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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환의 삐라의 추억
2018.02.08 20:02

[자율평론 55호] 붉은 별 / 김명환 시인

조회 수 465 추천 수 0 댓글 0

김명환의 삐라의 추억 8

 

붉은 별

 

 

 

이른 아침부터 부슬비가 추적거렸다.

2001년 10월 21일, 경남 창녕 성씨댁에 모인 역사학자들은 비가 멎기를 기다렸다. 오후 들어 비가 멎자, 행랑채 부엌이 있던 자리를 파내려 갔다. 성일기의 기억이 맞다면, 48년 전 1953년 가을, 조선노동당 제4지구당 제3지대장 남도부가 중앙당에 제출하는 보고서를 묻은 곳이다. 그해 12월 27일, 창녕 성씨댁에 은거하던 성일기는 육군 특무대에 체포됐다.

 

창녕 성씨댁에 머무는 며칠 동안, 남도부는 당에 제출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53년 7월 27일 조인된 휴전협정 소식을 접한 부대원들은 북으로의 귀환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50년 6월 24일 밤 양양에서 군함을 타고 38선을 넘은지 3년 만에 살아서 귀환하는 것이다. 300명이 38선을 넘었다. 남은 대원은 30명 남짓…….

 

휴전협정 어디에도 유격대 문제가 거론되지 않았다는 게 알려지고 대원들은 동요했다. 제4지구당 지도부는 당 중앙정치위원회 94호 및 111호 결정인 “무장부대의 선전·선동 사업으로 전환”을 강력하게 추진하기로 했다. 제4지구당은 4개 소지구로 나뉘어, 시차를 두고, 지하거점을 구축하기 위해 산개했다.

 

남도부는 대구로 이동 중 창녕 성씨댁에 머물렀다. 휴전협정 이후 동해남부전구에서 진행된 당과 유격대 활동의 전말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서다. 보고서가 언젠가는, 누군가에 의해, 당에 전달될 거라고 믿었다. 보고서 표지에 ‘비장문건’이라고 썼다. 남도부는 보고서를 구호로 마무리 지었다. “최후의 승리를 향해 제4지구당 동무들은 모두 다 앞으로 앞으로!”

 

갈색 유리병에 보고서를 넣었다. 제3지대 기관지 『붉은 별』 제44호, 46호, 그리고 사실상 마지막호인 53년 8월 15일치 47호를 함께 넣었다. 타블로이드판 양면 신문이다. 『붉은 별』을 만들던 유재관이 떠올랐다. 제 몸보다 큰 등사기를 메고 엉금엉금 산을 오르던 재관이…….

 

“야, 이런 빨치산도 있어!”

좋았던 시절, 마을을 행군해 지날 때면 아이들이 깔깔대며 재관이를 졸졸 따라 행진했다. 소문으로 듣던 빨치산은 기골이 장대하고 우락부락했다. 아이들은 자신들보다 더 약골인 빨치산이 신기했다. 재관은 청주사범을 졸업한 인텔리 출신이다. 총기를 다루는 게 서툴고 동작이 굼떠 대원들이 한 조가 되기를 꺼려했다.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밤 깊어 바람 찬데 아궁이는 지피셨나요? 동구 밖 컹컹 개가 짖고 사립문 바람에 울면 못난 자식 기척일까 살포시 문 여시나요? 뒷산에 걸린 반달 보이시나요? 지금 저도 보고 있습니다. 저 달 기울어 다시 차면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해방된 조국의 아들 어머니께 달려가렵니다. 원쑤들의 총탄 뚫고 한달음에 달려가 해방된 조국 어머니 품에 안기겠습니다.

 

울컥, 목구멍으로 뜨거운 것이 치솟았다. 선전부에 막 배치됐을 때, 재관이는 『붉은 별』에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재관이 『붉은 별』을 맡고부터, 『붉은 별』은 대원들에게 읽히는 기관지가 됐다. 명령과 전과와 소식을 전달하던 신문은 대원들을 한 마음으로 묶어세우는 신문으로 다시 태어났다. 대원들은 『붉은 별』을 읽고 나약한 감상과 허무에 빠지지 않았다. 『붉은 별』은 부드러웠지만 읽는 이에게 힘을 주었다. 『붉은 별』은 재관의 열정과 헌신이 대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는 매개체였다. 『붉은 별』은 재관의 총칼이었다. 『붉은 별』 발간은 재관이 벌이는 조국해방전쟁이었다. 원통하게도 유재관은, 적들의 총탄에 쓰러지지 않았다. 아군이 뒤에서 쏜 총탄이 유재관의 열정과 헌신을 쓰러뜨렸다. 숙영지 부근에서 유재관을 살해한 변절자는 국군에 투항했다.

 

성일기가 행랑채 부엌을 파내려 갔다. 남도부는 유리병 주둥이를 판초우의 조각으로 밀봉했다. 성일기가 유리병을 구덩이에 넣고 흙으로 덮었다.

 

남도부부대 대원이었던 성일기는 역사학자들과 창녕 성씨댁을 찾았다. 48년 전, 남도부와 함께 묻었던 유리병을 발굴하기 위해서다. 오후 4시경, 구덩이를 파 내려가던 역사학자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조심스레 흙을 헤치니 맥주병 크기의 갈색 유리병이 나왔다. 구름 사이로 드러난 창백한 하늘에서 쏟아진 햇살이 유리병에 맑게 부서졌다. 유리병 속에는 물이 가득 차 있었다. 물을 쏟아내고 내용물을 꺼냈다. 중앙당에 제출하는 보고서와 기관지 『붉은 별』, 증명서와 원호증, 몽당 숟가락이 나왔다. 발굴 모습을 지켜보던 성일기가 꺼억 꺼억 울음을 터뜨렸다.

 

54년 1월 21일, 남도부는 대구 시내 한 민가에서 체포됐다. 남도부는 최후진술에서 자신이 걸어온 “그 길이 옳은 길이라는 결심과 신념에서 지조를 지켜왔을 따름이다.”라고 말했다. 남도부는 55년 8월, 서울 수색 육군 사형집행장에서 총살되었다. 그는 눈가리개를 거부하고 마지막까지 적들의 총구를 뜨겁게 응시했다.

 


* 이 글은 2001년 ‘남도부 보고서’ 발굴에 참여했던 역사학자 임경석의 「남도부의 노트」(『역사비평』 77호, 2006년 11월)를 문학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남도부의 노트」는 『잊을 수 없는 혁명가들에 대한 기록』(임경석, 2008년, 역사비평사)에 수록되었다. 이 글을 쓴 김명환은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84년 사화집 『시여 무기여』에 시 「봄」 등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89년 월간 『노동해방문학』 문예창작부장, 2000년 ‘철도노조 전면적 직선제 쟁취를 위한 공동투쟁본부’ 기관지 『바꿔야 산다』 편집장, 2007년 철도노조 기관지 『철도노동자』 편집주간으로 활동했다. 같은 제목의 시집과 산문집 『젊은 날의 시인에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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