세계에 반대되는 또 다른 세계”를 마치 이 다른 세계 또한 자율적인 존재였던 것처럼 산출하게 하는 것은 허구적이거나 ‘환영”적인 예술의 특성이다. (136)
  • 성공적인 예술작품은 오직 자기 자신의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자기의 대상에 충실하게 남아있다. “예술은 자울적이면서 자율적이지 않다. 예술과 이질적인 것 없이는, 예술의 자율성은 이뤄질 수 없다.”에술은 실재로부터 독립된 것으로 남아있어야 한다. 예술이 또한 실재를 자기의 표현관계에 포함시키고자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예술이 비록 조작가능한 세계의 일부는 아니지만 “세계”와 접촉하는 가운데 실재를 계속해서 자기 안에 포함시키면서도 실재로부터 계속 배제됨으로써만 예술은 자율저인 것으로 존재할 수 있다. (137)
  • 역사로부터의 자율성이 환영에서 얻어지고 환영은 역사에의 의존을 통해서 얻어진다는 이 중심적인 역설은, 아도르노를 따르면, 본래적인 예술작품을 규정하는 것이다. (137)
  • 예술의 본질은 실재에 너무 많이 의존하거나 너무 조금 의존하는 일 없이 사회적인 비판을 유지하는 능력에 놓여 있다. 그래서 이전의 부정적인 사유와 마찬가지로 예술은 본질적으로 “저항”이다. (138) 
  • 예술은 자기의 사회적인 저항력을 통해 그 스스로 존속한다. 에술이 그 자신을 현실적인 것으로 다루지 않으면, 예술은 상품이 된다. 사회에 대한 예술의 기여는 사회와의 의사소통이 아니라 사회를 극단적으로 매개하는 어떤 것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저항, 즉 내적인-미학적 발전으로 모방없이도 사회적 발전을 재생산하는 저항이다.(138)
  • 성공적인 에술은 현실을 부인하되 그 현실에서 쓸모없는 것이 됨으로써 그렇게 한다. 진보된 산업사회에서 사회적 비판의 가장 참된 형식은 또한 완전히 쓸모없는 것이다. “완전하게 기능적인 세계에서 예술의 기능은 가능 없음이다. 예술의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거나 개입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순수한 미신이다.” (138)
  • 저항은 예술의 역사적일 뿐만 아니라 자율적인 본성이 제시되는 예술의 중심부에 놓여 있다. (139)

 

예술, 객체 그리고 정신

 

-미학적인 태도는 직접적으로 모방이나 억압이 아니라 오히려 모방이 작동하는, 바꿔 말하면, 모방이 보존되는 과정이다 … 궁극적으로, 미학적인 태도는 전율 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 정의되어야 한다. … 주체성이 아직 주체성이 되는 일 없이 발생하는 그 전율은 타자와 관련된 행동이다. … 미학적인 태도에서 주체와 객체성의 그러한 구성적인 관계는 에로스와 지식의 결합이다. (140)

  • 예술은 동일성의 주체와 그 대상의 끊임없이 계속되는 엇갈림을 보여주어야 한다. (141)
  • 예술은 또한 사유의 주된 특징 중 하나, 즉 (성좌처럼) 대상을 오가는 그것의 끊임없는 운동을 지녀야 한다. (142)
  • 아도르노 정신 - 현상이 됨으로써 예술작품은 더욱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예술작품들의 정신이다. … 예술작품들에서 나타나되 예술작품들의 현상과 분리되거나 단순히 그 현상과 동일하다고 간주될 수 없는 것, 다시 말해서, 예술작품들의 사실성에서 비사실적인 것이 바로 예술작품들의 정신이다. (142)
  • 정신은 주체와 객체의 실제화된 긴장이다. (142)
  • 아도르노의 미학이론에서 정신은 결코 실현되거나 “완성”되지 않는다. 정신은 주관과 객관의 군어진 긴장 속에 존속한다. (142)
  • 정신은 예술작품의 주체적인 요소들과 객체적인 요소들을 매개하고, 둘을 결합하여 세계를 개인적인 양식, 표현 그리고 형식에 종속시키는 “미학적 양식화”를 형성한다. (143)  
  • 에술적품의 세계는 … 허구적인 실재이다. (144)
  • 만일 예술이 순수하게 주관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가상을 생산하기 위해 실재를 선취하거나 대상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예술이 순수하게 객관적이라면, 예술은 순수하게 모방적이며, 단지 표상주위에 불과할 것이다. 오직 정신으로서만, 예술은 자기의 바로 그 본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허구를 생산한다. (145)
  • 모든 정신은 …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 것, 추상적인 것을 존재하도록 만드는 측면을 가진다 …. (145)
  • “부정되기 위해, 부자유는 예술 작품에서 실재의 환영으로 표상되어야 한다. 이 환영이라는 요소는 필연적으로 표상된 실재를 미학적 기준들에 종속시키고 그래서 그 실재에게서 실재 자체의 공포를 제거한다.” (145)
  • “환영은 환영적이지 않은 것에 대한 약속이다.” 즉, 가상은 가상을 실재로 변형시키기 위한 가능성이다. (146)
  • 예술작품은 오직 계속해서 확고부동하게 자율적이고 가상적임으로써 그리고 그것의 변증법적인 본성을 유지함으로써, 의미있는 사회비판을 받아들이게 된다. (147)
  • “그러나 당연하게도 모든 예술 안에서 부자유를 느끼는 누구라도 관리기구의 증가하는 힘 앞에 직면하여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주장과 더불어 저항을 그만두도록, 복종하도록 유혹받는다. 반면 그 대신에 다른 것과 유사한 모습으로 그것의 가능성이 또한 밝혀진다.” (147 주 60)
  • 예술은 현재의 실재에 대한 절망뿐만 아니라 그것의 가능한 반대 안에 있는 희망도 표현한다. (147)
  • 사유 그 자체가 점점 더 관리되는 바로 그 순간에 예술이 비판성을 위한 지속적인 피난처를 제공하기 ㅈ때문에 그렇다.(147)
  • 관리되고 훼손된 실재에 대한 저항은 사유의 부정성뿐만 아니라 성공적인 예술작품의 부정성에 달려있다. (148)
  • 사유와 예술은 바로잡힌 세계에 대한 그들의 호소에서 하나가 된다. 그러나 그들의 호소는 단순하게 부정적이지 않다. 주체성의 가상들을 해체하고 객체들의 훼손을 드러냄으로써, 그리고 예술의 경우에는 가상 그 자체가 됨으로써, 사유와 예술은 사유의 대안적인 형식들을 위한 비판적인 공간과 미래를 가능하게 한다.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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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과 구원

 

<미학>

아도르노에게 예술은 진보된 산업사회에서 이성을 보완하는 필연적인 역할을 하며, 때때로 그 이성을 초월한다. 예술작품은 동일성의 이성에 포섭되는 일없이 성좌적인 사유의 본질을 포착한다.(148)

 

그러나 예술은 예술이 지니는 환영적인 특징의 한계들과 그것이 구체적인 사회적 지시 또는 예술적인 대상의 본성을 명시하는 개념들을 가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예술은 객체의 고통에 비추어 그것이 어떻게 보완되어야 하는지를 명시할 수 없다.(149)

 

따라서 아도르노는 예술의 불충분성을 고려하여 예술작품의 이론적인 보완으로서 미학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예술은 본성적으로 모호하기 때문에 예술과 세계와의 관련을 확인하는 이론적인 분석이 필요하다.(149)

 

그러나 미학은 희망했던 대상과의 동일성을 결코 성취하지 못할 것이다. 미학은 예술작품 안에서 객체를 에워싸야 하며, 이는 모든 예술작품에서 규정하기 힘든 것으로 남아 있는 것을 개념화하려는 구체적이고 끝이 없는 시도이다. 이것 때문에 미학은 객체에 대한 자기 의식적인 탐구이며 이 탐구의 양식화된 대안들이 된다.(150)

 

미학은 예술작품에서의 사회적 실재를 드러내고 객체에 대한 훼손뿐만 아니라 객체의 가능성들 보여줌으로써, 제대로 된 ‘철학’이 결여하고 있는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비판의 과제를 수행한다. 따라서 루디거 부브너가 요약하는 것처럼 “철학은 순수한 예술작품들 안에 이미 담겨 있지 않은 것을 덧붙이며, 실제로 그것들 안에 결코 담겨 있을 수 없는 것을 덧붙인다. 즉, 예술작품의 의미를 현존하는 실재에 대한 부정으로 해서하는 일을 덧붙인다.” (151)

 

예술은 철학을 통해서 완전하게 사회적, 비판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미학은, 그리고 미학만이, 예술작품의 사회적이고 역사적이며 구성적인 내용을 예술적인 대상의 본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검토될 수 있다. 따라서 아도르노에게 정의롭고 윤리적인 사유는 예술의 자율성과 예술의 정신, 즉 미학적인 이성에 의존하는 사유이다.(151-152)

 

 

<구원>

미학적 이성은 현재의 실재 안에 잠재하는 새로운 가능성들에로 그 자신을 개방한다. 이 과정에서 아도르노의 “구원”개념이 등장한다. “구원받은” 대상은 현재의 실재에 의해 부과된 고통과 피해 바깥에 존재한다. 미학적인 이성은 우리로 하여금 대상과 세계 그 자체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과 대안적인 시각을 가능하게 만드는 구원받은 대상을 조망하도록 만든다. (153) 다시 말해 미학적 이성을 통해서만 우리는 현재에 존재할 수 있었지만, 주어지지 않은 것을 볼 수 있게 된다.(154)

 

그러나 이 구원의 개념은 신학적인 독해와는 반대로, 미학적 이성은 객체와 세계 그 자체의 내재적인 구원을 지향한다. 이러한 점에서 예술작품은 “유토피아적”이다. 그것이 현재하는 실재를 그 실재의 고통과 가능한 구원을 내보이는 방식으로 해석하고 다시 모으며 양식화하는 만큼 말이다. 그러나 이 유토피아적인 내용은 오직 미학적인 이성을 통해서만 드러날 수 있다. 오직 예술작품에 매개된, 비판적인 이성을 통해서만 객체들에 대한 자율적이고 긍정적인 시각이 발생할 수 있다(154-5)

 

한편 아도르노는 이 ‘구원’이라는 개념이 전통적인 신학적 개념인 종교적 ‘희망’을 대체한다고 말한다. 종교는 실재에 의해서 위태롭게 될 수 있으나, 예술작품은 대안적인 실재에 대한 필요를 확인할 뿐만 아니라 고통과 역사에 의해 손상되지 않는 객체의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그 실재를 지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155)

 

이런 이유로, 예술과 미학적 이성은 희망을 위한 저장고 또는 오직 추모와 애도의 형식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의 “회복”일 수 있다. 따라서 미학에서 존재하는 희망은 미학적 수용과 분석에서 나타남이 틀림없는 “애도”의 활동에 근거를 둔다. 희망하기 위해서는 객체가 훼손되기 전에 상태를 기억해야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상실을 애도해야하기 때문이다.(155)

 

예술작품과 미학적 이성은 역사, 사회 그리고 주체성에 대한 현전을 통하여 부재를 변증법적으로 확인함으로써 객체들에 대한 잠재적인 변형과 객체를 그것의 충만함에서 보도록 만드는 실재에 대한 개혁을 시사한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애도의 행위와 그것의 긍정적인 전환은 예술에서 이 치유적인 운동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는 일련의 개념들을 확장시킴으로써 아도르노의 중심개념인 “형이상학”과 동일시된다. 아도르노에게서 형이상학은 현재의 부정성과 긍정성을 고려하고 그것들을 넘어서 사태의 다른 측면들을 보여주는 사유를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157)

 

더불어 형이상학이 자신을 구원받은 유토피아적인 미래를 개념화하는 것은 객체의 고통과 잠재적인 것을 객체 자체와 연결시키는 예술을 통해서이다. 이 방식을 고려하자면 형이상학은 미학적 이성에서 자라난 것이다. 오직 예술 그리고 미학 내에서 발견된 부정저인 사유와 애도를 통과함으로써만 우리는 세계를 다르게 보는 현재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들을 설정할 수 있다.(159)

 

그러나 예술과 마찬가지로 형이상학은 미래의 실재를 지시할 뿐 그러한 실재가 무엇이고, 어떻게 생길 수 있는지에 대해 언급할 수 없으며, 이러한 형이상학적인 소망과 그 소망의 미학적 이성에 대한 의존을 통해 성취된 구원은 미래에 존재한다.(157-8)

 

 

결론(161-2)

 

아도르노의 형이상학적인 사유는 구체화는커녕 실재가 어떻게 변형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구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그 자체로 윤리적인 것으로서 철학, 예술 그리고 미학적 추론을 구상한다. 그러나 그의 미학적 논의는 (1) 객체에 대한 특수성과 무한성을 진지하게 취급하고, (2) 객체들이 겪는 고통을 이해하며 (3) 그 부재를 잠재적으로 구원된 미래를 보는 데 사용하는 논증의 형식으로, 예술로서의 삶에서의 저항과 비판적 차원의 초석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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