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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k ☆140자 다지원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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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랙 캐피털리즘』 한국어판 출간기념 화상강연회에서

 

존 홀러웨이(『크랙 캐피털리즘』 지은이) / 자율주의 영어세미나팀 돌민, 김새롬, 김현덕, 유청희 옮김

 


이 글은 존 홀러웨이 님이 화상강연회를 위해 보내준 글이며, <Tidal> 2013년 2월 12일자 실린 인터뷰 글입니다.



Questions:1. What do cracks look like?


질문:1. 균열은 어떤 것입니까?


 


We can start with Tidal. What does it look like? It’s a walking in the wrong direction, bringing together other walkings in the wrong direction. It’s a negation-and-creation. The world points in one direction, tellsus that for something to be meaningful it must generate money, profit. And we say No and walk in the opposite direction, doing what we consider to be desirable and necessary, generating a meaning that has nothing to do with money. It is a refusal to conform to the rule of capital and, at the same time, a creation of something else, a self-determination. We say No and sow what could be the seeds of a different world.


우리는 Tidal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잘못된 방향으로의 걷기입니다, 잘못된 방향으로의 다른 걷기들을 모으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정-그리고-창조입니다. 세계는 한 가지 방향을 지시합니다, 우리에게 어떤 것이 의미 있기 위해서는 그것이 돈, 이익을 낳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니오(No)라고 말하고 반대 방향으로 걸어갑니다, 우리가 바람직하고 필수적인 것이라고 간주하는 것을 하면서, 돈과 아무 관련이 없는 의미를 낳으면서 말입니다. 그것은 자본의 지배에 순응하는 것에 대한 거부이고, 동시에, 다른 어떤 것의 창조이고, 자기-결정입니다. 우리는 아니오라고 말하고서 다른 세계의 씨들이 될 것을 뿌렸습니다.


 


Of course it is not just Tidal. It is all those attempts to go against the logic of capital and do something else instead. These may be big (like the Occupy movement or the Zapatistas), medium (a social centre, a factory occupation), small (a group of friends deciding to dedicate themselves to alternative farming, or a revolutionary party of average size), even tiny (a kiss, perhaps). They may be spatial (Zuccotti Square), temporal (a week of rioting) or dedicated to a specific activity (free rides on public transport, campaigning against the privatisation of water). The important thing in the first instance is not to judge, but to recognise: to recognise that the world is full of cracks, that being human is a constant moving against a dehumanising system. It is only when we see that anti-capitalism is deeply rooted in the experience of living in a capitalist society that it makes sense to talk of creating a different world.


물론 그것은 단지 Tidal인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자본의 논리에 거스르고 대신에 다른 어떤 것을 하려는 모든 시도들입니다. 이것은 (점거 운동 또는 사빠띠스따처럼) 클지도, (사회센터, 공장점거처럼) 중간일지도, (대안적 농업에 그들 자신을 헌신하기로 결심한 한 그룹의 친구들, 평균 크기의 혁명적 당처럼) 작을지도, (아마, 키스처럼) 정말이지 조그마할지도 모릅니다. 그것들은 (주코티 광장처럼) 공간적일지도, (폭동의 일주일처럼) 시간적일지도 또는 (대중 교통에 무료로 타기, 물의 사유화에 맞서는 캠페인처럼) 특유한 활동에 헌신될지도 모릅니다. 우선 첫째로 중요한 것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는 것입니다: 세계가 균열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인간 존재는 비인간화하는 체계에 맞선 지속적인 움직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오직 반(反)-자본주의 생활의 경험에 깊게 뿌리박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는 때에만, 다른 세계를 창조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뜻을 갖습니다.


 


2. How do we connect the cracks?


2. 균열들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요?


 


The way we disconnect the cracks is by the great left tradition of sectarianism, by saying "that’s the wrong way, follow us and we’ll show you how!" I don’t mean that we shouldn’t discuss and criticise and suggest, but it has to be in the context of understanding that we are all trying to create paths that do not exist in order to create a society that does not exist, or rather that exists only as not-yet, in the many different paths that are pushing against-and-beyond capitalism.


우리가 크랙들의 연결을 끊는 방식은 바로 위대한 좌파의 종파주의 전통에 의한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죠, “그건 틀린 방식이야, 우리를 따르면 우리가 그 방법을 보여줄게!”라고요. 제 말은 논의하고 비판하고 제안하는 행위를 하지 말자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이 다음과 같은 것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존재하지 않는 사회, 또는 차라리 단지 아직은-존재하지 않는 것으로서 존재하는 사회를 창조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 길들을 창조하려 노력중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맥락에서, 자본주의와 맞서-그리고-넘어 밀어붙이는 많은 다른 길들에서 말입니다.


 


We connect the cracks in lots of different ways, above all by promoting their mutual recognition as cracks. This is what Tidal is trying to do, what this interviewis trying to do, this is what songs and theatere and books do. I think it is more helpful to think of resonances than of institutional connections. Institutions generally promote boredom and stagnation.


우리는 수많은 다른 방법으로 균열들을 연결하는데, 특히 균열들로서의 상호 인정을 진척시킴으써 그렇게 합니다. 이게 바로 Tidal이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고, 이 인터뷰가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며, 노래, 극장, 책이 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저는 제도적 연결들보다는 반향(反響)들을 생각하는 게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도(制度)들은 일반적으로 지루함과 침체를 진척시킵니다.


 


3. What is revolution today?


3. 무엇이 오늘날 혁명일까요?


 


Desperately urgent. If we do not break the dynamic of capital, the world will become a nastier and nastier place and it is very possible that humans will not survive for very long.


몹시 긴급합니다. 우리가 자본의 동학(動學)을 부수지 않는다면, 세상은 점점 더 골치 아픈 곳이 될 것이고 인간이 그리 오래 생존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4. What is the relation between a moment of rupture and the process of revolution?


4. 파열의 순간과 혁명의 과정 사이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The difficulty is that we cannot be sure what a revolution looks like. The concept that dominated in the last century, that of taking state power and then transforming society, did not work and in some cases led to horrendous results We have to separate the idea of revolution from that of taking state power. Revolutionary change is more urgent than ever, but it is not through captureing state power that we can bring it about. I find it helpful to think in terms of three of the Zapatista sayings.


어려움은 우리가 혁명이 무엇처럼 보이는지를 확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난 세기에 군림했던 개념,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 그리고 그 다음에 사회를 변형한다는 그 개념은, 무서운 결과들로 이끌린 몇몇 경우들에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혁명의 생각을 국가 권력을 장악하는 것으로부터 분리해야 합니다. 혁명적 변화는 이전보다 더 긴급하나,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야기할 수 있는 것은 국가 권력을 손에 획득하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는 점 말입니다. 저는 사빠띠스타 말하기의 세 가지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First (of course) ¡Yabasta! Enough! We have reached the limit of what we will accept. We cannot think of a future revolution, revolution must be here and now. In the cracks we assume here and now our responsibility for the world. It cannot be a question of incremental change through reforms which may improve situations but do nothing to break the capitalist dynamic of destruction. Break, break now, break by living the world we want to create.


첫째로 (물론) ¡Yabasta! 충분해! 우리는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의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우리는 미래의 혁명을 생각할 수 없고, 혁명은 여기 그리고 지금이어야 합니다. 균열들에서 우리는 여기 그리고 지금 세계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가정합니다. 그것은 상황을 개선할지도 모르지만 파멸의 자본주의적 동학을 부수는 것과 관련이 없는 개혁을 통해서 증강하는 변화의 문제일 수 없습니다. 부셔라, 지금 부셔라, 우리가 창조하기를 원하는 세계를 삶으로써 부셔라.


 


Secondly, preguntando caminamos: Asking we walk. We walk asking because we do not know the way and also because asking-discussing is a process of collective determination, and collective determination is the way.


둘째로, preguntando caminamos: 걸어가며 묻기. 우리는 걸어가며 묻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길을 모르기 때문이고 또한 왜냐하면 묻기-토론하기가 집단적 결정의 과정이고, 그리고 집단적 결정이 길이기 때문입니다.


 


Thirdly, caminamos, no corremos, porque vamos muy lejos: We walk, we do not run, because we are going very far. This is not postponement, quite the contrary. There is a reversal of the traditional temporalities of revolution. The old idea was of revolution in the future, which would then change things dramatically. Now we think rather of rupture here and now (with a resounding crack!) which opens the arduous and often slow process of creating a different world, always pushing against-and-beyond that which exists.


셋째로, caminamos, no corremos, porque vamos muy lejos: 우리는 걷고, 우리는 달리지 않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매우 멀리 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연기(延期)가 아니고, 완전히 반대입니다. 혁명의 전통적 일시성들에 대한 반전(反轉)이 있습니다. 오래된 생각은 미래에서 혁명의 일시성들이, 그것들이 사태들을 극적으로 그때 바꿀 거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여기 그리고 지금 (반향하는 균열들과 함께) 힘든 것들을 여는 파열들을 오히려, 다른 세계를 창조하는 느린 과정을 자주, 존재하는 것과 맞서-그리고-넘어 밀어붙이는 것을 항상 생각합니다.


 


So: a Tidal wave of ruptures, growing to the point where capitalism is swept aside.


그래서: 파열들의 조수(潮水)적 파도, 자본주의가 일축되는 점까지의 성장 말입니다.


 


5. How might the city become an arena of revolutionary practice?


5. 어떻게 도시는 혁명적 실천의 원형경기장이 될까요?


 


It is, isn’t it? Go out and look. Sit down with your friends (if such you have), try to see how many cracks you can see in your neighbourhood and write to Tidal with the results.


그것은 원형경기장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밖으로 가서 보십시오. (만약 그러한 친구가 있다면) 당신의 친구와 앉아서, 당신이 얼마나 많이 당신의 이웃에서 균열들을 볼 수 그리고 그 결과들을 가지고 Tidal에 쓸 수 있는지를 보려고 노력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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