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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Le Visible et l'invisible(1964), 남수인 옮김, 동문선, 2004, 17~32발제자: 공강일 20180112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반성과 물음: 지각적 신념과 그 불투명성(17~32)

 

요약: 사물을 본다는 것. 본다는 것은 과연 진정한 시각인가, 아니면 그냥 관념에 불과한가, 아니면 꿈이나 환상에 불과한 것인가? 본다는 것에 대한 회의론적 입장은, 우리가 보는 것은 모두 거짓된 것에 불과하다, 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퐁티는 우리가 보는 것은 진짜로 보는 것이며, 진짜로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석적으로 접근해 들어가고 있다.

그는 개인과 타인의 지각의 공통점을 들어 지각은 내적인 것이 아니라 외부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의 지각은 나에게 국한된 것이며, 너의 지각은 너에게 국한된 것이다. 이 둘의 접점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개인적인 세계들이 상호교감한다고 확신하며 이것이 우리 내면에서 진리의 토대가 된다.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이러한 정신, 진리, 관념, 꿈을 사유의 우주혹은 자연적 확신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러한 자연적 확신들은 첫 번째 토대로 삼고 있는 것은 감성적 세계이다. 진리를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 역시 우리가 현실 세계 속에서 공통적인 것을 감각하고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서로 상호교감하고 진리를 공유할 수 있다는 믿음은 공통가능성의 세계에 대한 믿음을 낳는다. 그러나 이런 공통가능성에 대한 지나친 믿음은 문제적이기도 하다.

 

1. 보는 방법의 필요성

우리는 사물 자체를 본다. 그러나 사물을 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앎에 의해 이러한 시각을 동등하게 만들어야 하고, 시각을 소유해야 하며, 우리라는 것이 무엇인지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야 한다.

(*위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도식할 수 있지 않을까?

시각페미니즘

우리앎을 공유하는 집단 페미니즘을 공유하는 사람

본다특정한 관점으로 대상을 해석(번역)하는 것 페미니즘적 입장에서 상대의 언행을 분석하는 일)

 

2. (반성적) 철학이란

철학은 세계를 말해진 사물로 변환시키지 않는다. 철학은 마치 논리학자가 진술된 것 속에, 시인이 말 속에, 음가가가 음악 속에 자리 잡듯이, 말해진 것이나 쓰인 것의 차원에 자리 잡지 않는다. 철학은 사물들을 침묵으로부터 끌어내어서 사물들이 표현하게 인도하고자 한다. 철학자가 자신의 내면에서 활동자들로서 끊임없이 스스로 형성되고 있는 세계와 세계에의 시각에 물음을 던지는 것은, 그러니까 결국 그들에 대해 무지한 척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철학자가 그들을 신뢰하며 그들로부터 자신의 미래 학문을 기대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말을 하게 하고자 함이다.

(*결국 철학자=예술가/작가는 같다는 것. 철학은 사물(대상)을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랑시에르는 이렇게 말한다. “정치는 시간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공동 공간의 거주자로 자리 잡기에 필요한 시간을 가질 때, 자신들의 입이 고통을 표시하는 목소리뿐만 아니라 공동의 것을 발화하는 말을 내보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가질 때 발생한다. 자리와 신분의 이러한 배분과 재배분은, 공간과 시간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소리와 말의 이러한 절단과 재절단은 내가 감성의 분할이라고 부르는 것을 구성한다. 정치는 공동체의 공동의 것을 규정하는 감성의 분할을 재구성하는 일을 하며, 새로운 주체와 대상들을 공동체에 끌어들이고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만들고 시끄러운 동물들로만 지각했던 사람들의 말을 들리게 하는 일을 한다. 대립을 창조하는 이러한 작업은 정치의 미학을 구성한다(미학 안의 불편함, 55).”)

 

3. ‘확신에 대해

내가 테이블 앞에 앉아서 콩코르드 다리를 생각하고 있다면 나는 나의 생각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콩코르드 다리에 가 있고, 또한 이 모든 시각들의 지평, 거의 시각이라 할 것들의 지평에서 내가 체험하는 것은 세계 자체, 즉 자연적 세계, 그리고 세계를 이루고 있는 모든 인간적인 자취들을 간직한 역사적 세계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이 확실하다는 확신은, 내가 주의를 조금 기울이면 곧 그러한 확신이 나의 시각인 시각일 따름이라는 사실에 의해 깨어지고 만다.

(*우리가 확실하다고 느끼는 것은 겨우 나의 (인식론적) 믿음 혹은 지각에 불과하다.)

 

4. (반성적) 철학과 회의주의와의 차이

(반성적) 철학은 회의주의와는 다르다. 회의주의는 진실적인 것을 상정하고 있으며, 우리가 지각한 것들을 격하시키고, 지각물들이 꿈과는 현저하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지각물과 꿈을 동일시한다. 회의주의는 밤 속에 사물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데 빛이 밤으로부터 그 사물을 끌어내듯이 지각은 경험을 초월하여 사물들을 포착한다고 하는 그러한 관념에 반대하는데 유효하다.

(*여기서 꿈은 오해, 착각, 거짓과 같은 뜻으로 쓰인 듯하다. 회의주의는 온전한 대상이 어둠 속에 가려져 있을 때 지각은 그 어둠 속에서도 대상을 유추하고 추론하여 대상의 완전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만든다는 주장을 비판하는데 유효하다. “대상이 어둠 속에 가려져 있다”, 그러나 이렇게 숨겨진 대상을 인간의 지각으로 온전히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회의주의다. 회의주의는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진실적인 것을 상정하고 있다고 퐁티는 비판한다. 그렇다면 퐁티는 어둠 속에 대상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애초에 어둠 속에 대상이라고 부를 만한 것 따위는 있지도 않고,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대상이라고 부를 수 없는 비정형화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결국 퐁티는, 대상은 특정한 형태로 정해져 있지 않고 우리의 인식 과정 속에서 정형화되어 간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지각과정 속에서 대상 역시도 형태를 갖추어 가는 것이다.)

 

5. 지각과 꿈은 다르다.

일치점들을 하나씩 파고들게 하는 지각 또는 진정한 시각과, 관찰 가능한 것이 되지 못하며 검토해 보면 결여 부분들에 불과한 꿈 사이에는 구조적 차이가 있다. 그렇긴 하지만 어떻게 우리는 실제로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는 환상을 가질 수 있는가, 어떻게 꿈의 넝마 조각들이 꿈꾸는 사람 앞에서 진정한 세계의 잘 짜인 직물로서의 가치를 가질 수 있는가, 어떻게 현혹된 사람의 머릿속에서 관찰한 적이 없는 이 무의식이 관찰한 적이 있다는 의식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가 하는, 등등의 문제가 남는다.

 

6. (반성적) 철학의 지향점

우리가 진정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다름 아니라 세계에 속한다 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의미를 아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모든 존재론적 선입견을 떠나서, 특히 세계-존재, 사물-존재, 상상적 존재, 의식적 존재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회의론적인 논거들을 새로운 형식으로 표현해야 한다. (우리가 본다고 말했던) 사물은 나의 시선의 끝에 있으며 일반적으로 나의 탐사의 끝에 있다.

(*퐁티는 사물을 본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나의 지각 체계와 나의 몸에 따른 시각적 변화에 대한 관찰 이후에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7. 지각과 몸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몸이 내가 지각을 못하게 방해할 수 있으며, 몸의 허락 없이는 지각할 수 없다는 점뿐이다. 또한 지각이 오면 그 순간 몸은 뒤로 빠져 버리기에 지각은 지각하는 과정에 있는 몸을 절대로 포착하지 못한다. 나의 몸은 지각을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몸은 몸을 통해 실현되는 지각의 주변에서 구축되는 듯하니까 말이다. 내 지각의 피질로서의 내 살의 경험은 나에게 지각이 아무 곳에서나 생기는 것이 아니며, 보이지 않는 곳의 몸으로부터 떠오른다는 점을 가르쳐주었다.

 

8. 공통 세계(유일 세계)

그러나 지각은 나의 내적 확신에서 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각은 나의 바깥에 있다. 왜냐하면 나의 지각과 타인의 지각이 동일한 것을 지각하기 때문이다. 지각을 외부에서 보았을 때 지각은 사물 위에서 흘러 버리며 사물들에게 가닿지 않기 때문이다.

지각 자체에 대한 지각의 전망에 정당성을 주고자 할 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우리 각자는 개인적인 세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전부다. 개인적인 세계들은 세계를 가지고 있는 개인들에게만 세계들일 뿐이요, ‘세계가 아니다. 단 하나의 세계, 즉 유일무이한 세계는 공통 세계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지각은 이 유일 세계를 향해서가 아니다.

 

9. 타인의 세계와 나의 세계

타인이 체험한 것은 내가 타인을 신뢰하므로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지 않을뿐더러, 타인이 체험한 것은 그 가운데 나에 대한 타인의 관점 같은 것이 들어 있기 마련이라 나 자신과 상관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인식하게 될 때 그 사람에게도 매순간 삶이 살아지고 있다는 자명함이 찬연하게 떠오르게 된다.

내가 보는 색깔, 내가 가졌던 고통,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 의거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내가 진정 그의 것들로서의 그의 색깔들, 그의 고통, 그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내가 타인의 삶을 공유한다고 믿는 바로 그 순간, 내가 타인의 삶을 만나는 것은 그 삶의 목표들, 그 삶의 외적 특색들 가운데서 뿐이다. 우리가 서로 교감하는 것은 세계 속에서, 그리고 우리의 삶이 가지고 있는 분절화된 요소들에 의해서이다. 내가 타인의 시각에서 초록빛의 영향을 본 듯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의 앞에 펼쳐진 이 잔디에서 출발해서이며, 내가 타인의 음악적 감동 속에 들어가는 것은 음악에 의해서이고, 나에게 타인의 개인적 세계로 가는 통로를 열어 주는 것은 바로 사물 자체이다.

 

10. 교감과 확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세계들은 상호 교감하는 것이 틀림없으며, 각각의 개인적 세계란 그에게(名義人: 표면상의 주체) 주어진, 공통 세계의 변이 같은 것임이 분명하다. 커뮤니케이션은 우리가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만든다. 그렇긴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없다. 확신을 체험할 수는 있지만, 확신을 사유할 수도 문구로 구사할 수도 명제로 구축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상대의 지각과 나의 지각은 다르기 때문이다.

 

11. 진리의 토대: 공통적인 것의 감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개인적인 세계들이 상호교감한다고 확신하며 이것이 우리 내면에서 진리의 토대가 된다.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이러한 정신, 진리, 관념, 꿈을 사유의 우주혹은 자연적 확신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러한 자연적 확신들은 첫 번째 토대로 삼고 있는 것은 감성적 세계이다. 진리를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 역시 우리가 현실 세계 속에서 공통적인 것을 감각하고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2. 관념의 메커니즘

진실적인 것[진짜]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이 경험이 우리가 보고 있는 사물의 경험으로 즉각 환원되지 않을 경우, 처음에는 타자들과 우리 사이에 생기는 긴장들과, 그리고 긴장들의 해결과 구별되지 않는다. 진실거인 것은 사물처럼, 타인처럼, 정서적이고 거의 살적인 경험을 통해 빛을 발하거니와, 이 경험에서 (타인과 우리의) ‘관념들은 타인이나 우리의 생김새의 면면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해된다기보다는 오히려 사랑 또는 미움 속에서 받아들여지거나 배척된다고 할 수 있다.

 

13. 공통가능성의 장소(compossibilité)

진리 우주와 사유 우주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현실세계에서 도출된다. 그것은 우리의 감성이 감각에서 비롯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또한 어떤 진리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강력한 의식을 표현하고자 원할 때 우리는 정신들이나 인간들에게 공통적일 지성의 영역을 불러내고자 한다.

이것은 유비(analogie)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 몸들과 우리 정신들을 포용하고 있는 세계로 즉 사물들이 준수하는 불변의 양식이라고 이해한다. 사물들의 공통 가능성의 장소는 우리의 전망들을 연결시키며 하나의 전망에서 다른 하나의 전망으로의 이행을 가능하게 하고, 우리가 우리의 관찰 지점들을 엇바꿀 수 있는 것처럼 동일한 진짜 대상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교활할 수 있는 목격자라는 느낌을 준다.

 

14. 의사소통의 ()가능성 혹은 일치성의 강조가 낳는 문제

시각적인 것들에서 통일성과 일치성을 찾는 것은 쉽다. 그러나 제도화된 의견들(opinions instituées)의 테두리를 벗어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접근하게 되면 즉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네 섬에 살고 있는 듯하고, 서로를 잇는 가교란 없는 듯하다. 그래서 때로 그 무엇에서 의견이 일치되기라도 하면 사람들은 놀라워한다.

그러나 언어를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이 문제가 될 때에도 그 누구도 보지 못하는 것을 말한 것이 문제가 될 때에도, 그들이 양립 가능한 명제들에 도달할지는 인류라는 종의 타입도 사회의 타입도 보증하지 못한다. 우리가 서로를 변질시킬 수 있는 우발적인 일 더미를 생각하면 진리의 우주를 하나의 세계처럼, 균열 없고 공가능적이지 못한 것들 없는 하나의 세계처럼 취급하는 외삽법(extrapolation)보다 더 비개연적인 일은 없다.

 

*사유의 본질

우리가 우리 경험들이 경험들의 가장 고유한 의미에 따라 서로서로 의존하는 방식을 재구성하게 되면, 그리고 본질적인 의존 관계를 보다 잘 드러내기 위해 그 관계들을 생각 속에서 끊어버리고 나면 우리는 사유라고 불리는 모든 것은 자기에 대한 거리두기, 최초 개방을 요구함을 보게 되는데, 이 거리두기, 이 최초 개방은 우리한테 시각의 영역이며 미래와 과거의 영역이다.

(사유란 생각을 떠올리고 쏟아내는 방식을 의미한다. 대상을 익숙한 방식으로 바라본다면 생각은 확장되지 않는다. 돌멩이는 당연히 떨어지지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돌멩이가 떨어지는 원인에 대해서 사유하지 않은 것이다. 그녀를 사랑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를 의심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나에게 익숙한 생각으로부터 멀어질 때 그가 분명하게 보일 것이다. 이 때 우리는 비로소 시각을 갖게 된다. 이 시각은 이미 과거 속에 존재했으나 지나친 것일 수도 있고, 언젠가는 도래하고 말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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