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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음악의 길에 대한 안내서 『매혹의 음색』
『매혹의 음색』 서평


박인수(다중지성의 정원 회원)



사물의 인지 능력은 개념화 작업에 선행한다. 감각을 통해 들어온 자극이 지각을 발동하게하고 이 지각이 인지를 구성하는 것이다. 감각을 각각의 영역으로 분리해내는 지각은 지식 ‧ 문화 체계인 ‘개념’을 따르고, 이 방대한 정보들을 틀 짓고자 하는 노력은 도처에 널린 돌연변이의 탄생을 거부하고 배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역사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있는 기반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소위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지식이 되기 위해서는 위대한 명예를 누렸던 제왕의 온건한 계승자가 되거나 아버지가 싫어 도망쳤던 탕자가 종래에는 돌아왔던 것처럼 어떻게든 주류가 되어 역사의 흐름에 복귀해야 한다. 전자의 경우 개념은 순수한 방식으로 수용될 것이고 후자의 경우 개념은 비판적 방식으로 수용될 것이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역사의 녹을 함께 나누어 먹고 사는 건 결국 변하지 않는다. 정(正)이건 반(反)이건 그 흐름에 맞춰 어떻게든 밥벌이를 해야 하는 것이 사(史)자가 들어가는 지식과 그 지식의 체계에 기생해 살아가는 이들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음악사와 미술사 등 그 시작이 늦었던 예술사의 영역 또한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예술사의 흐름은 다름 아닌 그 역사를 만들어냈던 이들의 의해 (그걸 수행하고 있는 이들이 인지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스스로를 공격하고 결국에는 스스로를 망하게 하는 길을 걸어가고 있는 듯하다. 미술은 미술의 재료가 아니었던 다른 것들에 주목을 하고(캔버스 이외의 것), 발전하는 기술에 발맞춰 미술의 영역을 확대해 나가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음악의 영역 역시 마찬가지다. 일군의 음악가들과 음악 이론가들은 그동안 음악의 영역이 아니었던 것들에 점차 관심을 갖고, 컴퓨터 기술을 이용해 우리의 감각과 지각을 교란시켜 놓는, 음악이 아니나 음악인 것들을 등장하게 했으며, 지금도 예전엔 음악이라 할 수 없었던 영역을 계속해서 발견해 나가고 있다. 


김진호의 『매혹의 음색』은 1960년대 후반 즈음부터 시작된 이 음악사의 흐름을 음고의 특권화에 의해 배제되었던 음색의 발견으로 설명해 나간다. 음고의 논리가 과도하게 발전함에 따라 엄격한 화성학의 음계에서 벗어나 있던 여러 매혹적인 소리들이 소음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쇤베르크의 《색깔들》은 이러한 음고의 독단에 반기를 들어 매혹적인 음색을 선보였고 존 케이지의 《4분 33초》는 이를 극단으로 끌고 가 다양한 색을 가진 일상의 소리들이 (심지어 침묵조차도) 훌륭한 음악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했다. 그 유명한 윌리엄 드 쿠닝의 드로잉을 지워 버렸던 로버트 라우센버그처럼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듣기 좋게 짜인 화성학의 논리를 지워나가는 스펙트럼 음악과 도처에 널려 있는 소리를 조직화해 대중이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만들어 낸 구체음악 또한 세계에 존재하는 생명의 개체 수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다양한 음색의 일부를 영특하게 조합하거나 분리해낸 음악이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청취지각을 갖는 만큼 어떤 이에게 이 소리들은 음악이 될 것이고 어떤 이들에겐 그저 듣기 싫은 소리가 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시도들을 통해 우리가 음악으로 인지할 수 있는 영역은 광범위하게 확대되었고 도처에 널린 일상의 소리들을 잘 갖고 놀 수만 있다면 누구나 음악가가 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범접할 수 없는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는 예술가, 숭고한 영감의 결과물이었던 예술에 대한 개념은 이렇게 서서히 막을 내려간다. 예술은 점차 각각의 영역을 틀 지을 수 없는 길을 걸어갈 것이며 그 길은 스스로 다져 왔던 개념을 하나하나 부숴나가는 길이 될 것이다. 『매혹의 음색』은 그 길의 초입에 서서 그 길이 어떤 길인지 소개하는 충실한 안내서이다. 혹자는 『매혹의 음색』에서 소개하는 음악들이 기존 음악의 틀을 무너트림으로써 오히려 청자를 난해하게 만들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스스로의 가능성을 닫아두는 어리석은 생각이다. 엄청난 기술 발전으로 우리의 생활도 하루하루가 다른 세상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익숙치 않았던 스마트폰을 생활의 일부처럼 사용하고 있는 세상이기도 하다. 이 첨단 기술의 사용이 증명해 주듯 우리의 지각은 이전보다 진화했고 앞으로도 더 진화해 나갈 것이다. 모두가 이 음악들을 예술이라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예술작품 수용의 보편성이란 개념은 그동안 예술의 역사에서 수없이 시도되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던 일이다. 다만 폐쇄된 개념에 갇혀 스스로의 능력을 감춰 두지 않길 바랄 뿐이다. 우리의 삶과 분리되어있던 부정적인 예술의 개념은 이미 깨져 있고 앞으로도 더 심각하게 붕괴될 것이다. 그 붕괴된 곳 위에 어떤 것들을 만들어 나갈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파국으로 치닫는 그 길이 즐거운 길이 될 수 있도록 많은 이들이 함께 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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