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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변적인 것이냐 현실적인 것이냐
『공산주의의 현실성』 서평


정인영(서울대학교 일반대학원 법학과 석사과정)



* 이 글은  2014년 12월 10일 문화연대 소식지 『문화빵』  52호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www.culturalaction.org/xe/newsletter/1124731



공산주의가 현실적일 수 있는가? ‘공산주의’라는 용어는 세계의 흐름에서 한물간 체제가(일부 약소국에서 의미있는 실험이 일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한때 추구했던 이상향을 의미하지 않았던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으로서 공산주의가 여전히 유의미한 대안이 될 수 있는지, 현대의 공산주의는 맑스 시대에 제시되었던 공산주의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 또 이념(Idea)으로서의 공산주의와 일상의 법규로 바로 환산되는, 체제에 대한 응답이자 제도(institution)로서의 공산주의가 있다면 양 자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공산주의’라는 단어에서 비롯하는 강렬한 체험을 한 풀 걷어내면 이러저러한 질문들이 끝없이 떠오르게 된다. 

이 책의 공산주의는 우리가 익숙하게 떠올리는 공산당의 전체주의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공산주의의 개념에 대해 저자가 깊이 천착하지는 않지만 공산주의는, 특정한 권력구조를 전제하지 않은 상태에서 ‘소유’를 기본 문제로 하는 공동체의 정치활동을 포괄적으로 일컫는, 거대한 합집합인 것처럼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폭압적 운동(movement)에 저항하는 공통(the commons)에 대한 지향성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공산주의는 지키거나 수호해야 할 이념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지양하는 태도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현실의 운동이다.  

저자는 일단 자본주의에 입각한 민주주의가 확고히 자리 잡은 상황에서도 자본주의에 내재하는 모순 때문에 공산주의는 ‘늘 그 안에 있었다고’ 주장함으로써 공산주의의 ‘실현 가능성’을 논증한다. ‘현실성(actuality)’은 현존(existence)과는 달리 실현되지 않은 상태로서 체제의 얇은 막 안에 내재하고 있어서 추동력이 있으면 언제든 실현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러한 종류의 공산주의의 ‘현실성’은 맑스의 시대에서부터 배태되었던 것이다. 비록 맑스는 후대에 많은 이들이 교조적으로 추앙하는 대상이 되었으나 그 스스로는 공산주의가 교조주의적 이념, 유토피아적 이상향이 되는 것을 극히 경계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공산주의가 기존의 정치를 배제하고 철학적 유토피아로 설계되면, 일부 학자들의 사변적 유희가 되고 현실성에 관한 논의가 사상된다는 점에서 저자는 끊임없이 공산주의를 현실의 틀에 놓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하지만 철학의 용어로 설명하면서 사변적이 되지 않기란 쉽지 않은데, 좌파의 존재론과 철학적 기초에 대한 길고 긴 논의는 다소 배타성을 지닌다. ‘생성’, ‘초월성’, ‘사변적 변증법’, ‘탈구축’, ‘체계표현’, ‘물러남’과 같은 모호하고 때로는 음유시인같기까지 한 표현양식은 독자를 한 발 물러서게 하고 ‘프롤레타리아’나 ‘정치’와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단어 앞에서 급작스레 발을 땅에 내딛어 휘청거리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는 정치와 철학이 분리되거나 일방향적(철학이 정치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식)이지 않으며 상호적으로 개념을 형성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이념에서 당연히 비롯하는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사변적 좌익주의 또는 사변적 좌파에 대해 비판적이면서도 애정 어린, 또는 그 어려움을 이해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것 같다. 사변적 좌파는 공산주의 운동의 역사적 실패라는 무거운 과업 앞에서 순수철학적인 태도로 공산주의를 이해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공동체의 문제를 ‘선과 악’으로 재단하는 사변적 우파와 ‘정치 배제’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지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공산주의는 이론과 철학에 기초하더라도 어디까지나 현실정치의 문제여야 한다. 비록 사변적 좌파로 나아가는 지향성이 공산주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지치지 않는 자양분이 되어주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치현실에 대해 저자가 어떠한 방식의 실현가능성을 논하는지 지켜보자. 오늘날의 공산주의는 정당강령에서 가장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것 같다. 공산당 또는 공산당의 이념을 수호하는 좌파주의적 정당들은 증세와 복지 지출을 늘릴 것을 요구함으로써 민주주의 사회 내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 그들은 ‘부자보다는 빈자’라는 포괄적인 재분배 이념에 부합하면 일말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위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유냐 공유냐’하는 거대 담론을 제기하거나 구체적인 편익에 대한 입증 없이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하는 ‘체제 변혁’을 꿈꾸기보다는 체제 내에서 다소 정의로운 결론을 실현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현실성’(‘실재성’이 더 적합한 표현일까?)은 굉장히 익숙한 것이지만 보스틸스에게 이들은 거세되고 우울한 좌파주의자이자 ‘당국가(the party-state)에 대한 비극적인 경험’을 하나 추가한 자들일 뿐이다. 

그렇다면 보스틸스의 처방은 무엇인가? 보스틸스는 팔짱을 끼고 고고하게 내려다보는 사변적 좌익주의나 정당의 확장가능성에 집중하는 민주주의자나  볼리비아의 가르씨아 리네라가 펼치는 국가적 공산주의 모델에 대해 긍정과 부정의 태도를 동시에 보이고 있다. 특히 가르씨아 리네라에 대해서는 사변적이면서도 현실적인 공산주의 모델을 국가의 틀과 공존시키려는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듯하지만, 여전히 국가의 전제주의적 속성과 공산주의의 본질이 조화될 수 있는 것인지 의심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제시하는 결론은 보편적인 동의에 입각한 국제주의적인 공산주의 운동이다. 

공산주의적 가설을 플라톤의 이데아나 칸트적인 이념이 그러하듯 시간과는 동떨어진 광휘로 영원토록 빛나게 둘 것이 아니라면, 공산주의는 … 현재의 상태를 지양하는 실재적 운동으로서 현실화되고 조직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공산주의는 다시금 구체적인 몸에 새겨질 방법을 찾아야 한다. 국제주의적인 정치적 주체성을 갖춘 사유와 신체의 집합을 찾아야만 한다.(p.348)

공산주의의 국제주의적 속성은 국가에 의한 공산주의 실험의 실패라는 역사를 정당화할 수 있는 논거이자, 자본의 전지구적 운동이 만들어낸 세계화(internationalization)에 대항하는 담론으로 거듭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세계가 평평해지거나 또는 유사한 무늬로 울퉁불퉁해지고 있다면 수평적 계층화의 심화와 공산주의의 현실성은 더 높아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국가의 소멸론이 등장하고 전지구적 금융규제에 대한 목소리가 드높아지고 있는 오늘날이 어쩌면 대안으로서 공산주의가 가장 가치 있게 기능할 수 있는 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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