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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개의 시간, 네 개의 언어를 가로질러 도착한 ‘중국혁명’
산촌』 서평

이종호(한국근현대문학 연구자)



* 이 글은  2015년 7월 24일 문화연대 소식지 문화빵」 62호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www.culturalaction.org/xe/1129235



1999년 85세의 일기로 작고한 중국 예쥔젠(叶君健)의 장편소설 <산촌(山村)>(장정렬 옮김, 갈무리, 2015)이 번역출간되었다. 다양한 동서양의 세계문학들이 한국어로 번역되고 있는 현재, 중국문학작품―특히 근현대소설―의 번역 그 자체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냉전체제의 한 정점에 놓여있었던 사반세기 전만 하더라도, 이러한 번역은 매우 이례적인 사건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 무렵 <산촌>의 번역출간은 아마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중국의 근현대문학작품의 번역과 대중화는, 반공(反共)이라는 자장과 비좌익(非左翼)이라는 맥락에서만 허용되었다. 예컨대 린위탕(林語堂), 루쉰(魯迅) 등의 작품들이 제한적으로 출판되었으며, 바진(巴金)의 <가(家)>(강계철 옮김, 세계, 1985; 최보섭 옮김, 청람, 1985)도 작자의 좌익이력으로 인해 1985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빛을 볼 수 있었다. 동구권이 몰락하며 고착화되었던 냉전체제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8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비로소 중국근현대문학은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가 <중국현대문학전집>(전20권, 중앙일보사, 1989)이었다. 

냉전체제의 프레임에 갇혀있었던 이러한 번역출판의 지형도는 비단 한국에만 한정된 것으로 아니었다. 서구에서도 루쉰, 딩링(丁玲), 바진, 선충원(沈從文) 등의 작가가 알려져 있기는 했지만, 린위탕, 장아이링(張愛玲) 등 중국혁명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었던 문인들의 작품들이 주되게 번역출판되는 형세였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냉전의 문화지형도 속에서 예쥔젠의 <산촌>은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 작품은 ‘Chun-Chan Yeh’라는 필명으로, 1947년 영국(런던)에서 처음부터 (중국어가 아닌) 영어로 작성되어 출간되었다(The Mountain Village, London: Faber & Faber. 1947). 그 이후 20여개 언어로 번역되면서, 1927년 무렵 역동적으로 전개되었던 중국혁명(국공합작, 북벌, 국공내전)의 과정과 그 의미를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유통시킬 수 있게 된다. 작가는 봉건적인 형태로 남아있었던 고요한 산촌이 전쟁과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변해갔는지, 그리고 작가의 분신이라고 해도 좋을 화자로 등장하는 ‘춘성’이라는 소년이 그 과정 속에서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담담하고 과장 없이 형상화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당대의 중국이 어떠한 상황 속에 놓여있는지를 그리고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자연스럽게 독자에게 보여준다. 책이 출판된 1947년은, 아직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1949.10)되기 이전이었다. 대륙의 패권을 놓고 중국국민당과 중국공산당이 한창 내전을 치루고 있을 때였고, 그 향배가 어디로 귀착될지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시기였다. 작가는 ‘1947년 중국(제2차국공내전)의 시점’에서 ‘1927년 중국(제1차국공내전)’을, 서구에서 유통되고 있었던 메이저 언어인 영어를 통해 소설적으로 형상화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당대 현실과 소설을 데칼코마니처럼 배치하여 오버랩시키면서 중국혁명의 의의를 전세계적 차원에서 문학적으로 역설하는 효과를 낳게 된다.

제국주의시기를 관통하고 있었던 1927년의 시간을 형상화한 1947년의 소설. 1947년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냉전체제가 구축되기 시작한 시간이기도 했다. 2015년에 도달한 한국어 번역본이 생성되기 위해서는 두 개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산촌>을 번역한 장정렬 씨가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의 저본은 1947년에 출간된 영어본이 아니라 1984년에 번역출간된 에스페란토(Esperanto)본이다(Chun-Chan Yeh, Montara Vilaĝo, Ĉina Esperanto-Eldonejo, tradukita de Willian Auld, Pekino, 1984). 이 에스페란토어본은 세계에스페란토협회가 주관한 ‘동서(문화)시리즈’이자 유네스코가 내건 ‘그랜드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1984년은 공산권 국가가 불참한 ‘LA올림픽’을 통해서 확인되었듯이, 미소(美蘇)대립으로 상징되었던 냉전체제가 절정에 이른 시기이도 했다. 바로 그때, 이 소설은 “한 민족(이나 국민)의 우월성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상호이해의 바탕 위에 더욱 가까워져야 한다”는 기치 아래 번역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산촌>의 에스페란토 번역은 대안 없는 대립으로 치닫고 있었던 당시 냉전 상황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한 문화적 실천이자 평화적 실천의 하나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주지하듯이, 1985년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를 시발로 동구권의 일방적 붕괴를 통해서이기는 했지만 냉전대립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 와중인 1988년에 영국에서 <산촌>이 재간행되기도 하는데, 이는 당시 냉전질서의 변동과 연관하여 이해하여도 좋을 것이다.) <산촌>의 한국어 번역은, 역자가 밝히고 있듯이, 1992년 한중수교가 공식화된 직후 작가의 번역 허락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된다. 그리고 여러 사정 속에서 2015년에 이르러 비로소 물질성을 지닌 책으로 이렇게 출간되게 이른다.

작가 예쥔젠의 자전적 체험이 녹아있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1927년 중국혁명을 둘러싼 이야기는, 각각의 시기와 국면에 따라 조금씩은 상이하게 의의가 부여되고 배치되면서 그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청나라 왕조의 몰락과 신해혁명(1911)을 통한 중화민국의 성립에도 불구하고, 1927년 중국은 여전히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시달리고 있었으며 봉건질서는 여전히 잔존하고 있었고 그리하여 농민들은 더욱더 가난해지고 있었다. 토지개혁을 통해 농촌에서 기반을 마련하는 가운데 새로운 중국혁명을 전개하려는 물결이 밀려오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그 힘은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도 작가를 비롯한 소년들은 계속해서 성장했고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 부정될 수는 없었다. 1947년은 새로운 중국혁명을 둘러싼 향배가 결정되기 직전이었으며, 이는 곧 새로운 세계질서(냉전)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후 새로운 중국을 알고자 하는 개별 국가들의 욕구들 속에서 1927년 이야기는 여러 개별 언어들로 번역되기 시작했다. 특히 1984년에 간행된 에스페란토 번역은 경화된 냉전질서와 국민국가적 경계를 가로지르는 뜻 깊은 사건이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1992년 이 에스페란토 판본을 기반으로 삼아 그리고 중국의 개혁·개방을 통해서 비로소 한국어로의 번역이 시작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2015년 한국에서 출간된 <산촌>은 지금 어떤 의미를 만들어 내고 있는지, 혹은 만들어낼 수 있는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방금 앞서 서술했듯이, 이 <산촌>은 네 개의 시간을 가로질러 여기에 도착해 있는데, 한편으로 또한 네 개의 언어를 가로질러 여기에 와 있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 예쥔젠의 모국어인 중국어를 기반으로 하여 구상된 이야기가 영어라는 개별 언어를 통해 표현되었으며, 그 영어본에 기초하여 윌리엄 올드(Willian Auld)가 에스페란토로 번역하고 그것을 다시 장정렬 씨가 한국어로 옮기면서 현재 한국에까지 그 이야기가 도달할 수 있었다. 즉 ‘중국어-영어-에스페란토어-한국어’로 이어지고 옮겨지는 일련의 과정, 번역의 연쇄였다. 

여기서 에스페란토라는 언어는, 단순히 하나의 개별 언어에서 다른 개별 언어로 옮겨지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1887년 루도비코 라자로 자멘호프(Ludoviko Lazaro Zamenhof, 1859~1917) 박사가 창안한 국제공용어, 에스페란토는 ‘1민족 2언어 원칙’에 입각해 있다. 즉 같은 민족끼리는 모국어를 사용하고, 다른 민족과의 교류에서는 에스페란토를 사용하자는 주장이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과잉되고 왜곡된 영어중심주의로 인해 에스페란토는 소수 사용에 그치고 있지만, 20세기 식민지시기만 하더라도 문학예술·자연과학 분야를 비롯하여 사회주의·아나키즘 등의 민족해방운동에서 국제주의를 실현하고 투쟁을 유통시키는 데 있어 널리 활용되었다. (당시 주요 일간지였던 <동아일보>에 에스페란토강좌가 매주 연재되기도 할 정도로 그 의의와 활용도가 높았다고 할 수 있다.) 에스페란토는 인종, 민족, 국가의 경계를 넘고 다양한 형태의 분할선을 넘어 자유롭고 평화롭게 소통하고자한 ‘희망의 언어’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경계와 분할을 통해 통치하고자 했던 체제와 지배계급에게는 ‘위험한 언어’이기도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산촌>의 현재적 의미를 묻는 일은, 한편으로 에스페란토가 지니고 있는 이념과 실천의 가능성을 역사적·현재적으로 가늠해보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작가 예쥔젠은 그 자신이 에스페란티스토(Esperantisto)로, 에스페란토로 소설을 쓰기도 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특히 일본인 오시마 요시오(大島義夫)가 에스페란토로 번역(Forplelataj Homoj)한 조선인 장혁주(張赫宙)의 일본어 소설 「쫓겨 가는 사람들」(追われる人々)을 중국어로 번역(1933년 8월)하여 발표하기도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일본 제국주의의 탄압과 핍박으로 인해 고향을 버리고 만주로 이주해가는 빈농의 삶을 형상화한 장혁주의 이 작품은, 에스페란토를 통해 일본의 경찰·검열권력에 의해 삭제되었던 부분들이 복원될 수 있었으며 또한 중국어를 비롯한 여타 다른 언어들로 번역되어 유통될 수 있었다. 말하자면 에스페란토를 통해 제국일본의 권력에 대항하여 넘어서는 언어적·문화적 대항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20세기 동아시아에서 그러한 역할을 수행했던 에스페란토를 통해 예쥔젠의 <산촌>은 21세기에 한국어로 번역될 수 있었다. 이같은 인류 보편의 언어적 소통에 대한 지향과 에스페란토를 둘러싼 역사적 경험은, 오늘날 국가·민족·인종·자본 등의 경계와 분절을 가로질러 전지구적 차원에서 수평적 소통의 가능성을 새롭게 가늠해 볼 수 있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이 장편소설의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제목을 통해서도 암시되고 있듯이, <산촌>은 중국의 중부 후베이성(湖北省) 다볘산맥 부근의 가난한 농민들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 속에서는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후베이성은 중국의 어느 장소보다 한국사람들에게 친근한 장소이기도 하다. 단적으로 말해 <삼국지(연의)>의 주무대가 되는 장소이다. 가장 유명한 적벽대전의 현장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며, 복룡(제갈량)과 봉추(방통)가 유비 진영에 합류하기 전까지 은거하고 있었던 지역이기도 하며, 관우가 최후를 맞이한 형주성의 소재지 또한 이곳이다. 말하자면 후베이는 “삼국지의 고향”인 셈이다. 또한 중국무협지에서 소림파와 더불어 무림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무당파의 본거지이자 도교(道敎)의 본원인 ‘무당산’이 자리하고 있는 지역이다. 소설에서 노자(老子)를 섬기는 도사 ‘벤친’이 등장하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중국의 뿌리는 모두 도교에 있다”는 루쉰의 말처럼, 오랜 중국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리하여 “중국을 알려면 후베이에 가봐야 하고, 후베이를 알면 중국이 보인다”라는 말도 있듯이, 후베이지방은 중국의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20세기로 초반 신해혁명의 발원지인 우한(武漢)이 또한 후베이의 중심도시이기도 하다. 요컨대 소설의 주요 무대가 되고 있는 지역은 작가의 고향으로 고요한 산촌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그러면서도 양쯔강의 물줄기를 통해 중국의 전근대와 근대의 역사문화와 이어져있는 공간으로 당시 중국의 일단면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1927년 중국혁명(그리고 이어지는 반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만사가 정말 잔인할 정도로 빨리 변”한다는 ‘춘성’의 어머니 말처럼 평온한 일상 속에 정체되어 있다시피 한 등장인물들의 삶은 격변을 맞이한다. “태어날 때부터 하녀”의 운명을 짊어지고 살아온 ‘알란’은 봉건적 유습과 천연두라는 신체적 훼손에도 굴하지 않고 맞서는 자유의지를 지닌 인물로 변모해가고, 마을의 이야기꾼이었던 ‘라우라우’는 혁명수행을 위한 활동가로 거듭나게 된다. 그 와중에 봉건시대의 교육을 담당했던 ‘뻬이후 삼촌’은 혁명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반혁명 세력에게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내전과 혁명의 과정에서 전통적 공동체는 해체되고 그러한 급류에 올라탄 사람들과 휩쓸려버린 사람들로 나누어지면서 각자의 삶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화자인 소년 ‘춘성’은 이 과정들을 담담하게 목도하면서 고향 산촌을 떠나 역동적 에너지가 출렁되고 있었던 도회지로 나아간다. 

“힘을 합쳐 새로운 세상을, 계급과 부정(不正)이 없는 세상을 건설”할 것이라는 혁명대원들의 의지는 소설 속에서는 아주 잠깐 동안만 구현되었지만, 소설이 작성되고 있었던 1947년에는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전개되고 있었다. “우리는 돌아온다!”(私人門要回來!)는 중국공산당 혁명대원의 다짐과 마을 주민을 향한 외침은 길고긴 ‘대장정’과 또 한 차례의 내전을 거치면서 마침내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선언을 통해 현실화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그리니까 해피앤딩―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며, 가난한 사람들의 것”이라는 혁명의 내용은 사실상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오늘날 중국은 극심한 빈부격차와 승자독식에 가까운 부의 집중화를 겪고 있다. 단적으로 말해 중국혁명은 부패했으며 “계급이 없는 세상”이라는 약속과 지향은 궁극적으로 실패로 막을 내렸다. 다소 도식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면, 중국혁명을 가능하게 했던 봉기의 활력과 구성권력은 국가와 내셔널리즘 속으로 영구봉인되다시피 하면서 사실상 전지구적 자본주의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약간의 과장과 비약, 그리고 강박(?)이 허락된다면,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져보면서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2015년 그리스의 디폴트를 통해 현재 금융자본주의의 허약함과 불안정성이 또다시 증명된 이 시점에서, 90여년 전 중국 산촌 지역에서 전개되고 있었던 혁명의 활력과 소용돌이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네 개의 시간, 네 개의 언어를 가로지르며 쉽지 않은 시공간의 경로를 밟아 여기에 도착한 ‘중국혁명’의 열기를 오늘날의 조건 속에서 새롭게 읽어내는 작업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아마도 그러한 물음은 이 서평을 쓰고 있는 필자나 <산촌>을 읽고 있는 독자들이 다양한 형태로 변주해가면서 끊임없이 묻고 문제를 던져야할 과제일지도 모르겠다. 소설 속 대가뭄과 현실의 대가뭄이 묘하게 겹쳐지는 지금, 모두의 안녕과 건강을 더불어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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