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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k ☆140자 다지원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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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랙 캐피털리즘』 한국어판 출간기념 화상강연회에서


존 홀러웨이(『크랙 캐피털리즘』 지은이) / 자율주의 영어세미나팀 돌민, 김새롬, 김현덕, 유청희 옮김

 


이 글은 존 홀러웨이 님이 화상강연회를 위해 보내준 글이며, 2012년 하반기 그리스 신문 <Epochi>에 실린 인터뷰 글입니다.




1. Contrary to those who say that the cause for the crisis are the capitalists, you support that "the crisis of capitalism are we ourselves". Could you tell us some more about this aspect?


1. 위기의 이유는 자본가들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반대로, 당신은 “자본주의의 위기는 우리들 우리 자신들이다”라는 것을 지지합니다. 우리에게 이 양상에 관하여 더 많이 말해 줄 수 있을까요?



Capitalism is a catastrophic form of social organization that destroys the potential of human life and is probably leading us towards the self-annihilation of humanity. Crisis makes life more difficult for us, but it also shows that the system is not working properly, it is an indication of the weakness of this catastrophic system. To blame the capitalists for the crisis is to say that the ruling class is not ruling well enough, it is to ask them to dominate us more effectively. It is like the masochism of a slave who asks his master to whip him harder.


자본주의는 인간 삶의 잠재력을 파괴하고 아마 우리를 인류의 자기-절멸로 이끌고 있는 사회 조직의 파국적 형식입니다. 위기는 우리의 삶을 더 어렵게 만드나, 그러나 그것은 또한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이 파국적 체계가 갖는 약점의 징조입니다. 자본가들에게 위기에 빠진 책임을 묻는 것은 지배계급이 충분히 잘 지배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더 효과적으로 우리에게 군림하기를 그들에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의 주인에게 더 격렬하게 채찍질하기를 부탁하는 노예의 마조히즘과 같습니다.


 


We are the crisis of capital. Capital is a form of social organisation that is inherently aggressive. There is built in to capital a dynamic of faster-faster-faster. In order to survive, each capitalist must produce faster-faster-faster, must push his workers to work harder-harder-harder. But this constant drive to go faster comes up against our insubordination, our refusal or incapacity to give capital what it requires to maintain the rate of profit: capital comes up against the fact that we are humans, that we need to rest, that we want to play with our children, that we spend our time daydreaming of our love, or indeed that we go out on the street and shout NO. When this happens, capital says in effect "OK, we cannot subordinate you sufficiently to maintain the rate of profit that we require to expand, so we are going to pretend, we are going to play a game of make-believe. We are going to create fictitious capital, we are going to make money that does not correspond to any value produced so we can continue to be profitable, and then we’ll do two things: we’ll push you as hard as possible to subordinate every aspect of your existence to our need for profit, and we’ll also play a gigantic game of musical chairs to see who suffers when our fiction becomes too gross to be maintained. And that is what has happened, and it is Greece (amongst others) that has lost this round of the game. And all because of our insubordination, our refusal to become robots. If this is right, then there are obviously two ways out of the crisis. The first is that we can become robots, or as close to robots as we can manage (forget about siestas, forget about going out late at night, forget about complaining, or wasting time with friends). The second possible solution is that we can get rid of capitalism and organize a different way of living together. I prefer the second solution. It is a little complicated, but in many different ways, in many different places, we are already doing it. However difficult, that has to be our horizon, that has to be what we aim for.


우리는 자본의 위기입니다. 자본은 본질적으로 공격적인 사회 조직의 형식입니다. 자본은 점점 빨리-빨리-빨리의 동학이 자본에 장착되었습니다. 생존하기 위해, 각각의 자본가는 점점 빨리-빨리-빨리 생산해야 합니다, 그의 노동자들을 점점 격렬하게-격렬하게-격렬하게 일하도록 몰아붙여야 합니다. 그러나 더 빨리 가기 위한 이 지속적인 몰기는 자본에게 그것이 이윤율을 유지하기 위해 요구하는 것을 주는 것에 대한 우리의 무능 또는 거부, 우리의 불순응에 직면합니다: 자본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우리가 휴식이 필요하다는, 우리가 우리의 아이들과 놀기를 원한다는, 우리가 우리의 사랑이라는 백일몽으로 우리의 시간을 보내기를 원한다는, 또는 실로 우리가 거리에 나가 아니오를 외친다는 사실에 직면합니다. 이것이 발생했을 때, 자본은 실제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좋아요, 우리는 우리가 확대하기 위해 요구한 이윤율을 유지하기 데에 충분히 당신을 종속시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假裝)할 것입니다, 우리는 환상 게임을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의제(擬制) 자본을 창출할 것입니다, 우리는 생산된 어떤 가치와 상응하지 않은 돈을 만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이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두 가지 것을 할 겁니다: 우리는 이윤을 위한 우리의 요구에 당신 존재의 모든 양상을 종속시키기 위해 가능한 격렬하게 당신을 몰아붙일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허구가 유지하기에 너무 비대해질 때 누가 고생하는지를 보는 거대한 의자 빼기 게임을 또한 할 겁니다. 그리고 이것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게임의 이번 판을 졌던 것이 (다른 이들 중에서) 그리스였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모두 왜냐하면 로봇들이 되는 데 대한 우리의 거부, 우리의 불순응 때문입니다. 만약 이것이 옳다면, 그때 그 위기로부터의 명백한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로봇들이, 또는 우리가 해나갈 수 있는 한 로봇들에 가깝게 될 수(siestas에 관하여 잊을 수, 밤늦게 밖에 나가기를 잊을 수, 친구들과 시간을 허비하거나, 또는 불평하기를 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가능한 해결책은 우리가 자본주의를 제거하고 공생의 다른 방식을 조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두 번째 해결책을 좋아합니다. 그것은 약간 복잡하지만, 많은 다른 방식들, 많은 다른 장소에서 우리는 이미 그것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그것이 우리의 지평이어야 하며, 그것이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2. You have said that the change of society will not come through another state, whereas a lot of people claim that when people try to build their utopia without dealing with the Power, then they become vulnerable for the state power and they often smash. What is your opinion?


2. 당신은 사회의 변화가 또 다른 국가를 통해서 오지 않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반면에 많은 사람들은 권력에 대처하는 것 없이 사람들이 그들의 유토피아를 건설하려고 노력할 때, 그때 그들이 국가 권력에 상처입기 쉽게 되고 그들이 자주 박살이 난다고 주장합니다. 당신의 의견은 무엇입니까?


 


The question of how we defend our utopian spaces is very important, especially now when the state is being so aggressive. The depth of our integration into the surrounding community is probably the best defence. If, for example, a social centre is used not just by a small group of activists but is really used by the people of the community, then it becomes much more difficult for the police to close it down. The other important point is not to think too much of defence, but to focus on expanding, on moving. If we think too much in terms of defence, we risk diluting the subversion that is at the core of our refusal-and-creation. We create, they run after us, but we are faster: creation is a constant spilling over into something else.


우리가 우리의 유토피아적 공간을 방어하는 길에 대한 물음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지금 국가가 공세적일 때에 말입니다. 우리의 주위 공동체로의 통합이 심원한 것이 아마 가장 좋은 방어입니다. 만약, 예를 들어, 사회적 센터가 활동가들의 작은 그룹에 의해서 사용될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사람들에 의해 실제로 사용된다면, 그때 경찰이 그것을 폐쇄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려워집니다. 다른 중요한 점은 너무 많은 방어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확대, 이동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방어의 관점에서 너무 많이 생각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거부-그리고-창조에서 핵심에 있는 전복을 희석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는 창조하고, 그들은 우리를 뒤쫓으나, 그러나 우리는 더 빠릅니다: 창조는 다른 어떤 것으로의 지속적 넘침입니다.



3. Contrary to the tradition of orthodox Marxism that talks about the fall down of Capitalism and the building of Socialism, you talk about the creation, expansion and multiplication of the cracks in Capitalism. Could you tell us what these cracks are and how they are connected to each other?


3. 자본주의 몰락과 사회주의의 건설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정통 맑스주의의 전통과 반대로, 당신은 자본주의에서 균열들의 창조, 팽창 그리고 다수화에 관하여 이야기합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이 균열들이 무엇이고, 어떻게 그것들이 서로서로에게 연결되는지를 말해 줄 수 있을까요?


 


We cannot wait for the future revolution, the situation is much too urgent. For a huge part of the world’s population, capitalism simply does not work. This is what is happening in Greece at the moment: the failure of capitalism. By choice or by necessity or both, people are trying to construct their lives in a different way, to build their lives in a way that is not determined by the logic of money, through developing forms of mutual support and solidarity, through developing cooperative forms of production that do not have profit as their goal, through taking decisions in assemblies. From the point of view of capital, all these people are walking in the wrong direction, they should be bowing down low to the rule of money. These walkings in the wrong direction can be seen as cracks, as so many ruptures in the texture of capitalist domination. The only way that I can see of radically transforming society is through the creation, expansion and multiplication of these cracks. They are connected to one another through a common impulse, a common refusal of a system in decadence, a shared exploration of new ways of constructing social life, a resonance of mutual recognition between them. Perhaps they should be seen as separated streams in a general flow of communising, a flow that drives against all institutional definitions.


우리는 미래의 혁명을 기다릴 수 없습니다, 상황은 정말 너무 긴급합니다. 세계 인구의 거대한 부분에 대해, 자본주의는 단순히 소용이 없습니다. 이것이 그때 그리스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실패. 선택을 통해 또는 필요성을 또는 둘 다를 통해,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그들의 삶을 구축(構築)하려고, 상호 원조와 연대의 형식들을 개발함을 통해서, 이윤을 그들의 목표로 갖지 않는 생산의 협동 형식을 개발함을 통해서, 집회에서의 결의를 통해서, 돈의 논리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닌 방식으로 그들의 삶을 건설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자본의 관점에서, 이 모든 사람들은 잘못된 방향으로 걷고 있는 중입니다, 그들은 돈의 지배 아래 고개를 숙여야 합니다. 잘못된 방향으로의 이 걷기는 자본주의적 군림의 직조에서 너무 많은 파열들로, 균열들로 보일 수 있습니다. 내가 급진적으로 사회를 변형하는 것의 방식이라고 유일하게 보는 것은 이 균열들의 창조, 팽창 그리고 다수화를 통하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사회적 삶을 구축하는 새로운 방식의 공유된 탐험, 타락한 체계에 대한 공통의 거부, 공통의 충동을 통해서 또 다른 무언가에 연결됩니다. 아마 그것들은 코뮤나이징의 일반적 흐름에서 분리된 조류들, 모든 제도적 정의(定義)들에 맞서 돌진하는 흐름으로 보일 것입니다.


 


4. Is the refusal of representation itself a crack or should it be connected with some anticapitalistic requests in order to be one?


4. 재현의 거부가 그 자체로 균열입니까 또는 그것은 무언가이기 위해 다른 반(反)자본주의적 요구들과 연결되어야 합니까?


 


Yes, I think it is a crack. Communising means assuming our responsibility for the future of the world, refusing to entrust our world to so-called representatives. We reject representation in favour of presentation. We present ourselves, saying "here we are, this world is ours, we assume our responsibility to collectively determine how we shall shape the world. Out of the way, representatives, and out of the way all those who claim to own the earth". That in itself is anti-capitalist, we do not need to add any demands.


예, 저는 그것이 균열이라고 생각합니다. 코뮤나이징은 세계의 미래에 대한 우리의 책임성을 가정하는 것을, 우리의 세계를 이른바 재현자에게 위임하는 것에 대한 거부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표현을 찬성하며 재현을 거절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표현합니다, “여기에 우리가 있고, 이 세계는 우리의 것이고, 우리는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형상화할 것인지를 집단적으로 결정하는 데 대한 우리의 책임성을 가정하다”라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반-자본주의적이고, 우리는 어떤 요구도 더할 필요가 없습니다.


 


5. Many people say that the social movements (Occupy, YoSoy132, etc) should move from a symbolic level to a realistic level and provide specific alternative solutions against the capitalistic attack. Do you agree with this?


5.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운동들이 (점거하라, YoSoy132, 등) 상징적 수준에서 실재적 수준으로 움직이고 자본주의적 공격에 맞서 특유한 대안적 해결책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당신은 이것에 동의합니까?


 


Yes, I think they should be realistic. The only realistic way forward is to get rid of capitalism and create something else. Capitalism has failed, put it in the dustbin. The apparent realism of alternative solutions within capitalism just will not work. Within capitalism, the movements of money on the market must be obeyed: no alternative solutions can change that. The only real realism is to break the reality of existing society. Not easy, but that has to be where we are going.


예, 저는 그들이 실재적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유일한 실재적 방식은 자본주의를 제거하고 다른 어떤 것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실패했고, 그것을 쓰레기통에 두었습니다. 자본주의 안에서의 대안적 해결책이라는 명백한 리얼리즘은 작동하지 정확히 않을 것입니다. 자본주의 안에서, 시장에서의 돈의 운동들은 복종되어야 합니다: 어떤 대안적 해결책도 그것을 바꿀 수 없습니다. 유일한 실재적 리얼리즘은 존재하는 사회의 실재성을 깨는 것입니다. 쉽지 않지만,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가는 곳에 있어야 합니다.


 


6. You have mentioned the separation of abstract work from specific work and said that a holistic conception of work strengthens the reproduction of the capital. How do you mean that?


6. 당신은 특유한 노동으로부터 추상 노동의 분리를 언급했고 노동의 전체론적 개념이 자본의 재생산을 강화한다고 말했습니다. 당신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I think the core issue is our activity, our doing, what we do from day to day. The structure of a society in which survival depends on earning money pushes us to try and find a job, to shape our activity in a certain way that is determined by capital’s constant pursuit of profit: this is what Marx calls abstract or alienated labour. Our struggle is to shape our activity in a different way, to use our days to build a different way of living: that is what the cracks are about. This is very difficult because in present society everything pulls us toward the need to earn money to survive. This battle between (alienated) labour and a doing that has meaning for us is a battle that is at the centre of everyone’s life, and it is this battle that will decide whether we destroy the earth or create something new.


저는 핵심 이슈는 우리의 활동, 우리의 행위, 우리가 하루 하루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존이 소득 액수에 달려 있는 사회의 구조는 우리가 자본의 지속적 이윤 추구에 의해 결정된 특정한 방식으로 우리의 활동을 형상화하고, 직업을 준비하고 찾도록 밀어 붙입니다. 우리의 투쟁은 우리의 활동을 다른 방식으로 형상화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날들을 생활의 다른 방식을 건설하는 데 사용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것이 균열들이 있는 곳입니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데 왜냐하면 현재의 사회에서 모든 것은 우리를 생존하기 위해 돈을 벌 필요를 향해 당기기 때문입니다. (소외된) 노동과 우리에게 의미를 갖는 행위 사이의 이 전쟁은 모든 이의 삶에 있는 전쟁이고, 그리고 이 전쟁이야말로 우리가 지구를 파괴하거나 또는 새로운 어떤 것을 창조하거나를 정하는 것입니다.


 


7. You have talked about dignity as refusal and creation. In Greece, where people are furious, how can this fury become creative for the building of a different society?


7. 당신은 거부와 창조로서 존엄에 관하여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스에서, 사람들이 사람들이 격노했는데요, 어떻게 격노가 다른 사회의 건설의 건설에 대해 창조적으로 될 수 있을까요?


 


The flames in Athens are a beacon of hope that shines through all the world. You must understand this. If a day ever comes when the great Greek OXI to the measures of austerity falls silent, a depression will descend on the planet. The fury is central, but it is not enough, it has to overflow into the creation of something else. As I understand, this is already happening. Navarino Park is for me the great symbol of a beautiful creation growing out of fury, but there are lots of other things, community gardens, markets that bring producers together directly with consumers, workshops run on a cooperative basis, the conversion of an abandoned factory in Kerkyra to agriculture, the creation of neighbourhood assemblies. It is not enough, but that is the way we have to go.


아테네 사람들의 불꽃은 모든 세계를 통해 빛나는 희망의 횃불입니다. 당신은 이것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만약 내핍의 수단에 대한 위대한 그리스의 OXI가 잠잠해지는 날이 오는 일이 있으면, 불황이 지구에서 줄어든 것입니다. 분노는 중심적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충분하지 않고, 그것은 다른 어떤 것의 창조로 넘쳐흐릅니다. 제가 이해한 바로, 이것은 이미 일어나고 있습니다. 나바리노 공원은 저에게 격노로부터 성장한 아름다운 창조의 위대한 상징이지만, 하지만 공동체 정원들, 생산자들을 직접 소비자들과 묶어 주는 시장들, 협동적 기초에서 계속되는 워크숍들, 케르키라에서 버려진 공장의 농경으로의 전환, 이웃 집회의 창조과 같은 수많은 다른 것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충분하지 않으나,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입니다.


 


8. During the last years in our country there have been many movements of political disobedience (refusal to pay road tolls, bus tickets, property tax, etc.), while many multiform organizations transform the language of rebellion to social solidarity. Can we regard these initiatives as part of a world beyond and after from Capitalism?


8. 작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정치적 불복종의 많은 운동들이 (통행료들, 버스 티켓들, 재산세 등의 납부에 대한 거부) 있었는데, 그런데 많은 다양한 조직들이 반란의 언어를 사회적 연대로 변형합니다. 우리는 이 발의들을 자본주의 이후와 그 너머 세계의 부분으로 여길 수 있을까요?



Yes. Capitalism is a system that entrusts the world to a dynamic that nobody controls: the dynamic of profit. Disobedience is the first step in reclaiming the world, in assuming our responsibility for the world. In Greece, more than anywhere else, capitalism has proclaimed loudly that it is a disaster, a failure. It is time to create something else.


예. 자본주의는 아무도 통제할 수 없는 역학에 세계를 맡기는 체계입니다: 이윤의 역학. 불복종은 세계를 되찾기 위한 첫 번째 단계입니다, 세계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가정하는 속에서 말입니다. 그리스에서, 다른 어떤 곳보다 많이, 자본주의는 그것이 재앙, 실패라고 시끄럽게 공포했습니다. 다른 어떤 것을 창조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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