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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지 구축으로 자본을 넘어서기
『텔레코뮤니스트 선언』서평


안태호(문화기획자)



* 이 글은  2014년 7월 3일 문화연대 소식지 『문화빵』  42호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www.culturalaction.org/xe/newsletter/720139



현대문명의 영감어린 비판자 이반 일리치는 1982년 일본 도코에서 열린 ‘빼앗긴 공용, 들판과 고요’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한다. 일리치의 할아버지가 살던 크로아티아의 작은 섬은 5백 년 동안 군주와 언어가 여러 차례 바뀌는 동안에도 사람들의 일상에 거의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1926년, 갓 태어난 일리치가 타고 간 배에 실려 확성기가 도착한 이후 사람들의 일상은 크게 바뀐다. 그때까지 남자든 여자든 다들 고만고만한 목소리로 말하던 풍경이, 마이크를 누가 잡느냐에 따라 어떤 목소리가 확성되는지가 결정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정적이라는 공유지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일리치는 이를 ‘지역의 공용물이던 언어 자체가 소통을 위한 국가 자원으로 바뀌어 버렸다’고 말한다.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똑같이 제 목소리를 부여해주던 정적이 파괴되었고, 확성기를 사용할 수 없는 사람은 입막음을 당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됐다는 것이다.
 
이는 인터넷에서도 똑같은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인터넷의 역사는 또래협력(P2P)에 기반한 네트워크에서 서버-클라이언트 구조로의 전환 과정이었다. 다시 말해, 초기의 인터넷이 이용자들의 수평적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에 반해, 현재의 WWW(월드와이드웹) 구조는 특정한 기업들에 의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와 서비스를 소비하는 대상으로 위계화되었다는 이야기다.
 
흔히, 웹2.0의 핵심은 ‘참여와 공유, 개방’으로 알려져 있다. 웹2.0의 가치는 기술적 발달과 사회적 혁신으로 포장된다. 그러나 드미트리 클라이너의 생각은 다르다. ‘웹 2.0은 공동체가 창출한 가치를 사적으로 포획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것이다. 그의 논지를 따르자면, 우리중의 대다수는 오늘도 네이버와 다음, 구글과 페이스북의 열렬한 노동자가 되어 근무중이다. 왜냐고? 사이트 이용자들이 만들어내는 콘텐츠야 말로 해당 기업들이 생존할 수 있는 가치기반이기 때문이다. 이 기업들은 이용자들이 만들어낸 가치를 활용하여 돈벌이를 한다. 저자는 웹2.0을 ‘또래협력 시스템에 대한 자본주의의 선제공격’이자 ‘정보 공유지에 대한 자본주의적 인클로저의 제2의 물결’이라고 규정한다. 인터넷 상의 공유지를 잠식해 사적 이익 확보를 위한 공간으로 성격을 완전히 바꾸어버렸다는 이야기다.
 
일리치에게도 클라이너에게도 중요한 것은 공유지이다. 클라이너는 공유지를 확보하는 것을 넘어 공유지를 활용한 부를 축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공유지를 팔아 장사를 하자는 이야기인가? 그의 이야기를 좀 들어보자. 저자가 공유지를 활용하여 돈을 벌려 하는 이유는 간명하다.
 
“사상의 발달과 이행은 그것의 본질적 가치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상으로 이득을 보는 이들과 위협을 받는 이들 간의 상대적인 권력에 따라 결정된다. 사회 질서를 바꾸는 능력은 무엇보다 경쟁하는 커뮤니케이션 및 로비 능력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을 요구한다. 커뮤니케이션 및 로비 능력의 기반은 경제적 능력이다. 그래서 변화는 그것에 저항하는 이들의 부를 극복하기에 충분한 부의 이용을 요구한다. 그러한 부는 오직 생산에서만 생겨난다.”
 
한 마디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이를 위한 수단으로 그가 제시하는 것이 벤처 코뮤니즘과 카피파레프트다. 사실, 이 두 개념을 얼핏 보면 위험하거나 혹은 무책임한 금융상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저자 역시 이것이 목적하는 바와는 정반대로 읽힐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말한다. “정치는 사상의 대결이 아니라 능력의 대결이다” 이 사람, 퍽 실용적이다. 그가 이론가라기보다는 활동가에 가깝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통찰일 것이다.
 
클라이너가 보기에 자유소프트웨어 운동과 카피레프트 활동은 충분한 잠재력을 지녔고, 일정한 성과를 내 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힘을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벤처 코뮤니즘은 “생산적 자산의 공통재(common stock)를 공유하는 독립 생산자들을 위한 구조를 제공하면서, 자유소프트웨어처럼 비물질적 가치의 창출과 배타적으로 결합된 예전의 생산형식들을 물질 영역으로 확장시킨다.” 비물질 영역에 머물지 않고 실제 생산을 적극 조직해야 한다는 의미다. 벤처 코뮤니즘은 한마디로 노동자들의 자기조직화 생산 모델이다. 자본주의의 대규모로 조직된 생산구조에 대비하여 저자는 또래생산(peer production)의 특징을 이야기한다. “또래생산자들은 자기조직적이고 독립적으로 생산하기 때문에 또래생산자 커뮤니티는 관리 단계의 발달 없이도 성장할 수 있다.”는 거다.
 
같은 맥락에서 카피파레프트(copyfarleft)는 카피레프트에 기초하되 새로운 기준을 도입한다. 상업적 이용을 무조건 막거나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에 따라 적용한다는 것이다. 노동자 소유 기업은 카피파레프트 저작물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지만 사적 소유 기업의 사용은 제한된다. 카피파레프트는 이러한 기준을 통해 상업적 이용이 아니라, 공유지에 기반하지 않은 사용을 제한하고 노동자 소유 기업들의 부를 축적하는 데 기여하게 된다.

카피파레프트의 도출을 위해 전개하는 카피라이트와 카피레프트,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등에 대한 저자의 비판도 흥미롭다. 카피라이트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는 그것이 문화생산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카피라이트의 핵심은 언제나 창작자를 착취하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었다.
 
“저자는 원칙적으로 자신의 노동 생산물을 소유할 권리를 가졌지만, 비물질적인 아이디어를 창작했고 그 아이디어를 출판하기 위한 기술적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이용할 수 있는 자본을 가진 또 다른 이에게 자신의 권리를 팔아야만 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어떤 다른 노동 판매와도 다르지 않았다. 저자의 착취는 지적재산권 체제에 그 시작부터 깊이 새겨져 있었다.”
 
사실, 멀리서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네이버나 멜론 등 각종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창작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에 대한 논란을 대부분 기억할 것이다. 콘텐츠를 대중에게 서비스할 기술적 수단을 보유하고 있는 이들은 언제나 콘텐츠 생산자보다 압도적인 부를 획득하는 것이 현실이다. 예술가를 포함한 창조적 생산자들은 생계비 이상을 벌기 어렵다. 아니, 한국적 상황에서는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CCL로 이야기되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에 대한 비판도 가차없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는 생산자-통제를 거부하기보다 오히려 정당화하고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구별을 폐지하기보다 오히려 강화한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는 소비자가 공통재로부터 사용가치나 교환가치를 창출할 수 없도록 생산자가 금지하는 법적인 틀을 확장시킨다.” 한 마디로 CCL은 정교하고 세련되게 다듬어진 카피라이트일 뿐이라는 거다.
 
이 책에서 고민스러운 부분은 저자의 노동계급에 대한 전폭적인 믿음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 것인가라는 지점이다. 클라이너는 책 곳곳에서 노동자와 노동자 기업에 대해 순진하다고 생각될 만큼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여준다. 이는 책 말미에 부록으로 실려있는 스테판 메레츠의 비판에도 일부 담겨져 있다. 노동자 기업이 그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살아남기가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현실사회주의가 그 이상을 온전히 고수하기가 곤란했다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전교조가 법 밖으로 밀려나고 노동조합 활동이 철퇴를 맞는 한국의 상황에서 노동자 기업이라니. 동일한 문제의식을 받아낼 주체들이 희소할 거란 생각부터 든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이는 한편으로 매우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클라이너는 한국의 사회적기업은 체제유지를 위한 첨병이라고 잘라 말할 가능성이 크겠지만 말이다.
 
노동자들이 직접 이윤을 창출하는 조직체를 꾸리고 운영할 때, 그 조직의 운영방식이나 부를 획득하는 과정을 건강하게 유지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근거 없는 낙관은 위험할 수도 있지만, 기초적인 신뢰가 없다면 대안을 모색할 기회조차 가질 수 없다는 점에서 저자의 믿음을 지지해야 할 것 같다. 게다가 저자가 대상으로 삼는 주요 그룹은 ‘정치적 동기를 지닌 예술가와 해커, 활동가’이다. 그가 제시하는 벤처 코뮤니즘과 카피파레프트가 점점 더 대기업 독과점이 높아지는 인터넷 환경에서의 새로운 공유지를 구축하고 시스템에 포획되지 않는 영토들을 확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클라이너도 인정하듯 이 개념들은 힘의 관계를 역전시키기 위한 수단이고, 완결된 방법이라기보다는 제안에 가깝다는 것이다. 문화생산에 관계하는 이들의 적극적인 토론을 기대하며 저자의 말을 하나 더 붙인다. “사회를 바꾸는 유일한 길은 다르게 생산하고 공유하는 것이다”
 
덧)
또래협력이라는 번역어를 매우 흥미롭게 받아들였다. ‘또래’는 흔히 같은 나이대의 관계를 뜻하는 말인데, 이 말에는 나이 외에도 수준이 비슷하거나 생김새나 됨됨이 크기 따위가 같거나 비슷하다는 의미가 있다. 오해의 소지가 없지 않으나 신경림 시인의 파장(罷場)에 나오는 유명한 첫 구절,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는 또래라는 말의 의미를 잘 보여준다. 번역어의 선택이 출판물의 품격을 좌우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이 말이 그런 경우라 하겠다. P2P(Peer to Peer Network)의 역어로 이렇게 절묘한 선택을 한 역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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