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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미학_삶과 예술

[4/28] 예술로서의 삶 발제문 모음

발제문 조회 수 168 추천 수 0 2017.04.28 18:39:35

□ 다지원 건축, 도시공간, 그리고 사회적 삶 세미나 ∥2017년 4월 28일∥발제자: 쏭

텍스트: 재커리 심슨,『예술로서의 삶』, 출판사명 갈무리, 2016, 62~83쪽

 

 

3장 니체의 이상적 유형들

 

니체의 이상적인 유형들

그의 초기/중기/후기 저작을 통해 이상적인 유형들의 역할을 탐구

다양한 은유, 개념적 페르소나들이 나옴(비극예술가와 철학자/자유정신/철학자/사상가 등)

독자를 하나의 개념 또는 어떤 구체화된 실재에 대한 강렬한 경험으로 끌어들이고자(58)

 

 

『그리스 비극 시대의 철학에서부터 반시대적 고찰』까지

1.1

니체는 이후에 예술로서의 삶을 위한 건축술, 즉 디오니소스적인 실존을 긍정하기 위해 예술의 가상들과 합리성이 조화를 이루는 건축술을 확립한다.(62)

 

 

1.2 디오니소스적/아폴론적

-최고의 이상, 즉 디오니소스적인 명칭으로는 자기 기만이다. (63)

-아폴론적 요소 용어 : “꿈만-같은”, “개별화하는”, “합리적인”, “완전하게 만드는”(62)

-비극의 관객은 아폴론적인 것에서 변천, 변화 그리고 일시적인 것인 디오니소스적인 심연으로 나아간다.(64) 디오니소스적인 광란은 아폴론적인 합리성과의 긴장 관계에 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디오니소스적인 심연은 항상 아폴론적인 것의 꿈만-같은 분위기를 통하여 이해되어야 한다.(64)

-예술가는 비극의 아폴론적인 요소들과 디오니소스적인 요소들의 창조적인 힘들을 해방시키는 개인으로 평가되어야 한다.(64)

 

 

1.3 예술과 예술가의 동일성(도취자기기만에 빠져서?), 도취, 가상

-니체의 미학은 점점 더 “천재”와 예술가를 우선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따라서 예술과 예술가의 구별을 없애버린다. ...“..그는 주체인 동시에 대상이며, 또한 시인이면서 배우이고 관객이기도 하다.” 디오니소스적인 예술가는 그의 작품과 하나가 된다...“근원적 연합이라는 최상의 환희를 위하여 모든 자연의 예술적 힘은 이 격렬한 도취(니체가 예술에서 최고 매력으로 언급하는 정신, {의식의 최상의 상태들을 향한)도취는 우리로 하여금 존재를 그것이 존재하는 그대로 보도록 유혹하는 것(75)})에서 자신을 드러낸다.”(65)

-예술가는 예술을 위한 매개일 뿐만 아니라 그 스스로 예술이 될 수도 있다.(66)

-(하지만 이러한 동일화는 거짓에 기초)예술은 그 자체로 거짓인데, 예술가와 예술의 동일성은 그러한 가상에 기초한다.(66)

-예술은, 그것이 변화하는 세계로부터 단순성과 선형성을 해방시켜야 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가상이다.(66)

-예술이 스스로 가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면, 예술은 구원하는 능력을 지닌 것으로 이해된다. 우리는 비극 예술가가 하는 것처럼, 예술 그 자체에 의해 생산된 가상들을 통해 예술의 대상과의 합일에 이를 수 있다. 의식적으로 예술의 자기 기만(가상?)으로 들어가면서비극 예술가는 예술의 대상-존재-에 굴복당하는 일 없이 그것에 몰두하게 될 수 있다.(67)

 

 

1.4 철학자/비극예술가

-철학자는 가면을 쓰지 않지만, 실재를 보다 냉정하게 볼 수 있기 때문에 예술가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철학자는 존재의 디오니소스적인 차원들과 아폴론적인 차원을 매개하는 비극배우의 기술들 그리고 도취와 가상을 맥락화하는 철학적 능력을 효과적으로 결합한다. ...철학자는 예술을 존재 그 자체의 맥락 안에 위치시키는 그의 능력에서 예술가를 능가할 수 있다. 이상적인 예술가는 이상적인 철학자가 존재와 관계하는 것처럼 의식적인 가상과 관계한다.(68)

-두 이상적 유형의 구조 : 서로 전혀 다른 아폴론적인 세계와 디오니소스적인 세계를 능숙하게 융합시키는 비극예술가와 철학자(69)

-예술로서의 삶이 분명하게 예술의 가상들과 존재의 실상, 합리성과 도취, 창조와 파괴의 균형상태임(70)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부터 아침놀까지(70-83)

2.1

이 두 책 모두 일반적으로 초기 작업에서 보이는 예술에 대한 호소를 그만두고 (학문으로서) 학문적인 것에 대한 한층 애정 어린 수용 쪽으로 움직이는 니체의 실증주의적 시기(?)에 속한 것으로 여겨진다.(70)

 

 

2.2 ?균형긴장상태?

-(니체는 예술<학문, 미학의 연속성을 놓치고 있다 비판?(70)

->(이시기의 니체가주장하는) 이상적인 삶은 예술적인 가상과 냉철한 합리성의 섬세한 균형에 기초한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그러나 예술적인 삶은 어쨌든 자기 기만과 절대 기만당하지 않고자 하는 의지 사이에서 흔들리는 것이며, 니체가 잠정적으로만 해결하고자 한 긴장 상태이다.(70)

-->학문이 예술의 대체물..예술을 학문에 비해 부차적인 자리에 위치.(76) (*균형이 아닌 긴장흔들리는 것?? 예술적 가상<사유(74)x)

 

 

2.3 자유정신, 사상가, 철학자

-주된 개념적 페르소나로서 자유정신(자유로이 사는 사람, 변화 또는 위대한 분리를 겪는 사람, 자기의 고유한 가치들을 창조하는 사람)(71)

-그러한 인물들은 거의 항상 미래적,..미래의 사람들일 뿐만 아니라 미래를 사유할 수 있는 사람들(71)

-자유정신에 상응하는 다른 개념적 페르소나, 사상가(72)

-사상가는 자유정신의 대안으로 취급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상가는 그 자신 안에 자유정신의 특징들과 함께 이해될 수 있는 탐구, 지식 그리고 탈-도덕성이라는 추가적인 특징들을 지니는 인물이다.(72)

-천재(칸트적인 용어)를 그 용어가 그 용어 이면의 보다 관념론적인 의미로만 해석되지 않도록 자유정신들과 사상가들이라는 더욱 일반적인 명칭 아래 포함시켜 사용할 수 있다.(73)

 

-철학자는..천재와 같이 완전한 단계까지 자기를 형성한 인물로, 그 스스로를 “하나의 작품”으로 이해하는 인물이며 사유의 자질,스스로가 부과한 분리 그리고 미래적인 성향을 통하여 완전하게 되는 어떤 인물이다. 때문에 이상적인 삶의 결정적인 특징과 수단이 되는 것은 예술적인 가상보다는 사유에 훨씬 더 가깝다.(74)

 

 

2.4 학문적 인간

-예술에 의해 종종 자행되는 “거짓” 예술은 세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가상적으로 해석하도록 강요한다. ...학문이 예술의 대체물..“예술(가상들)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롭게 만들어주는 철학적 학문으로 더 쉽게 넘어갈 수 있다. 학문적인 인간은 예술적인 인간이 더 발전된 것이다.

..예술은 예술의 가상들을 명백하게 만들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의 매혹적이면서도 종종 해로운 힘을 제거하는 학문에 의해 대체된다.(76)

-학문은 비판적인 해체의 수단이 되며, 오류, 단순성, (예술의 한 형태인) 가상을 근절하는 수단이 된다.(77)

-학문적인 본성은 세밀하게 통제되는 연구, 인간의 창조, 가상들, 그리고 더 거창한 어조로 말하자면, 실제적인 것(?)에 대한 회의로 이해될 수 있다.(78)

 

 

2.5 “이중 두뇌”

-두 개의 공간, 학문을 경험하는 공간과 학문이 아닌 것을 경험하는 공간을 제공해야한다. 그 두뇌는 혼란 없이 병렬적이고 서로 분리가 가능하며, 서로 독립적으로 되어 있어야 한다. 한 영역에는 동력원(가상으로서의 예술)이 놓여 있고, 다른 영역에는 조절기(학문)가 놓여 있다.(79)

 

-나는 니체가 학문을 예술가 마찬가지로 순수하게 수단적으로 평가한다고 주장한다.(79) , 순수하게 학문적인 관점을 거부된다.우리가 실재를 보다 충분하게 경험하기 시작하는 것은 오직 학문과 더불어 예술의 가상들을 간직할 때만 가능하다.(79)

 

-이상적인 유형은 예술적인 가상과 학문적인 신중함이라는 이중적임 힘들을 해방시키고 둘의 힘을 이용한다. 두 힘을 통해서만 우리는 자유정신이 된다. ..자기 문화와 학문과 예술의 창조적인 융합을 과감하게 주장한다.(80)

 

 

2.6 자기(실험창조), 3의상태 춤

-앞서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사례처럼, 예술적인 것의 가상들은 학문적인 것의 합리성, 학자의 딱딱한 진리들과 반대되는 예술가의 창의적인 정신에 의해 완화될 수 있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그 자신으로부터 문화를 만드는 자기이며, 예술의 힘을 학문의 냉철함 그리고 진리와 혼합하는 개인, 가능한 것의 영역을 제한하는 것과 우리 자신을 실재에 대한 다른 시선들로 유인하는 것을 혼합하는 독특한 개인이다.(81)

-여기서 자기는 실험을 위한 매개, 지가의 고귀한 문화의 가능한 생산을 위한 장소, 학문에 의해 균형 잡힌 예술의 새로운 반복을 생산하기 위한 늘 변화하는 지표가 된다.(82)

 

-예술과 학문의 종합에 대한 또 다른 은유는 ,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3의 상태(82)

-니체는 실험, 유희 그리고 에 대한 은유들을 끊임없이 언급함으로써 예술과 학문의 관계에 대한 변증법적(논리적)인 해석에 반대한다.(82) (*긴장상태(운동)? 균형이 아닌?)

 

-(자유정신/철학자/사상가)이상적인 유형은 제약, 이상적인 것(이지만 일시적인 것)을 향한 운동실험이라는 특징들을 갖는 작품,자기의 문화를 자기 자신으로부터 창조한다. 이 새로운 자기는 자기 두뇌의 이중적인 부분들을 논리적으로 종합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의 맥락안에 두 요소를 재미있게 결합하는 춤추는 우아함을 통해 종합한다.(83)

 

다지원 기획세미나 : 건축, 도시공간, 그리고 사회적 삶 | 2017년 4월 28일 발제자: 손보미
텍스트: 재커리 심슨[예술로서의 삶] 김동규,윤동민 옮김, 갈무리, 83~111

 

[즐거운 학묵]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1_이 시기의 니체의 작업에서, 이상적인 유형은 존재를 근본적으로 긍정하는 일에 전념하고 그 자신의 삶의 "시인"이 되는 것에 헌신하는 자기를 만들기 위해 예술과 학문을 사용하는 사람이 된다. (83)

 

2_니체는 이상화된 존재의 본성을 해명하고, 그러한 이상화된 존재의 본성과 예술,철학의 관계를 해명하는 데 도움을 주는 개념적 페르소나의 새로운 모습을 덧붙인다. [즐거운 학문]에서 니체는 "고귀한 천성"을 언급하며 영원한 회귀를 바라는 첫 번째 개념적 페르소나로서 나타나는 "세상을 등진 자", "이 긍정의 인간" 이라는 두 개의 병렬적인 개념적 페르소나를 소개한다. (86)

 

3_<위버멘쉬>

신의 죽음이라는 선언을 고려하자면, 대지에 대한 위버멘쉬의 근본적인 긍정은 형이상학적인 용어들로 수행될 수 없다. 니체의 접근은 완전히 내재적이며, 원칙적으로는 그의 시간 개념에 의존하거나, 위버멘쉬의 경우에는, 미래와 현재에 영향력과 중대함을 부여하기 위해 위버멘쉬의 시간적 지위에 대한 일관된 유예에 의존한다. 이러한 태도에서 위버멘쉬는 "되어야 하는" 사람, "아마올" 사람과 같이 끊임없이 미래적인 용어들로 언급된다. (86)

미래에 대한 방향설정은 창조중 하나임이 틀립없다. ... 창조는 대지에 대한 긍정과 직접 결부되어 있다. 우리는 우리가 미래를 가치 있게 여기지 않는 한 긍정할 수 없고 우리가 창조하지 않는 한 미래를 가치 있게 여길 수 없다. 이것이 허무주의의 유령과 가치의 상실에 대한 니체의 탈-유신론적 해법이다. (88)

 

4_<차라투스트라>

차라투스트라는 이상적 유형들, 즉 도래하는 위버멘쉬의 세대를 선언하는 바로 그 순간에 자기 망상의 예술을 행하는 예언자-예술가가 된다. 그는 또한 학문적인 인간이며, 삶을 부인하는 가상들에 저항하고 존재의 냉엄한 진리들을 추구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사실상 이전의 글들에서 구상된 철학자, 즉 "이중 두뇌"를 가지고, 근본적인 긍정을 가져오는 예술적인 가상과 단념의 즐거운 학문을 실행할 수 있는 철학자가 된다. 

차라투스트라는 존재를 구원하는 데에 필요한 가상을 수행하며 (영원회귀), 그러한 가상들이 광기 또는 현실 도피적이 되지 않도록 만드는 비판적 자기의식과 세계에 대한 자각을 수행한다. (92)

 

5_니체의 이상적인 유형들은 종합을 필요로 한다. 각각이 공생적이지만 서로에 대해 적대적인 학문과 예술이라는 두 원천을 사용하여 자유롭지만 강요된 "자유를 획득하는 것"말이다. 이러한 종합이 긍정과 창조적인 회복이라는 그들의 과제를 인도하고 심화시키기 때문이다. 예술과 학문은 이상적인 유형으로 하여금 실험하고 창조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존재를 긍정하도록 만드는 도구들이다. 

 니체가 그러한 종합에 대해 사용하는 은유는 춤이다. (93)

 

6_새로운 예술은, 가상의 예술과는 방향과 종류가 다른 자기에 대한 포이에시스(제작)을 의미한다. 

이 "새로운"예술은 그 방향이 삶의 기술로 향해 있는 것이며 예술과 학문의 균형을 창조적이고 실험적으로 이뤄 내는 것이다. (96)

 

7_시인과 같이, 우리는 예술적인 청사진을 따라 우리의 삶의 요소들을 다듬고 순수하게 만듦으로써 살아간다. 학문은 강제의 요소로서 예술은 가상과 긍정의 요소로서 새로운 예술, 삶의 기술은 종합의 요소로서, 창조는 탄생과 형성의 과정으로서 소개된다. (97)

 

8_삶의 기술은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긍정을 위한 개선, 해체, 실험 그리고 창조의 반복되는 과정들로 이해되어야 한다. 삶의 기술은 완전한 작품-상호적으로 둘 다에 가치를 부여하는 -삶-예술가를 성취하기 위해, 재미있게 자기와 세계에 대한 부정적인 차원들과 긍정적인 차원들의 균형을 잡는 것이다. (98)

 

 

[선악의 저편]에서 [이사람을 보라]까지

 

9_니체의 마지막 시기는 이상적 유형이 나아가 철학자와 동일시되고 이상적인 삶의 목표들이 디오느소스적인 실존의 특징에 대한 완성과 긍정 둘 다로 제시되는 기간이다. (98)

 

10_이상적인 유형으로서, 철학자는 학문과 예술이라는 이중적인 기획들을 둘 다 자기 형성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진행한다. (100)

 

11_니체의 철학자들의 미래적인 차원은 신의 부재 속에서 가치를 생성하는 이중적인 방법으로 달성 되는데, 한편으로는 그 철학자들이 도래하는 길을 기대하고 예비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철학자들을 우리 스스로 바라고 사유하는 것이 그 방법이다. 이것은 가치를 내재적인 것으로 설정하고 시간에 대한 근본적인 글정과 대지 그 자체를 구축한다. (101)

 

12_니체가 미래의 디오니소스적인 철학자들을 위해 유지하기 원하는 것은 정확하게 이상화, 지배, 잠재적인 완성의 과제들이다. 그러한 이상화는 철학자의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기획에 기여하며 예술가로 하여금 심연을 꽤뚫어 보도록 만든다. 이상화는 또한 이상적인 유형들 자체를 창조하는 요소일 수 있고, 이상적인 유형이 거쳐야 하는 새로운 본질들과 자기들을 제공한다. (104)

이런 가면들은 이상적인 유형이 세계에 제공하는 다양한 해석들이며, 그가 창조적인 과정의 일부로서 창조하는 개념적인 페르소나이다. ... 그리고 그러한 가면들은 자기를 형성하는 과정의 일부이다. (105)

 

13_이상적인 삶은 새로운 본질들을 창조하고 그것들을 존재에 활용하며 또한 그것들을 평가하는 것이다. 자기완성을 향한 운동은 새로운 자기들이 창조되는 반복적인 과정이다. 이상적인 유형은 스스로 새로운 이상적 유형들을 창조해야 한다. (105)

 

14_예술과 그것의 생산, 창조성 그리고 자기 가상의 힘은 심리학적인 생산의 창의적인 과정에서 야기된다. 우리는 다양한 자기와 개념적 페르소나를 만들어 내되 그것들을 자기완성의 과정에서 이겨내기 위해 만들어낸다. ... 자기제작은 끊임없이 본질을 형성하고 실험하며 개정하는 행동들에 달려있다.

 니체의 사유에서 그러한 현상은 더 넓은 양식의 일부, 즉 '인생의 진정한 예술가'처럼 사는 삶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요청으로 이해 되어야 한다. (106)

 

15_ 삶의 기술은 단순하게 긍정이라는 목적을 위해 사유와 예술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아니다. ... 니체는 명백하게

삶의 기술이 존재의 '사소한 것들', 우리의 식습관, 즐거움을 주는 것들, 가치들, 실수들, 목적들 그리고 우연한 사건들을 선취하는 것임을 증명한다. 

 삶의 기술은 이런 다양한 존재의 차원들을 예술과 학문의 이중적인 힘으로 지배적인 새로운 이상에 맞춰 변경하는 것이다. 자기 실험과 자기 생산을 위한 근본적인 요소는 삶 그 자체의 사소한 것이다. (107)

 

16_니체의 작업의 마지막 시기에서 이상적인 유형은 삶의 지극히 평범하고 사소한 것들과 그것들의 창조성, 부정 또는 긍정을 요구하는 방식들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삶의 새로운 방식들을 생산할 뿐만 아니라 존재의 경제를 구축하는 새로운 자기들을 생산하는, 예술적인 삶을 구상하는 수단이 된다. (108)

 

□ 다지원 기획세미나, 건축, 도시공간 그리고 삶. ∥2017년 4월 28일∥발제자: 혜선

재커리 심슨, [예술로서의 삶] 김동규, 윤동만 옮김, 갈무리,  113-131쪽.

 

4장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부정적 사유와 유토피아

 

<저항을 위하여.>

 

1. 니체의 말대로, 예술로서의 삶이 해방과 자기 규정을 조망하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저항적인 성향과 대안적인 세계에 대한 창조를 통해 그렇게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 장과 다음 장은 비판적 사유에서 저항으로의 운동, 부정성에서 긍정적인 변형으로의 이행을 자세히 검토한다. 118

 

2. 만일 우리가 사회적이고 시민적이며 개인적인 회복을 위한 창조적인 공간을 조성할 수 있다면, 그것은 현재의 모순적인 방편들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진보된 산업사회의 증대된 부와 그것이 인간의 존재 방식들을 제한하고 심지어 억압하는 방식들을 통해서 말이다. 120

 

3. 만일 비판이론과 철학의 비판적 기능을 회복시키려는 시도가 진전될 수 있다면, 그것은 유럽적 사유의 원천들과 현재 그 사유의 한계를 통하여 그렇게 해야 한다. 

 

4. 비판이론가들은 1930년대에 이미 서구사회의 부정의의 주된 근원을, 지배를 원하는 데카르트적 주체와, 이 주체와 축약가능하고 조작 가능한 객체들의 대립 사이의 총체적인 불균형으로 이해했다. 

 

5. 데카르트적 코기토로 시작된 초월적 주체의 발생은 과학기술과 학문들에서의 엄청난 진보와, 천연자원 등의 것들을 지배 통제라는 우리의 능력과 결부된다.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마르쿠제에게 서구 역사는 점점 더 조작가능해지는 객체에 대한 초월적 주체의 확장을 기술하는 것이다. 121

 

<사유의 역할>

 

1. ...객체의 존재는 합리적인 주체의 존재와 구분될 수 없고 그것과 동일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 잘못된 주객 동일성을 파기하는 것은 비판이론가들, 특히 아도르노의 독창적인 직관이다. 

 

2. 주체와 인식된 객체의 잘못된 동일성에 반대하는 사유는, 억압적이고 정의롭지 않은 사유방식과 존재방식의 해체를 시작하는 수단이 된다. 

 

3. 현재 지각하고 있는 주객 동일성을 전복시키라는 명령은 객체가 주체로 지양되고 변형된 것으로 지양되며 그렇게 함으로써 주체와 객체의 긴장을 다시 도입하는 헤겔의 변증법을 “고정시키려는” 갈망을 나타낸다. 123

 

4. 아도르노는 그의 기획의 규범적인 차원들을 다음처럼 언급한다. “변증법은 비동일성에 대한 일관된 의식이다.” 왜냐하면 객체가 자기의 고유한 존재를 되찾는 것은 오직 비동일성, 즉 나 자신의 바깥에 있는 객체에 철저하게 전념하는 일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5. “존재자가 매개적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오직 개념을 통해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개념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며, 단순한 소여상태에서부터 시작해서는 안 된다.” 124

 

6. 아도르느는 변증법적일 뿐 아니라 개념적인 매개 일반의 한계를 인정한다. 객체들과 특수성에 대한 그의 성향 때문에 변증법은 모든 가능한 개념화를 넘어서며 그것에 앞서는 객체의 잔여에 의해 본질적으로 제한된다. 즉 어떠한 개념이나 개념들의 집합도 객체를 남김없이 설명할 수 없다는 말이다. 125

 

7. 객체는 결코 완전하게 도달되지 않는 이해가능성의 지평이다. 

 

8. 객체에 대한 존중 가운데 개념을 사용함과 동시에 개념에 대한 양쪽 한계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사유는 개념들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객체 자체와 개념들을 반복적으로 비교평가하는 자기 의식적인 실천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 객체가 순수한 개념화에 계속 저항하지만) 

 

9. <부정 변증법>에서 객체에 개념들의 “성좌들(constellation)”을 쌓아 놓는, 실증주의와 관념론을 넘어서는 사유의 “제3의 가능성”을 형성한다. 이런 성좌들은 객체를 동일성의 사유의 전체성에 종속시키는 일 없이 사유하기 위한 최고의 선택지. 

 

10. 성좌들은 객체에 대한 우위성을 회복시키고 대상화하는 사유방식들을 단념한다. 126

 

11. 성좌적인 사유는 우리로 하여금 규격화하는 사유의 형식들에 ㄹ저항하고 더욱 정의로운 사유방식을 위한 공간을 개방하도록 만드는 과정을 시작할 수 있게 만든다. 

 

12. 부정 변증법(negative dialectics) - 변증법을 통하여 객체에 우선성을 부여하는 방법. 끊임없이 주체와 객체의 대립과 긴장을 이해함으로써, 변증법은 주체를 객체에게 넘겨주고, 객체의 역사, 고통 그리고 비동일성에 대한 관점을 가능하게 한다. 127

 

13. 부정 변증법은 그것의 부정성을 변증법적인 것의 내부에서부터 드러낸다. 128

 

14. 다르게 사유하고 비동일적으로 사유하는 과정은 “경험”을 그리고 타자와의 실재적이고 비개념적인 관계를 요구한다. 그래서 아도르노에게 정의와 해방은 추상적일 뿐만 아니라 실천적인 것으로도 여겨진다.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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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세미나를 순연하실 경우 게시판에 공지를 올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김정연 2016-03-15 4010
공지 공지 [이미지의 운명] 이후 계획 [1] 보미 2016-02-26 4491
공지 공지 <삶과 예술> 세미나 참가자 명단 - 2018년 2월 secret [2] 김정연 2012-01-27 337

발제공지 5/26 발제 나눔

  • nowhere
  • 2017-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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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문 5/19 [예술로서의 삶]5장, 발제문 모음

  • 보미
  • 2017-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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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문 5/19 [예술로서의 삶]191~212

  • 보미
  • 2017-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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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문 pg.164-176 발제

  • nowhere
  • 2017-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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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문 5/19 [예술로서의 삶] 176~191

  • 강강
  • 2017-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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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결석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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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결석계

  • 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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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공지 예술로서의 삶_헤르베르트 마르쿠제와 예술적 개인 [1]

  • sun
  • 2017-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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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문 5/12 [예술로서의 삶]4장 발제문 모음

  • 보미
  • 2017-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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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문 5/12 예술로서의 삶 113-131

발제문 예술로서의 삶 148-163

  • 강강
  • 2017-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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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결석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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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문 예술로서의 삶 131-148

  • 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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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결석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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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공지 5/12 <예술로서의 삶> 발제공지

  • 쏭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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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5/5 세미나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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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문 [4/28] 예술로서의 삶 발제문 모음

  • 혜선
  • 2017-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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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문 4/28 [예술로서의 삶] 83~111

  • 보미
  • 2017-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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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문 [4/28] 예술로서의 삶 113-131쪽

  • 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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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문 [4/28] 예술로서의 삶 62-83

  • 쏭0000
  • 2017-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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