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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의 계보학>과 부채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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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덕의 계보학> 제 2논문에서 니체는 채권자-채무자의 관계가 가장 원초적인 사회적 관계의 형식이며, 많은 도덕적 개념들뿐만 아니라 ‘신’의 개념까지도 이러한 채권자-채무자 관계로부터 파생된 것이라고 말한다. 먼저 부채경제로서의 원시경제 자체에 대해 집중해서 다루기로 하고 그 후에 이러한 채무관계의 파생물을 다루기로 하자.

부채경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채무를 지불하겠다는 계약을 불이행할 시에 생기는 손해를 다른 방식으로 변상하도록 만드는 장치가 필요한데, 대표적인 것이 형벌이었다. 형벌을 통해 손해를 입은 채무자는 괴롭혀져야 했으며, 이러한 채무자의 고통은 채권자에게 쾌락을 줌으로써 채무자로 하여금 손해를 변상할 수 있게 했다. 니체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다시금 묻건대, 고통은 어느 정도까지 ‘부채’를 보상해 줄 수 있을까?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 최고로 쾌감을 주는 정도까지이고, 피해자가 손해로 인한 불쾌감을 포함하여 그 손해에 대한 보상으로 이례적인 반대 만족감을 얻는 정도까지이다. 즉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것이 본래적인 축제였으며,...채권자의 신분이나 사회적 지위가 낮으면 낮을 수록 더욱 높은 값이 매겨지는 것이었다.”(제 2논문 §6)

 



그렇다면 어떻게 남에게 형벌을 가하는 것이 쾌감을 주는 것일까? 그것은 이렇게 형벌을 가함으로써 형벌을 가하는 시간동안 채권자가 남을 지배하고 남에 대해서 우월감을 가지게 되고, 권력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만족감은 채권자의 신분이 낮을수록 커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만족감은 채권자의 지위가 낮고 비천할수록 커지는데, 채권자는 그것을 더없이 맛좋은 음식으로, 그러니까 좀 더 높은 지위을 미리 맛보는 것으로 가볍게 생각할 수 있다.채권자는 채무자에게 ‘형벌’을 가함으로써 주인의 권리에 가담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도 한 인간을 ‘자기보다 낮은 존재’로 경멸하고 학대할 수 있다는 우월감을-...맛볼 수 있게 된다.”(제 2논문 §5)

 



2.

니체는 ‘죄’,‘양심’,‘의무’,‘의무의 신성함’과 같은 도덕적 개념의 세계가 바로 이 채권법의 영역, 즉 채무를 이행하지 못한 자에게 피와 고문으로 점철된 형벌을 가하는 채권법의 영역에서 생겨났다고 말한다. 이처럼 이 도덕적 개념의 세계는 처음부터 피와 폭력으로 물들어져 있었으며, 따라서 시작부터 ‘순수’하지 못했다. 그리고 니체는 이러한 형벌을 통해 ‘죄’와 ‘고통’이라는 관념이 처음으로 서로 결합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직 이러한 ‘죄’와 ‘고통’의 결합은 ‘양심의 가책’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아직 이러한 고통은 내면화되지 못하여 자기 자신을 괴롭히지 못하고, 원시사회에서 형벌은 채무자로 하여금 죄의식을 씻어버리게 했기 때문이다. 니체는 또한 그 이후로도 형벌이 가책을 생기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책이 형성되는 것을 방지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양심의 가책은 어떻게 발생한 것일까? 양심의 가책이 생기기 위해서는 ‘내면성’의 영역이 확실히 존재해야 하고, 외부로 향하는 공격충동의 발산이 억제되어 내부로 향해야한다. 이러한 조건을 만드는 것이 바로 국가라는 정치조직이다. 니체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외부로 발산되지 않는 본능은 모두 안으로 향하게 마련이다. 내가 인간의 내면화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원래는 두 개의 피부 사이에 끼어있는 것 같던 얇디얇은 전체 내면세계가 인간 본능이 밖으로 발산되는 저지됨에 따라 점차 분화되고 팽창되어 깊이와 너비와 높이를 더하게 되었다.

자유라는 오래된 본능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국가 조직이 구축해 놓은 저 끔찍한 방벽...은 야생 생활을 하고 아무 거리낌 없으며 이리저리 유랑하던 인간의 저 모든 본능을 반대방향으로 돌려 인간 자신을 향하게 했다. 적의, 잔인함, 그리고 박해, 기습, 변혁 및 파괴의 욕구-이 모든 것이 그러한 본능을 소유한 자를 향해 방향을 돌리는 것, 이것이 바로 ‘양심의 가책’의 기원인 것이다.”(제 2논문 §17)

 



국가의 탄생에 대해서는 앞에서 다루었으므로 넘어가기로 하자. 다시 부채의 문제로 되돌아가보면, 원시사회에서 조상세대와 현재세대의 관계는 채권자-채무자의 관계로 해석되었다. 그리고 종족 자체의 힘이 증대해감에 따라 조상에 대한 두려움과 부채의식은 더욱 커지게 되고, 이러한 상상 속에서 조상은 엄청나게 큰 존재로 자라나서, 신으로 변형되기에 이른다. 이것이 종교의 기원, 신의 기원이다. 따라서 종교의 문제는 부채의 문제에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신에 대한 상상적 채무, 즉 신에 대한 죄의식은 수 천년에 걸쳐 더욱 더 크게 자라났고, 죄와 의무라는 개념은 도덕화되어 양심의 가책과 결합하게 된다. 달리 말하자면 “양심의 가책을 신의 개념과 연루”(제 2논문 §21)시키게 된다. 니체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양심의 가책을 지닌 이 인간은 자기 고문을 말할 수 없이 소름끼칠 만치 가혹하고 준엄하게 몰아가기 위해 종교적 전제를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했다. 신에게 죄를 지었다는 사실-이러한 생각이 그에게 고문의 도구가 된다.”(제 2논문 §22)

 



그리고 이러한 신에 대한 죄, 즉 신에 대한 채무는 상환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른다. 그리고 이것은 양심의 가책의 증대와 연관이 있다.

 



“이제부터 양심의 가책은 채무자에게 뿌리를 내리고 파고들고 뻗어가서 해파리처럼 자라나서는, 부채를 해결할 수 없는 것과 아울러 속죄도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 즉 죄는 갚아나갈 수 없다(‘영원한 형벌’)는 생각이 싹트게 되었다.”(제 2논문 §21)

 



여기서 기독교의 천재적인 발상에 의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 기독교는 신이 자기 자신에게 속죄를 받는다는, 신이 자신의 채무자를 위해 희생한다는 서사를 만듦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헤어 나올 수 없는 죄책감에 빠뜨리게 한다.

 



“...급기야 우리는 고통을 받는 인류가 잠시 위안을 얻었던 역설적이고 끔찍한 방편인 기독교의 저 독창적인 착상과 갑작스레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즉 신 자신이 인간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다. 신 자신이 자기 자신한테 스스로를 속죄 받는다. 신이란 인간 자신으로서는 상환할 수 없게 된 것을 인간으로부터 상환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채권자가 자신의 채무자를 위해 희생한다, 사랑 때문에, 이것을 믿어도 될까? 자신의 채무자에 대한 사랑 때문에!”(제 2논문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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