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page발전위원회 아수라

  2. page철학미학_정동과 정서

  3. page철학미학_들뢰즈와의 마주침

  4. page철학미학_생명과 혁명

  5. page철학미학_삶과 예술

  6. page철학미학_미디어 이론 세미나

  7. page정치철학_고전 읽기

  8. page정치철학_여성주의 세미나

  9. page정치철학_Assembly 읽기 세미나

  10. page문학예술_시 읽기 모임

  11. page정치철학_푸코 : 파레시아 읽기

  12. page문학예술_소설 읽기 모임

  13. page문학예술_일본근현대문학

반갑습니다!세미나 신청 FAQ

세미나 참가방법이 궁금하시면 클릭하세요!

연구정원 자주 묻는 질문들
세미나 소개세미나 한눈에 보기

현재 다중지성 연구정원에서 진행 중인 세미나 목록을 보시려면 클릭하세요!

세미나 한눈에 보기


▶최근 게시물



▶최근댓글



찾아오시는 길

주소: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18길 9-13
[서교동 464-56]
(우편번호:04030)

메일보내기(daziwon@gmail.com)

연락처: 02-325-2102
계좌: 479001-01-179485
(국민/조정환)

mask

mask ☆140자 다지원 소식

mask
철학미학_삶과 예술

[3/17] 이미지의 운명 발제문 모음

발제문 조회 수 177 추천 수 0 2017.03.17 18:15:39

<가정부, 유대인 아이와 교수>

 

이 샷이 발췌하고 있는 영화 작품에 관해 좀 더 얘기할 때가 왔다. 95

 

이것은 게토 출신의 소년과 교수(푸코)의 취임 연설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을까? 96

 

이제야 모든 것이 설명되는 것처럼 보인다. 고다르가 <나선계단>에서 발췌한 것은 여기서 게토의 항복의 이미지와 오버랩된다. 96-98

 

이로부터 출발해 이 에피소드에 딱 맞는 요소들 각각에 의미를 부여하기란 쉽다. 노스페라투를 마주보고 명랑하게 웃고 있는 관객은 킹 비더의 <군중>에서 따온 것이다. 98

 

고다르의 몽타주는 분명히 상징적이다. 98

 

따라서 이 에피소드는 나치 이데올로기가 독일 군중들에게 했던 농락과 헐리우드가 영화관 군중들에게 했던 농락이라는, 두 개의 농락을 엄격한 평행 관계에 둔다. 99

 

즉, 이렇게 재구성된 논리는 <나선계단>이라는 영화 자체와 마찬가지로 <영화사>의 관객들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여배우 도로시 맥과이어의 실루엣만으로는 엄격하게 말해서 독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100

 

사실 이것이야말로 역설이다. 시오드막이 ㅇ녀출한 이야기를 명확히 하는 것은 (유대인의) 절멸이 아니며, 그와 정반대다. 100

 

사실 흥미로운 것은…  동시대의 현실 사이의 유비를 강조해야 했다는 것이 아니라, 문장-이미지의 그 자체로서의 역량, 계딴 샷이 게토의 사진 및 교수(푸코)의 문장과 직접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능력이다. 101

 

고다르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영화의 시대란 문장-이미지가 이야기들을 일축하면서, 그것들의 ‘바깥’과 직접적으로 연쇄함으로써 역사를 쓸 수 있는 힘을 갖는 시대라는 것이다. 101

 

다지원 기획세미나 : 건축, 도시공간, 그리고 사회적 삶 | 2017년 3월 3일 발제자: 손보미
텍스트: 자크 랑시에르 [이미지의 운명]  김상운 옮김, 현실문화, 102~129

 

변증법적 몽타주, 상징적 몽타주

 

1.<변증법적 방식(몽타주)>

 

변증법적인 방식이란 

→ 어떤 이질적인 것의 작은 기계장치들 안에 카오스적 역량을 투입한다.

→ 그리고 이를 통해, 연속들을 단편화하고 서로 호응하는 항들을 거리 두게 함으로써,

또는 반대로 이질적인 것을 가깝게 하고 양립할 수 없는 것을 결합함으로써 충돌을 창출한다.

→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충돌을 (발달된) 작은 측량 도구로 만든다.

→ 이러한 작은 측량 도구는 공통성의 파열적인 역량a disruptive power of community(교통의 분열적 역량)을 드러내는 데에 좋은 도구이다.

→ 공통성의 파열적인 역량은 그 자체가 측량의 또 다른 항(범위)을 설정한다.(부과한다.)

 

충돌을 창출하는 작은 기계장치들

예)

-해부대 위에서의 재봉틀과 우산의 마주침

-초현실주의의 시나 회화나 영화에 나오는 소품들의 모든 다른 등가물들의 마주침

→양립할 수 없는 요소들 안에서의 마주침은 '완전히 다른' 척도인 '전혀 다른' 공통성의 역량을 강조한다. 

이는 욕망과 꿈의 절대적 현실absolute reality을 설정한다.(부과한다.)

 

작은 기계장치들의 모든 경우에 수반되어 있는 것은

하나의 세계 뒤에서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또다른 세계이다.

예)

-안락한 가정 뒤에 있는 저 먼 곳의 분쟁,

-새로운 건물과 중심가의 오래된 상징 뒤에 있는 추방당한 홈리스

-공동체의 수사학이나 예술의 숭고성 뒤에 있는 착취로 쌓은 부

-영역들의 모든 분리의 뒤에 있는 자본의 공동체

-모든 공동체들 뒤에 있는 계급 전쟁

 

변증법적 몽타주의 문제

충돌을 조직하는 것친숙한 것의 낯섦을 연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갈들의 폭력에 의해서만 밝혀지는 다른 척도의 질서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이질적인 것을 곃합시키는 문장-이미지의 역량은 어떤 세계의 비밀을 폭로하는 간극과 충돌의 힘이다.

 

2.<상징주의적 방식(몽타주) >

 

상징주의적 방식이란

→ 이 역시 이질적인 것들과 관련되며, 서로 무관한 요소들의 몽타주를 통해 작은 기계들을 구축한다. 

→ 하지만 이는 변증법적 방식과는 반대의 논리에 따라 이질적인 것을 조합한다.

→ 이 방식은 이질적인 요소들을 사용하여 서로 낯선 요소들 사이에서 실제로 친숙성과 간헐적인 유비를 수립하도록 한다.

→ 따라서, 이 방식은 공통의 세계를 증언한다.

→ 공통의 세계란 함께-속함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관계속에서 이질적인 것들이 포착되고 그리하여 새로운 은유의 우애을 따라 조합될 여지가 늘 있는 그러한 세계이다.

 

유비를 제조하는 작은 연극적 기계

변증법적 방식이 상이한 것들의 충돌에 의해 어떤 이질적인 질서의 비밀을 표적으로 삼는다면,

상징주의적 방식은 신비라는 형태 속에서 요소들을 조합한다. 

이때 신비는 말라르메에 의해 정교화되고 고다르에 의해 명확하게 채택되었던 미학적 범주다

신비는 유비를 제조하는 작은 연극적 기계이다. 

예)

모대 설계가인 아돌프 압피아는 바그너의 사유를

오페라가 바그너에 대해 말하는 것과 유사하게 그려진 무대장치가 아니라

무대장치의 추상적인 조형적 형태 혹은 공간을 조각하는 광선으로 번역하거나 변형시시킨다.

신비의 기계는 

공통적인 것을 만드는 어떤 기계

더 이상 세계들을 대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가장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함께-속함을 연출할 수 있는 기계이다. 

그리고 이 공통적인 것이 통약 불가능한 것의 척도를 제공한다. 

 

3.<문장-이미지의 역량>

 

문장-이미지의 역량은 변증법과 상징이라는 두 가지 극 사이에서, 

척도의 체계들을 둘로 쪼개는 충돌과 거대한 공통성에 형태를 부여하는 유비 사이에서,

분리하는 이미지와 연속적인 분절법으로 향하려는 문장 사이에서 펼쳐진다. 

연속적인 분절법

이것은 '무한을 잡아매는 거무칙칙한 레이스의 주름'이며,

모든 이질적인 것에서 모든 이질적인 것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연한 선이며,

→ 해방된 것의 역량,

→ 결코 시작된 적이 없었던 것의 역량,

→ 결코 묶여진 적이 없었던 것의 역량,

→ 모든 것을 나이 먹지 않는 리듬으로 실어 나를 수 있는 것의 역량이다. 

고다르의 문장

그의 문장은 연결 해제된[풀려난]것이 지닌 연결하는 역량,

늘 자신보다 선생하는 것의 역량을 활용한다. (푸코)

고다르는 영화가 예술도 아니고 기술도 아니며 신비라고 말한다.

 

4.<고다르의 몽타주>

 

이질적인 것의 조합의 한 형태나 다른 형태(변증법적 방식이나 상징적 방식)에 자발적으로 속하는 예술이란 없다. 

예술에 덧붙여져야만 하는 것은 이 두 형태 자체가 그 논리를 끊임 없이 혼합한다는 점이다. 

이 형태들은 경우에 따라서는 거의 식별 불가능한 절차를 따라 동일한 요소를 가공한다. 

 

고다르의 몽타주는 이질적인 것들을 접합하는 똑같은 형태들이 어떻게 변증법적인 극에서 상징주의적인 극으로 갑작스레 기울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가 (영화에서)하는 것들은 늘 충돌을 조직한다는 것과 연속체를 구출한다는 것, 이 도 가지를 동시에 행하는 것이다. 

 

충돌의 공간과 연속체의 공간은 '역사'라는 똑같은 이름을 갖고 있기도 하다. 

계시적인 충동의 불연속적인 선도 '역사'이고,

공-현전의 연속체도 '역사'이다.

이질적인 것의 연결은 이러한 두 극들 사이에서 자리바꿈되는 역사의 의미를 구축하는 동시에 반영한다. 

 

5.<표류와 방향전환>

 

표류와 방향 전환은 분절법의 연속성에 의해 뒤집히고 흡수된다. 

상징주의적 문장-이미지가 변증법적인 문장-이미지를 집어삼킨 것이다.

'공통의 척도 없이'는 이제 은유의 커다란 우애 또는 공동체에 이른다. 

이 움직임은 문장-이미지의 미끄러짐을 전달한다. 

 

이미지의 운명/랑시에르/ 133~166쪽/ 명왕성

 

3강. 텍스트 속의 회화

 

1. 매체가 회화라는 주장에 대해

1. 회화적 현상의 고유함을 회화의 소재(material; 물감과 2차원 평면 사용일 분이라는) 와 회화의 동일성에서 찾는 입장은 회화가 예술이라는 점을 보여줘야만 한다. 예술은 그것을 예술로 보는 눈이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회화 음악 댄스 영화 조각에 공통적인 특성을 정의하는 예술이라는 개념은 불가능하다. 예술 개념은 실천이나 제작 방식이라는 의미로 이해된 예술들 사이의 불안정하고 역사적으로 결정된 분리접속의 개념이다.

 

1-2. 미메시스라는 매체는 유사성이 아니라 유사성의 어떤 체제이다. 미메시스는 복사물과 원본 사이의 관계로서 이해된 유사성이 아니라 관계의 총체의 한복판에서 유사성을 기능시키는 방식인 것이다.

 

1-3. 원근법 기술도 마찬가지다. 3차원 공간과 신체를 모방하는 기술 능력만으로는 ‘미술’이 되지 못한다. 회화가 시적능력(이야기를 말 할 수 있는 능력, 말하고 행위하는 신체를 연출할 수 있는 능력)을 증명해야만 예술일 수 있었기 때문에 원근법이 사용된 것이다.

 

1-4. 즉, 매체는 고유한 수단이나 소재가 아니라 전환의 표면이며, 이념적 공간이다. 회화가 실행하는 것과 말이 회화의 표면에서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사이의 어떤 유형의 관계이다.

 

2. 형상화의 거부가 회화라는 주장에 대해

2. 회화의 새로움은 형상화의 거부가 아니었다. 재현적 체제의 파괴는 회화적 형태들이 詩의 위계질서에 종속됐던 것을 폐지하고 말의 예술과 형태의 예술 사이에 존재했던 다른 방식, 즉 말이 표면에 새로운 자격을 부여하는 한에서만 표현성이 표면 위에 현존한다는 새로운 관계 방식이다. 회화는 말이 화화와 관련해 자신의 기능을 바꾸는 한에서 평평하다.

 

2-1. 새로운 회화란 다르게 보게끔 형성된 시선, 재현의 표면 위에서, 회화적인 것이 재현 아래에 등장하는 것을 보게끔 형성된 시선에 비취자는 회화이다. 재현 아래에서 현전을 불러일으키라는 임무를 예술이 기꺼이 부여한다. 하지만 현전은 재현의 의미 작용에 대립되는 회화적인 것의 벌거벗음이 아니다. 현전과 재현은 말과 형태의 엮기의 두 체제이다.

 

3. 19세기 두 비평 텍스트 속의 회화

샤르댕에 관한 공쿠르 형제의 텍스트: 과일 접시 등의 구상적인 소여들을 회화적 소재의 사건으로 (붓질) 변형시킨다. 이 소재주의materialism에 의하면 작가의 작업은 무엇보다 현전의 양태이다.

 

1-1. 회화의 새로움은 비평가의 언어의 비유와 작가의 붓질, 형상 사이의 뒤얽힘이 엮어내는 현재에서 이미 실현되고 이미 현전해 있다. 탈형상화는 과거 속에서 새로움을 간파한다. 하지만 탈형상화가 구성하는 것은 새로움을 볼 수 있도록 하는 담론 공간, 복수의 시간성의 균열 그 자체 속에서 새로움에 대한 시선을 구축하는 담론 공간이다. 다라서 균열은 회고적인 것이면서도 미래 전망적이다.

 

2. 고갱에 대한 알베르 오리에의 텍스트: 더는 현실을 재현하지 않고 관념들을 상징으로 번역하는 회화의 선언이다. 보여진 것과 보여지지 않는 것 사이의 균열에서 작동한다. 이 이념주의에 의하면 말은 그림의 표면을 구축하기 위해 스스로를 이미지로 만든다. 이 표면이야말로 회화의 참된 매체이다.

 

3. 이 표면이라는 극장은 무엇보다 우선 말의 가시성의 공간, 말해진 것이 보여진 것으로, 문제적으로 번역되는 공간이다. 따라서 정말로 참인 것은 어떠한 예술의 고유함도 존재하지 않음을, 형태는 그것을 가시성 속에 설치하는 말들 없이는 진척되지 않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매체’라는 것이다. 예술이 자기 자신의 외부에 있는 한에서, 예술이 자기 자신과는 다른 뭔가를 하고 있는 한에서, 즉 예술이 늘 탈형상화의 무대인 가시성의 무대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한에서 예술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 다지원 건축, 도시공간, 그리고 사회적 삶 세미나 ∥ 2017년 3월 17일 ∥ 발제자: 박찬울
텍스트: 자크 랑시에르, 『이미지의 운명』, 현실문화, 133~166p

 

3강 텍스트 속의 회화

 

1. 오늘날 회화라는 개념의 순전한 주장, 그 사기 행각에 대한 자기 고발 혹은 그 종언의 확인서가 회화가 자리잡고 있던 표면에 기입되어 있다.

 

2. 말들과 시각적 형태들 사이의 접합을 이론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언뜻 보기에 사태는 명료한 것 같다. 한편에 실천이 있고 다른 한편에 해석이 있다.

 

3. 회화적 현상은 정확히 무엇에 있는가?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3차원 공간에 놓인 외적 존재들을 지시하는 재현적 현상들로 채우는 대신, 평평한 표면 위에 유색물감을 칠할 뿐인 것이라고 한다.

 

4. 회화의 소재와 형식의 동일성을 보증하고 싶어하는 이런 회화적 현상에 대한 정의는 두 개의 모순의 접합이다. '매체'라는 개념은 대립물 사이의 이런 은밀한 동일성을 보증한다.
[매체는 순수한 기술이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 기술의 본질을 부정한다?]


5. 앞서 말한 테제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표면에 진열된 소재가 예술이라는 점은 보여줘야만 한다. 예술은 상이한 예술들 사이에서 공통적인 원리를 발견한 덕분에 탄생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클레멘트 그린버그[평면성, 순수한 소재의 찬양?]보다 더 뛰어난 수완이 필요하다.

 

6. 미메시스는 예술을 볼 수 있는 것, 사고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 예술을 예술로서 존재하게 만드는 분리접속이다. 미메시스는 복사물과 원본 사이의 관계로서의 유사성이 아니라, 제작의 방식, 말하기의 양태, 가시성의 형태, 이해 가능성의 프로토콜 사이의 관계의 총체의 한복판에서 유사성을 기능시키는 방식이다.

 

7. 회화와 3차원의 연결(말, 우화의 시적 역량과 회화사이의 연결)을 풀어버릴 수 있는 것-회화를 평면성에 바치는 것-은 회화가 평평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하며, 형상들이 묶여있던 재현의 위계 질서가 느슨해져야한다.
[미메시스적 질서의 파괴(142)는 '유사성의 정언명령'(138)의 파괴인 걸까?]

 

8. 재현적 체제의 파괴는 회화적 형태들이 시의 위계질서에 종속됐던 것을 폐지하고, 말과 예술 사이의 어떤 연결을 폐지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이 해방은 분리가 아니라 둘을 잇는 다른 방식이다. 재현적 주제 아래서 다른 주제가 나타나도록 만듦으로써 표면에 새로운 자격을 부여한다.


9. 그린버그는 칸딘스키의 반재현적 프로그램이 지닌 순박성에 대해 '형상화의 폐기가 아니라 표면의 정복이야말로 중요하다는 관념'을 대립시켰다. 하지만 이 정복 자체는 어떤 탈형상화의 작업이다.

 

10. 재현적 질서에서 말은 회화의 모델 또는 규범의 역할을 맡았다. ... 미학적 시대에서 비평적 텍스트는 말할 수 있는 것과 볼 수 있는 것의 관계를 다르게 배치한다.

 

11. 새로운 가시성의 구축 - 공쿠르 형제의 글(과거의 재현적 회화를 새로운 현전의 체제에 둠.), 알베르 오리에의 글(재현적 회화가 조화를 이루던 이야기를 다른 말[하기]로 대체.)

 

12. 재현적 논리를 배격한다는 것은 회화의 감성적인 물질성을 단순히 주장하고 담론에의 그 어떤 맹종도 거부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상응의 양태, 즉 회화를 시에, 조형적 형상을 담론의 질서에 연결했던 ~처럼의 새로운 양태이다.

 

13. 표면이 더는 둘로 쪼개지지 않을 때, 표면이 안료를 투사하는 장소에 지나지 않을 때, 더는 어떠한 예술도 존재하지 않음을 헤겔은 가르쳐주었다. ... 내게 이 테제는 (니힐리즘적 의미와는) 상이한 독해를 촉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미리 찬물을 끼얹는 것은 ... 순수성이라는 꿈 ... 각각의 예술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회화에 고유한 표면을 부여한다고 주장하는 모더니티인 것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공지 미셸 푸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세미나 참가자 모집! ― 2월 23일 금요일 7:30 시작! file 김하은 2018-02-02 3530
공지 공지 6/30 [68혁명]세미나 발제 공유 [2] 보미 2017-05-28 4235
공지 발제문 서식 file 김정연 2016-05-20 4173
공지 세미나를 순연하실 경우 게시판에 공지를 올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김정연 2016-03-15 3910
공지 공지 [이미지의 운명] 이후 계획 [1] 보미 2016-02-26 4385
공지 공지 <삶과 예술> 세미나 참가자 명단 - 2018년 2월 secret [2] 김정연 2012-01-27 337

발제공지 4/28 <예술로서의 삶> 발제공지

  • 혜선
  • 2017-04-23
  • 조회 수 197

기타 급 결석계

발제문 4/21 예술로서의 삶 51-61

발제문 [4/21] 예술로서의 삶 32~50

  • wool
  • 2017-04-21
  • 조회 수 171

발제공지 4/21 발제공지(수정)

공지 4/7, 4/14 세미나를 쉽니다.

  • 보미
  • 2017-04-03
  • 조회 수 202

발제문 3/31 [이미지의 운명] 발제문 모음

  • 보미
  • 2017-03-31
  • 조회 수 283

발제문 [이미지의 운명] 227~236

  • 보미
  • 2017-03-31
  • 조회 수 204

발제문 [3/31] 이미지의 운명 210-218쪽

  • 혜선
  • 2017-03-31
  • 조회 수 160

발제문 [3/31] 발제 197~210쪽

발제문 [3/31] 이미지의 운명 218~227

  • wool
  • 2017-03-31
  • 조회 수 170

발제공지 [3/31] 이미지의 운명 발제공지

  • wool
  • 2017-03-27
  • 조회 수 165

기타 결석계

  • 혜선
  • 2017-03-24
  • 조회 수 142

발제문 [이미지의 운명] 169~194

  • 보미
  • 2017-03-24
  • 조회 수 194

기타 결석계

  • sun
  • 2017-03-24
  • 조회 수 146

발제공지 [3/24] 세미나 공부 범위 안내입니다

공지 재커리 심슨, 『예술로서의 삶』 세미나 참가자 모집! ― 4월 21일 금요일 7:30 시작! file [10]

기타 3/17 결석계 입니다.

발제문 [3/17] 이미지의 운명 발제문 모음

  • 혜선
  • 2017-03-17
  • 조회 수 177

기타 3/17 결석계



자율평론 mask
새로 시작하는 세미나 정동과 정서 들뢰즈와의 마주침 생명과 혁명 삶과 예술 푸코 정치철학 고전 읽기 시읽기모임 미디어 이론 일본근현대문학

새로나온 책 [근본적 경험론에 관한 시론]

2018년 새책 [문학의 역사(들)]
[일상생활의 혁명]
[사건의 정치]
[영화와 공간]
[집안의 노동자]
[기호와 기계]
[만화로 보는 철도이야기]
[절대민주주의]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
[신정-정치]
[기린은 왜 목이 길까?]
[로지스틱스]
[잉여로서의 생명]
[전쟁론 강의]
[전쟁론]
[천만 관객의 영화 천만 표의 정치]
[가상과 사건]
[예술로서의 삶]
[크레디토크라시]
[대테러전쟁 주식회사]
[마이너리티 코뮌]
[정동의 힘]
[정동 이론]
[공유인으로 사고하라]
[9월, 도쿄의 거리에서]
[빚의 마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