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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를 권리로, 금융 논리를 새롭게 전유하기

[새책] 금융자본주의의 폭력(크리스티안 마라찌 저, 심성보 역, 갈무리, 2013)


권범철(예술과 도시사회연구소 연구원) 


* 이 글은 인터넷신문 『참세상』 2013년 4월 30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그것의 전지구적 확산에 따라 새로운 국가들이 계속해서 블랙리스트에 올라 뉴스에 등장하지만, 그 대응방식은 늘 변함이 없다. 신용 긴축과 내핍조치라는 방식은 금융위기라는 문제에 대한 모범답안처럼 늘 따라왔다. 그러나 그것의 일관된 수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위기가 잠재하고 있는 것은 이 전지구적 경제위기에 대한 진단이 잘못 이루어져왔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금융위기에 앞서 금융화에 대한 분석을 새롭게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안또니오 네그리, 빠올로 비르노, 프랑코 베라르디[비포] 등과 함께 자율주의 핵심 사상가 중 한 명인 크리스티안 마라찌(Christian Marazzi, 1951~ )가 쓴 <금융자본주의의 폭력>은 바로 이 금융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서 시작하는 책이다. 책의 제목 때문에 금융자본주의가 가져온 폭력적 양상만을 이 책이 담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책의 제목보다는 ‘부채위기를 넘어 공통으로’라는 부제를 주목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우선 저자의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을 따라가 보자.

저자에 따르면, 금융위기는 늘 있어왔지만 이번 금융위기는 과거의 그것과는 판이하다. 20세기의 전형적인 금융화가 실물 경제와 금융 경제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적 관계를 바탕으로 했다면, 지금의 금융은 경제순환 전체에 걸쳐 퍼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금융이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과 동질적인 시대를, 그러니까 금융인 것과 아닌 것을 구별하기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금융화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과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금융화 역시 축적의 장애에서 시작한다. 포드주의 생산양식은 1970년대 성장 위기를 맞이하여, 오늘날 금융자본주의의 토대를 이루는 ‘주주 관리자자본주의’로 이행한다. “달리 말해, 경제의 금융화란 이윤폭이 감소한 이후, 자본이 이윤율을 회복하는 과정으로서, 자본이 직접적인 생산과정 외부에서 이윤율을 증대하는 장치였다.”

여기서 중요한 건 ‘외부에서 이윤율을 증대하는 장치’라는 표현이다. 이 ‘외부’는 어디인가? 이 외부는 전통적인 방식의 생산이 이루어지는 영역, 즉 공장을 넘어선 영역 전체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우리가 먹고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가는 삶의 영역 말이다. ‘지난 삼십년 동안 잉여가치 자체를 생산하는 과정이 사실상 변했다. 가치추출은 더 이상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장소에만 한정되지 않으며, 공장 문을 넘어 확장된다. 가치추출이 자본의 유통영역에 직접 개입하기 때문이다. 이는 가치추출 과정이 재생산과 분배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문제이다.’ 다시 말해 삶의 영역에서 이윤율을 증대한다는 것은 금융자본주의 시대에서 생산과정이란 공장을 넘어 도시 전체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우리의 삶 자체가 ‘사회적 공장’에서 이루어진다는 것, 저자는 이러한 국면을 생명자본주의라는 개념으로 포착한다. “금융화는 생명자본주의에서 전형화되는 가치생산의 외부, 그것의 이면이다.”

가치생산의 외부화, 즉 생산과정이 공장을 넘어 확장되는 과정에서, 이윤추출의 방식 또한 변화한다. 저자는 까를로 베르첼로네의 표현을 빌어, 이를 ‘이윤의 지대되기’ 과정으로 표현한다. 베르첼로네는 다른 글에서, “자본주의의 현재 전환은 임금, 지대, 이윤 간 관계의 완전한 변화와병행하는 지대의 완전히 성장한 회귀와 확산”이라는 특징을 지닌다고 쓴 바 있다. 산업자본주의에서 지대란 전-자본주의적 유산이며, 자본 축적의 진보적 운동에 대한 장애물로 나타난다. 그러나 점점 산업자본주의 그 자체가 지대로 향하는 명백한 경향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에 따라 이 지대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생성을 나타낸다. 지식노동, 정동노동의 확산과 함께 가치-노동 시간 법칙이 위기에 빠짐에 따라 노동의 협력이 자본의 관리 기능에 점점 자율적인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즉 노동의 협력이 공장 외부로, 자율적으로 됨에 따라 이윤의 착취는 명령적인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지대라는 장치이다. 이 지대는 노동 아니 차라리 삶의 행위들이라고 해도 좋을, 사람들의 사회적 협력과정으로부터 지대라는 형식을 통해 이윤을 추출한다. 생명자본주의 시대에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새로운 양식으로 저자가 언급하는 ‘구글 모델’은 이에 대한 두드러진 예일 것이다(구글의 ‘애드센스’와 ‘애드워즈’가 작동하는 방식을 생각해보라).

이 지대는 모두의 삶에 필요한공통적인 것에 대한 수탈 장치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17세기에 진행된 인클로저가 공유지를 사유화하면서 농민들의 삶을 근대 노동자의 그것으로 바꾸어버렸듯이, 금융자본주의 역시 사회적 필요에 사적 소유를 대립시킨다. 저자가 예로 드는 것은 2+28이라는 모기지 계약 방식이다. ‘모기지 이자는 처음 2년 동안은 낮게 유지되어 사람들을 끌어 모은 다음, 나머지 28년 동안은 변동금리에 따라 결정되어 통화정책과 경제 국면의 일반적 경향에 종속된다. 즉 2년 동안은 제한적인 사용가치의 통제구조(즉, 주택이용권)를 누리지만, 나머지 28년 동안은 추방/배제라는 극단적인 폭력적 효과를 수반하는 금융시장에 의한 교환가치 통제구조로 옮겨가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금융 논리는 주택이용권과 같은 공통적인 것을 생산한 다음 이를 곧바로 분할하여 사유화한다.’ 이 폭력적인 사유화의 폐해는 익히 잘 알고 있는 것들이다. 주택을 압류당하고 쫓겨난 사람들, 공통재에서 쫓겨나 벌거벗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렇다면 탈출구는 어디에 있을까. 하트와 네그리는 <선언>에서 ‘빚진 사람들’을 현대의 사회정치적 위기가 낳은 주체성의 형식 중 하나로 기술한다. 사람들이 빚을 지는 것은 금융의 수익성 논리에 따라 임금이 삭감되거나 아예 일자리를 잃고, 신자유주의적 전환과 함께 복지서비스가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녀교육을 위해, 실내에서 자기 위해-그러니까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병원에 가기 위해 사람들은 빚을 질 수 밖에 없다. ‘오늘날 사회국가의 재분배기능은, 축소됨과 동시에 케인스주의식 적자 지출의 민영화를 통해 강화된다. 다시 말해, 추가 수요는 민간 부채를 통해 창출된다.’ 공통재에 대한 접근이 사적부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부채를 통한 수요 창출-특히 주택지분가치추출-은 미국의 경제 성장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미상무부경제분석국은 주택지분가치추출의 증가로 2002년부터 2007년까지 GDP가 평균 1.5퍼센트 성장했다고 추정했다.’ 그러나 이 주택지분가치추출은 끊임없이 부동산 가격이 상승해야 가능한 일이다. 앞선 사람들의 수익은 끊임없이 참여하는 이후의 투기행렬에 의해서만 보장된다. 이러한 점에서 그것은 폰지사기의 형태를 띠고 있다. 누군가 꿈에서 깨어나면 거품이 터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져오는 피해는 금융화의 논리가 삶의 영역에서 가치를 추출하는 만큼, 사람들의 삶에 파국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제 다시 앞의 문제로 돌아왔다. 공통재에 대한 울타리치기, 사회적 필요에 대한 폭력적인 사적 소유의 논리라는 문제 말이다.

경제를 탈금융화하면, 그러니까 다시 산업화로 돌아가면 괜찮은 것일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재산업화는 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주장되었다. 이는 선량한 실물 경제와사악한 금융 경제라는 적대의 논리에 기초해 있다. 이에 대한 저자의 답은 재산업화는 결코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실물 경제와 금융 경제의경계가 사실상 붕괴하는 상황에서, 과거로 회귀하는 방식으로는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방식은 실물 경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금융화의 논리를, 그러니까 사적부채가 부과하는 억압을 그대로 뒤집는 것이다. 여기에 이 책의 특별함이 있다. 저자는 주택소유자지원대책을 논의하면서 방만한 대출의 함정에 빠진 주택소유자를 구제할 때 필요한 원칙을 제시한다. 저자의 말을 그대로 가져오면,

이 조치[주택소유자 구제조치]는 적어도 맹아적으로 공통재에 관한 사회적 소유권 문제를 제기한다. 분명히, 이러한 권리는 오늘날 상상할 수 있는 유일한 권리, 즉 사적 소유권을 제한하고 있다. 달리 말해, 오늘날까지 공통재에 관한 접근권이 사적 부채 형태를 취했다면, 당연히 이제부터는 그러한 접근권을 일종의 사회적 지대로 인식해야 한다.

그러니까 사적 부채를 사회적 지대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다. 서브프라임 위기는 은행의 채무를 공공채무로 전환시켰다. ‘어지러울 정도로 치솟은 공공채무는 납세자의 돈으로 쌓아올린 금융자본의 사회화 때문’이다. 이를 저자는 자본의 코뮤니즘으로 칭한다. ‘여기서 국가 즉 전 국민은 금융 소비에트의 필요에 봉사한다. 은행, 보험회사, 헤지펀드의 욕구에 복무하는 것이다.’ 사적 부채의 사회적 지대로의 전환은 금융 소비에트가 아니라 다중의 삶의 필요에 봉사하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손실은 사회화하고 이익은 사유화하는 금융의 논리를 다른 방식으로 전유하는 것이다. 그것이 정당하게 주장될 수 있는 이유는 공통재에 대한 접근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통의 부를 창출하는 것은 헤지펀드가 아니라 다중의 사회적 협력과정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공통재에 대한 유일한 접근 장치가 되버린 부채를 권리로 전환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낯설지 몰라도 지대의 사회적 전유라는 맥락에서 타당성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적어도 은행의 채무를 다중의 빚으로 전환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맑스는 <자본론> 3권에서 19세기 금융가 페레르를 ‘사기꾼과 예언가가 성공적으로 뒤섞인 캐릭터’라고 표현했는데, 그것은 신용체계가 가진 이중적인 성격을 묘사하기 위함이었다. 신용체계가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의 투기적형식의 정점을 이루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생산 양식을 향한 전환을 구성한다는 것이었다. 사적 부채의 사회적 지대로의 전환 역시 그러한 것이 아닐까. 금융화가 새로운 자본축적의 양식이 된 시대에서는 말이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새로운 공통의 통치 방식”이란 아마도 금융의 논리로부터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있는 그대로 뒤집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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