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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부품 사회'에서 예술은 어떻게 삶에 연루돼 있나
나 자신이고자 하는 충동』 서평

고봉준(문학평론가)



* 이 글은  2015년 4월 10일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5360



구라카즈 시게루의 <나 자신이고자 하는 충동>(갈무리, 2015년 3월 펴냄)에는 '관동대지진에서 태평양전쟁 발발까지의 예술운동과 공동체'라는 흥미로운 부제가 달려 있다. 일본은 물론 한국의 근대문학, 아니 아시아의 근대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이쇼(大正, 1912∼1926)기에서 쇼와(昭和, 1926∼1989) 초기로 이어지는 이 시기 일본 예술에서 눈을 돌리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연구 대상, 시기, 범위 때문에 근대 일본과 한국의 문학과 예술 전공자, 그리고 '예술운동'과 '공동체'라는 키워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손쉽게 반응할 법한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순전히 학문적인 관심만으로 집필된 책이 아니며, 또한 역사적 성격을 띠는 창작물에 관한 실증적인 연구만도 아니다. 이 책은 과거의 생산물을 연구 대상으로 하되 지속적으로 그것을 현재의 지평으로 불러내고 있고, 문학과 예술의 행방을 수소문하되 그것을 정치나 삶 같은 더 광범위한 맥락과 충돌시킴으로써 '문학'과 '예술'에 분과 학문 이상의 실천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저자는 신자유주의의 도래로 인해 황폐화된 우리의 삶을 "우연히 얻은 생명(삶)"이라고 요약하면서 개인이 처해 있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단지 살아갈 뿐"이라는 '벌거벗은 생명'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생명(삶)에 관해 새롭게 사고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이쇼에서 쇼와 초기에 활동한 예술가들의 문제의식에서 그 단초를 찾고자 한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정치와 문학'이라는 테마가 일본의 전후 약 15년간 문학의 담론을 규정한 최대 규모의 사상적 테마였다고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와 문학'의 관계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논쟁은 19세기 이래 예술가와 지식인들의 관심에서 제외된 적이 없었다. 쿠르베의 리얼리즘을 둘러싸고 펼쳐진 프루동과 에밀 졸라의 논쟁에서 파시즘 미학을 비판한 발터 벤야민의 '예술의 정치화'에 대한 주장, 그리고 '문학과 정치'와 '문학의 정치'를 구분한 자크 랑시에르의 미학 담론에 이르기까지 '정치와 문학'은 논점을 변주해가며 차이의 반복을 거듭했다. 돌이켜보면 지난 몇 년 한국문학의 최대 관심사 또한 '문학과 정치'였다. 이런 여러 맥락을 고려하여 생각해보면 이 책은 아래처럼 몇 가지 방식으로 읽는 것이 가능할 듯하다. 


먼저 '관동대지진에서 태평양전쟁 발발까지의 예술운동과 공동체'라는 문제의식을 충실하게 따라가며 읽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주 독자층은 해당 시기의 문학과 예술에 대해 구체적 관심과 얼마간의 지식을 소유한 사람들, 가령 일본과 한국의 근대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일 것이다. 이 시기에 한국과 일본은 식민지와 제국이라는 비대칭적 관계에 있었으나, 한국 근대문학이 일본 근대문학에 연동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 책은 특히 한국의 근대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논점을 제공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근대문학에 대한 논쟁적 주장을, 그것도 상당히 많은 일본 작품들을 논거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비전공자들이 따라 읽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예컨대 이 책은 1장에서 고현학(考現學)의 창시자인 곤 와지로와 시집 <적과 흑>의 저자 하기와라 교지로를 중심으로 백화파 이후의 예술가들이 미적 아나키즘을 전유한 방식을 살피고, 2장에서는 에도가와 란포, 가와바타 야스나리, 다니자키 준이치로 등의 소설에 등장하는 '독실(個室)'을 중심으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관계 변화를 탐구한다. 3장에서는 근대적 민예운동의 창시자인 야나기 무네요시의 주장을, 4장에서는 요코미쓰 리이치의 소설에 투영된 영화적 특성을, 5장에서는 미야자와 겐지에게서 '의식'과 '세계'의 관계를, 6장에서는 일본 낭만파로 출발해 국수주의적 미학의 옹호자로 변모한 야스다 요주로의 사상을 분석하고 있다. 1∼6장까지의 여정은 '미적 아나키즘'의 전유와 변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무척 흥미로운 주장을 제시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작가, 그리고 그들의 작품에 대한 독서 경험 없이는 완주하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이 책을 읽는 두 번째 방법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미적 아나키즘'이라는 문제의식에 집중해서 읽는 것이다. 이 경우라면 장 프레포지에의 <아나키즘의 역사>(자음과모음, 2003)나 앨런 앤틀리프의 <아나키와 예술>(이학사, 2015)을 병행해서 읽으면 좋을 듯하다. 


'아나키즘'은 오해와 달리 무정부주의와는 맥락 자체가 다르다.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아나키즘'은 "개인을 지배하는 모든 정치 조직이나 권력, 사회적 권위를 부정하고 개인의 자유와 평등, 정의, 형제애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상이나 운동"이라고 소개된다. 아나키즘(Anarchism)은 an+arch+ism로 구성된 조어로 지도자(지배)가 없다는 의미의 그리스어 '아나르코스'에서 비롯된 말이다. 19세기 이래 많은 아나키스트들은 아나키즘에 관해 설명할 때 an과 archy 사이에 하이픈(-)을 넣음으로써 그것이 정치체 가운데 하나가 아님을 강변해왔다. 아나키즘에 관해서는 모든 이가 합의하고 공유할 수 있는 설명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기도 하지만, <아나키와 예술>의 번역자가 인용하고 있는 주장들, 즉 "권력 의식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기를 요구하는 삶의 넘쳐흐름"이나 "모두의 자기 통치"가 대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설명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정치와 삶의 원리로서 아나키즘은 개인의 자율성과 자유를 가로막는 일체의 외부적 지배를 거부하는 일종의 '자기 통치'이다.


2000년 이후 신자유주의적인 지배가 정점에 이른 미국과 유럽에서 갑작스럽게 아나키즘을 재조명하는 책들이 쏟아지고 있는 이유도 이러한 특징과 무관하지 않다. 그것은 '피로 사회'(한병철), '부품 사회'(피터 카펠리) 같은 신조어가 암시하듯이 신자유주의가 개인의 자율성과 자유를 철저하게 파괴하고 짓밟는 것에 대한 저항과 대안의 차원에서 재등장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읽으면 <나 자신이고자 하는 충동>의 저자가 일본 근대문학에서 발견하는 개인, 즉 '나 자신이고자 하는 충동'은 논쟁적인 가치를 지니게 된다.


물론 구라카즈 시게루가 이 책에서 '나 자신이고자 하는 충동'이라는 이름으로 재발견하고 있는 '개인'이 공동체의 해체가 낳은 개인(individual)과 어떻게 같고 다른지, 신자유주의 하에서 '나 자신이고자 하는 충동'이 어떤 실천적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논의가 필요할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라카즈 시게루의 이 책은 관동대지진 이후 문학과 예술에 등장하기 시작한 '나'를 끊임없이 '이미-존재하는-나'를 갱신함으로써 재탄생하는 창조적 주체로서 '나', 나아가 미/예술을 통해 창조하는 주체 구성의 원리로 설명함으로써 그 생명의 자기 확장이 갖는 문제성을 지금-이곳, 즉 신자유주의가 삶을 포획하고 있는 이곳에서 출구 찾기와 연결시킨다. '벌거벗은 생명'이라는 아감벤적인 시각이 그것을 증명한다. 물론 지금-이곳의 게토화된 삶에 '이미-존재하는-나'를 갱신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 그것이 또한 대중의 욕망에 부합하는 것인지는 다시 물어야 할 듯하다. 현대인들에게 끊임없는 갱신을 통해 부단히 새로워지라는 말처럼 무서운 말이 또 있을까.


세 번째 독서법은 아마도 가장 논쟁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일본 낭만파의 원조인 야스다 요주로가 국수주의 미학의 옹호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묘사한 대목과 '미적 아나키즘의 행방'이라는 제목이 붙은 에필로그였다. 특히 후자에서 저자는 미적 아나키즘이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관념을 극한까지 추구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자율성론이 결국 일체의 제도나 법에 의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연의 능산성을 긍정하는 담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맥락에서 미적 아나키즘과 예술의 자율성 테제의 연관성은 수월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앨런 앤틀리프의 <아나키와 예술>이 보여주듯이 억압적인 질서나 정치와 더 직접적인 방식으로 충돌하는 예술 실험만을 '미적 아나키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편 서브컬처(하위문화)를 대중사회의 문화적 산물로 평가하고, 그것을 "자본주의적 상품" 카테고리에 포함시키는 인식 또한 상당히 논쟁적이다. 특히 "예술이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생명(삶)의 생산이라는 감각을 줄 수 없다면, 예술은, 이미 낡은 문화유산의 잔존이든지, 그렇지 않으면, 비즈니스 사회의 스트레스를 완화시켜 주는 정신적 보조제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313쪽)이라는 주장은 상당히 도발적이다. 비록 영향력이 제한적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담론 배치에서 하위문화는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문화적 실천의 일종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또한 예술은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생명(삶)의 생산이라는 주장과는 다른 층위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예술의 가치에 대한 이 책의 주장이 최근의 한국문학과 충돌할 때 어떤 파열음을 낼지 사뭇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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