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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 [이미지의 운명] 발제문 모음

발제문 조회 수 327 추천 수 0 2017.03.31 19:29:17

이미지의 운명/랑시에르/ 197~210쪽/ 명왕성

 

5강. 재현 불하능한 것이 있는가

1. ‘재현 불가능한 것’이라는 통념과 배치의 남발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모든 것을 일의적으로 휘감아버리는 이런 남발을 예술에 관한 사유의 체제로서의 재현에 초점을 맞춰 풀어보겠다.

 

2. 어떤 존재, 사건, 혹은 상황이 예술의 수단에 의해서는 재현 불가능하다고 말해질 때, 정확히 무엇이 발해지고 있는가?

 

2-1. 첫째; 예술은 본질적 성격을 현전시키지 못한다. 무능하다. 둘째; 예술은 현전의 초과, 실존의 뺄셈의 놀이이다. 그러므로 예술의 바깥에 있는 것은 재현 못한다.

 

2-2. 플라톤; 시뮬라크르(예술)와 단순한 이야기를 대립시킨다. 오늘날 증인의 말하기는 단순한 이야기와 미메시스적 꾸밈(사유를 초과하는 ~가 있었다) 사이의 대립과 관련된다. 리오타르는 사유가능한 것을 초과하는 사건의 실존과 우리 사유가 제어할 수 있는 것 사이의 불일치를 증언하는 예술을 요청한다. 이리하여 예술에 관한 상이한 사유 체제들 사이의 구별, 즉 현전과 부재, 감성ㅈ거인 것과 지성적인 것, 보여줌과 의미 작용의 관계가 뒤섞인다. 상이한 유형의 모방, 상이한 유형의 이미지라는 이질적인 논리가 뒤얽혀 재현 불가능성이라는 문제로 바뀐다.

 

3. 는 보여진 것과 보여지지 않포이에시스(제작방식)와 아이스테시스(정서들의 경제)라는 두 항 사이의 관계로서의 미메시스와 관련된 사례분석으로 재현과 관련된

 

재현이 말하고 싶은 것

1. 코르네유의 『오이디푸스』에서; 재현에서의 제약은 세 가지이다.

 

1-1. 첫째, 재현에서 말의 본질은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오이디푸스의 후벼 하낸 눈은 볼 수 있는 것이 말의 보게-만듦에 종속된다는 것을 초과하는 어떤 것이 시각장에 난폭하게 부과됨을 보여준다.

 

1-2. 둘째, 재현은 앎의 파토스를 포이에시스(제작방식)와 아이스테시스(정서들의 경제) 사이의 안정적인 관계로 이행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오이디푸스의 알고자 하는 파토스는 너무 과다하여 재현의 안정적 관계를 초과한다. (테이레시아스의 과도한 앎도)

 

1-3. 셋째, 재현에 의한 존재들은 지어낸 허구(그러므로 실존, 윤리 판단에서 풀려난다.)이며 동시에 유사성의 존재들 ( 그 감정과 행위가 분유되고 높이 평가받아야하는)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행위자들의 발명’은 사건들과 감정들 사이의 경계인 동시에 통로이다. 무대와 객석 사이의 경계이자 통로이다.

 

2. ‘재현 불가능성’은 바로 ‘이러한 재현 체제’를 벗어난 것을 말하는 것이다

 

 

=======================================

 

□ 다지원 기획세미나, 건축, 도시공간 그리고 삶. ∥2017년 3월 31일∥발제자: 혜선

자크 랑시에르 [이미지의 운명] 김상운 옮김, 현실문화,  210-218쪽.

 

<반-재현이 말하고 싶은 것>

 

1. 상반된 것들의 이중의 동일성(오이디푸스의 질병- 아는 자이며 알지 못하는 자, 행동하는 자이며 고뇌하는 자) 이야말로 미학적 혁명이 예술의 사태를 미학이라는 새로운 개념 아래에서 포섭하면서 재현적 모델에 대립시키고 있는 것이다. 211

 

2. 예술의 재현적 체제는 예술이 유사성을 만드는 체제가 아니라, 유사성이 삼중의 제약에 종속된 체제. 

 

3. 삼중의 제약 – 1) 말(하기)의 가시성과 볼 수 있는 것의 억제를 동시에 조직하는 모델, 2) 시 또는 그림을 이야기와 동일시하는 ‘행위’에 지배되는 앎과 파토스의 효과들 사이의 관계의 조정, 3) 픽션의 언어 행위를 통상적인 본래성과 유용성의 기준들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그 대신 있음직함과 일치하는 내재적 기준들에 종속시키는 픽션에 고유한 합리성의 체제. 213

 

4. 픽션의 근거와 경험적 사실의 근거를 분리하는 것은 재현적 체제의 본질적 요소의 하나이다. 213

 

5. 반-재현적인 단절에서는 회화적 비-구상보다는 소설의 리얼리즘이 선행한다. 

 

6.  ‘동등하게 재현 가능하다’ = 재현시스템의 붕괴.

 

7. 말의 가시성이라는 재현적 무대와 대립되는 것은 담론을 침략하고 행위를 마비시키는 ‘볼 수 있는 것’의 평등이다. 214

 

8. 묘사를 우위에 두는 것 – 보게 만들지 않는 ‘볼 수 있는 것’과 행위로부터의 이해 가능성을 박탈하는 ‘볼 수 있는 것’을 우위에 두는 것. 

 

9. 유사성의 ‘리얼리즘적인’ 용법 – 아리스토텔레스적 위계의 뒤집힘. 보편적인 것은 개별적은 것으로, 작은 지각으로 흡수되며, 이런 각각의 지각은 뭔가를 발명하거나 의미 있게 만드는 사유의 역량이 감각의 수동성과 동등한 한에서 전체의 역량에 의해서 촉발된다. 

 

10. 재현의 세 번째 주요한 측면, 즉 재현에 어떤 특정한 공간을 할당하는 측면도 폐지된다. 215

 

11. 말라르메의 산문시 [중단된 스펙타클] - 곰이 똑바로 서서 앞발로 어릿광대의 두 어깨에 얹는 사고. 이 재현(상연)의 사고는 재현적 체제의 미학적 폐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기능. 즉 가시성의 연극적 공간이라는 특권, 즉 재현이 특정한 활동으로서 스스로 제공했던 분리된 공간이라는 특권 폐기. 216

 

12. 예술의 고유한 사실들의 세계와 통상적 사실들의 세계 사이의 분리 거부 – 이것이 예술의 미학적 체제가 지닌 역설이다. 

 

13. 미학적 체제에서 주제는 더 이상 말에 의한 ‘볼 수 있는 것’의 재현적 조정에도, 의미 작용의 과정과 이야기의 구축의 동일화에도 종속되지 않는다. 이것을 리오타르의 ‘감성적인 것과 지성적인 것 사이의 안정된 조정의 실패’로 요약 가능. 하지만 실패가 의미하는 것은 재현적 우주로부터의 탈출, 즉 재현 불가능성의 기준을 정의하는 우주로부터의 탈출이다.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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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지원 건축, 도시공간 그리고 사회적 삶 세미나 ∥ 2017년 3월 31일 ∥ 발제자: 박찬울
텍스트: 자크 랑시에르, 『이미지의 운명』, 현실문화, 218p~227p

 

1. 이 가능성은 재현 불가능하다고 말해지는 현상의 재현(강제수용소와 절멸수용소라는 현상의 재현)에 완벽하게 적합함을 입증했다. (218)

 

2. 로베르 앙텔므의 『인간이라는 종』 ... 어떤 특정한 체험에 대응하는 작은 지각의 병렬적 연결이다. ... 그렇지만 이 병렬적 글쓰기가 수용소 체험에서 생겨나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것은 작은 지각이 나란히 묶여진 플로베르의 글쓰기 스타일이다. (219)

 

3. 똑같은 방식으로 그들(앙텔므와 플로베르)은 '무언'을 통해서, 최소한의 청각적 · 시각적 체험에 대한 호소를 통해서 의미를 이룬다. (221)

 

4. 체험은 체험을 말하기 위한 언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재현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 엄밀히 말해 재현 불가능한 것은 어떤 체험[비인간적인 것의 체험]이 자신의 고유한 언어로 말해지는 것의 불가능성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증언이 비인간적인 것의 체험을 표현하는 곳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비인간-되기라는, 인간적인 감정과 비인간적 운동 사이의 일치라는 이미 구성된 언어이다. (222)

 

5. '설령 당시네들중 한 명이 증언하기 위해 남았다고 하더라도, 누구도 그를 믿지 않을 것이다. 즉 당신이 말할 것에 의해 이 공백이 채워지고 있다고는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환각으로 간주될 것이다' 이 논리에 대답하는 것이 카메라가 프레임에 담은 증인의 말이다. 환각과 믿기 힘듦-촬영된 홀로코스트의 현실이란 분명히 홀로코스트가 사라졌다는 현실, 그 믿기 힘든 성격이라는 현실이다. (224)

 

6. 사라져버린 어떤 것을 찾아내는 것, 이것은 있음직함의 재현적 논리로 흡수될 수 없는 조사의 형식이다. 이 형식을 거꾸로, 예술의 미학적 체제에 고유한, 사건의 진리와 허구적 창작 사이의 관계와 완벽히 어울린다.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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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지원 기획세미나 : 건축, 도시공간, 그리고 사회적 삶 | 2017년 3월 24일 발제자: 손보미
텍스트: 자크 랑시에르 [이미지의 운명]  김상운 옮김, 현실문화, 227~236

 

 

재현 불가능한 것의 사변적 과정
 
(227)
(리오타르가) 어떤 것을 '재현 불가능한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어떤 사건을 재현 불가능하다고 설정하려면, 사건 개념에 연루된 은폐와 예술 개념에 연루된 은폐, 즉, 이중의 은폐가 이루어져야만 한다. 
(리오타르의) [하이데거와 유대인](1988)은 유대민족의 태곳적 운명과 예술의 반-재현적인 근대의 운명을 평행관계에 둔다. 그리고 둘 다 똑같이 정신의 근원적인 비참을 증언한다.
 
(228)
<정신의 근원적인 비참>
"정신은 근원적인 공포에 의해 움직여질 때에만 작동한다. 즉, 정신을 '타자'의 인질로 변형시키는 최초의 충격에 의해 움직여질 때에만 작동한다. 정신에 침투하고 정신을 여는 무의식적 정서는 집 안에 있는 이방인(타자)이다. 이것은 늘 잊혀 있다. 그리고 정신이 스스로의 주인임을 자임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 망각조차도 잊어야만 한다."
 
(229)
<숭고한 예술이라는 관념>
(칸트에 의하면) 상상력이란 어떤 스팩터클을 접하면 자신의 영역 너머로 끌려간다고 스스로 느끼며, 숭고한 스팩터클 속에서 현상적인 자연의 질서 위로 우리를 드높이는 어떤 이성의 '이념'의 부정적 제시를 보 수 밖에 없다고 느낀다. 그리고 이 이념들은 상상력이 이 이념들의 숭고성을 적극적으로 제시할 수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숭고성을 현시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칸트에게서 숭고의 관념은 어떤 예술의 관념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우리를 예술의 영역 밖으로 끌고 가는 관념, 우리를 미학적인 놀이의 영역으로부터 이성과 실천적 자유의 이념을의 영역으로 이행시키는 관념이다. 
 하지만, 리오타르는 칸트의 예술-외적인 숭고를 예술 안에서 정의되는 숭고와 동일시 했다. 
 
(231)
 리오타르의 도식은 모든 변증법적 동화에 저항하는 어떤 원초적인 '사고 불가능한 것'을 변론하고 있지만, 이 '사고 불가능한 것'자체는 완벽한 합리화의 원칙이 된다. 실제로 그것에 의해 비로소 한 민족의 삶을 사유의 원초적인 결정과 동일시하는 것이, 그리고 절멸이라는 공공연한 '사고 불가능성'을 서구적 이성을 구성하는 경향과 동일시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232)
 리오타르는 사유의 한 순간을 대표하라는 임무를 한 민족에게 할당하고, 이 민족의 절멸을 정신적 장치의 법칙과 동일시한다.  이러한 할당은 기계(변증법 기계)를 고장 내는 한 가지 방식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리오타르의 숭고는 예술이라는 개념과 예술을 넘어서는 것이라는 개념 사이의 특이한 몽타주의 산물인데, 숭고한 예술에 재현될 수 없는 것을 증언하라는 임무를 부여하는 이 몽타주는 그자체로 매우 결정적이다. 그것은 바로 상징적 예술의 극한적인 순간으로서의 숭고라는, 헤겔식의 숭고개념이다. 
 
(233)
<헤겔식의 숭고 개념>
헤겔의 개념화에서 상징적 예술의 고유함이란 이것이 그 이념에 대해 물질적 제시의 양태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숭고한 예술은 신성성의 형상화할 수 없는 무한성과 이타성을 인식하고, 유대의 '성스러운 시'의 말에 있어서 이 재현 불가능성을, 신의 무한성과 모든 유한한 제시 사이의 이 간극을 말했다. 
 리오타르의 헤겔 분석이 겨냥하는 것은 이념과 감성적 제시 사이의 명확한 관계의 조정 실패로 부터 또 다른 예술이 탄생할 수 있음을 거부하는 것이다. 헤겔에게서 이런 조정 실패는 예술의 종언만을 예술의 너머만을 의미할 수 있다. 
 
(234)
(리오타르에게) 재현 불가능한 것은, 세 가지 사변적 공중이 보존되는 궁극적 형식이 된다. 
*세 가지 사변적 공준
- 예술의 형식과 내용 사이의 일치라는 관념
- 인간의 경험 형태들을, 가장 극단적인 것까지도 포함하여 전면적으로 이해 가능하다는 관념
- 사건들을 설명하는 근거와 예술을 형성하는 근거 사이의 일치라는 관념.
 
(234) - 맺음말
 
 재현의 주제가 예술의 어떤 명확한 체제, 보여줌과 의미 작용 사이의 관계들의 어떤 특정한 체제에 진입하려면 복종해야만 하는 조건들과 관련하여, 재현 불가능한 것이 존재한다. 
 
코르네유의 [오이디푸스]가 담고 있는 제약들은,
-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한 '볼 수 있는 것'의 적합한 종속,
- 행위들의 연쇄에 집중된 어떤 유형의 이해 가능성,
- 재현과 그것이 호소하는 사람들 사이의 가까움과 거리두기의 잘 조정된 나눔.
을 가능하게 하려면 재현의 주제가 어떤 특성을 가져야만 하는가를 정의하는 조건들의 총체를 명확하게 보여준 예시였다. 
 
이 조건들의 총체가 예술의 재현적 체제를, 오이디푸스의 앎의 파토스에 의해 교란된 포이에시스(제작 방식)와 아이스테시스(정서들의 경제)사이의 조화의 체제를 고유하게 정의한다.
만일 재현 불가능한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체제 속에서 이것의 장소를 설정할 수 있다.
 
(235)
반-재현적 예술은 본질적으로 재현 불가능한 것이 없는 예술이다.
재현에는 재현의 가능성에는 더는 그 어떤 내재적 한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한계 없음이 뜻하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어떤 주제에 고유한 언어나 형식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주제에 고유한 언어나 형식이 존재한다는 관념은 엄격한 의미에서 공허하다. 이것은 그저 소망을 표현할 뿐이다. 이 염원은 그 원칙에 있어서 모순되는 까닭에, 반-재현적인 예술과 재현 불가능한 것의 예술 사이의 헛된 등식을 보증하기 위해 예술의 한 체제 전 체제를 신성한 공포의 기호 아래에 두는 과장 속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 
 
재현 불가능한 것의 논리는 결국 그것을 파괴해버리는 것으로 귀결되는 과정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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